신라사연재글

2006년 소년한국일보 연재 30회 - 불국사와 석굴암

영양대왕 2006. 10. 9. 00:06

[신라 1000년의 비밀] 불국사와 석굴암
완벽한 예술로 표현한 불교 세계…수학·기하학의 발달 놀라워

석굴암.

●김대성의 일화 삼국유사에 자세히 기록

불국사와 석굴암은 신라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신라의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만들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그가 이 유적들을 세우게 된 이야기를 들려줄까 합니다.

모량리의 한 가난한 집에서 대성이란 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집이 워낙 가난해 부잣집에서 품팔이를 하거나, 그 집에서 나눠 준 밭을 일구며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부잣집에 와 시주를 부탁하자 베 50 필을 시주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한 가지를 시주하면 1만 배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대성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국보 23호인 청운교와 백운교. 아래쪽이 청운교이다.

“우리 집이 가난한 까닭은 지난 생애에 좋은 일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보시하지 않으면 다음 생애도 더욱 구차할 것이니, 제가 고용살이로 얻은 밭을 법회에 시주해서 뒷날 보답을 받는 게 좋겠습니다.” 어머니도 대성의 말에 찬성해 밭을 시주했습니다. 그런데 대성이 덜컥 죽고 말았습니다.

그 날 밤 신라의 국상인 김문량의 집에는 하늘에서 큰 외침이 있었습니다.

“모량리의 대성이란 아이가 네 집에서 태어날 것이다.”

다보탑

김문량의 아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왼손에 대성이란 글자가 씌어 있었습니다.

이에 김문량은 그가 곧 모량리의 대성임을 짐작하고, 모량리에 살고 있는 대성의 옛 어머니를 모셔와 함께 살도록 했습니다.

대성은 자라면서 사냥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토함산으로 곰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 날 밤 대성이 산 밑에서 잠을 자는데,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해 잡아먹겠다고 괴롭혔습니다. 대성은 이에 귀신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귀신은 대성에게 “네가 나를 위해 절을 세워 달라.”고 했습니다.

대성은 그러겠다고 약속 했습니다. 그 후 대성은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으며, 곰을 잡은 그 자리에 장수사라는 절을 세웠습니다.

또 현재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앞선 부모를 위해 석불사(석굴암)를 세웠습니다. 이처럼 앞선 생애와 현재 생애의 두 부모에게 효도한 김대성의 일은 매우 특별한 것으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건출물마다 상징적 의미 가득

불국사는 본래 535년 법흥왕 때에 처음 만들어 졌지만, 751년 김대성에 의해 다시 지어집니다. 김대성이 죽은 후에는 나라에서 완성했다고 전합니다.

현재 불국사의 나무로 된 건물은 대개 조선 시대에 만들어졌거나, 최근에 복원된 것입니다. 하지만 돌로 된 청운교ㆍ백운교ㆍ연화교ㆍ칠보교를 비롯해, 석가탑과 다보탑 등은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 그대로입니다.

불국사 경내는 크게 돌계단을 기준으로 둘로 나눠집니다. 돌계단 위는 부처의 나라이고, 그 아래는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한 일반 사람들의 세계입니다. 특히 청운교ㆍ백운교는 33 계단으로 돼 있는데,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33 개의 하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즉 욕심을 버리고 불교도의 마음으로 돌아가려 노력하는 자들이 걸어서 올라가는 다리를 상징합니다.

석가탑.

계단을 올라와 자하문을 통과하면 부처님의 나라에 도착합니다. 그 곳에는 유명한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습니다.

두 탑은 각각 다보여래와 석가여래가 머물며 불교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을 상징합니다. 다보탑은 화려한 석탑이고, 석가탑은 간결하면서도 장중합니다.

두 탑 뒤편의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공간은 현재의 세계를 상징하며, 그 뒤편의 관음전과 비로전은 과거의 공간을 상징합니다.

또한 석가탑 서쪽의 극락전 부분은 미래의 세계, 곧 극락 세계를 상징합니다.

이렇듯 3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진 불국사의 구조는 신라인이 상상하는 부처님의 나라, 즉 이상적인 세계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불국사와 같이 만들어진 석굴암은 인공적으로 석굴을 만든, 부처님을 모신 석굴 사원입니다. 석굴암은 부처가 깨달은 순간의 모습을 표현한 모습과 둥근 벽면을 따라 조각된 여러 보살상 등이 완벽한 예술 세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고도로 발달한 신라의 수학 및 기하학의 지식이 총동원됐습니다.

이처럼 불국사와 석굴암은 단지 김대성 개인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당시 발달했던 신라의 기술과 불교를 믿었던 신라인의 노력의 결실인 것입니다.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