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연재글

2006년 소년한국일보 신라사연재글 28회 - 9주 5소경.

영양대왕 2007. 7. 8. 21:31
넓어진 국토 통치 위해 9주 5소경 둬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게 문제는 넓어진 지역을 통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도인 경주(금성)에서 모든 일을 결정하고 처리하는 건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신라는 전국을 9 개 주로 나누고, 주 아래 군과 현을 두었습니다. 오늘날의 도ㆍ군ㆍ면과 같은 것으로 1 개 주에는 약 10 개 군, 전국적으로는 약 110여 개의 군과 280여 개의 현이 있었습니다.

주에는 도독, 군에는 태수, 현에는 현령이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현 아래 촌ㆍ향은 토착 세력인 촌주가 지방관의 통제를 받으며 관리했습니다.

특히 주의 도독이 머무는 곳은 전주ㆍ무주(광주)ㆍ강주(진주)ㆍ삭주(춘천)ㆍ명주(강릉) 등으로 지역의 중심 도시로 성장합니다.

충남 연기군에서 나온 계유명진씨아미타삼존불비상. 통일 직후 이 지역의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전국에 약 110여 개 군과 280여 개 현 분포

신라 시대의 도와 군의 크기는 오늘날과 비슷하며, 관리의 배치 및 중심 도시 등도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신라가 통일을 이룬 뒤 지방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제도를 잘 정비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라에는 9 개 주의 치소 외에 5 곳의 소경을 더 두었습니다.

국원소경은 통일 전인 557년에, 북원경과 금관경은 통일 후인 678년과 680년에, 서원경과 남원경은 685년에 각각 만들어졌습니다.

그 중 국원경(충주)은 신라가 고구려 남진의 전진 기지였던 국원성을 차지한 후 만든 것입니다. 신라 말에 궁예가 북원경(원주) 주변에서 힘을 키운 후, 후고구려를 세운 것을 보면 북원경은 고구려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금관경(김해)은 물론 옛 가야 지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옛 백제 지역인 서원경(청주)과 남원경(남원)은 가장 늦게 만들어집니다.

청주에 세워진 서원경은 백제 유민들 중 유력한 귀족들을 옮겨가 살게 함으로써, 이들을 통제했던 곳입니다.

5 소경은 각 지방의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중심지로 우뚝 서

서원경의 치소였던 청주 상당산성.

5 소경은 각 지방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

서원경과 가까운 충남 연기군 전동면 다방리의 비암사에서 발견된 불상을 보면 통일 직후 이 지역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불상의 앞면과 옆면에는 대사ㆍ소사와 같은 신라의 관등을 가진 사람, 전씨ㆍ진씨 등의 백제의 성씨와 달솔과 같은 백제의 관등을 가진 사람이 함께 만들었다는 글이 쓰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불상은 백제가 멸망한 지 10 년이 지난 673년에야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전히 달솔(2등급)이란 과거를 잊지 못하는 옛 백제의 귀족들, 백제인이었다가 신라의 관등을 부여받은 사람들, 또 본래의 신라인이 다 함께 불상을 세웠던 것입니다.

이처럼 백제 유민들은 불상을 만드는 데 참여할 만큼 지역에서 세력가로 자리를 잡으며 서서히 신라인으로 동화되어 갔습니다.

한편 신라는 5 소경에 귀족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등 인구 분산 정책을 펼쳐 각 지역을 고루 발전시키려 했습니다. 686년에 만들어진 청주 운천동사적비에는 '삼한을 통합하여 땅을 넓혔으며 창해에 살면서 위세를 떨치시니…….'처럼 삼국 통일의 업적을 찬양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절의 내력을 기념하는 비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은, 신라인 스스로가 통일의 업적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도 자연스럽게 통일된 신라인으로 어우러져 갔습니다. 즉 5 소경은 옛 백제와 고구려ㆍ가야인들을 완전한 신라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신라의 문화를 가진 귀족들을 내려 보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5 소경과 9 주의 치소와 같은 도시는 이처럼 각 지방의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중원경은 뛰어난 문장가인 강수, 명필로 유명한 서예가 김생 등이 활약한 예술의 고장으로 발전했습니다.

수도인 금성에만 지나치게 집중되었던 인구와 권력, 부와 문화는 지방으로도 분산 됐고, 전국이 균형 있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5 소경을 비롯한 지방에서 힘을 키운 세력가를 '호족'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장차 고려 건국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김용만(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입력시간 : 2006-09-24 1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