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사연재글

2007년 소년한국일보 연재 10회 - 칠지도로 본 백제-왜 관계

영양대왕 2007. 5. 20. 22:54
근초고왕, 영토 확장 위해 왜국에 군사 요청
<10> 마한 잔여 세력과 가야 굴복 시켜… 서로 이익되는 방향에서 협력
왜왕에 '칠지도' 하사 협력국으로 삼아
백제의 앞선 기술력은 왜국에 큰 영향


백제 장군이 왜국 용병 지휘

근초고왕은 북쪽으로 고구려와 싸워 이기고, 서쪽으로는 요서 방면으로 진출했습니다. 또 남쪽으로는 마한을 굴복시키고, 남동쪽으로는 가야를 제압합니다.

이 밖에 왜국과도 새로운 관계를 맺었습니다.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는 백제가 369년 마한의 잔여 세력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왜국의 도움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백제와 왜국 사이에 정식으로 외교 관계가 수립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때 백제는 다섯 가지 색깔 비단 한 필씩과 쇠뿔로 만든 활, 철궤 40 개를 왜국 사신에게 주었습니다. 또 보물 창고에 있는 진기한 물건들을 보여 주며 백제에 보물이 많다는 것을 자랑합니다. 백제가 왜국 사신에게 이렇게 선물을 하고, 보물을 자랑한 것은 왜국에게 군사 원조를 요청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백제는 가야 연맹의 탁순국으로부터 받은 왜국의 병사를 목라근자 장군으로 하여금 인솔하게 했습니다. 백제 장군의 지휘를 받은 왜국의 병사들은 백제군과 함께 비자벌ㆍ남가야 등 경상도 남서 지역의 7 개 나라를 정벌합니다. 또 서쪽의 침미다례 등을 무찌릅니다. 그러자 주변의 비리ㆍ벽중 등 4 개 읍이 스스로 항복해왔습니다.

그런데 '일본서기'에는 이 땅을 왜국이 백제에게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섬진강 하구의 다사성도 보태 주었다고 합니다. 백제가 왜국에 진기한 물건을 바쳤다고도 되어 있습니다.

과거 일본학자들은 당시 왜국이 정벌한 땅을 백제에게 하사할 만큼 강한 나라였고, 백제는 일본에 조공을 바친 나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서기'는 일본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쓴 책입니다.

기록을 잘 살펴보면 백제의 장군이 왜군을 지휘했을 뿐 아니라, 침미다례도 남만 즉 남쪽 오랑캐라고 했으니, 왜가 아니라 백제의 남해안 지역을 공략한 작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왜국은 백제의 정복 활동에 용병을 제공한 것에 불과한 셈이지요. 근초고왕은 왜국의 용병을 고용해 마한의 잔여 세력을 무찌르고 가야도 굴복시켰던 것입니다.

칠지도. 칼날에 새겨진 글은 백제가 왜국보다 상위의 국가임을 보여 준다.

칠지도로 본 일본과의 관계

일본 텐리시 동쪽에 위치한 이소노카미 신궁에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칠지도라는 칼이 있었습니다. 현재 나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이 칼은 백제에서 만들어 일본에 보낸 것입니다.

74.9 ㎝의 곧은 몸 좌우로 가지 모양의 날이 3 개씩 뻗어 나와 있는 모양입니다. 철을 두들겨 만든 칠지도 앞면에는 34 글자가, 뒷면에는 27 글자가 새겨져 있답니다. 글씨가 있는 부분을 금으로 덮어 글자를 돋보이게 만들었지요.

이 칼은 1874년 이소노카미 신궁의 스카마사도모라는 사람이 칼에 묻은 녹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글자를 읽어내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칠지도에 새겨진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태화 4년(369년) 5월 16일 병오일 정오에 무쇠를 백 번이나 두들겨서 칠지도를 만든다. 이 칼은 재앙을 피할 수 있다. 마땅히 제후왕에게 줄 만하다.

앞선 시대 이래로 아무도 이런 신성한 칼을 가진 일이 없는데, 백제왕 치세에 기이하게 이 칼을 얻게 된 성스러운 일이 생겼으므로, 왜왕을 위하여 만든 뜻을 받들어 후세에 길이 전하여 보여라."

요약하면 백제의 왕세자인 근구수가 369년에 제후에 해당하는 왜왕에게 특별히 '칠지도'라는 칼을 만들어 하사하니, 잘 보관하여 후세에 전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일본 학자들은 '일본서기'에 '백제가 칠지도를 헌상(임금에게 바침)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백제왕이 왜왕에게 바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칠지도에 새겨진 글은 그들의 주장과는 정반대입니다.

백제 왕이 제후에 해당하는 왜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부여군 군수리 절터에서도 발견된 바 있는 칠지도는 백제를 상징하는 물건이지요. 백제는 왜국에 칠지도를 내려 주어 왜국을 백제에 협력하는 나라로 삼았던 것입니다.

왜국은 백제의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용병을 제공했습니다. 백제와 왜국의 관계는 이처럼 서로 이익이 되는 방향에서 협력한 것이었지요.

백제는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당시 뒤떨어진 왜국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왜국을 백제의 또 하나의 힘이 되도록 했습니다.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