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사연재글

2007년 소년한국일보 연재 16회 - 동성왕의 대륙 경략

영양대왕 2007. 6. 24. 19:36
동성왕, 혼란의 백제 빠르게 안정시키다
'북위' 물리치며 힘 과시… '남제서' 등 대륙 활동 기록 전해져

동성왕이 즐겨 찾았던 공산성 안에 있는 연못 터.

●신라와 굳건한 동맹 관계 다져

475년 고구려를 피해 수도를 웅진(공주)으로 옮긴 백제는 불과 4 년 만에 문주왕과 삼근왕 두 왕이 죽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맞습니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한 사람은 479년 24대 임금이 된 동성왕입니다.

그는 담력이 센 데다 활을 잘 쏘는 용감한 임금으로 백제를 빠르게 안정시키고 발전시켰어요. 동성왕은 먼저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493년 신라에 사신을 보내 동맹 관계를 굳건히 맺자고 제안했습니다. 신라 왕인 소지마립간은 이찬(신라 2위 관등) 비지의 딸을 백제에 보냅니다. 비지의 딸이 동성왕과 결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나라는 혼인을 통해 동맹 관계가 되었지요.

이 소식을 들은 고구려는 곧 신라를 공격했습니다. 신라군은 살수원이란 곳에서 고구려군에게 패해 견아성으로 물러나 적을 막게 됩니다. 신라군이 적에게 포위되자 동성왕은 군사 3000 명을 보냈고, 고구려군은 포위를 풀고 물러났습니다.

고구려는 495년 신라가 아닌 백제 치양성을 포위 공격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신라가 군사를 보내 백제를 도왔고, 고구려군은 다시 물러날 수 밖에 없었지요. 동성왕은 이처럼 신라와의 굳건한 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고구려를 막고, 나라를 안정시킵니다.

498년 제주도에 있던 나라인 탐라가 조공을 바치지 않자, 동성왕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무진주(지금의 광주 광역시)까지 갔습니다. 탐라는 이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 백제에게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대륙의 영토를 가지다?

동성왕 시기의 가장 큰 사건은 북위와 전쟁을 한 것입니다. ‘삼국사기’에는 488년 북위가 군사를 보내어 쳐들어왔으나, 백제군에게 패하였다고 나옵니다. 북위는 중국 북부에 위치해 있던 나라로,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인구와 넓은 영토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거나 고구려를 지나쳐야 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두 나라 사이에 과연 전쟁이 일어났을까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공주에 있는 임류각 건물. 1980년 공주 공산성 발굴 조사에서 임류각 터를 발견하고, 1993년에 2층 누각을 지어 복원했다.

어떤 이는 북위가 배에 군사를 싣고 백제를 공격한 것이라고 합니다만, 유목민인 척발선비족이 세운 북위는 수군이 약했기 때문에 굳이 바다를 건너 백제를 공격하는 모험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백제가 바다를 건너 대륙에 가서 북위와 전쟁을 한 것으로 봐야겠지요.

북위의 경쟁자이자, 백제와는 동맹 관계에 있던 중국 남부의 남제라는 나라의 역사책 ‘남제서’에는 백제와 북위의 전쟁에 관한 기록이 상세하게 나옵니다.

“북위 오랑캐가 또다시 기병 수십만을 동원해 백제를 공격하니, 동성왕이 장군 사법명ㆍ찬수류ㆍ해례곤ㆍ목간나를 파견해 북위군을 기습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무찔렀다.”

이 기록을 보면 백제가 물리친 적의 규모만 해도 기병 수십만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백제가 물리친 적을 고구려라고 하지만, 고구려에 기병 수십만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또 남제의 기록에서 고구려를 굳이 북위라고 기록할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남제서에는 동성왕이 북위를 물리쳤다는 것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요.

490년에 북위가 쳐들어오자 사법명 장군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밤에 번개처럼 기습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으며, 목간나 장군은 적의 성문과 선박을 때려 부수는 공을 세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동성왕은 사법명을 비롯한 여러 장군과 신하들에게 벼슬을 주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대륙의 동해안인 산동 반도를 다스리는 직책을 받은 사람도 있었지요.

그렇다면 당시 백제는 대륙에 영토를 가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남제서를 비롯한 몇몇 자료에만 백제가 대륙에서 활동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근초고왕 시기에 백제가 요서 지역을 다스렸는가 하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과연 동성왕 시기에 백제가 대륙에 영토를 갖고 있었는지도 여전히 밝혀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백제의 힘을 크게 과시한 동성왕이지만 그도 나이가 들면서 사치를 좋아하게 됩니다. 궁성 동쪽에 연못이 딸린 임류각이란 건물을 세우고 진기한 동물을 키우며 노는 일에만 몰두했어요. 결국 501년 위사좌평인 백가가 보낸 자객에게 죽임을 당하는 처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습니다.

/김용만(우리 역사 문화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