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연재글

2006년 소년한국일보 신라사연재 25회 - 세계문화유산 경주 남산

영양대왕 2007. 7. 8. 21:32
[신라 1000년의 비밀] 세계문화유산 경주 남산
백성들의 소박한 신앙심에 민중 불교의 꽃 '활짝'

용장계곡의 부처 얼굴. 어린이처럼 친근한 모습을 띠고 있다.

신라의 수도 경주는 국보 22 점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한 거대한 박물관입니다. 1997년 불국사와 석굴암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2000년에는 경주시의 5 개 역사 유적 지구가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통일 후 수많은 불교 유적 산과 계곡에 들어서

5 개 역사 유적 지구를 차례로 살펴볼까요?

우선 월성 지구에는 신라의 궁궐터인 반달 모양의 월성과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 안압지가 있는 임해전 터, 첨성대가 있습니다.

대릉원 지구에는 황남동 고분군과 노동동 고분군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황룡사 지구에는 황룡사 터와 분황사가 있으며, 산성 지구에는 신라 수도의 방어성인 명활산성이 자리합니다. 그리고 남산지구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나정, 포석정과 같은 사적을 포함해 불상과 사찰 등 수많은 불교 유적이 존재합니다.

이 가운데 특별히 살펴볼 곳은 경주 남산의 불교 유적입니다.

남산은 신라왕이 살았던 월성 남쪽에 자리잡은 산입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삼국 통일 이후 갑자기 많은 불교 유적이 산과 계곡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현재 남산에는 왕릉 13 개와 산성터 4 개가 있습니다. 또 40여 개의 계곡에 147 개의 절터, 113 개의 돌부처, 탑 96 기, 석등 22 개 등 모두 672 점의 문화유적이 존재합니다. 그 가운데에는 보물 제63호인 배리삼존불입상을 비롯해 문화재만도 무려 43 점에 이릅니다. 한마디로 거대한 불교 예술관이지요.

●소박한 부터 찾아 전쟁의 상처 씻어

삼릉계곡의 석사삼존불좌상. 바위에 부처의 모습을 새겼다.

이 남산의 바위에 새겨진 불상들은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합니다.

용장계곡의 절골사 터 부근에서 발견된 부처의 얼굴을 한번 살펴볼까요?

통통한 얼굴에 둥근 눈썹과 두툼한 눈두덩이는 마치 어린이의 얼굴 표정처럼 보입니다. 즉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나와 가까운 소박한 부처입니다. 이것이 신라인들이 진정 가까이하고 싶은 부처의 얼굴이었겠지요?

삼릉계곡 큰 바위에 새겨진 부처와 보살은 바위 표면을 정으로 쪼아 새긴 것이 아니라, 마치 붓으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바위에 그려 놓았습니다.

이 부처는 특히 조각 방법이 매우 정교해 바위에 새겨진 그림 중 으뜸으로 칩니다. 남산 기슭의 배리삼존불 또한 친근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중앙의 부처는 천진한 표정의 네모난 얼굴을 띱니다.

그런데 남산에는 이처럼 공들여 만든 불상과 절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배리삼존불 입상. 남산 기슭에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큰 돈이 없는 사람이 만든 조금은 어색한 모양의 탑과 부처도 많습니다.

당시 왕과 높은 신분을 가진 이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황룡사나 분황사를 찾았겠지만, 서민들은 화려한 사찰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남산을 찾아 편한 마음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한편 남산의 수많은 불교 유적 대부분은 삼국 통일 이후에 만들어졌습니다.

삼국 통일은 무열왕ㆍ문무왕ㆍ김유신 장군 등을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들을 탄생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자신의 가족과 친구를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힘들게 일궈 놓은 농토와 재산도 잃어버렸습니다.

또 고향 산천은 파괴되었으며, 쓰라린 기억들은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오랜 전쟁 끝에 평화가 오면서 신라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로받고 싶어졌습니다. 때맞춰 원효는 백성들에게 불교를 널리 믿도록 이끌어 줬습니다. 그 결과 남산에 수많은 불교유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신라 불교의 진정한 꽃은 화려한 불국사나 황룡사에서가 아니라 소박한 신라인의 진정한 신앙심을 볼 수 있는 경주 남산에서 활짝 폈던 것입니다.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입력시간 : 2006-09-03 1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