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사연재글

2007년소년한국일보연재 37회 - 백제의 멸망과 왜국

영양대왕 2007. 12. 11. 23:33
해양 강국 백제를 찾아서] '조상의 나라' 멸망에 운 왜국, '일본'으로 홀로서기


일본에 남아있는 백제식 산성인 기이성의 성벽.

■ 백제의 멸망에 충격을 받은 왜국

백제의 멸망은 주변국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백제를 조상의 나라, 스승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던 왜국이 가장 큰 충격을 받았지요.

663년 9월 부흥 백제국의 수도였던 주류성이 당나라에게 함락되자 왜국에서는 백제가 다시 살아날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일본서기’에는 일본인들이 “이제 백제의 이름이 끊어지게 되었다.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에 어떻게 다시 갈 수 있겠는가?”라고 한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서기 660년 백제 의자왕이 신라와 당 연합군에 항복을 하자 나라를 잃은 백제 유민들은 바다를 건너 지금의 규슈섬 북부로 몰려들었습니다. 백제의 멸망에 크게 당황한 왜국의 제명 여왕은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수도였던 아스카에서 규슈로 이동합니다.

제명 여왕은 백제의 멸망을 자기 나라의 멸망과 똑같이 받아들였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제명 여왕을 의자왕의 여동생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왜국 전역에서 군사들을 모아 백제에 보내려 할 정도였답니다.

당시 왜국은 일본 열도 전체를 지배하지는 못했어요. 군사를 보내려면 각지의 호족들이 자기가 거느리던 군사를 내줘야 했기 때문에 다소 시일이 걸렸지요. 그러는 사이 제명 여왕이 661년 7월 24일 죽고 말았습니다.

일본에 남아있는 백제식 산성의 분포도.

그 아들 천지왕은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8월 백제 파견군 편성을 완료했지요. 그리고는 9월에 백제 왕자 부여풍을 호위해 백제 땅으로 보내기로 합니다. 이 때 왜국의 군사 5000 명이 함께 파견했지요. 천지왕은 이 일을 마친 뒤에야 왜국의 수도인 아스카로 되돌아가 11월 어머니의 빈소를 마련합니다. 죽은 여왕의 장례식보다 백제 구원군 파견이 더 중요했던 것이지요.

661년부터 백제 부흥군을 위해 적극 협조했던 왜국은 2 년 반에 걸친 준비 기간을 끝에 663년 3월 전함 1000 척과 병력 2만 7000 명을 백제로 보냈습니다. 왜국으로서는 온 힘을 다해 백제를 도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해 8월 신라군을 공격할 계획으로 백강을 따라 군대를 진입시키려다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고 맙니다. 당나라 군대가 먼저 강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백강은 금강 하구, 또는 전라 북도에 있는 동진강 하구, 충남 아산군 남쪽의 당진군 주변이라는 등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습니다.

■ 백제의 그늘에서 벗어난 일본

백제식 산성인 일본 국지성의 팔각 건물. 경기도 하남시 이성산성의 팔각 건물과 양식이 똑같다.

백제 부흥군의 내분으로 제대로 연합 작전을 펴지 못했던 것도 패배의 한 원인입니다. 백강 전투의 패배는 왜국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답니다. 곧 신라와 당이 연합하여 일본 열도로 공격해올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이지요.

그러자 왜국은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규슈섬 북쪽에 663년부터 성을 쌓기 시작합니다. 백제 망명 귀족의 지도에 따라 태재부 관청과 도성도 만듭니다. 태재부를 방어하기 위해 평지에는 수성을, 산에는 대야성과 기이성을 쌓았습니다. 태재부란 왜국이 한반도와 교류하던 입구로, 왜군이 백제를 돕기 위해 출발한 곳이기도 합니다. 규슈 섬 전체를 통치하는 곳이자, 왜국의 외교를 주관하는 관청이라 매우 중요했습니다.

태재부의 방어 구조는 고구려와 백제에서 보이는 평지성과 산성의 결합된 형태입니다. 왜국에서는 이 외에도 국지성, 이토성 등 각지에 백제 방식으로 11 개의 산성을 쌓아 당과 신라의 침략에 대비했습니다.

그러나 왜국이 염려하던 당과 신라의 침략은 없었습니다. 왜국은 신라를 크게 견제하며 외교 관계를 끊었습니다. 이제 일본 열도에 고립된 왜국은 스스로의 길을 걷기 위해 670년 나라 이름을 일본으로 바꿉니다.

일본으로 넘어간 백제 유민들은 일본 정부에서 높은 벼슬을 받고, 일본 고대 문화 발전에 큰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일본에게 백제라는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일본은 백제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나라로 발전해 갑니다.

/김용만(우리 역사 문화 연구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