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사연재글

2007년 소년한국일보 연재 12회 -침류왕 불교를 받아들이다.

영양대왕 2007. 6. 12. 14:16
[해양 강국 백제를 찾아서] <12>침류왕, 불교 수용 고구려 다음 국교 삼아
일본에 불상·경전 보내 전파하기도
겸익 스님, 인도서 불교 경전 가져와
29대법왕, 살생 금지법 제정
무왕, 백제 최대 사찰 미륵사 건립


'백제의미소'라 불리는 국보 84호 서산마애삼존불.

보물 432호인 태안마애삼존불.

384년 침류왕 때 궁중서 먼저 받아들여

백제의 전성기를 누린 근초고왕의 아들 근구수왕은 375년 왕위에 올라 384년까지 10 년간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는 근초고왕 때 고구려 정벌에 나선 뛰어난 장수이기도 했습니다.

백제에 불교를 들여온 왕은 바로 근구수왕의 아들인 침류왕입니다. 침류왕은 384년 왕이 된 해에 곧바로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양자강 주변의 동진국에서 인도 스님 마라난타를 보낸 뒤였지요.

침류왕은 수도 밖까지 나가서 그를 맞이했으며, 궁중으로 불러들여 설법을 들었습니다. 왕과 궁중이 먼저 받아들인 불교는 차츰 백성들에게 퍼져 고구려 다음으로 불교를 국교로 삼게 됩니다.

백제 왕들은 적극적으로 불교를 믿었습니다. 침류왕은 385년 한산에 절을 세우고 10 명의 승려를 배출했으며, 아신왕은 392년 백성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믿고 복을 구하라."고 명하기까지 했지요.

백제의 불교가 발전에는 526년 겸익 스님이 인도에서 산스크리트 어로 된 불교 경전을 가져온 것도 큰 몫을 했습니다. 멀고 먼 인도까지 배를 타고 간 겸익 스님은 이 때 인도의 배달다 스님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인도 불교 경전은 중국에서 이미 한문으로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제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인도에 가서 경전을 구해다가 직접 번역했어요. 백제 성왕은 나라 안의 학자 28 명으로 하여금 경전을 번역하는 일을 돕게 했습니다. 백제에서 발달한 것은 불교의 한 종파인 계율종이었습니다.

마애삼존불·정림사 5층 석탑 등 많은 유적과 유물

백제는 538년 왜국에 불상과 경전을 보내 불교를 공식적으로 전파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열도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백제의 공이었던 셈입니다. 602년 왜국에 건너간 관륵 스님은 일본 최초의 승정(스님들의 우두머리)이 되어 일본 불교 교단의 기강을 바로 잡는 일도 했습니다.

29대 법왕은 불교를 생활화하기 위해 살생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31대 무왕은 백제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를 건립했고요. 이처럼 백제 왕들은 불교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백제 시대에는 많은 불교 유적과 유물이 만들어졌습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정림사지 5층석탑, 미륵사 석탑, 그리고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과 태안마애삼존불, 금공관세음보살입상 등입니다.

이 가운데 높이가 8.33 m인 정림사지 5층석탑은 나무로 만들던 초기의 탑과는 달리 돌로 지어졌습니다. 잘 다듬은 화강석 149 장을 짜 맞춘 것이지요. 이 탑 이후에 만들어진 석탑들은 이를 본따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만큼 정림사지 석탑이 갖는 의미는 큽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물들에도 불구하고 백제 불교를 전체적으로 알려주는 자료는 많이 부족합니다. 정림사지, 군수리사지와 같은 절터의 발굴 등을 통해 보다 많은 백제 시대 유적과 유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대해 봅니다.

우리나라 석탑의 첫 모델이된 정림사 5층석탑.


김용만(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입력시간 : 2007-05-20 1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