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연재글

2006년 소년한국일보 연재 5회 - 가배축제.

영양대왕 2006. 4. 2. 20:13
[신라 1000년의 비밀] 가배-한가위 기원된 여성들의 길쌈 축제


신라인들은 해와 달을 숭배하였으며, 밤 하늘에 대한 관심이 컸다. 신라인에게 첨성대는 그러한 관심의 상징이었다.

음력 8월 15일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가배)입니다. 여기서 한가위의‘한’은 크다는 뜻이고, ‘가위’는 가배라는 말입니다.

여성들의 길쌈 축제인 ‘가배’는 신라에서 처음 시작됐습니다. ‘삼국사기’에는 가배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신라 3대 유리 이사금 9년 때의 모습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왕께서 신라 6부 사람들을 둘로 나누고서, 왕녀 두 명으로 하여금 각자 여자들을 거느려 편을 짜서 길쌈 시합을 하게 하였다.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날마다 아침 일찍 큰 마당에 모여서 길쌈을 시작, 밤 10시경에 그치게 하였다.

8월 15일이 되자 어느 편에서 더 많이 길쌈을 했는지를 평가해, 지는 쪽에서는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대접하게 하였다. 이 때 춤과 노래 그리고 온갖 놀이가 벌어지니 이를 ‘가배’라고 한다.”

가배는 이처럼 부여의 영고ㆍ고구려의 동맹ㆍ동예의 무천과 같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 행사 또는 수확에 감사 드리는 추수 감사제로 봅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동맹ㆍ무천은 음력 10월인데 비해 가배는 음력 8월 15일입니다. 즉 곡식이 다 익은 후에 감사 드리는 명절이 아니라, 햇곡식이 막 나올 때 지내는 명절입니다. 가배는 또한 길쌈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신라 여성들이 한 달간 집안일을 돌보지 않고 밤늦게까지 모여 길쌈을 했다는 것은 조선 시대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단합·인내심 키워

가배는 이처럼 여성들의 축제였습니다. 신라 여성들은 한 달 동안의 단체 생활을 통해 단합과 인내심을 길렀을 것입니다. 또 경쟁을 통해 보다 좋은 옷감을 많이 만들게 됐고, 이 때문에 옷감 제조 기술이 좋아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런데 길쌈 시합에서 진 편은 진 것을 몹시 안타깝게 여겼나 봅니다. 진 편의 여자가 춤추며 노래하는 가운데 슬프고 아름다운 ‘회소곡’이란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했으니까요.

길쌈은 또한 여성들의 생산 활동입니다. 여성들이 옷감을 짜지 않으면 나라 사람들이 추위에 떤다는 말이 있습니다. 길쌈은 이처럼 당시 남성들의 농사 짓기만큼 중요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삼국유사’에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와 달의 기운을 가진 연오랑과 세오녀가 바다 건너 왜국으로 떠나자, 신라에서는 해와 달의 광채가 사라졌습니다. 왕은 사신을 보내 그 곳에서 왕이 된 연오랑과 세오녀를 만나게 했습니다. 그러자 연오랑이 사신에게 말하기를 세오녀가 짠 고운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신이 비단을 가져와 제사를 지내자 곧 해와 달의 정기가 이전과 같아졌습니다. 세오녀가 짠 비단은 창고에 보관하고 나라의 국보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보듯 신라 여성들이 짠 직물은 해와 달 신에게 제사 지낼 제물로, 또 국보로 여겨질 정도로 그 가치가 높았습니다.

●신라에서 처음 시작된 우리 고유의 명절

한가위에는 왕이 관리들에게 활쏘기를 하게 한 뒤 활을 잘 쏜 자에게 상으로 말과 포목을 주는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가위는 여성들의 축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가배에서 보듯 신라 여성들은 초기부터 생산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한편, 일본인 승려 원인(圓仁)이 당나라를 여행하며 남긴 ‘입당구법순례행기’에는 839년 8월 15일에 신라인이 많이 살고 있는 산동반도 적산원에서 추석을 지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절에서 수제비와 떡을 장만해 8월 보름 명절을 지냈다. 다른 나라에는 이 명절이 없지만, 유독 신라에는 이 명절이 있다. 이 날 온갖 음식을 마련해, 노래하고 춤추고 음악을 즐기며 밤낮으로 사흘을 쉰다.”

한가위는 이처럼 신라에서 처음 시작된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입니다.

/김용만(우리 역사 문화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