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발견-나의생각

나는 왜 연개소문에 관한 책을 쓰게 되었나.

영양대왕 2006. 1. 23. 11:56
나는 왜 연개소문에 관한 책을 쓰게 되었나.
번호 : 20   글쓴이 : 김용만
조회 : 514   스크랩 : 0   날짜 : 2002.12.06 10:29
@@@ 내가 집필을 완료한 연개소문과 대국의 조건(가제, 제목 미확정)의 들어가는 말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출판될 때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 올린 글은 그 내용 가운데 몇부분을 삭제하고 올립니다. @@@

@@@ 이 글을 보면 대략 내가 무엇을 위해 연개소문을 집필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아래 글에서 주목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연구방법론에 대한 것입니다. @@@




@@ 다음부터 인용문 입니다.

들어가는 말 - 나는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나.

지난 99년 내가 두 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3년이 넘게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인물이 있었다. 그는 연개소문이었다. 나는 그에 대해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싶어했다. 그는 특이하게도 어떤 이들에게는 영웅으로, 어떤 이들에게는 흉적(凶賊)으로 평가되어 왔다. 이렇게 평가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것은 그가 매우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그를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노릇이다.
나는 이 점에 마음이 끌렸다.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인가? 그는 7세기 고구려의 운명을 뒤흔든 인물이다. 그가 현명한 지도자였는가, 아닌가는 다음 문제다. 고구려사 연구자들이라면 한번쯤은 다양한 면모를 가진 그에 대해 탐구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고구려를 시대별로 나누어 연구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런데 나의 시대사 연구의 첫 시작은 건국 시기가 아닌 7세기다. 그것은 연개소문에 대한 궁금증이 그 어떤 인물보다 컸기 때문이다. 물론 고구려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창업기가 아닌 종료기 부터 차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나름의 계산도 작용했다. 다른 시대에 비해 7세기는 비교적 사료가 풍부하고 지명이나 사료상의 연대 고증 등에 있어서 논란이 적다. 따라서 이 시대부터 연구 성과를 쌓아놓는다면 앞 시대인 6세기, 5세기 연구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연개소문을 둘러싼 시대를 알기 위해 먼저 연개소문이 되어 보기로 했다. 그의 입장이 되어 7세기 고구려와 주변세계를 둘러보았다. 내가 연개소문이라면 과연 그 시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생각했다. 나는 한동안 연개소문이 왜 그때 그러한 판단을 했을까, 그가 바라본 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연개소문으로 벗어나야 했다. 내가 연개소문에 매몰되어서는 결코 7세기 동아시아의 역동적인 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연개소문의 시각이 아닌 그를 관찰하는 관찰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그의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는 당나라와 신라, 그리고 백제와 돌궐, 거란, 왜, 설연타 등 주변국들을 살펴보았다. 특히 이세민과 당나라에 대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이세민은 왜 고구려 공격에 집착했을까? 당나라가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고구려를 이긴 힘은 무엇이었는가? 연개소문과 고구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의문들에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김춘추와 신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신라와 김춘추의 선택이 과연 당시로서 최선의 선택이었던가는 누구나 한번쯤 가져볼만한 의문일 것이다.
나는 연개소문을 탐구하면서 과연 대국의 지도자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연개소문이 대국 고구려를 20년이 넘게 이끌면서 그가 선택하고 실천했던 행동들이 모두 오늘의 선택과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대국 고구려의 경영자인 그의 선택과 행동 하나 하나는 고구려의 운명을 바꾸었다. 반면 그가 고구려의 경영자였기에 그로 인해 선택에 제한도 받았다. 그와 고구려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나는 그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대 원칙을 고구려의 번영과 지속이라는 것으로 읽었다. 대국 고구려가 번영과 지속을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가, 외부환경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처하기만 하는 죽어 있는 고구려만 보아서는 연개소문과 살아있는 고구려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권력을 장악한 순간부터 연개소문은 고구려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연개소문에게 닥친 가장 큰 현안인 당과의 전쟁을 어떻게 수행하고, 마무리해야 하는가. 여러 정치적 문제 특히 정적의 제거와 후계자 선정, 민생과 국방, 외교 등등의 문제를 풀어 가는데 있어서 그가 한 선택은 결코 지나간 옛 일만은 아니다.
