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글들

색에 대해서 (퍼온 글)

영양대왕 2005. 5. 9. 16:47


색1-  색이란 무엇인가

 

한문으로 색 色 이라는 글자는 3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 같다. 형형색색(形形色色)이라고 쓸때는 당연히 지금우리가 말하려고 하는 색채를 의미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쓸 때는 존재하는 것은 허공과 다르지 않다 라는 의미이므로 여기서 색이란 물질계를 말한다.

주색 酒色 이라고 표현할 때는 sex를 가르킨다.

물론 우리는 여기에서 첫 번째 의미의 색채라는 의미로 색을 다룰 것이다.

  색의  3가지 성질중에는 명도, 채도, 색상이 있다. 물론 하나의 색상에는 이3가지 요소가 모두 들어있다.

  색은 또한 인간의 정신과 관련하여 3가지의 성격을 갖고 있다. 1. 과학적인 성격,  2. 심리적인 성격, 3. 상징적인 성격색은 이 3가지 요소들이 어울려 개인이나 사회에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색의 3가지 성격에도 불구하고 색채심리학자 들은 색을 무조건적으로 심리적으로만 해석하려는 편견도 가지고 있다. 아직 만3세정도의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색을 빨강, 검정, 파랑 등 눈에 잘띄는 색을 선호한다. 그리고 또한 여러색 중에서 눈에 잘띌 뿐아니라 길이가 길고 잡기에 편한 것을 선택하거나 자신의 팔에 가까운 순서대로 집기도 한다.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색을 물리적인 거리, 길이, 선명도 등 과학적이고 물리적인 입장에서 보고있는데, 이 어린이들의 그림을 보고 검정색을 사용하는 어린이는 어떻고, 보라색을 사용하는 어린이는 어떻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편파적인 것 같다.

  또한, 수많은 조사기관에서 조사한 바로는 검정색이나, 흰색, 회색 등을 가장 좋아한다고 답한 사람들은 별로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승용차나 아파트, 양복 등의 색깔은 대부분 이런 색들이니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색과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어지고있는 색은 별로 일치해 보이지도 않는다.

또한 사람들이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색이 물품의 종류나, 그때의 분위기에 따라 매우 민감하게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자신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색을 모든 부분에 적용하여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매우 의식적이고, 또한 편집광적이고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그가 특별히 무슨색을 좋아하는지 타인은 느끼지 못할정도로, 어떤색을 좋아한다는 것은 의식적인 것 같다.

  따라서 본인은 어떤 색을 개인이 선호하느냐에 따라서 그사람의 개성이 결정적인 부분은 오히려 그 사람이 긋은 선을 보고 판단하는 것 보다 덜 정확해 보인다.

  융이 주장하듯이 집단무의식이라는 것이 인간의 뇌리에 깊히 박히어 어떤 색에 대하여 동일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던지, 또는 오라소마에서 주장하듯이 색채마다 고유의 파장이 그 자신만의 차크라에 작용하여 심신에 영향을 미치고있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색에 대하여 느끼는 것은 선에 대하여 느끼는 것처럼 개인적인 차이보다는 오히려 범 인류적인 공통적인 감정이 더 많다고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선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감정을 느끼게하는 미술의 중요한 요소라면, 색 또한 모든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감정을 일으키기 때문에 선과 색이라는 것이 세계의 공통언어인 조형언어가 될 수있었을 것이다.

  본인은 이번 주제에서 색을 다룸에 있어서 이3가지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생각해 보겠다. 또한, 색채상징이나, 색채심리에 있어서 동양과 서양은 온전히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도 흔하다. 상복을 입을 때 서양에서는 검정색을 동양에서는 흰색을 입는다든지, 동양에서는 황제의 색이 노랑색이었지만 서양은 노랑색의 보색인 보라색이 황제의색이었다든지 등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대부분의 색채심리서적들이 서양인 저자들의 것이므로 서양적인 시각으로 쓰여진 것들이 많다.  본인은 동양적인 시각을 첨가시켜 균형적인 진술을 해보도록하겠다.

 그리고 선을 강의할때처럼 본인의 주관적인 의견도 포함하여 진술할 것이다. 주관적인 느낌들이란 객관성을 가지지 못한것이기 때문에 자칫 커다란 오류를 범할 우려도 있지만, 진솔한 표현들 때문에 친밀감과 공감대가 형성될 수도 있으리라 믿는다.

  색채심리의 경우도 기계론의 입장에 있는 학자들과 신지학이나 색채치료라 불리는 오라소마 등의 주장과는 매우 상반된 주장들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인 자외선이나 적외선이 인간에게 매우 많은 영향을 주듯이 다른색들도 그 고유한 파장에 의하여 인간들에게 많은 심리적 육체적 영향을 미치고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제마의 사상의학에서는 색채가 인간에게 매우 강렬한 영향을 미치고있다고 주장한다.

  본인은 색을 다룸에 있어서 많은 책을 참고로하여 서양과 동양, 본인의 생각과 참고회화작품감상들을 통하여 보다 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편파되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어보겠다.

 

흰색1-선과 완벽의 색

우리는 흰색으로 나타나는 빛속에서, 우리 자신을 영으로 이끌어가는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나, 즉 인간의 영적인 부분은 "비추어져 나오는 것" 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혼이 이런방식으로 나를 체험하고있다면, 빛과 색체에 의해 체험되는 모든 것은 지각내용을 가져야한다. 내 속의 빛과 영혼은 동일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지만 빛은 우리에게 영을 나타낸다. 흰색 또는 빛은 영의 혼적인 양상이다.1)

흰색은 모든 색중에서 가장 완벽한 색이다.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한얀 개념은 없다. 하지만 완벽한 것은 거리감을 낳는다. 응답자의 2%만이 흰색을 가장 좋아하는 색이라고 답했다.  흰색을 가장 싷어한다고 답한 사람은 남자의 2%,여자의 1%였다.

흰색은 시작의 색이다.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맨처음"빛이 있으라'라고 말했다.또한 흰색은 부활의 색이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흰색옷을 입고있다.'하얀일요일'은 부활절 뒤의 첫 번째 일요일로 카토릭교회에서는 이날 아이들에게 첫 영성체를 준다.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성체는 흰색이다. 아이들은 세레를 받을때 흰옷을 입는데 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시작한다. 무도회에 처음 데뷔하는 상류계층의 아가씨들은 하얀 이브닝드레스를 입는다. 하얀달걀도 시작의 상징이다. 세상이 달걀에서 나오T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신화이다. 부활절의 달걀도 그리스도의 부뢓을 상징한다.연말연시에는 하얀 팬캐이크를 먹는 나라도 있다. 팬캐이크는 달걀, 밀가루, 우유, 즉 하얀 재료로 만든다.

갖태어난 아이가 먹는 것도 하얀 우유나 젖이다.체스게임을 할때도 흰색이 먼저 시작한다. 바둑을 둘때는 검정색돌이 먼저시작하므로 여기서도 동서양은 반대가 된다.

흰색은 신의색이다. 제우스는 하얀 황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레다는 백조의모습으로 나타난다. 성령은 하얀 비둘기의모습으로 나타나고 그리스도는 흰양이다. 흰 외뿔소는 마리아의 처녀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동물이다. 천사들도 흰옷을 입고 하얀날개들을 달고 있다. 반면 악마는 검은 날개,대개는 박쥐날개를 달고 있다. 인도에서는 흰소를 빛의 화신으로 여기며 중국에서는 흰두루미와 흰 따오기를 불멸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새로 믿는다. 희고 큰새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행운의 사자이다. 여기서 흰 황새가 아기들을 세상에 데려온다는 믿음도 생겨났다. 2)

  우리나라에서도 백호나 흰소, 흰말, 흰사슴 등 흰색의동물이 태어나는 것은 매우 상서러운 일로 간주되었다.

카토릭의 사제들은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그리고 그리스도,마리아를 비롯한 성인들의 축일이나 기념일에 미사를 드릴 때 흰옷을 입는다. 이때 흰옷에는 금실로 수를 매우 많이 놓기 때문에 흰색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하지만 순교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일에는 빨간옷을 입는다. 빨강은 피의 상징이다. 교황은 흰옷을 입는다. 카토릭 교회의 색채규정에 따르면 교회안의 직위가 높아질수록 의복의 색은 밝아져서 일반사제는 검정을 입고 주교는 보라, 추기경은 빨강, 교황은 흰색을 입는다.  왕과 영왕도 최고의 행사에서 최고의 색인 흰색을 입는다. 왕은 제관식에 흰색을 입는다. 엘리자 베스 여왕은 매년국회가 열릴때마다 국회에서 연설을 하는데 이때는 언제난 하얀외투를 입는다. 예전에는 북방족제비가 가장 고귀한 모피였다. 북방족제비는 원래 갈색이지만 겨울이 되면 하얗게 변하고 꼬리부분만 검은색이된다. 왕의 외무에는 전통적으로 검은점이 박힌 하얀 모피칼라를 입는데 그것이 바로 북방족제비이다. 오직 왕만이 북방족제비옷을 입을 수 있었다. 미국대통령이 '화이트하우스'에사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전통적인 남성복장에서도 흰색은 최고의 색이다.  국제적인 무도회의 초대장에는 '화이트타이'라고 적혀있다. 이는 하얀 넥타이를 매라는 것이 아니라 연미복을 입으라는 뜻이다. 연미복에는 언제나 하얀 나비넥타이를 맨다. 연미복의 검정색 넥타이는 웨이터의 복장이다. 손님으로 까만넥타이를 매는경우는 흡연초대를 받았을 때 뿐이다.. '화이트 타이는'숙녀를 위한 복장규정이기도하며 긴 이브닝드레스를 입으라는 뜻이다. 매년 노벨상이 수상될때면 고전적인 행사복장의 하이라이트를 경험할 수 있다. 흰색은 절대적인 색이다. 흰색은 순수할수록 완벽하며, 다른 것이 첨가되면 그 완벽함이 떨어진다. 3) 

 '백의 민족'이라는 단어는 흰옷을 즐겨입는 민족이라는 뜻이 아니다. '용의 눈물'이나 '태조 왕건'의 드라마를 보라. 우리민족이 흰옷을 즐겨입었는가? 물론 평민들은 흰옷을 즐겨입었겠지요. 그러나 색동저고리나 분홍치마는 무엇인가? 오색찬란한 텔레비젼의 화면을 보면서 어떻게 '백의민족'이란 말이 흰옷을 즐겨입는 민족이라는 말을 생각해 내었을까? 오히려 중동지역 아랍국가들은 왕에서부터 모든 사람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얀옷을 입고다닌다. 그들이 바로 백의민족아닌가?

 텔레비젼 '왕과 비'등의 드라마에서 모든 사람들이 흰옷을 입을 때는 바로 제사를 지낼때이다. 백의민족이라는 뜻은 '제사장의 민족'이라는 뜻이다. 그 말은 우리의 조상이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님들이며, 그분들의 직계자손이며 장자로서의 제사권을 상속받은 나라라는 뜻이다.

 '하얗다', '희다'. 라는 말의 어원은 '환하다'와 마찬가지로 태양을 뜻하는 '해'이다. 우리민족뿐 아니라 지구상의 거의모든 민족은 태양을 신으로서 숭앙해왔다. 태양의 빛은 하얗다. 그래서 우리민족의 신수였던 박달나무도 어원은 '밝달나무이다. 즉 밝은 나무인 것이다. 따라서 겉껍질이 유난히 하얀 '자작나무'가 박달나무였는지 의심하는 학자들도있다. 박달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한다.

 민족의 영산도 그이름이 흰머리산인 백두산이다.

음양오행으로 흰색은 서쪽의 색이며, 가을의 신이다. 가을은 서리가 내린다. 서리가 내리므로서 모든 식물의 열매는 그 완숙함을 더하고, 모든 쭉정이와 잎새들은 시들어 죽게된다. 이른바 죽음을 몰고오는 색이다. 몸과 여름을 지나면서 확대되고 번성했던것들이 그에너지를 모두 열매속으로 집어넣은채 열매속으로 수렴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을의 기운을 '숙살지기'라고 부른다. 흰색은 인체가운데서는 폐와 대장에 관련된다.

십우도에 나타나는 하얀소는 인간모두 내부에 있는 참 자아를 의미한다.

  말레비치의 흰색위에 흰색이라든지, 미니멀리스트들은 흰색을 즐겨 사용하였다.  말레비치의 작품은 끌레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흰색은 정신이고 검정은 물질이다" 말레비치는 아마도 그의 작품을 통하여 순수하고 텅빈 완벽함을 찿으려고 했던것같다.

로버트 라이만(1930~)의 1968년에 제작한 ,클라시코>라는 작품은 흰색의 합성안료를 12장의클라시코 종이에 고르게 입혀 격자모양의 대형 사각형으로 조립한 것으로, 그 각각의 종이의 색의각도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다양한 흰색을 내도록 제작되어있다. 4)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에 대유행을 한 모노크롬은 물론 그뿌리를 서양의 미니멀아트에 두고있지만 서양과는 사뭇다르게 매우 정신적이고 동양적인 운동으로 번진 것같다.

