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사연재글

2007년 소년한국일보 연재 9회 - 요서지역을 백제가 통치했을까?

영양대왕 2007. 5. 20. 22:50
'요서 지역' 백제가 통치했다?
'송서' 등 중국 기록에 전해져… 구체적 자료 없어 수수께끼로 남아

●요서가 백제땅?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에서 동쪽으로 천 리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후 고구려가 요동을 정벌하자, 백제는 요서를 공격해 차지했다. 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고 했다.’- 송서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 진나라 때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공략해 차지하자, 백제 또한 요서ㆍ진평 2 군을 빼앗아 차지하고 스스로 백제군을 두었다.’- 양서

백제가 차지했을 것으로 보는 요서 지역의 위치.

중국이 남긴 두 가지 기록에는 백제가 바다를 건너 고구려의 서쪽인 요서 지역에 영토를 갖고 있다고 나옵니다. 요서 지역은 현재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송서’ 등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는 근초고왕 시기에 요서 지역을 차지한 것이 됩니다. 백제가 이 곳에 영토를 가지려면 대단한 해군력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근초고왕 때의 백제는 평양성 전투에서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킬 정도로 강했으며, 남쪽으로 마한과 가야를 제압할 정도로 국력이 막강한 때입니다. 그런 만큼 이 시기 백제에게는 요서까지 진출할 능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송서’는 백제가 요서를 차지했다는 시기로부터 불과 100 년 정도 뒤에 만들어진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또 백제와 송나라 간에 사신이 왕래하면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신뢰가 갑니다.

●송서·양서 제외한 다른 기록에는 전해지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가 요서 지역을 지배했다는 기록에는 100 % 믿기 어려운 점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송서’ 등을 제외한 다른 역사서에는 백제가 요서 지역을 지배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입니다. ‘삼국사기’와 같은 우리 나라 자료에도 근초고왕 시기에 요서 지역을 지배했다는 내용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백제가 정확히 언제부터 어디까지를 영토로 가졌는지, 또한 어떤 적들을 물리쳤는지를 알려 주는 구체적인 자료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백제가 요서로 진출했던 진나라(265-420년) 시기, 그 가운데 특히 백제 근초고왕(346-375년) 때는 요서 지역에 고구려를 이긴 적이 있는 강력한 국가로 모용선비 등이 있었습니다. 백제가 이런 나라들을 제치고 영토를 차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입니다.

‘바다를 건너가면서까지 굳이 군대를 보내 먼 곳에 영토를 만들 이유가 있었는가?’라는 의문을 품는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같은 작은 도시 국가들도 먼 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만큼, 지리적인 거리가 문제는 아닙니다. 백제가 일본 열도로 진출할 때의 상황을 봐도 이것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또한 백제가 아닌 중국 측에서 기록한 내용을 굳이 잘못된 내용이라고 볼 이유도 없습니다.

만리장성 산해관. 요서 지역을 백제가 다스렸다면 이 곳을 중심으로 백제군이 존재했을 것이다.

따라서 백제가 요서 지역을 차지했다는 기록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학자는 백제가 요서 지역을 지배한 것에 대해 군사를 통한 영토 지배가 아닌 무역 기지로 보기도 하지만, 이 또한 근거가 부족합니다.

●백제사에서 풀어야 할 수수께끼

백제가 요서 지역을 지배했다면, 그것은 분명 백제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입니다. 백제가 한반도의 작은 나라가 아닌, 대단히 강한 나라임을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급하게 백제가 요서 지역을 다스렸다는 주장만을 해서는 안 됩니다. 백제가 그 지역을 지배했다면, 다스렸던 흔적이 있는 유물들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느 정도의 범위를 다스렸는지도 알아 내야 하겠지요. 또 백제가 해외까지 영토를 넓힐 수 있을 만한 힘을 갖고 있었는지도 명확하게 밝혀야 합니다. 아쉽게도 백제의 요서 지역 지배는 아직까지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이 문제는 장차 백제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