나는 어차피 현대를 사는 사람인만큼 오늘의 입장에서 7세기 동아시아를 볼 수밖에 없다. 역사를 오늘의 입장에서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역사가 우리의 과거 경험의 집합체이며, 우리가 무엇을 했고, 또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이며,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단서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연개소문의 선택이 오늘 우리에게 닥친 선택과 무관하지 않음과 7세기 상황이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7세기 동아시아 역사는 우리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자, 동아시아 역사의 대 변곡점이었다. 그러한 격변의 시대를 살다간 인간들의 행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때문에 나는 이 시대 연구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7세기 동아시아 역사를 공부하면서 몇 가지 어려움에 처했다. 첫 번째 어려움은 기존의 연구 성과들이 매우 부족했다는 점이다. 연개소문과 김춘추, 이세민 등을 서로 비교하는 연구는 많지만 연개소문을 둘러싼 7세기 동아시아사에 대한 전체적인 연구는 극히 드물다. 더구나 고구려와 당과의 전쟁 등에 관한 연구는 연개소문과 고구려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체 일방적으로 당나라를 기준으로 기술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사료의 한계 때문에 생긴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학계에서 고구려사를 연구할 때에 주로 인용하는 책들은 『삼국사기』와 중국 25사에서 우리 역사와 관련된 글을 적은 소위 〈동이전〉이란 부분들이다. 예를 들면 『구당서』〈고려전〉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구당서』와 같은 책은 기전체(紀傳體) 방식으로 쓰여져서 왕을 중심으로 쓴 본기(本紀)와 신하들의 일대기를 쓴 열전(列傳), 그리고 각종 분야사인 지(志)나 표(表)로 구성되어 있다. 기전체로 쓰여 진 사서의 문제는 결코 하나의 사건을 하나의 기록을 통해 일괄적으로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아무런 연속성도 없는 글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기록되어 있다. 『구당서』에서 고구려 역사를 보려면 〈고려전〉이 가장 자세하기는 하지만, 이것만이 고구려 역사 전부를 다룬 것이 아니다. 「열전」등 다른 부분에도 많은 자료들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을 일일이 찾아보고 재구성해야만 전체상이 보인다. 그런데 논문쓰기에 익숙한 연구자들은 기존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에, 정작 필요한 원사료를 발굴하는 데는 소홀하다. 따라서 몇몇 알려진 사료에만 의존하여 기술된 글들에서는 전체 역사상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기존 연구 성과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 나는 원사료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사료 읽기에서 생겼다. 7세기 동아시아사에 대한 기록들은 『구당서』를 비롯해 절대 다수가 중국 측 기록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록들에는 중국인들의 이민족에 대한 적개심과 편견, 그리고 유교사상에 의한 해석이 반영되어져 있다. 대다수의 학자들도 이를 분명히 알고 있지만, 대부분은 기록된 액면 그대로를 믿는 잘못을 범한다. 중국인의 주관적 서술을 객관적 서술인양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한국고대사나 스텝지역 역사와 같이 자체의 역사서가 부족한 지역의 역사는 중국 측의 편견으로 얼룩진 역사상에 의해 심하게 변모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이 지역 역사 연구의 독특한 '역사학의 병증'즉 중국병(中國病) 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사서에서 단순한 역사 서술의 대상체에 불과하여 그들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어지지 못한 고구려, 돌궐 등 중국 주변국들을 애정을 갖고 그쪽의 입장에 서서 상황을 다시 판단해보려는 상대주의적 사고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연개소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은 대체로 중국 측 편견의 산물이다. 연개소문을 고구려인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면 또 다른 그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단순히 원사료를 그대로 인용만 해서는 과거 역사를 공정하게 보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따라서 사료 읽기가 훨씬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 하나 7세기 동아시아 최대의 사건인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은 단순히 기록된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전술과 무기체제, 정치 외교적 의미 등에 대한 이해 등이 필요했다. 하지만 고-당 전쟁에 대하여 전술 등에 관한 사고를 갖고 접근한 전례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나름으로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이런 어려움들은 도리어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사료를 종합적 사고를 갖고 유기적 연관성을 고려하여 이해하고, 상대주의적 입장에 서서 다시금 역사를 바라보며, 주변 학문에서 분석의 도구를 빌려오는 3중의 노력이 필요했기에 처음 예정한 연구기간보다 시간이 더 많이 소모되었다. 그 때문에 힘들었지만 얻는 것도 많았다.