박서보나 정창섭 등 대부분의 작가들은 주로 흰색만을 고비하여 화면의 주조를 이루었다. 그들의 닥지작업등은 한지의 물질성을 이용하여, 그결이나 또는 마티에르가 빛을 받음으로서 나타내는 그림자등을 이용하여 조형적인 작업을 하려고했는데, 이는 흰빛이주는 정신성을 최대한 이용해보려는 것이었다. 또한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선이나, 물질들이 매우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느낌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하였으나 그 마티에르등을 중시한 것에의하여 물질성의 중요성을 동시에 드러냈다. 그래서 물질과 정신의 상호보완적이고 일원론적인 철학의 뒷받침없이 물질성을 근거로한 모더니즘의 철학을 바탕으로한나머지 그들이 의도한 정신성에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 듯보인다.

제스퍼존스가 흰색의 종이를 이용하여 엠보싱처리하여 그린 성조기처럼, 그이상의 정신성을 드러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1) 루돌프 슈타이너 저/양억관,타카시오 이와오 역《색채의 본질》p.24, 물병자리, 2000,

2) 에바 헬러 저/ 문은배 감수/이영희 역《색의 유혹》p.224,예담, 2002, 참조

3)  에바 헬러 저/ 문은배 감수/이영희 역《색의 유혹》p.225,예담, 2002, 참조

4) 데이비드 바츨러 저/김융희 역《색깔이야기》p.27, 아침이슬,2002

 

흰색2-신성과 슬픔으로서의 흰색

 

"바이칼은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를 합친정도의크기로, 삼백개가 넘는 여러강들이 흘러들어 섹에서 가장깊고 많은 수량을 자랑하고있는 호수인데 , 그물이 흘러 나가는 곳은 오직하나 앙가라강뿐이다.

바이칼에게는 앙가라라는 딸이 있었다. 앙가라는 예니세이라는 청년을 사모했으나 아버지의반대에 부딫힌다. 어느날 앙가라는 아버지 모르게 예니쎄이를 찾아집을 나선다. 이를 안 아버지 바이칼은 돌을 던져 앙가라를 죽게한다. 앙가라가 흘리는 눈물은 강을 이루어 앙가라강이 되었다. 앙가라는 북극해로 흘러가면서 예니세이 강이된다.

예니세이강이 뜻하는것은무엇인가, 역사책을 보면 우리민족은 본해 그곳에 뿌리를두고있다가 동쪽으로,동쪽으로 이동해 왔다고 나와있다. 자작나무 숲을지나면 바로 바이칼에 도착한다."1)

"자작나무는 신성한 나무다. 냉대지방을 지나면 아마도 끝없이 이어지는 침엽수림들을 볼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작나무는 그 강인한 생명력으로 인하여 시베리아벌판까지 그의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는 낙엽수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쪽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망토와 정강이 받이(각반)으로, 노르웨이 사람들에게는 지붕을 이거나 바닥을 까는 재료로, 시베리아사람들에게는 가죽을 부드럽게하기위해 부두질하는데 자작나무의 껍질에 있는 기름성분을 이용했다. 또한,북방 여러민족들이 자작나무의 수피를 이용하여 대롱, 스푼, 접시와같은 조리도구를 만들어사용했으며, 운반도구나 저장용기를 만들어사용하기도했다

 

러시아에서 잎과 줄기를 목욕할때 땀을 뺴고 때를 벗기는데 사용했고 고열과 단독을 치유하는데도 사용했다. 자작나무 수액은 결핵치료제로 이용되기도 했다. 미국인디언들은 감기나 기침, 폐질환에 내수피를 달여서 먹곤했다. 북방민족은 자작나무를 신수로 숭배했다. 자작나무의 수피는 꿈의 형상을 나타내거나 씨족의 상징을 나타내는그림이나 글씨에 사용되었다. 자작나무의 수피가 유난히 흰 것은 제일바깥쪽에 위치한 나무껍질의세포가 비어있으며 겉껍질에 분포하고 있는 수많은 미세구멍들이 빛을 모든 방향으로 반사하기떄문에 흰색으로 보인다.

시베리아원시종족은 나무를 통해서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다. 자작나무를 신수로 숭배하던 북방기마민족에서유래된 천마총에서 발굴된 신라금관과 천마도 장니를 예로 들뿐아니라, 무당들이 굿을 할떄 제단가까이두는 지화를 볼 수 있다. 지화는 흰종이로 오려만든 자작나무를 뜻하는 것이다. 개마고원의사람들에게는 시신을 자작나무껍질로싸서 땅소게 파묻는 관습이있다."2)

자작나무는 군락을 이루고 사람들은 자작나무를 신성한 나무로 받든다.유난히 하얀 빛의 껍질을 가진 하얀색의자작나무는 사람들에게 경외의 대상이되는 것이었다.

일전에 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수가 '박달나무'가 아닌 자작나무일 것이라는 주장을 한적이있다.  우리민족은 백색을 숭상하는 민족이다. 그래서 민족의 영산도'백두산'이다. 물론 백색이란 단어는 태양을 의미하는 '해'로부터 파생되었다고했다.  그러나 백색을 숭상하는 마음은 우리민족이 바이칼호근처인 눈덮힌 광야로부터 출발되었다는 기록들을 상기해보면 온천지를 뒤엎는 눈의색이 바로 하얀색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그 눈덮힌 대지위에 하얀색으로 빛나는 나무들은 신성 그 자체의 현현으로 보였을 것이다. 우리민족의 성수라고 일컬어지는 박달나무는 사실 자작나무과에 속하나 자작나무에비하여 그 껍질이 많이 울퉁불퉁벗겨지는 성격이 있으므로 꺠끗한 흰색이라는 느낌이 덜하다. 그리고 자작나무에 비하여 북방한계선이 높지 못하다. 그래서 바이칼호수근처에서 살았던 우리선조들이 실제로 성수로 부른 것은 '박달나무'가 아니라 바로 '자작나무'였을 가능성이 높다.

  시베리아 벌판에 빛을 비추고 따뜻함을 더해주는 태양의 빛깔이 하얀색이었고, 흰눈의 빛이그렇고 흰자작나무가 그렇고 하늘빛이 하얀색이었다면 온천지에 하얀색의 충만함이 항상 있었을 것이다. 온천지를 가득매운 흰색은 우리선조들에게 그 정신성과 영적인 심오감을 던지게 하였고 백색에대한 산성함과 경외로움을 더하게 하였을 것이다.

  고대우리민족에게는 하늘과 해는 거의동의어였다. 하늘과 해는 동시에 하나의거대한 영혼 그자체였다. 그 하늘이나 태양은 천신으로서 인간의모든 영적인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을 상징하는 것이기도했다. 우리조상이만든 고려청자의 그 비취색은 바로 가을하늘의 색을 빛어내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질적으로 눈으로보이는 하늘의색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가 오면서 사람들은 물질적 현실에서의 하늘이 아닌 보다더 영적인 차원 정신적인 차원에서의 하늘을 그리고자했다.  그 정신적인 하늘은 아무색도없는 하얀 백색이었다. 우리의조상들이 시베리아벌판 바이칼호수에서 바라본 그 하늘은 바로 백색의 은은한 하늘이었던 것이다. 도공는 그 백색의 하늘을 제현했다. 그것이 백자이다. 따라서 청자에서 백자로의 변화는 도자기기술의 쇠퇴가 아니라, 물질적차원의 하늘에서 고도의 정신적 차원의 하늘색으로 승화된 것이다.

 하얀색은 정신성을 상징한다. 동양화의 비백이나 여백은 중국화나 일본화의 경우보다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의 작품에 강조되어나타난다. 우리 동양화를 감상할 때 항상 아무것도칠하여지지 않은 텅비공간이야말로 그림의 주인공이 아닌가하고 생각이든적이 많다. 우리민족은 그만큼 정신성을 중요시하는 민족이었다.

 아무런 붓의흔적도 남기지 않고 아무행위도 가해지지 않은 텅빈 백색의공간 그 공간들은 바로 '禪의 공간이며,무작위의 공간이다. 회화에서의 백색은 바로 무작위를 생각나게한다.

 

나의작품중 하나이다.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는공간 그 공간은 화면의가장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생에 있어서도 보여지고 감지될 수 있는부분보다는 아무것도 보여질 수 없는 공간이야말로 가장중요한 공간일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중요한 영성이나 고도의정신성은 아마도 감지돌 수가 없는 것일줄도모른다.  그러나 그영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그옜날 백자를 만들던 우리 선조들의 노력과무엇이 다를까?

아래의그림은 위트릴로의 '두유마을의교회'이다. 이그림은 내가 이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중 하나이다. 이그림은 나를 수 없이 울 게 만들었다. 나는 이그림을 볼 때마다 그림에서 눈을 땔 수가 없으며 몇시간을 눈물을 쏟아내며 울지않을 수 없었다. 이그림은 백색이 얼마나 슬프고 아름다운색인지 말해준다.이그림에는 지나는 행인이나 나무 한그루 서있지 않다. 그냥호젓하게 의연하게 때묻은 흰벽의 교회가 고독스럽게 서있다. 이교회는 바로 위트릴로 자신이었으며, 그의 회색빛하늘의 커다랗고 거친붓터치는 그의 슬픈분노였으며, 그가 그린 섬세한 회백색의 벽은 그의 처절한고도 아름다운 그의 인생에대한 관조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분노가 그의 슬픔이 승화하여 이토록 아름답고 숨막히는 장면을 연출해내고 있다. 이토록 외로울 수가 있을까? 이토록 슬플 수가 있을까? 이토록 슬픔을 승화시켜 아름답게 만들수있을까? 이토록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을까? 이토록 진실된 그림도 있을까? 그의 흰색은 아마도 우리조선 도기공들이 빛어내려했던 그하늘의 흰색과 어쩜그렇게도 닮아있을까?

훗날 위트릴로를 치료했던 모리스 메세게는 병 그자체보다도 정신적으로 격렬한 화가의 생활을 보고 놀란다."내 눈에는 비장하고 야윈 그리스도가 생의 고뇌를 호소하고있는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위트릴로 는 프랑스 화가. 파리 출생. 사생아로 태어나 1891년 에스파냐인 미겔 위트릴로의 양자로 입적되어 위트릴로라는 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당시 르노아르, 드가의 모델로 활동하다가 나중에 화가가 된 수잔 발라동이다. 그때그녀의 나이는16살 또는18살이었다고한다.양복점에다니기도하고써어커스의 댄서가 되기도하며 카바레를 출입하다가 화가들의 모델이 되었다. 독자들은 르노와르의 그림에 자주등장하는 엣된 미인을 기억할 것인데 그녀가 바로 수잔 발라동이다. 그녀는 나중에 화가로 성공하지만 교양없고 방종하며, 노상 위트릴로를 잊고 그녀 자신의본능에 몸을 맡기기도 하였다. 따라서 위트릴로는 고독에서 오는 어머니를 찾는 마음이 더 강했을 것이다.

위트릴로는 이목구비가 섬세하고 ,말수가 적고신경질적인 아이였으나, 때로는 격렬하고 감정에 쫒겨서 난폭한짓도했다. 나쁜 패거리와 어울려 10세에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그 후 직장에서도 한곳에 오래 근무하지 못하였으며, 1899년에는 양아버지의 무지스의 권유로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마침내 알콜중독으로 1901년 입원 가료를 받아야만 하였다. 병원에서 대중요법으로 그에게 과해진 회화제작이 계기가 되어,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를 술로부터 떼어놓기 위해서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데생과 회화수업을 시키게 되고 이로서 위트릴로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작품은 자기 주변의 풍경화에 그쳤으며, 그림엽서에서 베낀 것도 많았다. 초기에는 몽마니 등 파리 교외의 풍경을 그리고(Montmany시절, 1901~07), 이어 인상파적인 작풍을 단기간 시도하였으나(인상파시절, 1907∼08), 가장 충실한 위트릴로 독자의 조형세계(造形世界)를 구축한 것은 30세까지의 한 시기였다(흰 시절, 1908∼12). 음주와 난행과 싸우면서 제작한 이 시절의 작품은, 오래된 파리의 거리묘사에 흰색을 많이 사용하여 미묘한 해조(諧調)를 통하여 우수에 찬 시정(詩情)을 발휘하였다.

위트릴로와 모딜리아니의 몽마르트신화는 유명한데, 위트릴로를 찿으려면 시궁창 도랑을 따라가다보면 어디엔가 처박혀 있을거라는 말이 이었다. 동네의 사람들은 위트릴로가 길에서 풍경을 그리고 있으면 그의 이젤을 걷어차곤했기 때문에 그는 방안에서 자신의 동네를 찍은 엽서를 보고 그리는 경우도 많았다그의그림을 몇작품을 바꾸어야 술한병을 살수있었다. 1903년부터 1905년까지 그린 위트릴로의 그림은 어두운 색조와 두터운 질감을 띠고 있다. 그는 '나도 시슬리처럼 그릴수있을까?"하고 되뇌곤했다. 1908년경부터 백색시기가 시작되는데 이 시기의 작품은 석고와 집착제를 혼합하여 사용하는데 회색과 장미색으로 반사된 설경, 크림빛을 띤 흰색벽 등을 그린다.  그의 백색시기는 1915년경까지 지속되며 그가 늘 헤매고 다니는 몽마르트의 구석구석을 그렸으며 엘리포르나 옥타브 미로와 같은 미술 평론가로부터 극찬을 받는다. 그는 후에 당신이 파리를 떠난다면 기념으로무엇을 가지고 가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 "건물의 회벽 한조각을 가지고 가겠다"고 답했다.   위트리로가 거리를 그리는 것은 생명을 잇는 것이다.그가 그리는 건물은 화려한 것이 아니라 구석이고 골목이다. 또한 교회와 병원이다.그는 그곳에서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서민의 역사와 슬픔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백색시대>로서, 흰 건물에 열중하여 재료에 회반죽을 섞어 벽의 감촉을 표현하였다. 집집마다 엷은 때가 묻은 희끄무레한 벽, 어둠침침한 파장(罷場)의 거리, 인적이 없는 거리, 쇠살문이 닫혀 있는 호텔, 교회 등 시정이 풍부한 그림을 그렸다. 1907∼14년의 이 <백색시대>야말로 모리스 위트릴로의 창조력이 절정에 이른 시대이다. 음주벽은 여전하였으나 걸작품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그려졌다.

