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연재글

2006년 소년한국일보 신라사 연재 38회 - 후삼국의 분열

영양대왕 2007. 7. 8. 21:26
종교와 정치 분리하지 못해 몰락
후삼국의 시작과 궁예
신라 왕자였으나 버림받고 원한 키워
자신을 미륵불이라며 백성 사로잡아
후고구려 건국했으나 20년 만에 망해


궁예 도성 모형. 궁예의 도성 터는 현재 철원군 비무장 지대 안에 있다.

1000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신라도 서서히 멸망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888년에는 큰 흉년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신라 정부는 백성들의 생활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해 관리들을 각 지방에 보내 세금을 거둬 농민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자 농민들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상주 지역에서 원종과 애노 등이 일으킨 반란은 워낙 규모가 커서 정부도 이들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반란은 실패하였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신라 정부는 완전히 지방을 통치할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신라 정부가 힘을 잃자, 궁예가 지금의 강원도와 경기도 지역에서 후고구려를, 견훤이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에 후백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제 통일 신라의 시대가 끝나고 후삼국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 궁예

궁예는 본래 신라의 왕자였는데, 어려서 버림을 받아 신라에 대한 원한이 깊었습니다. 그는 원주 세달사에서 승려 생활을 하며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궁예는 이후 차례로 이천 지역의 세력가인 기훤과 양길의 부하가 되었고, 양길은 그가 뛰어난 인물임을 알고 자신의 군사를 나누어 주어 동쪽 지방을 공격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궁예는 강원도 동부 지역을 공격하여 원주에서 강릉에 이르는 10여 성을 점령하였고, 군사도 3500 명이나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힘이 커지자 궁예는 스스로를 장군이라 부르며 독립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또 호족과 선종 승려들의 지원을 받아 힘을 더 크게 키웠습니다.

당시 명주(강릉)에는 미륵 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미륵이란 미래에 태어날 부처님으로, 장차 사람들을 구제하여 이상 세계로 인도하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를 말합니다. 궁예는 자신이 미륵불이라고 내세워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명주를 떠난 궁예는 895년 강원도 서북부의 철원 일대까지 장악했습니다. 또 양길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고, 896년에는 철원을 도읍으로 삼았습니다.

궁예는 고구려 유민이라는 의식이 강했던 예성강 서쪽 패서 지역(황해도) 호족들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고구려를 재건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들마저 포용했던 것입니다.

900년 한강 하류와 남한강 유역의 요새인 충주 지역을 차지한 궁예는 신라 영토의 절반이나 되는 넓은 영토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궁예는 901년에 나라 이름을 '고려'(후고구려)라고 정했습니다. 신라는 그 땅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궁예, 고려를 세웠으나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울음산(명성산).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이 산에 올라 자신의 궁궐을 보며 슬피 울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궁예는 신하의 등급을 9 개로 나누고, 여러 관청을 새로 두는 등 신라와는 확실히 다른 정치를 펼쳤습니다.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뜻을 내세우며 북으로 영토를 넓혔습니다.

왕건을 수군 사령관으로 임명해 후백제의 뒤쪽인 나주 지방을 점령하게 하는 등 후백제와의 경쟁에서도 앞서 갔습니다. 또 소백 산맥을 넘어 상주 지역을 차지하며 신라를 억눌렀습니다.

하지만 궁예는 점점 자신이 미륵불이라는 착각에 빠져들었고, 종교와 정치를 일치시키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왕건을 비롯한 여러 신하들은 궁예를 믿을 수 없는 임금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궁예는 신하들을 의심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등 점차 나쁜 임금으로 변해 갔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왕건을 중심으로 뭉쳐 918년에 그를 왕위에서 쫓아 냈습니다.

궁예는 미륵불이 만드는 이상 세계를 꿈꾸었지만, 불과 20여 년 만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후삼국 시대의 등장과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 신라의 멸망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입력시간 : 2006-12-03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