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글들

한대 화상석을 보며 생각한 고구려 고분벽화

영양대왕 2005. 6. 28. 22:38

김태식 기자의 독설이 돋보이는 글이라서 퍼온다.

 

 

<한대 화상석을 보며 생각한 고구려 고분벽화>

[연합뉴스 2005-05-27 10:32]
中 신리샹 교수 著 '한대 화상석의 세계' 완역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기원전 5-4세기 '자묵자'(子墨子) 묵적(墨翟)를 추종하는 교단에서 남긴 일종의 종교 교리서인 '묵자'(墨子)는 귀신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극력 강조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묵자를 따르는 묵가(墨家)의 무리는 귀신을 경외하되, 멀리한다는 공자(孔子) 계열의 유가(儒家)와 대척점을 형성한다.

그러면서 묵자는 이런 귀신들과 인간이 어우러진 세계를 모두 3부로 나누어 형성된 것으로 본다. 최고 신격인 상제(上帝)를 최고신으로 삼는 천(天)의 세계가 천상(天上)에 펼쳐져 있으며, 죽은 사람들이나 기타 귀신들이 거주하는 귀(鬼)의 세계가 지하에 있고, 그 중간 지점 지상에는 인간들이 사는 인(人)의 세계로 구성된다는 것이 묵자 교단의 세계관이다.

우주만물의 절대원리인 도(道)를 천도(天道)와 지도(地道)와 인도(人道)로 구분하는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과도 밀접한 이러한 묵자의 3부 세계관은 서기 2세기 후한(後漢) 말기 이후 도교(道敎)가 출현함으로써 그 교리에 급속히 파고 든다.

예컨대 동진(東晉)시대 저명한 도교 이론가 갈홍(葛弘.283-343)은 그의 도교신학서인 포박자(抱朴子)에서 신선(神仙)의 세계를 각각 상선(上仙)과 중선(中仙)과 하선(下仙)의 3등급으로 나누어, 이들 세계에 속한 신선을 지칭하는 별칭으로 천선(天仙)과 지선(地仙)과 시해선(尸解仙)이라 하고 있다.

갈홍 이후 약 1세기 반 뒤에 출현하는 중국 양(梁)나라 '산중재상'(山中宰相)인 도사 도홍경(陶弘景.456-536)은 당시까지 도교 철학을 집대성한 진고(眞誥)라는 책에서 불교 윤회설의 짙은 영향 아래 선(仙)ㆍ귀(鬼)ㆍ인(人)의 순환적 세계관을 만들어낸다. 이에 의하면 鬼 중에서도 선행을 쌓은 자는 人이 되고, 人으로써 훌륭한 일을 거듭하면 천상을 노니는 仙으로 승격하며, 반대로 추락도 일어난다.

사실 이런 3부(三部)의 세계관이라는 틀을 마치 공식처럼 적용한 전형적 보기로는 고구려 고분벽화가 있다. 이런 고분 그 자체가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는 선(仙)ㆍ귀(鬼)ㆍ인(人)의 세계 중에서도 말할 것도 없이 지하 세계에 해당하는 鬼이다.

하지만 그러한 귀의 세계에서도 또 다른 3부 세계로 분파된 소우주가 펼쳐진다. 이를 증명하듯 고구려 벽화고분은 거의 예외가 없이 천장에는 신선이 노니는 仙의 세계가 구현돼 있으며, 그 중간에는 천상과 지상을 오르내리는 비어(飛魚. 날개 달린 물고기)와 같은 이미지들이 집중적으로 구현돼 있다. 지상에는 말할 것도 없이 인간들이 이승에서 구현한 세계가 드러난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한대(漢代) 중국 화상석(畵像石) 예술에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는 고분벽화 연구는 견주건대, 대장경(大藏經) 없는 불교 연구나 진배가 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에 대해 제대로 천착한 연구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고작해야 초대 국립박물관장인 김재원 박사가 단군신화와 한대 무씨 화상석을 비교한 논문 정도가 있으며, 최근 들어 몇몇 연구자가 고구려 고분 벽화를 논하는 자리에서 '곁가지' 정도로 언급하고 지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 자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화상석은 물론이요, 중국어 자체에도 문외한이었다는 김용성(50) 신라문화유산조사단 연구실장이 영남대 박물관 재직 시절 중국 화상석 특별전 개최를 준비하는 과정이 계기가 되어 2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옮긴 중국 베이징대 신리샹(信立祥.58) 교수의 '한대 화상석의 세계'(학연문화사)는 '믿거나 말거나' 국내 처음으로 소개되는 이 분야 전문서적이다.

이에 대한 중국어 원저는 '한대 화상석 종합연구'(中國畵像石綜合硏究)라는 제목으로 2000년, 문물출판사(文物出版社)에서 나왔다.

여기서 저자는 무덤이나 사당과 같은 제의적 성격이 짙은 건축물에 대한 일종의 장식미술품인 화상석 중에서도 그 발생기와 본격 발전기에 해당하는 한대(漢代)에 집중하면서 거기에 나타난 도상(圖像.이미지)을 천상의 세계, 선인(仙人.신선)의 세계, 인간의 세계 외에 지하 귀혼(鬼魂)의 세계라는 4부 세계관으로 나눠 접근한다.

그가 말하는 4부 세계관은 실상은 묵자와 주역과 갈홍과 도홍경이 말하는 3부 세계관을 좀 더 세분화한 데 지나지 않고, 그러므로 실상 3부 세계라고 불러도 좋다.

엄청난 실물이 출토된 한대 화상석에 대한 치밀한 이번 연구성과는 곳곳에서 신선도교(神仙道敎)의 교리로써 화상들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서 집중적으로 다룬 실물 자료는 한대(漢代) 작품이지만, 이번 책에서 언급된 실물들만으로도 고구려 고분벽화의 대부분과 이미지가 오버랩한다. 고구려 고분벽화 예술이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세계를 구현했다는 국내 학계의 주류적인 주장들은 실상 중국 화상석 자료들을 비교할 때 당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아가 이 책을 통해 우리의 고대사 연구가 얼마나 '기본'이 부족한지를 다시금 여실히 확인하게 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앞서 그에 상응하는 동시대 중국사는 한국사의 '곁다리' 수준이 아니라, 아예 그 자체에 천착해야 하며, 나아가 사상사적으로도 도교신학, 그 원류격으로 지목될 수 있는 묵자와 주역, 나아가 그 중간 고리라고 할 수 있는 한대(漢代) 참위(讖緯) 사상에 대한 철저하고도 광범위한 고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기본들에 대한 소양도 없이 무턱대고 고구려 고분벽화가 인류를 대표하는 위대한 '한민족' 예술이라고 주장했다가는 망신당하기 십상이며, 실상 그런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나, 또 지금은 언론계 등지에서도 '나라 망신'이 부끄러워 눈감아 주고 있는 실정이나 이제 '국내용 연구'는 단절할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 고구려가 자국사임을 주장하는 중국에서 맞서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고구려가 중국과는 구별되는 문명권이었다고 소극적인 방어자체를 취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중국의 심장부를 치고 들어가 그 심장을 겨냥한 연구들을 하지 못하는가? 언제까지 한국사에 관한 논문들을 양산하는 일본학계를 먼 산 보듯 구경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일본의 학계를 경천동지케 할 일본사 연구를 하지 못하는가?

번역본이기는 하나 이번 책은 실로 많은 반성과 분발을 우리에게 촉구한다. 422쪽. 3만2천원.

http://blog.yonhapnews.co.kr/ts1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