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연재글

2006년 소년한국일보연재 12 - 지증왕

영양대왕 2006. 5. 29. 09:08
지증왕의 업적
우경 실시·상업 발전·우산국 정벌…大신라로의 디딤돌 놓다

1989년 발견된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영일 냉수리비. 지증왕에 대한 내용이 이 비문에 등장한다.

서기 500년 왕위에 오른 지증마립간(지증왕)은 신라 발전에 크게 기여한 분입니다.

그는 몸이 크고 담력이 뛰어났지만, 신라 21대 소지마립간의 5촌 당숙으로써 왕위에 오르기 어려웠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없었던 소지마립간이 갑자기 죽고 후계자가 없는 상황이 되자, 그가 마립간이 된 것입니다.

●마립간에서 왕으로 호칭 바꿔

그리고 503년 10월 신하들은 나라 이름을 계림ㆍ사로 등에서 ‘신라’로 통일하고, 임금의 호칭도 존경의 뜻이 담긴 왕으로 바꾸기를 청합니다.

당시 거서간ㆍ차차웅ㆍ마립간 등은 임금을 부르는 신라 특유의 호칭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를 버리고 이웃 나라가 사용하는 호칭으로 바꾼 것일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냉수리비에 담긴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89년 경북 영일군에서 발견된 냉수리비는 503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신라비입니다. 여기에는 재미난 사실이 적혀 있습니다. 그가 마립간이 된 지 3 년이 지난 503년 9월, 영일 지역의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 명의 대표자가 모였습니다. 비문에는 놀랍게도 그를 갈문왕이라 표시하고 있습니다. 갈문왕은 왕과 특별한 인척 관계를 가진 왕의 장인이나, 큰아버지 혹은 나이든 동생에게 ‘왕에 버금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 칭호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각 부에서 나온 대표자 6 인을 합쳐 7 왕이라 적고 있습니다. 이 때만 해도 그는 신라의 여러 부족장 중 제1인자인 마립간일뿐, 부족장과 완전히 구분되는 강한 권력을 갖지는 못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1 개월 뒤 신하들이 그에게 국왕이란 존칭을 사용하라고 청한 것은, 울진에서 벌어진 사건 처리를 마지막으로 그가 다른 부족장과 완전히 구별되는 강력한 지배자가 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신라도 이제 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 지배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지증왕은 신라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였습니다.

502년에는 소지마립간의 장례식 때 5 명의 산 사람을 강제로 함께 임금의 무덤에 묻게 하는 순장 제도를 없애 버렸습니다.

백성들이 억울하게 죽는 일을 막는 한편 농업에 종사할 수 있는 사람을 1 명이라도 소중히 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순장 없애고 상설 시장 세워

울릉도. 신라 때에는 우산국으로 불렸다.

같은 해에 지증왕은 소로 논밭을 갈아 농사를 짓는 법을 처음 실시하고, 농민들에게 이를 적극 권장했습니다.

한편 고구려의 경우 순장은 248년에 폐지되었으며, 소로 농사짓는 우경도 신라보다 수백 년 앞서 실시됐습니다. 늦기는 했지만, 신라도 이 때부터 농업이 크게 발전하게 됩니다. 소를 이용한 우경은 농민들에게 힘을 덜 들이고도 농사를 짓고, 더 넓은 면적에서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는 곧 농민이 잘 살고, 나아가 국가도 잘 살게 되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지증왕의 업적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은 지금의 울릉도와 독도에 있던 우산국을 복속시킨 일입니다. 우산국 사람들은 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섬이라는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해 신라 해안가를 자주 공격하고, 무역을 방해했습니다.

신라는 우산국을 정벌하고 싶어했지만, 워낙 바닷길이 험하고 사나운 사람들이라 어찌하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신라의 대표적인 명장인 이사부가 새로운 작전을 세웁니다. 그는 우산국 사람들이 세상의 정보에 어둡다는 것을 이용했습니다. 나무로 만든 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선에 나누어 실은 뒤 우산국 해안에 다가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너희가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를 풀어 너희를 잡아먹게 하겠다.”

이렇게 위협을 하자, 우산국 사람들이 항복을 하기에 이릅니다. 이로써 울릉도와 독도는 신라의 영역에 포함되게 되었습니다.

한편 지증왕은 나라를 주ㆍ군ㆍ현으로 구분해 효율적으로 지방을 통치하게 만들었으며, 상설 시장을 세워 상업의 발전을 돕는 등 많은 업적을 남깁니다. 이처럼 지증왕은 신라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디딤돌을 놓은 임금이었답니다.


김용만(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