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사연재글

2007년 소년한국일보연재 33회 - 일반백성의 삶

영양대왕 2007. 11. 7. 17:44
[해양 강국 백제를 찾아서] 영웅이 전공 세울 때 백성들은 전쟁으로 신음
잦은 가뭄으로 흉년엔 나무껍질 먹기도…궁궐 짓기 동원… 전염병 돌면 떼죽음

전쟁터에서 말없이 죽어가야 했던 백성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백제 군사 박물관 전시장.

■ 흉년과 유행병으로 괴로웠던 백성들

지난 주에는 의자왕이 차츰 술 마시고 노는 일에 빠져 정치를 잘못하였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왕과 귀족들이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일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요즘은 경제적으로 넉넉해 굶주리는 사람을 보기 힘들지만, 과거에는 달랐습니다. 한 해 농사가 잘 되고 못됨에 따라 백성들은 배불리 먹기도, 굶주리기도 했던 것입니다.

흉년의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가장 흔한 경우는 비가 오지 않는 가뭄입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에 32 회의 가뭄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또 서리, 우박, 폭풍우, 눈, 흙비 등으로 인해 곡물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았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메뚜기 떼가 곡식을 먹어치우기도 했지요. 흉년이 들어 농사를 망치면 백성들은 나무 껍질이나 짐승을 잡아 먹으며 목숨을 이어갔어요. 극심한 가뭄으로 인육을 먹는 최악의 경우가 백제에서만 4 차례나 있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흉년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유행병입니다. 229년에는 추운 날씨인 11월에도 유행병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499년, 502년, 506년에 거듭 유행병이 번졌지요. 백제 동성왕 시기에는 전염병으로 많은 인구가 죽어서 국력이 쇠약해지기도 했습니다.

몽촌토성 안에서 발견된 백제 일반 백성들이 살았던 움집터. 기둥과 벽으로 지은 움집 내부에는 화덕이 설치되어 있다.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백제 678 년의 역사에서도 ‘삼국사기’에 기록된 재앙만 99 회나 됩니다. 평균 7 년에 한 번 자연 재해로 백성들이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신라의 경우는 992 년의 역사에서 무려 345 번의 자연 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지진이나 산사태처럼 특정 지역에만 피해를 준 것도 포함되어 있지요.

■ 임금에 따라 백성들의 삶이 달라지기도

백제는 이처럼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구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전쟁에서 부상하거나 전염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의술을 펼칠 수 있는 관청을 만들기도 했지요.

조선 시대에는 의사가 높은 신분의 양반이 아닌 중인 계층이었지만 백제는 달랐습니다. 왕유릉타와 같은 의박사는 내솔이라는 6등급의 높은 벼슬을 했지요. 또한 약을 다루는 채약사도 8위나 9위의 관등을 가질 만큼 병 치료에 대한 나라의 관심은 컸습니다.

몽촌토성 안 전시관에 선보이고 있는 백제 움집 내부.

흉년이 들었을 때에는 왕이 그 지역을 방문해 격려를 하거나 나라의 창고를 열어 식량을 나누어 주기도 했지요. 또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종교 행사를 행하기도 했답니다.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경우 백성들의 생활은 그나마 나았습니다.

하지만 21대 개로왕처럼 궁궐을 화려하게 짓기 위해 백성들을 동원한다거나, 17대 아신왕처럼 무리한 전쟁을 일으킨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거운 세금을 강요하거나, 귀족이 평민들의 재산을 마구 빼앗기도 했지요. 이럴 때 백성들은 다른 나라로 옮겨 가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 재해보다 사람으로 인한 재앙이 백성들을 더욱 괴롭혔던 것입니다.

특히 전쟁은 영웅들에게는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지만, 일반 백성들에게는 생명을 내놓아야 하는 무서운 것이었지요. 흔히 역사책이나, 텔레비전 사극에는 멋진 영웅들만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들 뒤에는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일반 백성들이 더 많았음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용만(우리 역사 문화 연구 소장)


입력시간 : 2007-11-06 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