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사연재글

2007년 소년한국일보 연재 7회 - 고이왕.

영양대왕 2007. 4. 15. 17:52
[해양강국 백제를 찾아서] 강력한 국가로 발전시킨 8대 '고이왕'
밖으로는 영토 넓히고, 안으로는 관리 조직과 법질서 체계 확립
중앙 권력 집중… 세상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


소국 연맹체 수장들에 벼슬 주고 임무 맡겨

백제는 건국 이후 한동안 소국들의 연맹체에 불과했습니다. 최고 권력을 가진 백제왕이 있었지만, 연맹을 구성하는 수장들이 독자적으로 상당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앙으로 힘이 집중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234년 8대 임금이 된 고이왕 때부터입니다. 당시 임금의 힘이 커지면서 많은 소국의 수장들이 중앙 정부에서 벼슬을 얻어 백제의 귀족으로 변신을 하게 됩니다.

고이왕은 이들 귀족들에게 높고 낮음에 따라 관등을 주고, 각 벼슬아치들의 임무를 정해 주는 법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서기 260년 고이왕이 백제 관리들의 직급과 임무를 정한 내용이 아주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이왕은 1 품 관등을 가진 6 명의 좌평을 두고 그들에게 각자 중요한 일을 맡겼습니다.

관리의 등급은 1 품부터 16 품까지로 나누고 다른 색의 옷을 입게 했습니다. 2품인 달솔부터 은솔, 덕솔, 한솔, 6 품 내솔까지는 보라색 옷을, 7 품 장덕부터 시덕, 고덕, 게덕, 11 품 대덕까지는 비취색 옷을, 그 아래 등급인 문독, 무독, 좌군, 진무, 극우는 청색 옷을 지정해 주었습니다.

고이왕은 또 관리로서 부정한 뇌물을 받는 자와, 도둑질한 자는 훔친 물건의 3 배를 내놓게 하고, 죽을 때까지 가두어 두는 강력한 법을 실시합니다. 고이왕이 관리 조직과 법을 정비하자, 백제의 힘은 중앙으로 모이게 됩니다.

고이왕이 각 소국의 군장을 제압하고, 법질서를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세상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여 백제의 힘을 크게 키웠기 때문입니다.

만주와 한반도 일대 전쟁 통해 마한의 여러 나라 통합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백제 초기 병사들이 입었던 뼈 갑옷.

서기 244년∼245년, 북중국의 위나라가 여러 장수들을 보내 고구려를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는 큰 전쟁이 벌어집니다.

마한 연맹체의 '신분고국' 등 여러 나라들은 같은 시기에 위나라 대방군을 공격합니다. 전쟁 초기에는 마한이 전과를 올렸지만, 위나라 낙랑군의 역습을 받아 마한의 여러 소국들이 패하였습니다.

이 틈을 타서 고이왕은 진충 장군을 보내 낙랑군을 공격하고 그 백성들을 빼앗아 옵니다. 백제는 마한과 달리 위나라와의 전쟁에서 피해를 입지 않았고, 약해진 마한의 여러 나라들을 백제로 통합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때 백제는 한강 유역의 여러 나라들을 통합하는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던 것입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가 1대 온조왕 때 마한의 목지국을 제압한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실제로는 고이왕 시기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이왕 때의 백제는 최고 신인 천신에 대한 제사를 여러 차례 거행합니다. 이 제사는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백제의 국력이 주변의 작은 나라들에 비해 훨씬 강해졌다는 것을 과시한 셈이지요.

고이왕은 밖으로는 영토를 넓히며 나라의 힘을 키웠고, 안으로는 법질서를 정비하면서 백제를 크게 발전시킨 뛰어난 임금이었습니다.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중국제 그릇인 초두. 백제 초기에 해외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 준다.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