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글들

쿠쉬나메 - 신라 생활상 담은 페르시아어 서사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

영양대왕 2010. 8. 6. 17:10

우선 제목을 이렇게 붙이자. 이희수 선생의 논지에 절대 동감한다.  2010.8.6일자 중앙일보.

 

 

이란 관계는 미·이란 관계와 다르다 [중앙일보]

중동 최대 시장인 이란과의 경제교류가 중대한 위기국면을 맞았다. 이란의 핵 확산을 막기 위해 유엔결의와는 별도로 미국이 강력한 이란 제재에 돌입했고 우리 정부에도 동참을 요구했다. 미국이 요구한 유럽연합(EU) 수준의 제재는 무기 거래는 물론 금융 거래까지 제한돼 사실상 경제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이란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인구 7000만 명에 중동의 주요 농산 부국으로 세계 원유 매장량 3위, 천연가스 2위 보유국이다. 한국 최대의 중동 상품 시장으로 연간 교역액이 10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모든 관심의 초점이 경제적 이해관계에 집중돼 있지만, 이란과의 문화적 관계는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최근 이란 현지 연구를 마치고 돌아왔다. 벌써 5년째 이란 북부 카스피해 연안에서 고고학 발굴과 고대 문화교류 흔적을 찾기 위한 한·이란 공동연구가 진행 중이다. 특히 지난달에는 신라의 생활상을 담은 ‘쿠쉬나메’란 800쪽 분량의 고대 페르시아어 서사시가 발견돼 학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란 방문의 감동은 무엇보다 이란 국민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점이었다. 드라마 ‘대장금’의 평균 시청률이 90%를 웃돌았고, 연이어 방영된 ‘해신’ ‘상도’ ‘주몽’ 등 한국 드라마의 인기도 식을 줄 모른다. 한류 열풍은 곧바로 시장으로 투영돼 가전·IT·자동차 등 많은 분야에서 한국 제품이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24시간 코리아 브랜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지독한 한국 사랑이다. 우리 문화를 더욱 가까이 호흡하기 위해 이란 국립박물관에서는 신라 유물전을 기획하고 있었다. 이제 코리아 브랜드는 이란 국민의 삶 속에 포기할 수 없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적대국가다. 1954년 엘리트 민족주의 정치인인 모사데크 총리를 실각시키고 친미(親美) 성향의 팔레비 왕정을 세우면서 금 가기 시작한 미국·이란 관계는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거치면서 화합하기 어려운 적대적 이해당사자가 되었다. 따라서 미국이 핵 위협 구도를 갖추어 가는 이란을 ‘악의 축’ ‘테러지원국’으로 관리하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한·미 동맹과 긴밀한 양국 협력체제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국익이다. 그렇지만 한·이란 관계는 미·이란 관계와는 차원이 다르다. 국제적인 공조와 한·미 동맹의 축을 흔들지 않으면서 이란을 관리하고 끌어안는 정교한 선택적 전략은 과연 없는 것인가. 우리 입장에서 글로벌 문화를 호흡하고 실체적 국가 이익에 접근하는 독자적인 세계 전략은 없는 것인가. 우리의 외교적 역량을 진정으로 발휘할 때가 왔다.

우선은 이란과의 충분한 교감과 합리적 대안을 찾기 위한 대화채널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 입장과 노력을 충분히 설명한다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서 한국의 입지를 그들은 이해할 것이다. 한국 기업의 이란 진출을 위한 숨통 역할을 하는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활동 중지에 대비해 이란과의 협의를 통해 두바이나 다른 아랍 은행들을 활용하는 우회창구 개설 방안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개입한다는 인상보다 기업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과도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한국이 이란과 갖는 특수한 관계를 설명하고 제재 수위 완화를 협의해야 한다. 나아가 미국과 이란 양국 모두에 좋은 관계를 갖고 있는 우리가 극단적인 미·이란 관계를 완화시키는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하는 발상의 전환이 아쉬운 시점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맹방으로 친서방 정책을 펴는 터키가 최근 이란 핵 문제에 관한 절충안을 통해 훌륭한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이란 제재의 예봉을 피해가는 방식도 우리의 전략에 참고가 될 수 있다.

결국 우리 입장에서는 유엔 결의안의 범주에서 국제적 행동에 보조를 맞추되 미국 주도의 포괄적인 이란 제재에는 약간의 거리를 두는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란에 우리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학술·문화·스포츠 같은 비정치적 교류를 훨씬 확대하면서 이참에 이란을 가까이 이해하고 끌어안는 장기적이고 유연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중동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