미주

1)윤후명<<꽃>>p.161, 문학동네,2003, 서울, 참조

2)전영우 저<<숲과 녹색문화>>pp.154-157,수문출판사, 2002, 서울, 참조

 

흰색3-여성,순수의 흰색

검정색과 대비하여 흰색은 항상 선한색이었다. 물론 그들의 살갗이 흰 백인들의 생각이었으며, 흑인들은 반대의 생각을 했을수도 있다. 흰색은 서양에서 흔히 여자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색이다.  이탈리아의 '비안카', 프랑스의 블랑쉬, 블랑슈트, 캘트족의 '제네비브' '제니퍼'도있다. '캔디'도 로마의 '칸디나'에서 나온 이름이다.  영어의 '페넬라', 아일렌드의 '피놀라'도 '하얀여자'라는 뜻이다. '제스민' '릴리''카밀라','마가리타','데이지'등 이름도 여자의 이름으로 인기가 있다. 도날드덕의 하얀색오리 여자친구의 이름도 '데이지덕'이다.

중국의 색채상징에서 흰색은 여성적인 음에 속하고, 점성술에서도 흰색은 여성의 상징인 달에 속하지만, 태양이 금색이듯이 달에도 흰색보다 은색이 잘 어울리므로 대부분의 점성술사들은 흰색을 은색으로 대치하고 있다.

중세에는 사람을 4가지 기질로 구별했는데 흰색은 흥분하지 않는 조용한 기질의색이다.

위생이 요구되는 색은 주로 흰색이다. 사람들은 주로 하얀속옷을 입는다. 요리사, 미용사, 정육점직원, 의사, 간호사 등은 모두 흰옷을 입는다. 병원의 분위기에서 흰색은 부정적인 여상을 일으킨다. 중환자는 당연히 하얀씨트가 깔린 침대를 연상시킨다. 병원의 분위기를 더욱 아늑하게 꾸미기 위해서는 병실을 밝은 노랑이나 부드러운 분홍으로 칠한다.

한때 정신병원은 '화이트하우스'로 불렸다. 온통 하얀벽으로 칠해진 공간은 매우 삭막하다.

희생의 재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동물은 늘 희다. 자신을 희생한 예수도 '흰양'으로 표현되고 죄를 짊어진 염소는 검정색이다. 하얀 백합은 평화와 순수, 순결의 상징이다. 하얀 백합은 마리아의 무염시대를 상징해서'마돈나의 백합'이라고 한다. 옛날사람들은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귀를 통해 임신하게 되었다고 믿었다. 섹스가 죄라면 흰색은 순결이다.

하얀상복은 광택이없는 흰색이다. 하얀 상복은 자아표현을 포기한 색이다. 하얀 상복은 종교적인 의미에서 환생을 뜻한다. 유럽에서도 예전에는 하얀상복을 많이 입었으며, 여자들이 커다란 흰천으로 머리와 상체를 가리는 지역도 있었다. 여왕과 왕비는 하얀상복을 입는데, 그들은 특별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입는 검은 상복을 입지 않는다. 마리아도 슬픔에 잠긴 성모로 그려질때는 하얀망토를 두르고 있다.  예로부터 죽은자에게 하얀수의를 입히는 것은 부활을 위해서이다. 죽은자를 위한 꽃이나 양초도 흰 것을 쓴다. '하얀여인'이란 귀신을 말한다. 들판을 혜메는 '하얀여인'은 임신의 영이다. 은밀히 사랑을 나누던 남녀가 하얀여인을 만나면'축복'을 받고 임신을 한다고 전해진다.

프랑스대혁명이 끝나자 1830까지 나폴레옹제국의 유행이 시작되었다. 여자들은 소매도 없고 허리선도 없는 지극히 단순한 슈미즈 원피스를 입었다. 귀족을 특징짓는 옛 유행은 부를 과시하는데 초점을 두었지만 시민들은 정신적인 위대함을 과시하고자 했다. 그것도 외적인 가치를 포기해야 내적인 가치가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20세기에 유행한 청바지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는다는 진보적인 의식의 표현이었다. 19세기의 하얀원피스는 문화의 진실된 가치를 대변하고자하는 사회계층의 소속감의 표현이었다.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이'제국스타일'을 권장했고,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은 '신고전주의'로 이에 답했다. "이제 여자들은 거의 모두가 흰옷을 입고 남자들은 검은옷을 입었다"검은 복장은 이미오래전부터 특별한 축제일에 입었지만 흰색은 새로운 현상이었다. 하얀숙녀복은 전유럽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하얀숙녀복은 고대그리스를 연상시켜서 신고전주의의 이상이 되었다. 당시의 시민계급은 고대그리스를 이상향으로 여겼다. 괴테는 당시의 시대감각을'영혼은 그리이스의 땅을 찿아헤멘다'라고 표현하였다. 학술적 예술적공적에 따라 사람을 판단했던 정치가들보다는 철학자들이 고대 그리스를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이상화했다. 가난한 시민계급출신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로 등극한 것도 이 이상에 부합했다.

건축가들은 고대 그리스의 부활을 시도하여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충실히 모방했다. 모든 것은 흰색이었다. 신고전주의가 생각했던 고대그리스는 흰옷을 입은 철학자들이 하얀대리석 기둥 사이를 거닐며 토론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의복의 장식이라고는 주름뿐이었고 건축물의 장식도 부조뿐이었다. 흰색의 소박함이 곧 고귀함을 뜻했다.

하얀고대에 열광했던 괴테는'교양있는 사람들은 색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괴테와 그와 동시대인들은 화려한 색일수록 야만적인 취향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치했다. '자연인, 원시민족, 어린아이들은 최고의 에너지를 가지고있으며 색에 끌린다."

교양있는 그리스인의 취향에 관한 괴태의 견해는 잘못된 것이었다. 괴테의 《색체론》이 출간될즈음, 고전연구가는 그리스의 사원과 조각이 원래는 채색되어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사원의 벽에는 안팎으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었으며 기둥에 장식된 나뭇잎도 녹색으로 칠해져있었다. 대리석 형상도 원래는 화려한 색상을 입고있었고 자연스런 피부색이 칠해져있었으며 눈에는 유리조각이 붙어있었다. 괴테와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완벽하게 보인 것은 색이다 떨어져나간 폐어의 모습이었다. 1817년 영국의 고전연구가 윌리암 겔은 고대그리스의 색체에 관해"어떠한 민족도 강렬한색에 대해 그처럼 열정적이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괴테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고전풍의 숙녀복유행은 색은 포기했지만 다른 매력을 지니고있었다. 과감한 여자들은 그리스의 여신들처럼 거의 알몸이드러날 정도로 속이 훤히 들어다보이는 소재의 옷을 입었고 장단지까지 가죽끈으로 묶은 샌달을 신었다. 스타킹은 신지 않았지만 발가락에 금장식을 했다. 유행에 따르려면 원피스와 신, 장신구를 합쳐서 250g을 넘지 않아야했다. 그리스화병형태의 작은 핸드백도 앙증맞은 액서서리였다. 여신의 옷은 서늘한 기후에는 맞지 않아서 많은 여자들이 폐렴으로 죽어갔고 '모슬린병'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당시 유행하던 드레스는 특히 얇은 아마포인 모슬린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스풍의 원피스는 너무 불편해서 오랫동안 유행하지 못했지만 흰색은 수십년동안 가장 우아한 색으로 남았다. 흰색은 옷이 더렵혀질 수 있는 활동을 모두 해줄 몸종을 전제로했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 흰색이 크게 유행하면서 하얀웨딩드레스가 생겨났다.흰색의 정치적의미는 '항복'이다. 흰색이 깃발이 될때는 '절대왕정'을 상징한다.

'하얀죽음'은 동사凍死를 뜻한다.

에스키모인들의 눈을가르키는 단어는 마흔가지가 넘는다고한다. 검정과 흰색은 기술디자이너들이 가장좋아하는 색이다. 검정과 흰색은 유채색이 아니므로 모든 관심을 기능적으로 돌려준다. 기술은 색이 없어도 작동하므로 기술자에게 색은 장식일 뿐이다.

흰색은 텅빈과 동의어이다. '하얀밤'은 '잠못이루는 밤'이고, 알붐'은 원래 하얗고 스스로기억과 사진으로 채워가야할 텅빈 책이다.

하얀식품은 귀하게보인다. 마가린'은 '진주'를 뜻하는그리스어에서 나온 이름이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기전에 바탕칠을 하는데 이때 흰석고나 석회를 쓴다. 석고는 흰돌을 갈아만든 분말이다. 분필과 파스텔도 석회가아니라 석고로 만든다.

화가들이 사용하는 가장 유명한 흰색인 '납의흰색-징크화이트'은 납을 원재료로만드는데 독성이있었지만 당시에는 산재보호규정을 하지않아 노동자들의몸이 마비되고 심지어 목숨을잃기까지 했다.1930년경에 '납의 흰색'보다 불투명한 '티탄흰색'이 나왔다. '티탄흰색'은 검은 티타늄광석에서 제조된 것으로 독성이 없다.

화이트칼라는 사무직직원의 신분을 상징하는것이었다. 합성섬유는 흰색보다 더 흰색을 내지만 원래는 회색이어서 희게 만들려면 염색을 해야만 했다. 누렇게 변색된 합성섬유를 표백할 수가 없는데 표백제가 흰 색소를 분해하기 때문이다. 합성섬유용 특수세제에는 흰색을 빛나게 만드는 형광물질이 들어있다.

  흰색을 더욱 희게보이는데는 미세한 분량의 파랑색이 첨가되면 좋다. 실제로 어떤 화가는 표백제를 만들 때 미량의 파란색색소를 첨가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결혼식 때 신부는 자기의 옷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골라 결혼식 때 입었다. 1600년 앙리4세와 결혼했던 마리드 메디치처럼 흰옷을 입고 결혼하는 부유한 사람도 있었다. 그옷은 황금수로 치장한 엄청난 화려한 옷이었지만 웨딩드레스는 아니었다.1840년 영국의 빅토리아여왕은 하얀드레스에 면사포를 써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있던 영국의 레이스산업을 후원하려고 했던 그녀의 소망은 성취되었고 신부의 면사포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1853년 황제 나폴레옹3세가 결혼했을 때 신부 웨젠도 하얀 베일을 썼다.

1808년 처음으로 직조기가 나와 직물의 값이 매우 저렴해졌다. 1830년부터는 재봉틀이 생겼고, 많은 여자들은 하루만이라도 여왕이 되고싶은 꿈을 하얀 웨딩드레스로 이룰수있었다.

신부는 결혼식장에서 가장 화려해야만 한다. 그래서 신부보다 눈에 띄는 복장으로 결혼식에 참가해서는 안된다. 결혼식장의 하객으로서 흰원피스나 모자는 신부행세한다는 인상을 주기쉬우므로 피해야한다.1)

오라소마에서는 흰색을 '크리어'라고 표현한다. 즉 투명한색이다. 오라소마에서는 모든 색을 빛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흰색이 첨가되면 그 색의 빛이 흐려지지만  해석은 정반대로 그색의 특성이 강화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당연히 크리어는 투명하고 색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빛이 섞여진것이다. 즉 클리어는 모든 빛깔의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전부 포함되어있는 것이다. 클리어는 '얼어붙은 빛',우리들이 자기자신을 알아채는 거울, 또는 왜곡된 거울과도 같다. 이 클리어의 플러스 성질이 나타날 경우에는 모든 측면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이상주의면서 인도주의이며 연민심이 있으며 인간애가 넘친다. 자선사업과 인도주의 운동에도 나서기 때문에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이해가 많고 부드럽고 순수한 사람이다.

정직하고 좋은 의미에서 단순하기 때문에 항상 자기반성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지금까지 마이너스로 움직이던 측면을 개선하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민감함과 부드러움을 함께갖고있어서 모든 것을 전부 통합한 뒤에 더 도움이 되는 새로운 것을 획득할 수가 있다.