나는 연개소문이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일으켰고, 왜 당나라와 전쟁을 해야 했으며, 수십 년의 전쟁을 통해 이루려고 했던 목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것을 알려주는 직접적인 역사 기록은 전혀 없다. 하지만 연개소문은 수십 년간 고구려를 지도한 인물인 만큼 그를 아무런 의식도 없이 그저 시대의 흐름에 단순히 끌려간 인물로 볼 수는 없다.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인해 그를 단순한 반응기재만 존재하는 로봇처럼 이해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가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입장을 갖고 어떠한 선택을 왜 했는지를 사서의 기록을 상대주의적 입장에서 바라봄으로써 설명해보고자 했다.

이 작업을 위해서 먼저 연개소문을 중심으로 한 7세기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한 이후에 이에 기초하여 원고를 한번 쓰고서, 다시 한번 연개소문의 입장으로 돌아가 다시금 원고를 수정하면서 그의 시대를 기술했다. 간혹 역사가의 지나친 주관이 지적될 수 있겠지만, 어차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진행한 현재의 역사가의 글과 말로 되풀이 되어 나오는 이야기다.

나는 연개소문이 영원한 대국을 꿈꾼 것으로 보았다. 영원한 대국 고구려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도전에 맞서 늘 새로운 대응을 해야 한다. 연개소문은 과연 자신과 고구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올바른 행동을 했던 것일까?

이것이 이번 연구에서 중요한 과제의 하나였다. 나는 대국이 지속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조건이란 관점에서 연개소문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대국은 소국처럼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대국은 보다 넓은 시각에서 주변을 살피고, 자국의 미래를 위한 끊임없이 투쟁을 해야 하며, 대국에 의지(will to empire)를 영속시키야만 한다. 영류왕은 그 의지를 굽히려고 했지만, 연개소문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의 선택은 그 시대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그에 대해서는 장군 혹은 독재정치가라는 관점보다는 대국의 지도자로서 얼마나 고구려를 잘 이끌었는가 여부로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은 우리에게 소중한 대리체험이 된다. 국가나 기업, 단체를 운영하고 책임지는 사람들이라면 더 더욱 연개소문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번 작업을 통해 두 가지 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먼저 고구려와 당과의 전쟁은 고구려사는 물론이거니와 동아시아사와 세계사에서도 손꼽을 만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백제의 멸망도 크게 보면 이 전쟁의 부산물로 발생한 것이고, 신라의 대동강이남 통일도 마찬가지다. 당나라가 세계제국을 완성한 것도 이 전쟁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며, 동아시아 문명이 중국문명 일변도로 단일화 되어가는 결정적 계기 역시 전쟁의 결과로 나타난 고구려의 멸망이었다. 지금까지 중국인의 입장에서 정리된 글에는 비록 당나라가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지만, 너무나도 힘겹게 이겼고 수치스러웠던 장면들도 많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고구려와 당과의 전쟁에 대해 평가절하한 면이 많았다. 지금까지는 우리 학자들도 적극적으로 이 전쟁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나는 세계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 사건에 대해서 분명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두 번째는 연개소문 개인에 관한 것이다. 나는 그에 대한 바른 평가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그가 생명 없는 역사 서술의 대상체가 아니라, 7세기 동아시아 역사를 주도한 살아 움직인 역사적 인물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먼저 재발견되어야 한다. 그를 생명력 넘치는 한 인간으로 볼 때 우리는 7세기 동아시아 역사와 한국사에 대한 보다 낳은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연개소문과 같이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과 세계사적 사건인 고구려와 당과의 전쟁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부족이 나의 작업으로 조금이나마 해소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