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발견-나의생각

동양사 연구의 문제 중국병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영양대왕 2006. 1. 23. 11:42
동양사 연구의 문제 중국병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번호 : 12   글쓴이 : 김용만
조회 : 293   스크랩 : 0   날짜 : 2002.05.10 21:16
룩관텐의 저서 "유목민족제국사"(송기중역본, pp433-434)에서 잠시 한 문장을 인용해본다.

중앙아시아 역사연구에만 독특한 역사학의 症狀 즉 중국病을 낳게 하였다.
첫째로 중국의 자료들은 중국인들의 夷족에 대한 적개심과 편견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기록된 액면 그대로를 믿는다.
둘째로 현존하는 사료들은 절대다수가 유교사상에 의한 해석이 부여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자료들은 분류, 기술되어 있으니 우선 왕조의 세계에 의하여, 다음에는 개별적인 주제분야 - 예) 정치, 경제, 사회구조-로 구분되어 있다. 왕조의 세가에 의한 분류는 시간의 연속성을 무시하고 있으며 주제에 의한 분포는 마치 상이한 주제간에 어떠한 관계도 존재하지 않았던 듯이 이해된다.

룩관텐이 말한 중국병은 단지 중앙아시아사 즉 북방 유목민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사에도 마찬가지며, 오히려 한국사에 그 증상이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민족주의 사학자들과 네티즌들이 한국사는 中毒, 倭毒, 洋毒에 걸렸으니 이를 치유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학자들은 이 가운데 왜독의 실체는 인정하고, 식민사학의 탈피를 주장해왔고, 실제로 많이 치유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아직도 식민사학의 잔제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분명 예전보다는 낳아졌다. 양독. 즉 기독교사관이나 서구중심적 사관에 의해 한국사를 주변부의 역사로 보려는 시각이나, 서구적 틀에 의해 우리역사를 재단하려는 시도는 물론 해악적인 측면도 있으나, 현재로서는 새로운 역사학의 방법론을 끊없이 도입한다는 측면에서 당분간은 어쩔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양독의 경우는 아직까지는 역사문헌보다는 해석의 문제이므로, 지금 한국사학이 제대로 발전된다면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

문제는 중독이다. 특히 삼국과 발해 이전의 시대의 역사는 우리측 문헌이 극히 부족한 가운데 대부분은 중국인이 기록한 문헌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편견이 반영된 부분을 걷어내고 제대로 해석하지 않으면 한국사를 오해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어떤 자료가 어디만큼 그들의 편견에 의해 왜곡되었는지를 판단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모든 중국 기록을 의심하고 그것을 부정한다면 한국사의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국 기록 가운데 대부분은 일정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측 자료와 금석문과 유물, 일본측 자료를 통해 비교해보아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부학자들은 문헌비판이 어려운 만큼 그냥 문헌에 기록된 것 그대로를 번역하고 나 사료많이 보았으니까 역사학자다. 이렇게 행세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역사학이 과학인 것은 역사의 근거가 되는 사료비판을 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기록된 것을 역사라고 한다면 역사는 소설이나 다름없는 것이 된다.
문헌을 비판하는 능력은 전후 좌우를 다 살피는 통찰력이 필요하며, 매우 까다로운 독해능력과 세심함이 요구된다.

일부 성급한 민족주의 학자들은 중국의 자료들은 왜곡된 것이 자신의 검증되지 않은 해석이 무조건 옳은 만큼 역사의 진실은 이것이라며 멋진 한국사의 모습을 재현해놓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식민사학자니, 반민족주의자니 하면서 비난도 불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가 달라질 수는 없다.
고대사의 경우는 많은 상상력이 허용되는 분야인 만큼 해석에 있어서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고, 근현대사에 비해 그 진폭이 큰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런 분야일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하다. 단지 우리 학계에서만 인정받는 설로도 부족하며 전세계학자들이 인정해야만 한다.

지금 한국사에 대한 외국인의 인식은 다른 나라에 우리 학자들의 연구성과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외국인이 한국사를 보는 시각은 중국인이나 일본인과 거의 같다. 그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인과 일본인이 동아시아사를 보는 시각을 교정시켜야 한다. 아니 최소한 우리학자들이 주장하는 설에 적극적 반박은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 가운데 가장 핵심은 나는 중국병 극복에 있다고 본다. 사료를 재해석하여 자, 이것은 중국인의 조상들이 입장에서 이렇게 서술했지만, 당시 정황을 중국인의 조상과 한국인의 조상의 양 입장에서 본다면 대체로 이런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우리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중국인의 편견과 오해, 자국중심적 사고에 의해 두텁게 분식된 사료위의 먼지들을 털어내고 본래의 옛 역사상을 밝히는데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사료를 볼 때 자, 이 사료는 어떤 입장에서 글을 쓴 것인지를 한번은 꼭 생각을 해야 한다. 이 사료가 한 사람의 뒷통수를 보고 서술한 것이라면 다른 자료에서 혹 옆면을 보고 서술한 자료가 없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앞면에서 보았을 자료를 찾고 없다면 다양한 각도에서 본 자료들을 종합해서 앞면의 모습을 재구성해보아야 한다. 중국인이 뒷통수만 그려놓은 자료를 보고 그래 한국의 조상들은 눈, 코, 입도 제대로 없이 머리털만 덮수룩한 야만인의 모습이야 이렇게 판단한다면 그것은 역사학을 공부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는 먼저 사실을 옳게 밝혀내는 작업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역사의 의미를 묻고 오늘에 응용하는 문제까지가 역사학이라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한국사에서는 가장 먼저 중독부터 제대로 치유하는 것이 우선인 듯하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 곪은 다리로 걷는다면 곧 갈지자 걸음으로 변하지 않겠는가.

단순한 구호와 외침 당위성을 따지기에 앞서 철저히 중국병을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우리 한국사 연구에서 급선무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