이 클리어의 마이너스 성질이 표현되면 그떄그때에 따라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 이야기를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또 그때그때에 따라서 마이너스 측면이 나타나기때문에 균형을 잘 잡아줄 필요가 있다. 공상에 빠지고 비현실적인면도 있어서 그럴때는 레드의 힘을 빌려땅에 발을 접지시켜줄 필요가 있다. 모든 빛의 특성을 가진 반면에 개성적이거나 자기를 표현하지 못하고 생각없이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측면이 있다. 과거에 깊은 고통을 받은적이 있으며, 그 경험이 분노로 바뀌거나 모순에 찬 행동으로 옮겨질때는 블루가 도움이 된다.1)

 

말레비치<흰색위에흰색>1918

 

카시미르 말레비치(1878-1935)는 일반적인 빛 즉 '색=빛'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순수에너지를 탐구했다. 빛은 색과 동일하고 색은 빛과 동일하다. 빛을 추구하는 것은 빛의 원천으로 진리추구가 목적이고, 진리추구가 그러듯이 그것은 무한히 지속될 수 있고, 보잘것없는 것에 이를 수도 있다. 그의 빛에 대한 개념은 일반적인 빛(자연의 빛)과 이성의 빛(진실됨, 진리)라고 부르는 것을 포함한다. 무지개의 관찰은 그로 하여금 어디에 진실한 실체가 있는지 자문하게 했다. 그것은 그로하여금 '빛과 어둠은 우리가 특별한 프리즘(물방울? 뉴턴의 프리즘?)의 도움으로 알 수 있는 그 무엇의 양면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했다.  그 프리즘을 통해 우리는 같은 그 무엇이 수천의 다른 양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말레비치에 의하면 ,모든 예술적 흐름은 색이 다르게 흡수된 프리즘이다. 우리는 프리즘을 통해 작품속에 표현된 그대로 실체의 본질을 관찰할 수 있다.

'회화는 색의 구성밖의 다른 것이 아니다' 그 발견은 시각적 혼합덕택으로 마티에르에서 벗어나 채색된 구성에만 의존할 수있게 되었다.'회화는 점점 공간속으로 빠져들고 동적인 상태에 이르며 무채색이 된다.'하지만 채색된 마티에르로서 회화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레비치는 주장한다. 회화는 무채색의 비객관적인 에너지가 되기위해 모든색의 차이를 잃게되는 새로운 위상에 이르게 된다. 절대주의적 백색 정사각형은 '이 움직임의 한계점'으로 구성한다. 색=빛(그에의하면 신인상파들에 의해 발견된 새로운 진리)대신에 말레비치는 회화의주제로 흰빛자체를 제시한다. 지고의 순수한 하모니의 상징이며,'기지와 감수성으로 가득찬 사막'인 흰빛은 '아무것도 아닌 것'의 표현이고 상징이기 때문에 더욱더 빛과 진리의 본질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가 색을 배척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배척을 통해 화가는 색의 원천인 빛에너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말레비치의 백색 정사각형과 함께 우리는 색=빛의 추구와 회화에서 그것을 표현하려는 욕망을 본다.2)`

미니멀리즘 하면 이상스럽게도 흰색이 연상된다. 미니멀리스트들의 작품이 흰색으로남아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채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니멀 작품은 흰색을 연상시킨다.콘래드는 하얀 것들의 수많은 사례들을 가지고 일반화되고 통념화 된 흰색을 해체하고있다면 멜빌은 그 반대 방향에서 하나의거대한 하얀 존재로 시작하여 자신이 편안하게 생각하는 흰색의 관념까지도 흔들어 놀 수 있다

"하얀색이 많은 자연물에 그 자체의 고유한 덕을 나누어 자연물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해준다"흰색의 갖아 깊은 내부관념 속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다. 그것은 우리를 놀라게하는 피의 빨강색보다 더 영혼을 공포로 몰고 간다. 흰색의 표면적인 통일성속에는 어떤 불안감이 있다. 덕목의 뒷편에는 공포가 숨겨져있으며, 순수함의 밑바탕에는 죽음이 자리잡고 있다. 소중한 것으로 여겨졌던 모든 믿음과 체계, 모든 희망과 욕구, 모든 익숙한 입장, 모든 환영등 모든 것이 무화된다. 하얀색의 가장 끔찍한 사례들가운데 하나가 '우유빛 안개;'이다. 그것은 밤보다 어둡다. 맬벨에게있어서 색의 진실은 기껏해야 '미묘한 눈속임'이다.

'분노의 행위와 정념의 피같은 오점들을 정제해낸 이러한 하얀빛은 인간에게 비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들과 반대로 인간안에 조용하게 자리잡고있는 신성을 드러낸다."

앙리미쇼는 절대적인 흰색, 모든 하얌을 넘어서는 흰색, 흰색이 되어가고 있는 흰색, 흰색이 아닌 것을 모조리 근절해버리고 배제해버리면서 타협하지 않는 흰색, 그 하얌 때문에 비명지르면서 미쳐버린, 격노한 흰색, 광신적이고 격렬하며 불가사의한 희생자, 인정사정없고 흉악하고 끔직한 전기자극같은 흰색, 흰색의 작열속에있는 흰색, 흰색의 신 아니ㅡ 신이아니라 울부짖는 원숭이(내세포들이 날아가 버리지않기를!) 흰색의.오랜시간에 걸쳐 흰색이 된다는 것은 나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되는것일거라는 느낌이 든다.3)

백인들은 그들의 피부색에따라 순백색이 이상적인 종족상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에서는 조물주의 입으로부터 생겨나온 브라만은 흰색의 종족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에서는 흰색이 서쪽을 상징하는 색이었으나 고대 아일랜드에서는 남쪽을 상징했고, 아메리카인디언은 동쪽에 있는 산은 흰색이며 낮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중국인들은 토성이 희고 둥글게 보이면 국상과 한발이 닥쳐올 것이라고 믿었다.4)

 

위의그림은 나의작품인데 건축공사장의 휘장이 하얀천으로 둘러쳐져있다. 이 하얀색의천으로인하여 건축물은 가볍고 무엇보다도 날렵하고 깨끗하며 순수하게보인다.

1997년 여름이 끝날무렵, 연이어 두여성의 죽는 뉴스가 있었다. 영국의 다이에너 황태자비와 인도의 마더테레사. 이두사람의 공통된 인상은 하얀색이었다. 그중에서도 죽기 3개월전에 뉴욕에 있는 마더의 시설을 방문한 흰색양장을 입은 다이애너의 모습, 마더는 언제나 파란선이들어간 흰색순복 차림이었다. 흰색은 '순수'청결'을 연상시키며 흰색드레스는 처녀성을 의미한다. 수녀들의 머리에 쓴 천역시 처녀성이라는 기호이며, 속세의 욕망을 모두버리고 치열한 활동에 매진하는 마더를 상징하는 의미가 포함되어있다. 흰색은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라는 말처럼 감정이나 의식이 표백된 것 같은 비일상적인 상태와 더불어 일컬어진다. 방기와 신생이 양극의 심리상태에 있을 때 사람은 흰색을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뉴욕에서 손을 맞잡고있던 마더와 다이애너의 영상은 죽음을 애도하는 뉴스에서 크게 취급되었다.

30대가 되도록 글씨를 모르는 채 캘커타의 빈민가에 들어가 봉사활동에 인생을 바친 마더테레사. 이후 그녀는 자신의 가족과는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5)
 


성서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빛이 있으라!"라는 구절이 있다. 흰색은 반짝이는 빛이요, 절대적인 긍정을 대변하는 색상이다. 흰색은 어떤 사건의 해명, 도피, 항복의 개념을 연상캐한다. 올림피아제식 역시 고대 고전주의사고를 증명한다. 흰옷을 입은 남녀선수들이(당시 실제 여자선수는 성녀였다) 이 어두운 세계를 통과해서 올림픽의 횟불을 들고 경기장에서 화해와 전쟁갈등해소를 기원하는 빛을 점화한다.6)

 

1) 에바헬러 저/문은배 감수/이명희 역《색의 유혹》pp.241-257, 예담, 2002, 서울

1) 노다사찌코/손성애 역《오라소마 칼라힐링레슨》pp.43-44, 라세, 2000, 서울

2) 길라발라스 저/하택수 역《현대미술과 색채》pp169-175, 궁리출판, 2002, 서울

3) 데이비드 바츨러 저/김융희 역《색깔이야기》pp.27-40, 아침이슬, 2002, 서울, 참조

4) 파버.비렌 저/김화중 역《색채심리》PP.24-32, 동국출판사, 2003, 서울

5) 스에나가 타미오 저/박필임역《색채심리》pp.111-117, 예경, 2001, 서울

6) 하랄드 브램 /김복희 역《색깔의 힘》pp.120-125, 유로서적, 2003, 서울

 

빨강1-불과 피의 색

빨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색의 이름이다. '색'과 빨강'이 같은 단어도 드물지않다. 스페인어 '콜로라도'는 빨강인 동시에 색이다. 언어사용빈도조사 대상에 오른 백개의 단어가운데 색상이름으로는 오로지 붉은색이 유일하게 베스트목록 20번째 안에 올랐다.  최근들어 빨강에 대한 선호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은 빨강을 광고에서 과도하게 사용하고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말인 '빨갛다'라는 단어는 아마 생긴지 별로 오래된 단어는 아닐 것이다. '빨갛다'라는 말 대신에 '붉다'라고 쓰였을 것이다. 붉다의 어원은 당연히 '불'일 것이다.1) 불꽃을 생각하면 언제나 빨강이 생각난다. 실제의 불의 색깔이 노랑이나 파랑인데도 불구하고.

불은 추위와 어둠의 권력을 추방한다. 불꽃은 언제나 하늘을 향하듯이 불은 신의형상이자 신자체이다.  불은 시베리아의 벌판을 사는 민족에게는 온기로 채워줄 매우 귀중한 생명일 뿐아니라, 무시무시한 공포인 밤의 어둠을 몰아내어주는 '선한 신'과도 같았을 것이고 맹수를 몰아내주는 역할도 해주었고, 음식을 익혀먹거나 연장을 만들때나 필수적인 것이었다. 불은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최근에까지 모든 가정에서는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대대로 물려주었으며 불은 귀신을 쫒고 화복을 가져다주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바로 불의색인 빨강색은 부를 가져다주는 원천으로서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신성한 기운으로서 매우 중요한 색깔이었을 것이다.

온기가 그리운 한대지방에서는 빨강은 언제나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러시아에서는 빨강은 '아름다운, 멋진, 좋은, 가치있는'등의 의미를 갖는다. '빨간좌석'은 성상을 모시는 영광의 자리 였다. '빨간말'은 재기가 넘치는 말이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은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기전부터 '아름다운 광장'이다. 러시아에서 '빨간색'은 '아름다운'이라는 말과 동일하게 쓰인다.

 태양의열기가 생명을 위협하는곳에서는 빨강을 악마의색으로 여긴다. 이집트에서의 빨강은 사막의 불타는 열기만큼이나 나쁜것이었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의 좋은 토양은 검정색인데 비하여 사막의 쓸모없는 토양은 붉은색이었다.

원시사회의 사냥꾼은 들소를 잡아 동굴로 돌아오고 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춤을 춘다. 불 앞에서 춤추는 여인의 모습은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불과 사랑의 감정은 붉다고 인식한다. 독일에는 붉은색은 사랑이다. 붉은색은 피이다. 붉은색은 불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딸에게는 볼, 입술, 손톱을 붉게 화장하는 유행이 있었는데 이들이 몸을 치장할 때 사용했던 붉은색은 아주 값비싼 색상이었다. 붉은색을 만들기위해서 수천개의조개를 모아야만했다. 조개속에서 추출되는 붉은색 원료는 작은 성호르몬선에서 생겨난다. 

전쟁에서 붉은 깃발은 관찰자를 자극시킨다. 점유획득의 상징으로서의 붉은색은 많은 무기와 깃발에 표시되었다. 색채연구가의 통계에의하면 97개의국가에서 77개의 기가 붉은기라고 한다. 이밖에21개의깃발에서는 심지어 바탕이 붉은색이라고한다. 붉은색은 관객과 경기자간의 보이지않는 연대감을 만들어준다.  월드컵때의 ;붉은악마'의 복장은 매우 적절했다. 중국의 연극무대에서는 붉은 얼굴을 한남자는 성스러운 인물로 묘사된다. 심하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눈에띄게 붉은색을 선호한다. 흡연에 대한 자극은 무기력을 저지하려는 방어태세로 본다.

