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사연재글

2007년 소년한국일보연재 5회 - 백제 수도 하남위례성은 어디?

영양대왕 2007. 6. 12. 14:10
[해양 강국 백제를 찾아서] 백제 초기 500 년역사 '하남 위례성'은 어디였을까?
학자 의견 분분… 더 많은 유적 발굴 이뤄져야
성벽길이 3.5 km·너비 40 m·높이 10 m
거대한 규모 '풍납토성' 당시 국력 가늠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하남 위례성은 서기 475년부터 공주로 도읍을 옮기기 이전까지 무려 500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백제의 수도였던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치가 어디인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경기장과 공원을 건설하면서 하남 위례성의 후보지였던 몽촌토성 지역의 땅을 파게 되면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풍납토성 성벽 발굴 당시 모습. 성벽은 현재 전체 3.5 ㎞ 가운데 2.3 ㎞ 정도가 남아 있다.

6 년에 걸친 발굴 결과 백제 초기에 사용하던 토기를 비롯한 유물들이 나왔습니다. 땅을 파고 물이 흐르게 하여 적의 접근을 막는 해자와 성벽 위로 목책을 설치해 방어력을 높였던 흔적도 발견되었습니다.

성벽은 야산에 진흙을 다져 만든 것으로, 둘레 2.3 ㎞, 높이는 6∼7 m나 되었어요. 성 안에서 집터와 저장 구덩이 등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궁궐을 만들었던 건물 초석이나 관청의 터 같은 것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백제 초기의 중요한 성임에는 분명하지만, 하남 위례성이라고 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했지요.

풍납토성은 몽촌토성에서 1 ㎞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이 곳은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 성 안쪽에는 이미 많은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지요. 게다가 성벽은 밋밋한 언덕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1995년 기존에 있던 건물을 헐고 아파트를 세우기 위해 땅을 파내자, 백제 초기에 만들어진 토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를 계기로 풍납토성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풍납토성' 백제 왕궁터 가능성 커

풍납토성의 성벽 중간을 잘라 보니 그 규모가 굉장했습니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3.5 km, 바닥 너비 40 m, 높이만 해도 10 m가 넘는 거대한 규모였던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벽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먼저 밑바닥에는 50 ㎝ 두께로 뻘흙을 깔았습니다. 뻘흙은 매우 끈적끈적하고 질겨서 기초를 단단히 다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 위부터는 시루떡처럼 한 켠 한 켠 흙을 다져 사다리 모양으로 쌓아올렸습니다.

하남 위례성의 후보지 가운데 하나였던 몽촌토성.

성벽에는 녹두만한 크기의 자갈 하나 보이지 않았는데, 채에 친 고운 흙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또 중간 중간에 나무로 틀을 만들어 성벽을 다지기도 했고, 흙층 사이에 10 ㎝ 두께로 나뭇잎과 볏짚 등을 섞은 뻘층을 10여 차례나 쌓았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성을 만드는 공사는 상당한 규모를 가진 국가가 아니면 할 수 없던 것입니다. 풍납토성 안의 경당연립 부지에서는 길이가 16 m나 되는 건물이 있던 자리가 발견되었고, 기와가 몇 트럭분이나 나왔습니다. 이 곳이 백제의 왕궁터일 가능성이 커진 것입니다.

그럼 풍납토성은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요? '삼국사기'에 나오는 '온조왕이 기원전 5년에 도읍을 하남 위례성으로 옮겼다'는 기록처럼 지금부터 2000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일까요? 현재까지 발견된 유물로 볼 때 성벽 안쪽 유적과 출토 유물은 분명 온조왕 시대까지 올라가는 것이 확실합니다.

성벽을 만든 연대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측정해 보니, 빠르면 기원전 200년, 늦어도 서기 200년 무렵에는 성벽이 건설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백제는 온조왕 시기에 벌써 거대한 풍납토성을 건설할 만한 국력을 가진 큰 나라였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곳에서는 중국에서 만든 물건도 나왔는데, 백제가 일찍부터 중국과 거래를 할만큼 무역 활동이 활발했음을 보여 줍니다. 풍납토성의 발굴로 백제가 일찍부터 크게 발전한 나라였음이 밝혀진 것이지요.

아직 일부 학자들은 풍납토성이 만들어진 시기를 의심하고 있고, 풍납토성 외의 다른 곳이 하남 위례성일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풍납토성을 비롯한 백제 유적들이 더 많이 조사된다면, 보다 확실하게 하남 위례성의 실제 모습과 백제 초기 역사가 밝혀지겠지요.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입력시간 : 2007-04-01 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