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생각

연개소문드라마 - [삼국지연의] 베끼기. 이것은 아니다.

영양대왕 2006. 8. 1. 09:27

 연개소문 홈페이지 자문위원컬럼란에 5번째로 올린 글입니다.


연개소문 드라마의 방영은 평소 TV드라마를 제대로 보지도 않는 필자에게 녹화라도 해서 1회부터 8회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다 보도록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큰 생활의 변화였습니다. 자문위원으로 위촉받은 일 때문에 이리 저리 귀찮은 일들도 자주 생깁니다. 미리 예상을 했던 것이지만, 연구에 방해될 정도로 이런 저런 문의를 해오는 기자들도 있고, 드라마가 고증이 엉망이라며 필자에게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드라마를 아주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고증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잘못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구구절절 글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난 29일 방영된 겨울철 요하전투 장면을 보면서 속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겨울철에 얼음 위에서 전쟁을 한 것은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흔한 것이 아니었다고 전쟁전문가 후배가 말해주더군요. 영화 아더왕에서 얼음을 깨서 적을 물리치는 장면이 있다고도 하지만, 연개소문 드라마처럼 대단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참신한 전쟁 묘사는 칭찬을 받아 마땅합니다. 과거 역사에서 실제로 이런 전투가 있었느냐고 역사가에게 묻는다면, 당연히 ‘기록이 부족하여 알 수 없다.’ 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 작가의 창조적인 상상력은 때로 역사연구자들의 연구보다 훨씬 뛰어넘는 결과를 낳습니다.

앞으로 연개소문 드라마에서 참신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좋은 장면들이 많이 나와 더욱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런데 연개소문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이것은 아니다.’라고 생각되는 우려스러운 장면들이 있어서 굳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연개소문 드라마는 ‘우리나라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라고 만방에 공표한 드라마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마라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에 왜 굳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의 잔영(殘影)이 이리도 진하게 남아있는지 필자로써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당태종 이세민이 자기 눈에 박힌 활을 뽑고 눈알을 먹는 장면을 보고, 왜 굳이 저 장면을 넣었을까? 저것은 한눈에도 [삼국지연의]의 하후돈 이야기임이 너무도 분명한데, 왜 저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더욱이 고구려 병사들이 수나라 군대로부터 화살 10만개를 얻는 장면을 보고서는 솔직히 낯 뜨거웠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시청자의 절대 다수가 ‘이것은 [삼국지연의]의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을 앞두고, 오나라 주유에게 약속한 화살 10만개를 직접 만들지 않고 조조군에게 얻어온 이야기를 흉내 낸 것이었다’ 라고 한 눈에 알았을 것입니다.

대체 이런 장면을 왜 필요할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함인가? 그런데 그 답은 너무도 쉽게 알아버렸습니다. 작가가 연개소문의 아버지 연태조를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공명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연태조를 제갈공명과 비교되는 병법의 천재로 묘사하는 장면을 보고는 아연실색을 했습니다. 아니 어찌 고구려 사람들의 입에서 제갈공명을 거론한단 말인가? 설령 제갈공명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제갈공명을 병법의 천재로 알았을까?


[북사(北史)-당나라 이연수가 편찬한 북조(북위, 제, 주, 수 233년간의 통사]에는 고구려에 [오경(五經)], [삼사(三史-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양추] 가 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구려에 [삼국지] 책이 있었으니, 고구려 사람들도 [삼국지]의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삼국지]는 진수(陳壽)가 쓴 책으로, 중국의 역대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25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책은 나관중(약 1330년∼약 1400년)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와는 완전히 다른 책입니다. 진수와 나관중이 역사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은 워낙 유명한 이야기인 만큼, 여기서 굳이 따질 거론할 필요도 없는 만큼, 생략합니다. 다만 고구려 사람들은 진수가 한 말은 알아도, 나관중이 한 말은 몰랐다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진수는 이렇게 제갈량을 평가합니다.