색채를 지닌 물건들은 장식품이나 장신구로서 팔리는 것이아니라, 그 색채가 지닌 신성한 의미 때문이라는 점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부적은 우리가 알고있는 종이위에 쓴 글이나 그림이 아니고 보석이나 금속을 사용했었는데, 빨강색 돌은 병을 치료하는 효염이 있었고, 그것을 지닌 사람에게는 화재와 벼락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주홍색 천은 여러세기 동안 출혈을 멎게 하는데 사용해 왔다.11세기경 아비스나는 환자에게 빨간옷을 입히고, 빨간시트로 환자를 덮었다. 에드워드2세의 시의는 천연두를 퇴치하기위해 환자가 쓰는 방에 있는 모든 물건을 빨간색으로 바꾸라고했다. 영국에서는 빨간 산호가 풍치를 막아준다고 생각되었고, 포루투갈에서는 두통을 가라앉혀준다고 생각되었다. 중국사람들은 장수를 누리기위해 빨간루비를 가지고다녔다. 어린 아이들이 땋은 머리칼에 빨간 댕기를 매어주는것도 같은 이유에서 였다.2)

 사랑에서 증오까지 빨강은 좋은것이든 나쁜것이든 모든 종류의 열정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심장을 그릴 때 빨강색으로 그린다. 심장은 피를 펌푸질하는 기관이고 생명력을 상징한다. 피에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믿는 문화권이 많다. 예전에는 모든 종교가 피의 희생을 흔히 바쳤다. 신을 즐겁게 하기위해서 동물의 피를 바쳤으며 특히 어린 자녀들의 피는 가장 가치있는 희생의 제물이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그의 외동아들 이삭을 하느님에게 바치기위해 장작에 불을 붙인다. 유대교의 성전인 '토라'에는 피를 마시는 행위를 사형으로 금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빨간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이다. 옛날에는 힘쎈 동물의피로 어린아이들을 목욕시켰다. 혼인식을 올리는 신랑신부도 힘이쎈 동물의 피를 뒤집어썼다. 동물의 힘을 사람에게 옮기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신선한피는 기적적인 효혐이 있다고 믿어서 사형에 처해진 범죄자의 피는 인기가 높은 약재가되었다. 녹색이 식물의 생명을 나타내는 색이라면 빨강은 동물의 생명을 나타내는 색이다.

고대에서는 선명한 빨강은 '심장'을 상징하고 어두운 빨강은 '배'를 상징한다.

중국인에게 빨강은 행운의색이다. 서양의크리스마스에는 산타할아버지가 빨강옷을 입느다. 성 니콜라우스 당시의 주교복은 빨강색이었다. 중국여자는 결혼할 때 빨강옷을 입느다. 인도의혼례복도 빨강이다. 빨강은 아름다움과 부유함의신인 라크쉬니의성스러운 색이다.  고대로마의신부는 불타는듯한 빨강베일을 썼다. 곤충도 빨강이돌먀?? 행운의곤충으로 무당벌레가 그렇다.

사람들은 악령이나 시샘하는자의 사악한 손길로부터 막아주는색이 빨강이라고믿었다. 부적은 흔히 빨간글씨로 쓰는데 이는 닭의 피로서 쓴다고한다. 원래닭이란 새벽을 알리는 동물로서 고대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악마인 어둠을 물러나가게 하는 영험한 동물이었다.또한 닭울음은 사나운맹수인 호랑이를 물러가게 함으로써 사주에서는 호랑이띠와 닭띠를 원진이라고 하여 매우 사이가 나쁜 것으로 표현한다. 빨간침대보, 빨간커튼은 출산의 침대가 악에서 보호한다고 믿었다.

옛날에는 빨간포대기나 빨간리본을 단 포대기에 갓난아이를 쌋다. 1930년경까지만해도 갓난아이나 어린이들은 남녀를 구분하지않고 짧은 원피스를 입었는데 그 허리부분에는 대개 빨간리본을 맺는다. 오늘날에도 빨간산호를 깍아만든 액막이가 있다. 동화속의 '빨간모자'도 사악한 늑대로부터 보호해주는 힘을 갖고 있다.

빨강은 원래 첫 번째 차크라인 성기를 중심으로한 하복부를 나타내는 색깔이다. 이러한 빨강의 오오라를 많이 지니고있는 사람은 에너지와 활력이 넘치고 이 빛의 플러스성질이 표현될 경우 , 그사람은 행동력이 있고 외향적이며 용감하고 자립적의지를 가진 사람이 된다. 또 포용력이 있어서 다른사람들을 크게 감싸주는 능력이 있으며 뛰어난 리더쉽을 발휘한다.

개성적이고 정열적이기 때문에 예술분야에도 활약이기대 된다.  빨강은 우리신체에 흐르는 피, 긍정적인 빛, 생명의 빛 그리고 기본적인 감정의빛으로 상징된다. 빨강에 속한 사람은 땅에 발을 굳건하게 내딛은 생활을 하게되는데 사회에 확실하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빛깔의 마이너스 성질이 표현되었을 경우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되기 때문에 컨트롤을 잃어버리고 정열이 분노로바뀔가능성이있다. 그결과 이기적으로되거나 고집불통에 홀로를 자초한다. 돈이나 물질적인 측면에 강하게 나오면 돈과 물질에대한 요구가 강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강해지기 때문에 불안하며 성에대한 욕구가 강해져 폭력으로 치닫는경우도 있다. 빨간빛은 우리들의미저골 부분에있는 베이스차크라로 받아들이며 우선 맥박이올라가고 호흡이 깊어지며 의식이고양된다. 빨강빛에는 무언가를 창조하기위한 용기와 강한의지에너지를 보급하는 힘이있기 때문에 성적욕구도 일으킨다.

회화에서의 색들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줄수도있다. 빨간색곁에 초록색을 놓을 경우 , 색의혼합에서 그러하듯 빨간갈색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두 색조가 진동하게된다.  이빨간색곁에 크롬의노란색을 놓으면 세가지색은 서로를 아름답게 만들며 초록색의농도를 증가시킨다.

'이나무를 어떻게 생가하느냐?''정말 초록색이며 ? 초록색을,네 파레트에서 가장아름다운 초록색을 칠하라. 이 그림자는 ? 파란색?가능하면 더욱 파란색으로 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여기서 중요한 것은 명확히 색의 결합이 아니라 색의내제적인 특성인 것이다. 화폭이 자연보다 작기 때문에 똑같이 표현하기위해서는 자연의초록색보다 더 짙은 초록색을 써야한다. 이것이 거짓이만드는 진실이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면 당신의그림은 빛과 격렬함,크기에서 실제사물의 느낌을주기때문에 진정한 그림으로 남을 것이다. 위는  고갱이 그의제자 모리스드니에게 남긴말이다.

고갱은 색은 음악적이라고 생각하며 감동의주제에의하여 생기는 것이아니라 선과 색체에의하여 일어나다고 생각했다. 고갱은 붉은 색으로 인물과 과일들을 그리곤 하였는데 이는 대자연의 파란색과 녹색들과 어울려 대단한 음악적인 생동감을 자아내기 위한 것이었다.상상력이 태양보다 더 세다는 것을 보여준 고갱은 태양을 재현하기위하여 색체의 호화로운 하모니를 창조할 줄알았다.모리스드니에의하면 고갱의 모든그림은 '태양의효과를 표현한 것'이다.3)

 

고갱의 붉은색은 땅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해주고 붉은색피부를 가진사람들은 원시적인 건강성을 느끼게해주면 열정과 동시에 색쉬얼리티도 느끼게해준다. 고갱은 자신의그림 <천사와 싸우는 야곱>에대해 반고호에게 이렇게 쓰고있다.배경의 싸움은 서약을 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상상력 속에 존재할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자연)과 배경 속에서의 싸움(비자연적이고 균형이 잡히지않은 )사이에 균형이 있다. 회화는 꿈의 결실이다. 자연과 맞서는 그림을 만드는 것은 상상력이다. '심오하고 신비스러운 꿈의 언어' 인 색은 상상적 충동을 자극하고,무한함과 신비로움에 새로운 문을 연다. 그는, 이 모든 것은 설명할 수 없는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같이 덧붙였다. 색은'그것이 우리에게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때문에,우리는 그 색을 논리적으로 불가사의하게 사용할수밖에없다. 그것은 뎃생을 위해서가 아니라(들라크로와에 대한 암시),색과 색의본질,색의내적이며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한 힘으로부터 생기는 음악적 감정을 주기위해서이다. 결국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의사공와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구성, 즉 색의 배열,색들 사이의관계이다.

 

마티스만큼 붉은색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조자룡 헌칼다루듯 대담무쌍하게 사용한 화가는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배경에는 붉은색을 꺼려하는 금기를 깨고 마티스는 온통붉은 방의그림들은 다수 그렸다. 그의붉은 방은 생명의 찬가로 넘쳐나는듯하며 붉은색이 품어내는 생명의 율동은 아라베스크 식물문양들과 더불어 음악을 만들어낸다.마티스가 파란색의 하모니를 빨간색의 하모니로 변화시킨<빨간방>을 본 사람은 누구든지'이것은 또다른그림이다'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마티스는,이러한 관객은 그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또다른 그림이 아니다. 단지 색들의 힘과 그힘들 사이의균형만 있을뿐이다. 그것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이라할지라도 색들을 나란히 놓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색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야한다. 중요한 것은 색들사이의 관계이다. 방안의 책상과 벽은 사물로서의 책상과 벽을 이미 넘어서서 하나의평면위에 장식들로서 화려한 생명을 뽐낸다.

 

이작품은 캔버스에 붓으로 칠을한 것이나, 나중에 작품들 중에는 빨강색의 색지를 바르고 그위에 드로잉한 작업들도보인다. 마티스의 빨강은 우리를 흥분의도가니로 몰고가는열정적인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내부에서 솟아나는 생명감을 환희로서 분출하는 듯 보인다. 그가 녹색이나 청색 검정색등 강렬한 원색들을 무차별적으로 거리낌없이 썼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의작품들을 자세히보면 수많은 채도가 낮고, 3차색인 더러운색들이 눈에띤다. 그의작품을 자세히 보면 오히려 순색보다는 중간색 또는 3차색이 더많은 종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그러한 색들을 순색에 대비시켜 순색을 더욱빛나게 하는데 사용해다. 마티스는 영혼의 색을 표현하고 싶었다.광채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빛,코르시카지방에서 그는 모든 것이 빛나고 ,모든 것이 색을 띠며,모든거싱 빛인 ,지중해를 알게되었다.

그는 마치 마네가 흰색에서 어떠한 중간토운도 없이 과감하게 검정색으로 진행시켰듯이 빨강에서 과감하게 녹색으로 진행시켰다. 그리고 어두운 붉은색옆에 밝은 회색빛의녹색을 채도대비시켰다. 색상대비와 동시에 채도대비와 명도대비 이러한 대비에의하여 그의색들은 폭발적으로 환희의함성을 지르며 화면속에서 튀어나왔다.

1)'붉다'가 '빨갛다'로 변하는 현상은 경음화현상이다. 오라버니-오빠, 아버지-아빠 등의 변천에서 오빠, 아빠등의단어는 극히 최근에야 생긴 것이다. 경상도에서는 아직도 '쌀'을 '살'이라고 발음하고있으므로 이러한 경음화현상은 최근에 생긴일로 보인다. 최근에 팬츠가 '빤스'로 소주가 '쐬주'로 변해가는 상황을 보면 현대인들의감성이 무디어짐에따라 좀더 자극적인 어감의단어를 찾아내는게 아닌가 생각이든다.

2) 파버.비렌 저/김화중 역《색채심리》pp.28-62, 동국출판, 2003, 서울

3) 길라발라스 저/한택수 역《현대미술과 색체》pp204-214, 궁리,2002, 서울

 

빨강2-권력과 남성의색 빨강

빨강은 남성적인 색이다. 괴테는 빨강을 색의여왕이 아니라, 색의왕이라고말했다. 빨강은 그리스도의색이며 파랑은 마리아의색이다. 중국에서도 빨강은 남성의색이다. 여성의색은 흰색과 검정색이다. 이집트의 프레스코 벽화를 보면 ,여자의피부는 노랗고 남자의피부는 빨갛다. 어느 언어권에나 빨강을 뜻하는 남자이름이있다. 라틴어이름'루프스',영구과 미국에는 '로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royal'그리고 왕의 빨강과 유사성이 눈에띤다. 로빈훗의 '로빈'도 빨강보석인 '루비'에서 나왔다. '로빈슨'은 로빈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아담'은 빨간흙으로 빚은사람'이라는 뜻이다. 게르만의 'hroth'는 '전쟁의 명예'를 뜻하며 빨강과유사하다. '루프레히트','로베르토', '로거', '로란트', '루;디거','루돌프'등 많은 남성의 이름은 빨강의 어원을 이룬다. 하지만 빨강의 의미를 가진 여자이름은 거의없다.'루빈스타인'은 빨강의 다른 개념인 '루비'와 '돌'을 의미하는 슈타인이 결합된 말이다.

빨강을 남성적인 색이라고 생각하는사람은 거의없는 것은 어린아이들의 옷을 입힐 때 1930년대에 여자아이의옷을 분홍색으로 입혔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여성의 빨강이있는데 어두운빨강으로 월경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에도 여성들의 내의는 60-70년대에는 주로 붉은색의 어두운 빨강이나 핑크를 입었다.

직물이 매우 비쌋던 시대에는 천이많이 필요할수록 젊쟎게 여겼다. '천을 휘감고있다'는 표현은 '부유하다'는 의미였다. 20세기까지만해도 농부와 노동자, 하급 사무직의 아내는 여름옷 두벌과 겨울옷 두벌이 고작이었다. 어떤 옷이건 수십년간입었다. 낡아서 헤진 옷으로는 가운이나 앞치마를 만들었다.

