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사연재글

2007년 소년한국일보연재 21회 - 백제인의 얼굴

영양대왕 2007. 8. 13. 20:27
온화한 불상 표정 백제인 얼굴 보는듯
중국 '신비감' 일본 '이국적' 풍모와 대조… 웃고 찡그리는 토기 '다양한 삶' 묘사

서산 운산면에 위치한 서산 마애삼존불상

■ 백제인의 미소 '마애삼존불상'

백제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살았을까요?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 사람들은 생김새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달랐습니다. 각기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과 살아가는 환경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 사람들의 얼굴은 강인한 인상을 풍깁니다. 고구려의 자연 환경이 춥고 거칠었기 때문이지요. 고분 벽화 등에 나타난 고구려인들은 부리부리한 눈에 이목구비가 뚜렷해 쉽게 얕잡아 볼 수 없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답니다.

백제는 무덤 벽화 대신 불상이나 다른 나라 사람이 그린 백제 사신의 모습 등을 통해서만 그 생김새를 알아 볼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2 개의 무덤에서 벽화가 발견됐지만 인물 대신 백호(흰색 호랑이)를 표현한 사신도와 연꽃 무늬 등만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지요. 신라인의 얼굴을 대표하는 것은 ‘신라 천년의 미소’라고 불리는 기와에 나타난 넉넉하게 미소짓는 모습입니다.

마찬가지로 ‘백제인의 미소’로 상징되는 것은 서산 마애삼존불상의 가운데에 보이는 부처님 얼굴이랍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활짝 벌려 웃고 있는 모습이 아주 천진난만해 보이지요.

입가에도 미소를 가득 띠어 쾌활한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좌우에 있는 부처님들도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답니다. 이 모습은 당시 백제 사람들이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얼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왼쪽부터)소박한 백제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군수리석조여래좌상.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백제인의 모습. 부여 구아리에서 출토된 독특한 표정의 소조 인물상

■ 다채로운 표정의 유물들

‘삼국사기’에서 백제 임금들의 인상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대체로 인자하고 관대하며 너그러운 성격을 가진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불상에 나타난 모습도 이와 비슷합니다. 백제 불상에 나타나는 특징은 둥근 얼굴과 적당히 살이 오른 뺨, 천진난만한 웃음을 머금은 환한 표정입니다. 보물 제329호인 부여 군수리석조좌상은 소박한 백제인의 얼굴을 보는 듯합니다.

중국의 불상에 보이는 표정들은 웃고는 있지만, 어딘지 딱딱하고 틀에 박힌 인상을 줍니다.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거리감을 느끼게 하지요. 일본 불상은 이국적인 얼굴에 웃는 모습이 자연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백제 불상에서 보이는 부드럽고 온화하며 인간적인 모습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백제인들은 불상 뿐 아니라 돌에 새기거나 흙으로 빚은 얼굴들도 많이 남겼답니다. 웃는 표정 외에도 화가 난 모습, 찡그린 모습 등 다채로운 표정들이 유물에 나타나기도 하지요.

부여 관북리에서 출토된 토기의 표면에는 표정이 비슷한 다섯 사람의 얼굴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불상에서 보이는 온화하고 화사한 미소를 띈 얼굴과는 달리 눈은 처져 있고,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지요.

꾹 다문 입술은 시름에 잠긴 듯한 모습입니다. 수염이 나 있고 관리의 모자를 쓴 사람은 장년의 남성을 표현한 듯합니다. 어쩌면 토기를 만든 사람의 모습일 수도 있겠지요.

부여 구아리 유적에서 발견된 흙을 이겨서 만든 인물상은 묘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움푹 들어간 눈가의 주름과 전반적인 표정은 뭔가 못마땅한 듯 찌푸려 있지만, 벌린 입과 위로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이런 유물들은 678 년이란 긴 세월 동안 다양한 삶을 살았던 백제인의 모습들을 엿보고 그들의 삶을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