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발견-나의생각

고-수, 당 전쟁은 세계 10대 전쟁이 될 수 없는가?

영양대왕 2006. 7. 3. 22:06

카페지기가  sbs 연개소문 드라마의 자문위원을 맡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sbs 측에서 연개소문 드라마 홈페지에 "자문단의 역사기행"이란 란을 만들어 저에게 글을 써달라고 청탁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글 하나를 써서 올렸습니다.



고-수, 당 전쟁은 세계 10대 전쟁이 될 수 없는가?


얼마 전 모 출판사에서 세계 10대 전쟁을 요약하여 한 권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책의 저자로 필자가 아는 후배가 선정되었는데, 필자는 그에게 세계 10대 전쟁에 하나로 고-수, 당 전쟁을 넣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후배 역시 당연히 고-수, 당 전쟁을 포함한 기획안을 출판사에 제시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출판사 편집이사회에서 고-수, 당 전쟁이 세계 10대 전쟁이 아니며, 단지 우리입장에서만 바라본 것이 아니냐며 빼자고 주장을 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내전에 불과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세계 10대 전쟁에 포함되는 것에 반대하지 않으면서 어찌 우리 역사 최대의 전쟁인 동시에, 동아시아 역사의 지형도를 바꾼 전쟁이며 수백만 명이 70년간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던 전쟁이 왜 세계 10대 전쟁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였을까? 결국 후배는 집필을 포기하였다.


세계 10대 전쟁에 고-수, 당 전쟁이 포함되느냐 마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연구자들마다 각자 다르게 평가 기준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세계 10대 전쟁으로 손꼽힌다고 해서 과거의 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고-수, 당 전쟁이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닌 한국인들에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전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질 뿐이다.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저 우리입장에서 우리가 승리한 전쟁, 그래서 연개소문은 위대한 영웅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전쟁으로 비추어 지고 있을까? 아니면 고구려가 결국에는 멸망한 전쟁이어서, 그다지 부각하고 싶지 않은 전쟁일까? 신라의 삼국통일 전쟁의 과정과 맞물리는 전쟁이기 때문에 신라의 통일 의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약간만 언급하고 말아야 전쟁으로 끝나는 것일까?


중국 연구자들의 연구논문을 보거나, 그들의 교과서를 보면 고-수, 당 전쟁은 중국사에서 거의 비중을 차지하지 작은 사건으로 취급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고-수 전쟁의 결과 수나라가 멸망했다고 알고 있지만, 중국의 최근 논문들과 책에는 이런 언급을 거의 회피하고 있다. 고-당 전쟁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 전쟁이 성공적이지 못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당나라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고-수, 당 전쟁이 크게 평가되는 것을 반기지 않고 있다.


645년 1차 고-당 전쟁에 동원된 당나라 군대의 숫자도 [신당서] 등에는 명확히 기록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학계의 일부 연구자들은 사료를 다 검토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10만 명의 당군이 동원된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이세적의 요동도행군 6만과 장량의 평양도행군 4만 3천. 이 정도의 군대이기에, 당나라는 수나라와 달리 정예군을 보내 고구려를 공격한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당군 10만 명에는 이세민이 직접 이끈 주력군의 병력이 빠져있다. 주력군에는 선봉대에 해당하는 요동도행군과 평양도행군보다 훨씬 더 많은 지휘관이 포함되어 있다. 당연히 그 규모도 수십만에 이르렀다. 필자는 당군 전체의 병력을 50만에 가까운 대군으로 보고 있다. 이에 맞선 고구려군도 30만에 이르렀다.


645년 전쟁 이외에도, 647년, 648년에도 수만 명의 당군이 전쟁에 동원되었고, 650년대에는 거란부락의 통제권을 놓고 고구려와 당이 여러 차례 전쟁을 하였다. 이런 국지전에 동원된 양국의 병력만도 각각 10만이 훨씬 넘는다.

661년부터 662년 2월까지 벌어진 2차 고-당 전쟁에 동원된 당군 역시 약 40만 정도였다. 또한 667년부터 668년 9월까지 벌어진 3차 고-당 전쟁에 동원된 당군은 무려 100만에 달했다.

결국 고-당 전쟁에 동원된 전체 당나라 군대의 숫자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0만이며, 고구려도 3차례 대전에서 각 30만명 정도의 병력을 동원된 것으로 계산한다면 약 100만 명이 전쟁에 참전한 것이 된다.

여기에 고-수 전쟁에 동원된 수백 만 명의 양측 군사의 숫자를 합하면 고-수, 당 전쟁에 참전한 인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진다.