빛나는 색은 부자가 입고 수수한 색은 가난한자가 입었다. 빨강직물의 역사는 사치의 역사이다.가장 고귀한 빨강은 퍼플레드이다.추기경들의 색은 별도로 추기경의 퍼플이라고 불렀다. 퍼플레드는 권력의 상징이었는데 진짜 퍼플레드는 자수정과 같은 보라색이었다. 이색은 고대에서 가장비싼색으로 비잔틴제국 황제직영 염색공장만이 그 제조법을 알고있었다. 비잔틴제국이 멸망하면서 제조비밀도 사라졌다. 그때부터 가장값진직물은 빨강으로 염색하게 되었다.  빨강염료는 케르메스라는 벌레의 암컷에서 얻었고 염료를 캐르메스라고 캐르메스. 10kg을 염색하려면 1kg의 케르메스가 필용하였고, 1kg의 케르메스를 얻으려면 14만 마리의 케르메스벌레가 필요했다. 카를대제는 황제의궁전과 그의 왕좌가마련된 성당을 빨강색으로 칠하게했다. 교회위에 군림하는 황제의 권력을 그보다 더 분명하게 과시할 수는 없었다. 빨강은 황제의 색이었다. 빨강은 강력한 힘과 권력을 부여한다는 미신이 있어서 지배귀족들은 신하들에게 빨강을 금지시켰다.귀족만이 빨강구두굽을 신을수 있었다.

 

귀족이 경제력을 상실하자 빨강망토의 특권도 사라졌다. 1498년복식규정은 학자에게도 빨강망토를 허용했다. 르네상스시대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빨강은 가장 아름다운 의복의색이었다.빨강침대는 너무나 비싼것이어서 그림의 배경으로 선택되었다. 녹색의 옷은 서민이 입을 수 있는 옷이었는데 빨강색의 침대는 서민에게도 허용이 되었었다 얀반 에이크1434년 '아르놀피니의 결혼식'의배경은 빨강침대와 빨강커튼이 있는 방이다. 빨강색의 침대는 여성의출산시에 악귀를 물리쳐준다는 속신이있었고, 빨강색은 일반적으로 나쁜기운으로부터 보호해줌과 동시에 부귀를 가져다 준다는 속성 때문에 침대보만큼은  귀족이 아니어도 빨강색으로 허용이 되어있었다.

신부는 임신을 하고 있는데 이당시에는 혼전 임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왼손을 맞잡고 있는 것은  재산상속의 권한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당시에는 결혼이란 주로 공동사업의 의미가 강했다. 부인은 빛나는 초록의 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귀족신분이 아닌사람이 입을 수 있는 가장 값비싼 옷이었다. 그리고 옷의길이가 땅을 덮고 있는데 이는 그가 최고의부자였음을 나타낸다. 결혼식에는 증인이 필요하며 이 그림은 결혼의증거물로서 그려졌다. 이결혼의증인은 화가로서 중앙의 둥근 거울속에 아주작게 화가의모습이 들어있다. 개는 결혼의 충실성을 증거하는 동물로서 그려졌다.

 

18세기중반에도 부유한 사람들은 혼례식에 빨강옷을 입었고 신랑도 빨강바지를 입었다. 오늘날 오페라하우스나 대극장, 왕실호텔앞에는 빨강양탄자'가 깔려있다.

케르메스에 버금가는 빨간염료는 꼭두서니의뿌리로 만들었다. 왼쪽의 사진은 꼭두서니이다.

최상급의 꼭두서니가 16세기에 이르러 네델란드에서 재배에 성공하여 꼭두서니의 값은 많이 내렸다. 지위가 높은 네델란드인은 빨간 비단양복을 입었고, 농부도 축제일에는 빨간바지와 재킷을 입었다. 여자들에게는 빨간속치마가 살짝 보이는 검은 드레스가 인기였다.  영화'바람과함꼐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의 어린 흑인하녀는 '멜라니'가 아이를 낳을 때 '레트'에게서 선물로 받은 빨간속치마를 입고서 매우 즐거워한다.'스칼렛'과 '레트'는 모두 빨강을 느끼게한한다.맥시코에서 새로운 빨강이 건너왔다. 고니켈이라는 선인장에서 기생하는 벌레로부터 빨강염료를 만들었다. 19세기중반 아닐린염료가 화학적으로 발견되자 꼭두서니가 제일먼저 자취를 감춰다. 독일의 합성염료에 대항하여 프랑스는 천연염료를 지키려는 싸움이 벌어졌고 프랑스군대는 '꼭두서니로 염색한 빨강바지'를 도입했다.

빨강은 전쟁의 색이다. 전쟁의 신 마르스에게는 피의 색,빨강이 봉헌된다. 3월을 뜻하는 'march'도 마르스에서 유래한다. 마르스에속하는 또다른 별자리는 전갈자리이다. 양자리와 전갈자리에 주어진 '빨간특성'은 공격성과 분노처럼 부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적극성과  용기처럼 긍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빨강은 힘을 준다. 그래서 전사들은 빨간옷을 입고 몸에도 빨간칠을 한다. 버킹검궁전앞에있는 경비대부터 교황청을 지키는 스위스 용병부대에 이르기까지 예전에는 모든제복이 빨간색이었다. 양귀비꽃은 양귀비가 핀 들판에 흘린 군인의피를 상징한다.빨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사람은 자신과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 모든 측량기구에서 계기바늘이 빨간부분을 가르키면 뭔가 이상이 있다는 것이다.

코카콜라처럼 감각을 일깨워주는 색에는 빨강이 자주띤다. 빨강은 이성보다는 정열을 요구하는 모든 종류의적극성을 가르킨다. 권투선수의 장갑도 전통적으로 빨강이다.빨강은 늘 앞으로 튀어나오려고하기 때문에 빨강을 배경색으로 사용한 그림은 심도가 없다. 빨강은 그래서 매우 물질적으로 보인다.

파랑이나 노랑이 전혀 섞이지않은 빨강색은'마젠타'라고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푸른기가 돌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핑크라고부르고 일종의 보라로 취급하고 있다.  우리눈에 순수하게 빨강으로 보이는 것은 노랑이 약간썪인 마젠타이다. 아마 본인의 생각으로는 차이니스레드와 비슷한 생각이든다. 우리나라말 붉은색은 한문의 붉을주와 붉을홍으로 표현된것에 따르면 아마도 차이니스레드인 마젠타에 노랑이 섞인색일 것이다. 햇빛에 가장 강하고 값도 비싼 것이 인공합성된 카드뮴 빨강이다.빨강은 광고의 색이다. 1950년경까지만해도 사람들이 가장좋아하는 색이 빨강이었다. 빨강을 보면 황소가 흥분하여 날뛴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다. 황소는 움직이는 것을 공격하기 때문에 빨간천을 쓴 이유는 빨간천위에 뭇은 황소의핏자국이 잘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빨강은 보지 않을때에도 영향을 미친다. 시각장애인들이 흰칠된 방에서보다 빨강칠된 방에서 따뜻한 느낌을 받는다는 주장도 있다.어떤 식물학자는 토마토를 심을 때 땅위에 빨강색의 비닐커버를 깔고 심었다. 그런데 다른색의커버를 한 곳보다 빨강색의 커버를 한곳에서의 토마토가 매우 성장이 빠르고 큰 과일들을 열었다. 식물은 태양의에너지를 이용하여 광합성작용을 하는데 아마도 빨강색은 적외선쪽에 가까우므로 다른색빛보다 열적인 에너지가 풍부하였으리라고생각된다. 빨강은 빨강색이외의 색은 모두 흡수하고 빨강색만 반사하므로 이 반사된 빨강색을 흡수한 토마토는 더욱더 많은 광합성을 할수있지 않았나 추론한다.

 

위의 그림은 나의 학창시절의작품이다. 빨강색은 때때로 전혀 흥분을 일으키지않는 차분한 색이다. 주전자 뚜껑이나, 의자, 스프레이등은 모두 빨강색을 이용한 제품들이다.이 상품들은 1983년 서울의 단면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당시의 대표적인 상품들이다. 이 상품의 색들을 보면서 그것이 매우 고급스럽다거나 또는 열정이나 피, 이데올로기를 느껴지지지는 않을 것이다.  항상움직이는 모빌을 만든아랙산더 콜더는 모든 것을 빨간색을 칠하고싶을 정도로 빨강을 좋아한다. 경주용자동차 페라리는 모두 빨간색이다.

빨강색은 이처럼 소품에 쓰이면 매우 새롭고 진취적이면서도 신섬한느낌을 갖게한다. 일본인들은 특히 발강색의 이러한 앙증맞음에 주목하였다. 그래서 밥통과 오토바이 볼펜에 이르기까지 한때 빨강을 유행시켰고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빨강색은 조금만 명도가 떨어져도, 조금만 채도가 떨어져도 그 열정이 감소한다. 일본의 이러한 빨강색은 이그림이 그려진 1983년 당시에 전세계의 생필품의 색채감각을 주도하였다. 그만큼 일본의 색채감각은 모더니즘시대의 색채감각과일치되는 면이 많았다.

 

뭉크의 절규는 매우 강한 인상이 남는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다리위에서 울부짖고 있는 인물은 한번보면 잊혀지지않는다. 흐느적거리는 것 같은 자세는 마치 사람의 혼 그 자체인 것 같다. 저 혼은 무엇을 부르짖고있는 것일까?뭉크자신은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두명의 친구와 길을 걷고있었다. ...일몰을 보고있었다..... 하늘이 갑자기 피처럼 빨갛게 바뀌었다. 나는 그 자리에 발걸음을 멈춘채 다리난간에 기대었다.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다. ... 검푸른 피오르드와 도시위에는 피와 혀같은 노을이 물들어있었다. ...친구들은 계속걸었고,나는 남았다. 공포에 떨면서... 그리고, 나는 풍경을 뚫어져라고 응시하면서 큰외침을 들은 것이다."

그렇게 뭉크가 느낀 절규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뭉크는 또, 다른곳에서 "병과 광기와 죽음은 나의요람으로부터 떠돌았고 ,그 이후 생애에 걸쳐서 나를 괴롭히는 검은 천사가 되었다."고 말하고있다.

죽음의 슬픔과 공포,무엇보다 육신의 사랑을 죽음에 의해 빼앗긴 기억, 더욱이 그것을 극복해 살려고 할때에 넘치는 생의에너지,그것의 전체가 빨강색이 되어 그림속의하늘에 울려퍼지고 있다. 마치 궁극의 감정이 분출할 때 빨강이 파멸의색이라고 말해주는듯하다.특히 고대문명의 동굴의 벽화들이 온통 빨강물감으로그려지고, 죽은사람을 매장한 성역에 빨강이 많이 쓰여진이유는 무엇일까?불의색. 피의색인 빨강.결국 생명의상징인 빨강과 죽음의공포를 초월하려고한 고대인들의 간절한 기도가 연관된 것은 아닐까?1)

각주

*이번  선과색이라는 주제의 강의에서 색부분은 상당부분  에바헬러 저/ 문은배 감수/ 이영희 역<<색의 유혹>>,에서 인용합니다. 이책에 대한 인용부분을 별도로 밝히지 않음으 양해바랍니다.

1) 스에나가 타미오 저/박필임 역《색채심리》pp.24-36, 예경, 2001, 서울

 

빨강-섹스의 색

빨강-보라-분홍은 섹쉬얼리티의 전형적인 색조이다. 부드러운 분홍은 사랑에 속하지만 사랑이 섹스와 결합할수록 보라빛이 강해진다. 빨강-보라, 빨강-분홍색은 배색의 색으로서 인기가 없었다. 1970년경에 유행하던 팝아트시대만은 예외였다. 빨강은 그래서 매우 물질적으로 보인다.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빨강색을 선택한 경우에 성격의 유형은 충동적이고, 강건하며, 성적(性的)이고, 자기 생각으로 옳고 그름을 재빨리 말해 버린다. 순색 빨강을 선호하는 유형의 두드러진 특징은 감정의 기복이 심해 자신들의 괴로움 때문에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비난하는 것이다. 이 유형은 아마 조울증이나 정신병적 경향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를 통제하는 기능을 신장시킬 필요가 있다. 순색이 아닌 빨강 계열의 색을 선호하는 유형은 온순하고 소심한 사람들이며, 아마 그 색이 자신들에게 부족한 용감한 성격을 의미하기 때문에 선택하였을 것이다. 이들은 빨강의 용기를 가진 소원성취, 승화, 숨겨진 욕망을 갖고 있다. 빨강을 싫어하는 경우는 꽤 흔한데 어느 면에서 좌절하고, 패배 당하고, 실현되지 못한 욕망 때문에 괴로워하고 노여워하는 사람이다.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이루지 못해 정신적으로 동요되고, 필시 병들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색채심리학에 의하면 포인트를 주는 정도의 빨간색은 신경을 흥분시켜 호감을 높이는 효과를 주지만, 빨간색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게 되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불안감과 공포심을 초래하게 된다. 선홍색은 남성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는 선홍색에서 나오는 파장이 남성 호르몬을 분비하는 뇌하수체를 자극하기때문인데, 선홍색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불안하게 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입술에만 살짝 포인트를 주는게 효과적이다!

