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발견-나의생각

문명사 연구와 나의 의문들

영양대왕 2006. 1. 23. 12:08
문명사 연구와 나의 의문들
번호 : 33   글쓴이 : 김용만
조회 : 425   스크랩 : 0   날짜 : 2004.07.16 21:13
문명은 인위(人爲)다.

문명은 자연 그 자체의 상태가 아닌 자연의 극복 과정에서 인간들이 만들어낸 삶의 방식,
즉 역사적 경험의 축적물이다.
문명은 역사기록, 그리고 제도의 형성, 형식과 실체를 갖춘 종교, 그리고 도시 등으로 표현된다.
인간 집단 가운데 돌로 건축하기를 좋아하여 뚜렷한 건축물을 남긴 족속들과 역사라는 기록에 눈을 떠서 기록이 많은 무리들은 쉽게 문명족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다.

우리는 문명사를 배운다.
세계사는 문명사이기 때문에, 문명이 아닌 역사는 배우지 않거나, 그저 반문명에 해당하는 조연의 위치에서 우리에게 보여질 뿐이다.

이러한 문명사에서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사를 세계사의 첫머리로 배우기 시작하여 그 문명사의 정점에 영국, 미국 등이 자리하는 세계사가 확립된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에서는 아프리카의 그레이트짐바브웨 문명 등의 이질적인 존재는 자리조차 찾기 어렵다.

그리고 동양으로 눈을 돌려 보면 엄청난 역사를 남긴 중국, 서구에 강한 인상을 심겨놓은 일본, 그리고 방대한 기록을 가진 인도 정도가 문명으로 기록될 수 있다. 그리고 이질적 문명으로 많은 기록이 없이 사라졌지만 뛰어난 건축물을 남긴 앙코르문명 정도.

나는 98년 고구려의 발견을 쓰면서 고구려를 문명사로 보았다. 고구려를 문명사로 보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고구려가 인간의 역사 가운데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역사로, 세계문명사에서 한 줄로 장식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문명이기 때문이라는 나의 주장은 곧 고구려문명론으로 표출되었다. 나의 문명사적 접근방법은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고구려의 문명사적 위상을 높이려는 것이 나의 연구 목적이 되었고, 나를 대표할 수 있는 업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고구려문명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많은 부분에서 더 보완되어야 할 것이 많다. 무엇보다 고구려문명이 태양문명인가, 위성문명인가 하는 문제, 고구려 문명의 미완성부분에 대한 설명, 그리하여 고구려문명의 위상은 어디냐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문제다. 많은 과제가 있기는 하지만, 고구려문명이란 말은 이제 보편적인 용어로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세계문화유산으로 고구려고분벽화와 성 등이 등재된 것은 고구려문명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때로 고민에 빠진다.
과연 인류의 역사를 문명사로 보는 것이 과연 가장 적합한 방법인가.
문명사라는 기준 조차 실은 서구에서 만들어낸 서구중심사관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또한 문명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고구려는 여전히 기록이 많은 중국문명에 비해 덜 조명받을 수 밖에 없다.

고구려를 제대로 보려면 어찌해야 할까.
유목민을 바라보는 시각은 결코 문명사적 접근을 해서는 안된다. 그런 문명사적 접근을 한다면 유목민은 축적을 거부하는 전쟁기계에 불과하다는 가탈리와 들뢰즈의 <천의 고원>에서 보이는 인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처드 루드글리 같은 이들은 <바바리안>이란 책에서 그들이 진정한 야만인이나 정복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바바리안 자신들의 문명을 그 자체로 평가해주려고 하고 있고, 사세이끼와 같은 이들은 <서구중심사관에 도전한다>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둘 역시 문명사적 접근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철저히 문명사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고, 토인비의 문명사관과 김철준의 문화사관에 영향을 받은 자이다.

그런데 요즘들어 유목민과 일본의 아이누들을 공부하면서 내 문명사관에 대한 많은 한계를 느낀다. 우리는 분명 문명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문명사관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가운데서 인간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깨달음의 경지가 깊었던 경허나 만공 스님과 엄청난 학식을 자랑한 20세기 최고의 한국의 학승인 탄허. 몇 백년 후 현재의 학계의 주류사관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탄허가 경허보다 더 조명받을 수 밖에 없다. 탄허는 탄허 나름의 화엄경 주석의 공이 크기는 했지만, 스님으로써 경허나 만공의 깨달음의 경지에 비한다면 탄허가 굳이 앞섰는지는 알 수가 없을 것인데, 기록을 많이 남겼다는 이유만으로 탄허의 공만을 후대에 높게 평가하는 것이 정당할지는 모르겠다.

인위를 남기지 않은 인간들, 축적을 거부하는 인간들, 그들 자신의 고유한 가치관에 의해서 살아가려는 인간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이미 기록한다는 자체가 이미 문명의 세계인데 말이다. 문명에 몸 담은 자로써 비문명, 중간문명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 지 나 자신도 종종 의문에 빠져본다.

이런 화두가 남들에게 무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지금 꽤나 골치를 앓게 하는 것들이다. 물론 하루 아침에 내 생각의 끝이 나타나지는 않겠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