“목우, 유마, 팔진도 등은 모두 제갈양이 만들었다. 그는 문장이 뛰어나고, 훌륭한 재상감이었다. 출중한 재능과 영웅다운 기개를 갖춘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유비가 그의 오두막에 3번이나 찾아갈 만큼 그는 뛰어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재주가 군사를 지휘하는 재능보다 우수했으며, 군대를 통솔하는 것에는 뛰어났지만, 기책(奇策)이란 점에 있어서는 열등했다. 명장을 얻지 못했기에 대업을 이룰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진수는 제갈량에 대해 이렇게 평하였습니다.

“제갈양은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를 터득한 걸출한 인재로서, 관중, 소하와 비교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매년 군대를 움직였으면서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아마 임기응변의 자략이 그의 장점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제갈양은 물론 뛰어난 인물입니다. 하지만 병법의 천재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사람들이 700년 후에 태어날 나관중을 모셔다가 제갈양이 병법의  천재였다고 배웠을 까닭도 없는데 어찌 그를 희대의 병법의 천재로 묘사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제갈량이 동양의 레오나르도다빈치, 아인스타인이라는 생각은 [삼국지연의]에 심취한 후대인들이라면 모를까, 고구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30일 드라마를 보니 연태조는 아예 바람을 얻기 위해 아예 [삼국지연의]의 제갈공명과 똑같이 기도까지 드리고 있습니다. 왜 연개소문의 아버지인 연태조가 제갈공명이어야 합니까? 그리고 실제의 제갈공명도 아닌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과장된 제갈공명이어야 합니까?


듣자하니 앞으로 전개될 김유신과 천관녀 이야기에서는 ‘음참파속’ 고사를 따온다고 합니다. 앞으로 연개소문이 당나라에 들어가 이세민, 이적, 장손무기, 이정 등과 만날 때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등장할까요? 아무래도 당나라를 빠져나올 때는 관우가 조조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5개 관문을 통과하는 이야기가 나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장비의 장판교 사건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오늘은 어떤 [삼국지연의] 내용을 흉내 낸 이야기가 나왔는지 알아맞혀보기가 지속된다면, 필자로서는 드라마를 더 이상 볼 이유가 없습니다.


이환경 작가님은 신문 인터뷰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이 이 드라마 한 편으로 무색하게 될 것”이라며 “중국은 긴장해야 한다.”, “정부가 외교마찰을 우려해, 학계가 사료부족을 이유로 동북공정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드라마가 나서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제작진은 ‘민족의 자긍심에 불을 붙이는 시대적인 요구와 사명감에 충실하게 답하는 작품이 연개소문’이라고 선전을 하였고, ‘자유냐, 노예냐’는 홍보문구를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베끼기를 계속하는 한, 긴장해야 할 중국이 도리어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것입니다. 민족의 자긍심에 불이 당겨지기 보다는 이 드라마가 [삼국지연의]의 노예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삼국지연의]를 베끼지 않으면 할 이야기가 그토록 없습니까? 그럼 우리나라 최고 사극작가의 상상력이 겨우 이 정도란 말입니까?


우리가 오랜 역사와 큰 강역을 가진 나라였다고 야사까지 들먹이며 아무리 외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주장하는 사극 속의 고구려 인물이 한낮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제갈공명의 짝퉁이라면, 그 소리는 너무도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도 짝퉁이 많으니 괜찮다고 자위하지는 맙시다.

[삼국지연의]의 인물 흉내는 연태조 한명에서 그쳐야 합니다. 앞으로 나올 대본에도 읍참마속(泣斬馬謖) 운운하며 지속적으로 [삼국지연의]를 베끼기만 한다면, 이 드라마는 민족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가 아니라, 고구려를 모욕하는 드라마가 될까 우려스럽습니다. 

고구려인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상식에서 세상을 보는 드라마. 진정 고구려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겠구나, 이렇게 생각했겠구나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드라마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