연지나 곤지 립스틱은 전통적으로 선홍색으로 칠했다. 다른 모든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옷을 입고 다닌다. 모든 암컷들은 그들이 배란준비가 끝나면 즉, 섹스할 준비가 되어있으면 암내를 풍기어 숫컷을 유인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물의 암컷 성기주변은 선홍색으로 변한다. 이러한 싸인으로 인하여 숫컷들은 그 암컷에게 몰리고 구애를 시작한다. 그런데 만약, 인간들도 동물과 똑같이 옷을 벗고다니며 매월 배란주기때마다 또는 심리적으로 달아 올랐을 때마다, 음부에서 암내를 풍기고 선홍빛으로 치장을 한다면 아마 사무실이나, 거리나 할것없이 그야말로 난리판이 벌어질 것이다. 서로 여성을 차지하기위한 난투극이 벌어질것이고 경쟁에서 진자들의 질투와 경쟁심은 사회를 매우 혼란스럽게 가져갈 것이다.

인간 여성은 이러한 싸인들을 보낼 수 없기 때문에 사실은 저 여성이 나에게 성적으로 흥분되어있는지 또는 성적인 준비가 되어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흔히 이러한 싸인들은 여성의 얼굴에 대신 나타난다. 즉 뺨과 입술이 붉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엤날부터 결혼식날짜를 정하는 것은 신부쪽집에서 항상 결정해왔다. 생리일을 피하고, 배란일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얼굴에 연지와 곤지를 바르고 립스틱을 바르는 것은 성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음을 표식하는 것이다. 여성의 성기와 입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섹스할 때 입을벌리지 않는 여자는 없을 것이다. 성적으로 흥분하면 음부에 액체가 고이듯이 입속에 침이 고이고 입술이 축축하게 젖는다.

오늘날 거의 모든 여성들은 얼굴에 화장을 하고 특히나 립스틱은 대개의 경우 바른다. 이는 언제든지 항상 쎅스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뜻한다.

빨강에 범죄를 떠올리는 검정과 데카당스한 보라가 섞이면 부도덕한 느낌이난다. 빨강은 전형적인 창녀의 색이다. "빨강색옷을 많이 입지마라, 사람들이 너를 노리개로 알까 겁난다."신약"에 등장하는 창녀촌의 어머니는 온통 빨강옷을 입고 있다. 평범한 보통시민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평범에 대한 도덕과 예의가 생겨났으며'눈에 띄지않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라는 생각이 나타났다. 그런 다음부터는 눈에띄는 색깔을 부도덕하게 생각했다.

빨강머리에 대한 멸시는 오래된 것이었다. 빨강머리들은 항상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해야만 했다. 지금도 빨강머리의 사람은 섹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자신의 섹시함을 과시하기위해서인지 빨강색으로 머리를 염색하는 여성들이 늘어만 간다.

 

여성들의 잠옷이 대부분 분홍이거나 또는 하얀색 또는 검정색이다. 그리고 섹스할 때 켜놓는 불은 항상 붉은색 등이다.  홍등가라는 말은 창녀촌을 이야기한다. 창녀촌에는 흰옷을 입은 창녀들이 붉은 조명아래 서있다. 그래서 그들의 피부와 옷은 모두 분홍빛 핑크빛으로 보인다. 핑크빛은 섹스를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붉은색은 심장을 자극하여 피를 성기에 모으게하고 혈액을 빨리 순환시키며, 흰색은 폐를 자극하여 숨을 크게 쉬게한다. 검정색은 신장을 자극하여 질액을 비롯한 액체들을 생산하고 내보내게 한다. 흔히들 눈이 항상 촉촉하게 젖어있으며 입술이 항상 젖어있는 여성은 성적인 욕구가 매우 강하다고 생각된다. 더군다나 붉은 색으로 물든 입술이 촉촉하게 빛나는 모습이란 뭇남성들을 녹여낼 것이다. 이것을 관상에서는 수기라고하는데 인체의 물을 생산하는 신장이 매우 발달되어있음을 뜻한다.

빨강과 흰색이 병치되면 분홍색일때보다도 훨씬 더 강렬한 섹쉬얼리티를 느끼게한다.

붉은색은 매우 섹시하게느껴지는데 섹스란 가장 강렬한 삶에 충동이 되기때문일 것이다.

빨강색은 지구상의 어떠한 색보다 섹시하다.  섹시함은 야성적이고 분출할 것 같은 흥분을 나탄낸다. 빨강색과 녹색은 서로 보색이지만 병치되면 서로를 빛나게한다. 약간어두운 빨강색옆에 날카로운 선으로 그어진 아주 밝은 노랑색은 그리고 연두색은 빨강색을 발광하는색으로 만든다.

 

현대의 미술은 섹쉬얼리티를 빼놓고는 말할수없다. 섹스는 21세기 주민들의 가장 중요한 테마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빨강색일지라도 주변의 어떤색과 어울려서 또는 어떠한 터치로 칠해져야 섹시함을 더해줄 수 있는지는 화가의 역량에 따른문제이다. 화가는 바로 그 색체와 형태를 연구하는 사람이며 그의 감정과 사상을 형과색을 통해서 표현해야만 하는사람이다.

그래서 이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선, 가장섹시한 입술, 가장섹시한 눈, 가장 섹시한 손, 가장섹시한 색을 구사할 수만 있다면 화가로서 무엇을 더 바랄것인가?

파랑1- 안정과 이념의 색

파랑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남자의 46% 여자의 44%가 파랑을 가장좋아하는 색이라고 대답했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남자가 1%, 여자의2%에 불과했다. 파랑을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보수적 경향, 성취, 헌신, 신중함, 내적인 성향을 나타난다.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과 돈을 버는 법을 아는 사람, 인생에 있어서 정당한 교분을 맺고 무엇이든 충동적으로 하는 일이 드문 사람이다. 이들은 성적인 충동이 강하지만 이를 조심스럽게 잘 조절한다. 이들은 보통 다른 파란색 애호가들이 있는 이웃에 살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반정부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만, 혹시 짙은 파랑을 좋아하는 사람은 극단적인 반정부주의자이다. 합리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종종 그들 자신과 자신의 생활을 모범적이라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신중하고, 확고하고, 종종 존경할만 하며, 일반적으로 이러한 덕목을 의식하고 있다. 또한 보색으로서 파랑을 좋아하는 유형은 파랑의 평온함을 갈구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파랑은 사랑과 인내로 가득한 성모마리아의 색이며, 어머니, 보호자의 색이다. 열정적인 이태리나 스페인 사람들도 그들의 빨간색 기질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파란색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온화한 생활에 대한 내적인 욕망을 고백한다. 그들은 이러한 생활을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성취해 보려고 애써 왔던 유형이다. 이 빛깔의 플러스 성질이 표현될 경우, 평화적이며 온화한 면이 강조된다. 깊은 관용과 자비심을 가지고 대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다. 또 무슨일에나 양심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자아를 드러내지 않고 공정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큰 신용과 신뢰를 얻고 그래서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능력이 뛰어나며 특히 일대일 커무니케이선에서는 굉장히 좋은 상황이 유지된다. 누구에게도 편견과 고정관념을 안갖고있기 때문에 부드럽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또 블루에 속하는 사람은 분석적이고 합리적이 생각을 할 수 있으며 이해력이 있어 금방 말귀를 알아먹는 사람이다. 블루에 속한 사람과 접하고있으면 마치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고있거나 보호받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성질이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고 봉사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이 빛깔의 마이너스 측면이 강조될 때는 타인과 의사소통이 안돼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 마음속에 늘 허무감이 있고 항상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으며 반대로 고독과 외로움으로 인한 나머지 타인을 지나치게 간섭한다. 자기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도 블루를 많이 고르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기적인 사람들이 주로 선택하는 색이라는 견해도 있다. 아버지나 권위가 있는 사람에 대해 두터운 벽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과거에 아버지와의 부정적인 관계나 사건을 현재까지도 끌고다니며 자기 자신속에 있는 남성적 측면에 난관을 갖고 있다. 이것을 극복하기위해 보색인 오랜지를 이용하면 좋다. 육체적으로는 목과 갑상선에 해당된다.1) 파란빛과 보라빛에는 차갑고 전자기적이며 수축적인 성질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두가지 빛은 염증이 생겨나거나 신경성 질환에 걸린 모든 기관에 대해 진정작용이 있으므로 좌골신경통, 폐출혈, 뇌척수막염, 신경성 두통, 신경과민, 일사병 등의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것이다. 또 파란빛과 흰빛은 류마치스, 신경쇠약, 탈모증 및 뇌진탕의 치료에 특히 효과가 있다고 했다. 파란빛은 동맥을 수축하여 혈압을 상승시킨다. 즉 파란빛은 혈액의 강장재이며 방부제인 동시에 피부질환이나 류마치스 및 온갖 종류의 염증에도 효과가있다는 것이다.

나는 빨강빛의 오라소마액을 아랫도리부분인 제1차크라에 바른적이있는데(각 색깔은 그와 상응하는 차크라에 바르므로 빨강빛은 원래 1차크라인 성기부분에 바른다) 허벅지에 원래 있었던 피부병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빨강빛이 피부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체험하게되었다. 내가 직접 사용해본 바로는 오라소마의 빛은 매우 강렬하여 노랑색의 경우 제3차크라인 태양총차크라에 갖다대었을 때 위장의 활동이 급격히 시작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파랑을 싫어하는 유형은 반란, 범죄, 패배감, 자기보다 노력을 덜했을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의 성취에 대한 분노 등을 알리는 신호이다. 다른 사람이 성공한 것을 분개하며, 그들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보상은 적으면서 고되게 노력한 것에 대해 염증을 느낄 것이다.

로얄블루라고 부르는 보다 빛나는 파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높은 레벨의 영성을 나타내며 치유와 투시, 투청, 텔레파시 등 초능력과 관계가 있어 이 빛깔에 속한 사람 가운데는 본인은 잘몰라도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많다. 이 빛깔의 플러스면이 강조되면 깊은 집중력, 깊은 명상에서 평화를 찾아내는 능력이 나타난다. 실제 사회에서도 논리적으로 인생을 깊이 보며 고귀하고 때묻지 않았으며 성실하다. 상황을 꾀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매사에 객관적으로 접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적확한 판단아래 결단을 내릴 수 있다. 나아가 이 유형은 여성성과 초승달의 상징이기도하다. 우리들이 정신적인 면과 밀접하게 이어져있기  때문에 균형이 깨지면 상당히 깊은 정신적 손상을 입는다. 이 유형의 마이너스 성질이 표현될때는 깊은 우울증으로 고통받거나 지나치게 내성적이 된다. 자기 표현이 힘들어져 다른사람과 교재하는 것을 피하고 고독감과 분리된 상태를 느끼게 되며 극단적으로는 우울해져서 자기불신에 빠지거나 아니면 자기 이외의 것에 완전히 무관심해지거나 또는 정반대로 편집광적인 경향을 보인다. 나아가 매사를 극단적으로 이상화시키는 경향을 갖고있어서 이상대로 안되었을 때는 심한 낙담을 하게된다. 이럴 때 보색인 골드를 사용하면 좋다. 자존심과 자신감을 되찾고 태양같은 빛을 가져 올 수가 있다. 신체적으로는 눈, 귀, 코, 이마부분을 주의해야한다.2)

파랑은 남녀가 즐겨입는 옷색이다. 그러나 최근의 자료에 의하면 매우 심각한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 비쥬얼 프로그램 중에 사진을 합성하기 쉬운 프로그램이 있는 모양이다. 이프로그램에서는 디지털카메라로 인물을 찍을 때 뒷배경을 파랑으로 선택하여 놓고 찍으면 나중에 편집할 때 뒷배경를 모두 없애고 자기가 원하는 풍경의 그림을 뒷배경으로 쉽게 넣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이프로그램이 있다는 말만 들었지, 사용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뒷배경을 파랑으로 한 이유는 사람들이 입는 의복중에서 파랑색이 가장 적다는 것이다.  한때, 청바지와 청자킷이 유행할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파란색 옷을 입었는데 비하여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암튼 사람들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색과 가장즐겨입는 옷 색깔은 거의 정반대가 되는 모양이다. 한때 소형차든 사치스러운 차도  파랑색이 가장 인기있는 차였는지 독일의 경우에만 그런지는 몰라도, 국내에서는 파란색을 칠한 승용차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10여년 전에 아반떼 초기 생산때 파란색의 로얄불루 색의 승용차가 시판된 적이 있었지만 수요가 없으므로 곧바로 단종되었다. 색에 대한 선호도 조사는 현실과 매우 다른점이 있어서 그 신빙성이 의심된다.

 

파란색의꽃인 수레국화-예로부터 파란색꽃의 꽃말은 신뢰였다.

파랑은 장기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색으로 단순한 열정이 아니라, 상호간의 이해를 중요한 미덕으로 삼는다. 파랑은 호감, 조화 , 우정, 신뢰의 색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다. 이들 감정은 오랜세월이 지나야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대개는 오랜 세월을 거쳐 생겨난다. 또 언제나 상호성을 토대로 하나. 대부분의 사람이 파랑을 이렇듯 '색깔없는' 감정과 연관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색을 가장 훌륭한 특성에 전이시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빨강이나 검정 또는 다른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이들 감정과 관련해서는 파랑은 하늘이다. 그래서 파랑은 신성한색, 영원한 색이다. 지속되기를 바라는 모든 것, 영원히 계속되어야할 모든 것에 파랑을 결부시키는 것은 늘 우리곁에 있는 하늘 때문이다.

