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사연재글

2007년 소년한국일보 연재 8 - 백제 전성기를 연 근초고왕

영양대왕 2007. 4. 23. 09:11
[해양강국 백제를 찾아서] 13대 '근초고왕' 백제 전성기를 열다
넓은 학식과 견문, 30 년간 통치… 중국·일본 기록에도 등장
남쪽으로 가야·마한 등 잇달아 정복… 영토 크게 넓혀
북쪽으로는 고구려 고국원왕과의 전쟁에서 큰 전과 거둬


강한 군사력으로 삼국 중 가장 먼저 전성기 누려

백제는 고구려ㆍ신라보다 늦게 건국되었지만,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전성기를 누린 나라였습니다. 백제의 전성기를 연 인물은 13대 임금인 근초고왕입니다. 346년 왕위에 올라 30 년간 백제를 다스린 근초고왕은 체격이 크고 학식과 견문이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근초고왕은 백제 임금들 가운데 가장 먼저 중국과 일본의 기록에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이 시기에 백제가 바다 건너 외국과의 관계를 밀접히 할 만큼 활동 무대가 넓었기 때문입니다.

근초고왕의 정복 활동은 크게 세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먼저 소백 산맥을 넘어 가야ㆍ탁순국ㆍ안라 등 가야 연맹의 7 개 소국을 정벌합니다. 또 전라도 지역의 4 읍을 평정하고 마한마저 복종시킵니다. 마한은 이 때 완전히 멸망한 것은 아니지만, 백제의 완전한 영향권에 있게 되었습니다.

근초고왕 시기에 백제가 남쪽으로 크게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력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걸어서 싸우는 병사인 보병 중심의 마한이나 가야에 비해, 백제는 말을 타고 싸우는 기병이 많았습니다. 철기 제작 기술도 앞서서 이웃 나라보다 강력한 무기를 가졌지요.

마한ㆍ가야 등은 여러 소국들의 연합체였습니다. 하지만 백제는 강력한 왕을 중심으로 국력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나라였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근초고왕이 뛰어난 활약을 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백제 시대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이성산성 9각형 건물터.

'백제기'·'백제본기' 등 역사 기록하다

근초고왕은 남쪽으로 영토를 크게 넓힌 뒤, 북쪽으로도 세력을 확장합니다. 근초고왕의 상대는 고구려 고국원왕이었습니다. 두 나라의 싸움은 지금의 황해도 지역에서 벌어졌습니다. 당시 백제는 예성강을 건너 영토를 넓혀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369년 고구려 고국원왕이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황해도 배천군) 지역을 공격했습니다. 근초고왕의 태자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 싸워 고구려군 5000여 명을 사로잡는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371년 다시 고구려가 공격해 오자, 근초고왕은 예성강에 군사를 숨겨 두었습니다. 백제군은 고구려군이 도착하자 기습 공격을 하여 다시 한 번 격파했지요. 그 해 겨울 근초고왕은 근구수태자와 함께 정예 병사 3만 명을 이끌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했습니다.

평양성 전투에서 백제군은 고구려 고국원왕을 활로 쏘아 맞혔습니다. 비록 평양성을 빼앗지는 못했지만, 고구려의 왕을 죽이는 큰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면서 고구려를 제압해 강성함을 크게 과시한 백제는 해외로도 눈을 돌립니다. 백제가 해외로 영토를 넓힌 이야기는 다음 호에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근초고왕 시기에 또 하나 주목할 일은 박사 고흥을 시켜 백제 역사를 문자로 기록하도록 한 것입니다. 백제의 역사책으로는 '백제기','백제본기','백제신찬' 등이 있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 '일본서기'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단 한 권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백제 전성기를 이룬 근초고왕에 대한 기록이 부족해, 그에 대한 좀더 많은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점이 아쉽기만 합니다.

남한산성 행궁터. 남한산성은 근초고왕 26년에 수도를 옮긴 한산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 시대 임시 궁궐인 남한산성 행궁 담장 주변에서 백제 토기 조각이 발견되었다.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