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녀·신라 첩자에 속아 넘어가 신라·당 연합군에 무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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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유인원이 백제 사비성을 점령한 뒤 정림사지 5층탑에 새겨놓은 글귀. 백제가 멸망하게 된 원인과 사건들이 담겨 있다. |
백제 31대 의자왕은 655년에 신라 북쪽의 30여 개 성을 점령하는 등 거듭된 신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태자 때부터 강력한 귀족과 외척들의 세력에 눌려 지내던 의자왕은 이들을 제압한 뒤로는 전혀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신하들은 임금의 행동을 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아첨하며 자기 자리를 보존하기에 바빴지요. 환갑에 가까운 의자왕에게는 은고 또는 군대 부인 이라 불리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은고는 나이 많은 의자왕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는 틈을 타서 자기 마음대로 정치를 하였지요.
‘일본서기’ 에는 “백제는 스스로 망하였다. 군대 부인 요녀가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제 마음대로 하고 어진 신하를 죽인 까닭에 이런 화를 불렀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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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부소산성 안 삼충사에 있는 성충의 초상화. |
요녀, 요부라는 말은 아주 나쁜 여자라는 뜻입니다. 요녀로 기록된 은고라는 여인에 대해 ‘삼국사기’에는 “659년 2월에 여우 떼가 궁중에 들어왔는데, 흰 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의 책상에 떡 올라 앉았다 갔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상좌평은 요즘의 국무총리와 같습니다. 신하들의 우두머리로 나라의 일을 책임지는 벼슬이랍니다. 그 역할을 은고가 대신했으니, 정치가 제대로 될 리 없었겠지요.
은고뿐 아니라, 백제 정부에는 신라의 첩자도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는 좌평 임자였는데, 임자는 신라 김유신의 꾐에 넘어가서 신라를 위한 첩자 노릇을 했답니다. 백제의 주요 정보가 신라로 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 충신의 의견을 듣지 않은 의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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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부소산성 안 삼충사에 있는 흥수의 초상화. |
이 때 의자왕에게 바른 말을 한 사람이 있었지요. 바로 좌평 성충입니다. 성충은 임금이 궁녀들과 더불어 술을 마시며 향락에 빠지자, 정치에 힘을 쓸 것을 간언합니다. 하지만 의자왕은 크게 화를 내며 성충을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다른 신하들은 감히 임금에게 바른 말을 하지 못했답니다.
옥에 갇힌 성충은 다시 글을 써 의자왕께 충언을 올렸습니다.
“세상의 변화를 살펴보건대 반드시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전쟁을 할 때는 먼저 그 지리를 살펴 선택해야 합니다. 강의 상류에 위치해 적을 맞이한 뒤에야 이길 수 있습니다. 만일 적이 오면 육로는 탄현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백강)의 언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험준한 곳에 의거하여 방어해야만 나라를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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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충, 흥수, 계백 3 명의 충신을 모시고 있는 삼충사. |
백제의 멸망은 물론 당나라와 신라가 연합해서 공격해온 탓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충신을 멀리하고 바른 정치를 하지 않은 의자왕의 잘못도 큽니다.
/김용만(우리 역사 문화 연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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