전쟁에 동원된 병력의 숫자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왜 양측이 이렇게 엄청난 병력을 동원해서 무려 598년부터 668년까지 70년의 세월동안 끝없이 전쟁을 했느냐는 질문에 이르게 된다. 대체 무엇을 얻고자 이렇게 무수한 생명들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했느냐는 것이다.


전쟁의 규모가 달라지면, 전쟁에 대한 모든 평가가 달라진다.

왜 고구려 사람들은 이토록 치열하게 전쟁을 했던 것일까?

수, 당의 지도자들은 왜 자국 사람들이 엄청나게 요동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고구려를 공격해야만 했는가? 단지 몇몇 전쟁광 때문에? 아니면 한번 진 것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아니면 반드시 고구려를 이겨야만 하는 문명의 질투 때문에?


필자는 고구려와 고-수, 당 전쟁을 문명대전으로 규정한다. 이 전쟁은 고구려와 수, 당 뿐만 아니라, 주변의 수많은 나라들도 참전한 대전(大戰)이었다. 따라서 이것은 최근의 몇몇 중국학자들이 말하는 중국 내부의 통일전쟁이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1, 2차 세계대전이었다.

세계대전의 결과는 고구려의 멸망이었고,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대 변혁이었다. 이 전쟁의 결과 동아시아에는 중원문명 일방의 문명권이 성립되었고, 동방문명은 중원문명의 경쟁자의 의미마저 잃었다. 동아시아의 문명 지도가 바뀐 것이었다.


우리 역사 최대의 전쟁인 고구려와 수, 당의 전쟁에 대해서 우리는 제대로 된 깊이있는 평가를 하지 못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고구려 후예들이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못한 탓이고, 둘째는 상대편인 중국측도 기록을 상세히 남기지 않은 탓이고, 셋째는 특히 원나라의 침략을 받은 이후 고려와 조선에서 우리의 역사보다는 중국사만을 우선시한 탓에 오랫동안 우리 역사를 깊이 있게 연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조선에서도 고구려가 수, 당을 물리친 대 사건을 기억하고, 이를 물리친 원인에 대해서 왕이 신하들에게 시험 문제로 내기도 하고, 영양왕과 을지문덕 등에게 제사를 지내주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이 전쟁의 가치를 크게 내세워 중국과 함께 과거 역사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보자는 지경에는 이르지 못했다.


전쟁에 대한 평가는 전쟁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전투들의 승부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전쟁에 패배하고도 그 후에 자기 역사를 보다 발전적으로 변화시킨 나라도 있는 것이다. 승리했다는 사실에 대한 자랑에 급급하기 보다는 전쟁을 보다 입체적으로 평가하여 그 의미를 곱씹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시 처음의 화두로 돌아가 보자.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그리스인들이 남긴 자세한 기록으로 인해 후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어떻게 싸웠고, 그리스 문명이 왜 쇠퇴했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 하지만 전쟁 규모로 본다면 고-수, 당 전쟁에 비할 바가 아니다.

또한 그리스 문명의 쇠퇴는 분명 중요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지만, 동아시아 문명지도가 바뀐 고-수, 당 전쟁도 그에 못지않은 세계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가 있다.

우리 역사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었다면, 적어도 을지문덕, 연개소문은 세계 전쟁사의 중요 인물로 기록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었을 것이다. 또 고-수, 당 전쟁의 의미가 세계인에게 널리 알려져 그 의미에 걸맞은 평가를 받게 된다면, 한국사 전체에 대한 세계인의 평가도 변화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들의 관심이다. 우리 스스로 고-수, 당 전쟁의 의미를 작게 부여하고, 이 전쟁을 알지 못하고, 제대로 그 전쟁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는다면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은 그저 잊혀진 존재로 역사 속에 파묻혀 버릴 것이다. 또한 한국사는 영원히 동아시아의 주변국의 역사로 취급받을 것이다. 전쟁의 의미에 대한 재평가는 전문가의 몫으로 취급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일반인의 이 전쟁에 대한 관심도가 커지는 것도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이번 연개소문 드라마로 인해 많은 이들의 고구려와 연개소문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다. 이러한 관심이 단지 호기심, 재미, 단순한 승패에 관한 것이 머물지 말았으면 한다.

왜 고구려와 당나라가 왜 전쟁을 하게 되었는지, 이 전쟁의 역사적 가치는 무엇인지, 왜 고구려는 오랜 전쟁 기간 동안 어떻게 승리를 할 수 있었으며, 왜 결국에는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었으면 한다.

또한 한-중 관계가 이후 어떻게 변화했고, 앞으로 어떻게 되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과거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미래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무엇보다 이번 드라마가 계기가 되어 진정으로 연개소문과 고구려가 21세기 전 세계 인류에게 회자되어 다시금 생명력을 얻기를 기대해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