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연재글

2006년 소년한국일보 연재 1 - 신라사 개설.

영양대왕 2006. 3. 7. 16:18
[신라 1000년의 비밀] 고구려 문물 받아들이고…
백제와 손잡으며 화려한 문화 꽃피워

신라는 1000 년의 세월을 이어 온 나라로 석굴암과 금관으로 대표되는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으며, 삼국 통일의 위업도 이룩했습니다. 그런데 역사 학자 가운데에는 삼국 통일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외세인 당나라를 끌어들여 동족의 나라를 멸망시켰으며, 고구려 영토를 제대로 차지하지 못한 불완전한 통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을 해 볼 수 없을까요? 고구려와 백제는 왜 삼국 통일을 못했을까요? 신라보다 힘센 고구려는 왜 삼국을 통일하지 못했고, 대야성을 빼앗으며 신라를 위기에 몰아 넣은 백제 역시 왜 신라에게 멸망 당했을까요? 또 신라의 삼국 통일이 없었다면 우리 역사는 어찌 됐을까요? 신라의 삼국 통일은 이처럼 대단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각 나라의 장점 흡수하며 발전

황남대총 금관.

신라는 오랜 세월동안 세 나라 가운데 가장 작은 나라였습니다. 그럼에도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건 신라만의 엄청난 잠재력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신라는 일찍이 한반도의 아랫녘 경주 땅에서 아주 작은 나라로 출발했습니다. 또 소백산맥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오랜 동안 고립돼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신라는 옹골차게 그리고 천천히 실력을 다져 나갔습니다.

초기에는 낙동강 건너편에서 철기 문화를 발전시킨 가야 연맹에 비해 힘이 부족했지만, 단합된 힘으로 4~5세기 때에는 가야를 능가하는 힘을 갖게 됩니다. 나아가 백제·고구려를 제압하고, 마침내 왜국을 가르치는 나라로까지 성장하게 됩니다. 신라는 이처럼 작은 나라였지만, 실제로는 대국이었던 것입니다.

‘천년 왕국’ 신라는 드넓은 대륙을 지배했던 고구려나, ‘바다의 왕국’ 백제에 비해 강렬한 이미지는 부족합니다. 신라는 그러나 우리가 나아갈 바를 잘 보여 줍니다.

고구려·백제가 우리 역사에 꿈을 심어 준 데 비해, 신라는 다른 의미에서 좋은 역사적 본보기인 것입니다. 한편, 서기 400년에 고구려와 만난 건 신라의 발전에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고구려의 대군은 신라를 공격해 온 가야와 왜의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하지만, 신라를 위기에서 구해 낸 고구려는 신라땅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등 큰 부담이 되었지요. 심지어 신라왕은 고구려장군의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가 태왕이 주는 하사품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신라는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거나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고구려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백제와 손잡고 발전의 길을 찾았습니다. 신라는 진흥왕 때 고구려의 땅을 빼앗고 한반도의 중심부를 차지합니다. 이로써 세 나라간 경쟁에서 주도권을 갖게 됩니다.

 

●삼국통일의 큰 업적 이뤄

국보 제24호인 불국사 석굴암.

이 같은 힘을 바탕으로 문무왕 시기에는 마침내 경쟁을 끝내고 삼국 통일의 큰 업적을 이룹니다. 신라가 위대한 나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위기를 기회로 삼고,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신라는 석굴암·다보탑을 만들던 8~9세기에 유례 없는 풍요를 누렸습니다. 특히 경주는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 유산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처럼 신라는 흥미 있고, 대단한 역사를 가졌습니다.

우리가 신라를 이제껏 너무 소홀히 대접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해 봐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신라 역사를 우리 어린이들이 올바로 배워 미래를 설계하는 데 소중한 지혜로 활용했으면 합니다. 자, 이제 신라 천년의 역사를 찾아 함께 길을 떠나볼까요?


입력시간 : 2006-03-05 1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