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발견-나의생각

문명사에 대한 단상

영양대왕 2006. 1. 23. 12:04
문명사에 대한 단상.
번호 : 25   글쓴이 : 김용만
조회 : 163   스크랩 : 0   날짜 : 2004.01.31 12:33
98년에 쓴 <고구려의 발견> 책에 부재로 '새로 쓰는 고구려 문명사'라는 말을 붙인 바가 있었다.

문명사. 이것을 여러가지로 정의할 수가 있겠지만, <고구려의 발견>등에 문명사에 대한 일부 정리를 해둔 바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일부분에 대한 것만을 잠깐 이야기하고자 한다.

문명사의 이해란 쉽게 말해서 역사를 종교, 경제제도, 정치제제, 사회구조, 문화생활 등을 포함하는 해당 사회의 역사 전체에 대한 이해를 의미한다.

독일의 랑케학파식의 정치외교사 위주의 역사서술에 반발하여 새로운 역사학의 기치를 내걸었던 카를 람프레히트의 문화사나 아날학파의 마르크 블로크, 페르낭 브로델 등이 추구하는 전체사의 이념이 모두 같은 의미에서 문명사 서술을 지양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역사연구의 궁금적 지향점은 문명사의 이해가 되어야 한다.
인간이 과거 사회에서 어떻게 생활했으며, 왜 그때 그런 판단을 하고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공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명사의 이해를 통한 전체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역사에 기여한 바가 적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여성들은 많은 사회적 활동을 하며 여러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데, 조선의 여성들은 자식 키우기 외에는 이름을 날리며 드러나는 사회적 의미있는 행동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조선 사회가 여성의 능력을 억압하는 구조를 구축했기 때문에 그 구조를 타파하며 능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의 여성들은 그러한 관점에서 역사적 행동은 적었다고 하다라도 그들의 삶을 평가절하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회의 전체적 이해를 하지 않고서 조선의 여성들은 모두 못난 여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사회에 내가 살았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

인간 역사에 대한 이해는 포괄적인 관점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 고구려란 나라도 마찬가지고, 오늘날 우리가 어떤 집단의 행동을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다. 고구려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특정한 정치제도나 특정 문제에만 얽매여 공부하다가는 전체를 놓지고 고구려를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게된다.

한 사회 전체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생활사적 접근과 거시적인 문명사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최근 고구려의 국가 운영에 대한 공부에 천착한다. 고구려 사회는 어떠한 문명체적 성격을 가졌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주된 과제다. 문명체의 성격 문제는 한 문명의 형성과정과 처한 상황, 그리고 지향하는 바와 구성원의 인식과 행동이 작용하여 어떻게 외형적 내면적 측면이 드러났는가하는 문제다.

아놀드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서적을 읽고,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그리고 한길사에서 나온 <문명>, 그리고 나의 <수레책>을 다시 한번 검토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역시 역사연구는 인간에 대한 연구라는 것이었다. 과거 사람들을 옳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 시대 인물이 되어보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보다 좋은 연구법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연개소문전>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고구려인의 눈으로 고구려를 보자. 역사를 상대주의적 입장에서 해석하고, 역사서에 써있는 그대로를 모두 다 금과옥조인냥 옮겨적는데 만족하지 말고 다시금 역사서에 객체로 쓰여져 있는 그 객체의 입장에서 다시금 역사를 바라보자고 했다. 고구려의 문명사를 내가 제대로 연구하고 공부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정말 많은 공부와 많은 사색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고구려사의 올바른 자리매김과 세계역사에도 당당한 하나의 고구려문명이 기록되도록 하는 것은 아직은 멀고 먼 훗날의 일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시도해보려고 한다. 결코 한번에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