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발견-나의생각

학술대회에 대한 약간의 유감

영양대왕 2006. 1. 23. 11:54
학술대회에 대한 약간의 유감
번호 : 18   글쓴이 : 김용만
조회 : 254   스크랩 : 0   날짜 : 2002.10.10 12:49
우리나라 사학계에는 학술대회라는 것이 참 많다.
특정 문제에 대해서 열리는 학술대회만 해도 일년에 수십개를 넘는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전국역사학대회는 발표인원만 해도 백여명에 이른다.

그런데 나는 학술대회라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내가 학술대회에 가는 목적은 자료집을 얻기 위함과, 인사를 하기 위함이다. 한자리에 모여 같은 전공분야 사람끼리 인사를 나누는 것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발표장에 가서 프린트물로 못본 슬라이드 상영이나, 진지한 토론을 통해 무엇인가 새로운 학문을 배운다는 기대를 갖기란 참 어렵다.

학술대회에 조금이나마 매력적인 것은 조금 능력있는 학회에서는 협찬을 받아서 지방이나 외국에서 온 학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해주고, 식사를 대접해준다는 점이다. 또 발표회장에 들린 일반인에게도 식사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학술대회장에는 오로지 식사티겟을 받기 위한 노인분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그렇다고 오직 식사하기 위해서 학술대회장에 간다거나 인사치레로 간다면 참 서글픈 일이다.

진짜 학술대회라면 발표자가 자신의 학설을 마음껏 펼치고, 이를 신랄한 비판과 토론을 통해 보다 낳은 학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진짜 목적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학술대회장에 가면 서글프게도 발표시간에 학자들이 자신의 논문을 주어진 프린트물을 읽기에 급급하다.
짧게 하겠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글을 전국 어린이 한글및 한자 읽기 대회장에 온 듯이 열심히 읽기만 한다. 그러니 먼저 프린트물을 본 사람이나, 대회장에서 발표자와 함께 호흡한답시고 그때 프린트물을 읽는 사람이나 모두 지겹기가 매한가지다. 아무래도 입보다는 눈이 빠르기에 벌써 내가 보는 페이지는 발표자가 말하는 것보다 몇페이지를 앞서 간다. 그러니 빨리 끝나고 토론시간이나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그러니 학술대회장에서 하품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지리한 읽기 대회가 끝난 후, 토론시간은 대개의 경우 30분을 넘지 못한다. 어떤때는 아예 토론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럴려면 뭐하러 발표했나.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어떤때는 시간이 아깝다고 화가 날 때도 있다.

종합토론이 없는 학술대회장은 정말 가관이다. 개별논문들이 대체 어떤 역사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발표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 논문이 왜 중요한지, 쓸쓸하게 돌아설 때가 만다.

나는 그런면에서 월례발표회 같은 조그만 발표회장이 백번 낫다고 본다. 월례발표회에 가면 그래도 토론시간이 좀 보장된다. 그 결과 월례발표회에서 나온 발표문은 토론자들의 비평을 거쳐 학회지에 실릴 때 반드시 수정을 하여 학회지에 내게 된다. 그래서 좀 더 좋은 논문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어떤때는 발표자와 함께 정기 토론이 끝난 후 술자리까지 이어져서 진지한 토론을 할 때도 있다. 그러면 매우 기분이 좋아진다. 정말 오늘은 유쾌한 시간을 보냈구나 하고 말이다.

나는 가끔 궁금하다. 도대체 우리 학계의 정설은 대체 누가 만들어 내는 것인가. 학자들간에 진지한 토론으로 이것이 더 옳다고 공인되는 것이 아니라, 인맥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니면 개설서등에서 어떤 주장을 자주 인용하느냐에 따라 암암리에 그래 그래도 이것이 정설인듯하구나 하고 짐작하는 정설이 생기는 정도일 뿐이지, 정말 공인된 학계의 학설이 확립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모름지기 학술대회라면 발표시간에는 요지만 발표하고, 긴 토론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본다. 학술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최근의 동향을 알기 위해 오며, 미리 발표문을 대충이나마 보고 온다. 이들을 위해 어린이 읽기발표회장도 아닌데, 미리 나누어준 발표문을 읽기만 한다는 것은 정말 챙피한 일이다.
학자들의 학술대회 발표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안면이 있으니까 그냥 봐주기식 토론이 아니라, 진짜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 서로 신랄하게 비판하는 문화가 싹텄으면 한다.
모든 학술대회가 같은 것은 아니다. 발표문화가 아주 잘 된 학술대회도 있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서 예정된 장소 예약이 끝나서 운운하면서 질문을 차단하고, 그냥 황급히 발표자가 읽기만 하고 끝나는 학술대회는 더이상 없었으면 한다.

학술대회가 단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우리 학회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학술대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행사를 준비했으면 왜, 무엇때문에 이런 행사를 준비했는지에 대한 순수한 목적으로 돌아가 보았으면 한다.
단지 외부 지원을 받기 위한 통과의식으로써의 학술대회는 그만했으면 한다. 참가자에 대한 식사값을 지불하기 보다는 발표자가 더 좋은 논문을 내도록 논문의 질에 따른 논문발표비를 넉넉하게 지급하는 것이 백번 낳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또 학회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많은 발표자를 선정하여 발표하도록 하기 보다는 발표자가 적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주고 발표와 토론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보다 훌륭한 발표장이라고 생각된다.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면 학회지원이 많아진다고 수준이하의 외국학자 한두명만 초대하는 이름뿐인 국제운운 하는 것도 사라졌으면 한다.

진지한 토론을 통해 올바른 학계의 정론이 나오고, 발표자가 토론자들로 부터 진지한 배움을 얻을 수 있으며, 참가자들이 새로운 학문을 배울 수 있는 학술대회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