"파란색은 인간존재를 포함한 전체성개념에 일치하는 색으로서 인간에게 내적인 평안함을 주는 색상이다. 그래서 파란색을 흔히 낭만주의의 색상이라고한다. 노발리스는 일명 《파란꽃》이라는 그의 소설《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에서 시, 종교, 철학을 '낭만주의의 색상'이라고 전시대를 비유하여 '파란꽃'의 상징으로 연결시켰다.노발리스의 주인공 하인리히는 꿈속에서 '파란꽃'을 보았고, 이것이 체험의 실마리였다는 것을 곧바로 알게되었다.

"파란색은 잔잔한 바다와 같은 특유한 미의 이미지를 지닌다. 파란색이 진해질수록 더욱더 인간을 무한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그 무한 속에서 순결을 동경케한다. 파란색이 검은 빛을 발할수록 비인간적인 비통한 음향효과를 배가 시킨다. 그것은 영원한 무구와 같이 끝도없고 있을 수 없는 진지한 상황에 처하게 한다."(바실리 칸딘스키)"파란색은 집요한 운동을 뜻한다.노란색이 빛을 발한다면, 파란색은 빛을 빨아들이는 수축성 그자체다."(루돌프 슈타이너) 독일의작가 휠더린은 파란색에서 느끼기를,"파란색이 그리워지면 나는 종종 하늘을 올려다 보았고 성스러운 바다속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면 마치 한 혈연의 죽은 영혼이 나에게 손을 벌리듯이, 마치 고독의고통이 신성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모두와 함께 할수있는 한가지는 무언가 영적인 자기망각속에서 자연의 일체를 향해 귀환하기위함이다. 그것은 생각, 최고의기쁨,신성한 신의정상, 영원히 조용한 장소이다."3)

 

짙은파랑은 시야에서 멀어지면 흐려지면서 파랑빛을 띤다. 공기층이 색을 덮기 때문이다. 강한 파랑에서 약한파랑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원근효과를 낸다. 환한 파랑은 시각적으로 뒷자리를 차지한다. 화가들은 이러한 효과를 공기원근법이라고 불렀다. 강한 색이 흐린색보다 가까운 느낌을 준다. 공기나 물은 투명하지만 언제나 파란색으로 보인다. 공간이 깊어지면서 모든색이 파랑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때 제일먼저 사라지는 색은 언제나 빨강이다.

왼편의 그림은 본인의 1990년작품이다. 흔히들 우리주변의 상점을 닫는 이중샤시의 문이다.  파랑색은확실히 멀어보인다. 스테인레스의 격자문은 칠해지지 않은 바탕의흰색그대로인 여백이다. 바탕위에 파랑색의칠이칠해진 것이다. 그러나 파랑색의문은 뒤로 물러가고 바탕의흰색이 마치 캔버스위로 둥실떠오르는 느낌이다.

파랑은 정절의 색이다. 정절이 남한테 과시하고 뽐내는 미덕이 아닌것처럼 '파란꽃'도 남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파랑이 전형적이며 적합한 색이라고 했다. 한 여인이 자기남편을 속였을 때, 그녀에 대하여 이웃들이 남편에게"당신부인이 파란외투를 걸쳤다"라고 말해주면, 이말은 그녀가 적어도 밖에서'신뢰'를 얻고이다는 비꼬는 어투이다. 다시말해서 남편에게 신뢰를 져버리고 부정한 여인이되었다는 말이다.  영국에서는 파랑이 정절과 관련되어있다. 사파이어는 정절을 상징하는 보석으로 훼절한 이가 끼면 광채가 사라진다고한다.

 

파랑은 현실과 거리가 먼 이념의색이다. 보라는 상상력의 비현실적인 면을 상징한다. 먼곳과 그리움의 색인 파랑은 비현실적인 색, 현혹하는 색이기도 하다. 독일에서는 꾸며낸동화는 '파란동화'라고한다. 프랑스에서는 '나는 파랗다'라는 말은 놀라서 어안이 벙벙하다라는 뜻이다. 만화 캐릭터 '파란곰'은 늘 허황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선장이다. 1998년 정력을 강화해주는 비아그라가 탄생했다. '비아그라'는 파란색이며 '파란기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네델란드에서는 '그건 파란 꽃일 뿐이야"라고 말하면 '근거없는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파랑은 진짜 거짓말이 아니라 별탈없는 공상과 연관짓는다.

위 르동의 그림은 몽상적이다. 파랑색도 르동이 쓰면 몽상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이념적인 색이된다.  더군다나 파스텔이라는 재료의 불명확한 색상이나 그의불명확한 경계등은 더욱더 파란색을  현실이 아닌 이상의색으로 느껴지게 한다. 르동의 파란색은 비록 밝은 파랑색이지만 마치 몽유병환자의색처럼 몽상적이다.
 


1911년 프란츠마르크, 칸딘스키, 알프레드 쿠빈, 가브리엘 뮌터는 청기사라는 화가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이 '청기사'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말을 즐겨그렸으며 파란색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파란말들을 그렸다.

1) 노다사찌코 저/손성애 역《오라소마 칼라힐링레슨》pp.39-40, 라세, 2000, 서울

2) 노다사찌코 저/손성애 역《오라소마 칼라힐링레슨》pp.41-42, 라세, 2000, 서울

3) 하랄드브램 저/김복희 역《색깔의 힘》pp.48-57, 유로서적, 2003, 서울

 

파랑2-슬픔과 신의색 

동양화에서는 항상 색을 없애버리려고 노력해 왔다. 사진에서도 칼라사진이 발명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흑백사진을 고집하고있는 사람들이 많다.

색이란 항상 부정적인 용어로 사용해왔다. '색깔이 있다.".-성깔이 있으며 자기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원색적이다.- 물질성을 쫓고, 천박하다. 섹스와 연결하여-섹끼가 있다.

전통적으로 도덕을 강조하는 사회 또는 정신성을 우위에 주장하려는 사회는 항상 색을 배제하려고 노력해왔고, 색깔 공포증으로 번졌다.  동양화는 여전히 흑백 수묵화를 고집하고있으며, 색칠된 것들을 천하게 여긴다. 70년대의 모노크롬회화는 회화에서 색들을 모두 제거하여버렸다. 우리나라사람들이 소위 중년층이상의 나이에서는 그들이 타고 다니는 차나 그들의 아파트, 그들의 옷에서 색을 제거해 버리려고 무던히 노력하고있다.

"색깔 공포증은 문화에서 색을 제거하고, 색의 가치를 폄하하며, 그 의미를 깍아내려, 그 복잡성을 부정하려는 여러 가지 다양한 색들속에서 나타난다. 더 간추려 말하면 색의 제거는 보통중의 한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색을 보통 여성적이고 동양적이며 원시적이고 유아적인 상스럽고 괴상하며 감정적인, 어떤 낯선 몸의 속성으로 이해한다. 둘째, 색을 천박한 것, 부가적인 것, 비본질적인 것, 장식적인 것의 영역으로 내쫓는다.  색은 위험한 것이거나 하챦은 것, 아니면 둘다이다.(색을 사악함과 천박함이 뒤섞인 것으로 보는 것이 전형적인 이다.) 어느 경우이든 색은 정신의 고상한 관심사에서 늘 배제된다. 색은 서구문화에서 고상한 가치들이 타자이다. 또는 아마도 문화가 색의 고상한 가치들의 타자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색이 문화의 타락이거나.

 

색은 여성적인 것과 동일시되거나 동양적인 것이어서 항상 억압되거나 종속되어야만 하는것이었다. 색은 내부의 위협이며 풀어놓았다가는 모든 것을 파멸시키고 문화를 몰락시킬지도 모르는 내부의 타자였다.1)

  서양미술의 역사에서도 고전주의등 뎃생을 중요시하는 학파에서는 색을 형태를 보조해주는 부가적인 요소로만 생각해왔다.

  지금은 압제당하였던 것이 분출하는 시기이다. 미술가는 압제된 것들을 열어졌혀 세상에 튀어나올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사이다. 그래서 모든 색들은 자신의 모든 진실한 모습을 어떠한 여과없이 투영될 수 있어야만 한다. 또는 그 색들을 통하여 우리의 내부에 타자로서 인식되어왔던 '리비도'를 해방시킬 수 있으며, 이성에 대하여 억눌려온 감성을 폭발시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앙리마티스는 파란 토마토를 그렸다. 왜 토마토를 파랗게 그렸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자신이 토마토를 파랗게 본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유감스럽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이브클라인은 파랑으로만 그리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파랑을 '이브클라인 의 파랑'으로 국  제특허까지 냈다. 하지만 그의 파랑은 생산비용이 저렴했을 뿐, 일반적으로 합성되는 울투라마린의 파랑과 다를바가 없었다. 클라인에게는 파랑은 무한한 가능성을 뜻했다.

 칸디스키는 '예술의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에서 '파랑은 깊어질수록 우리를 무한한 것으로 이끌며, 순수 그리고 궁극적으로 초감각적인 것에 대한 그림움을 일깨운다."

그림에서 고도의 정신적인 것을 표현하기위해서는 색을 없애야만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수준높은 정신성을 표현한다는 기치를 잡은 미니멀아트는 모노크롬이라는 형식을 선택한다.

확실히 모노크롬으로 표현된 작품은 요란하거나 시끄럽지 않고 차분하다.

 

 

 

그리움의 파랑은 음악에서 불루스를 만든다. 불루스는 파랑이라는 뜻이며 대개 '우울한 맬랑꼬리'등으로 해석된다. 대부분의 청색을 주로 사용하는 작가들은 청색에서 깊은 정신성을 찾으려고한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다른 색상들은 배제하고 청색을 주조색으로하는 단조로운 토운으로 화면을 이끌어간다. 뭉크의 작품이나, 르동, 프란츠 마르크 등이 그렇다. 이들은 청색으로 단순화된 모노크롬을 이용하여 표현주의적인 효과를 노린다. 이들이 표현하려는 것들은 인간의 불안, 고통, 슬픔, 부조리, 좌절된 희망등이다.

피카소도 그의 젊은시절 이러한 청색을 위주로한 그림을 그린다. 그는 그당시 파리로 건너와 세탁선이라는 곳에서 생활하며 두 번의 전시회도 실패로 끝나고 참담한 생활을 하고있었다.

피카소의 청색시대 그림들은 파랑의 차가운 효과를 확인 시켜준다. 예술비평가인 헬렌카이는 "전형적인 피카소의 파랑은 비참함, 차가운 손가락, 동상, 핏기없는 입술, 굶주림의 파랑이다. 그것은 절망으로..... 정말 파랗다"하고 설명했다.

  피카소의 이<알레스틴>이라는 초상화는 슬프다못해 절박함과 두려움마져 느껴지게 한다. 그녀의 한쪽눈은 아마도 개의 눈알인듯싶다. 초점없는 그녀의 눈알은 피카소의 절망을 드러내주는듯하다. 그러나 그녀의 다무진 입과 그의 분명한 윤곽선은 피카소의 내면에 불굴의 투지를 보는듯하다.  파랑은 피카소를 깊은 심연의 골짜기에 침잠시킴과 동시에 그 심연으로부터 로케트와 같은 추진력을 얻어내는 그의 무서운 집중력과 의지를 보여준다.

  파랑은 슬픔의 색이다. 슬픔이 한 예술가에게 매우 긍정적인 것은 슬픔을 통하여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슬픔을 통하여 한인간은 자신의 위치를 철저히 분석하고 객관적이 될 수 있으며 에너지를 충전할 수가 있다. 슬픔은 모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나면 곧바로 기쁨과 통할 수 있는 통로이다. 그래서 비극은 인간을 카타르시스로 이끌어준다. 우리는 슬픔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부정적인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 그래서 피카소가 이 우울한 슬픔의 시기를 겪지 않았다면 어떻게 빛나는 광휘의 시기로 진입 할 수 있었겠는가?

파카소의 파랑은 인간이 내려갈 수 있는 그이상의 심연의 색이며 동시에 인간이 가장 높이 다다를 수 있는 초월적인 하늘의 색이다. 그는 그 심연의 색을 칠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진실은 언젠가는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피카소의 청색시대는 절망과 동시에 희망의시대이다. 그의 그림은 머지않아 희망의 색인 장미빛으로 바뀌게 되니까.

 

파란색은 초월적인 힘의 상징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큰 영혼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부분 종교의 주신이-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항상 파란하늘이나 적어도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구름 너머로 푸르디푸른 산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정신 혹은 영혼은 파란색의 가장 깊은 차원이다. 왜냐하면 이세상의 모든 정의들을 논리적으로 추론해내는 능력을 가지고있기 때문이다.

신은 하늘에 산다. 파랑은 신을 둘러싸고 있는 색이다. 그래서 파랑은 인도에서 신의색으로 쓴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썼던 금색마스크도 파란머리카락과 파란수염을 달고 있다. 이집트의 신'아문'은 눈에 띄지않게 하늘을 날수 있도록 피부가 파란색이었다. 인도의 신'비슈누'도 인간의 형상을 한 '크리슈나' 신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이 하늘임을 나타내는 파란색 피부를가졌다. 라마신도 파란피부색이다. 로마시대에는  주피터(목성)은 사수자리의 지배성이므로 사수자리 사람들의 전형적인 색은 파랑이다. 지중해지역과 근동지방에서는 부적으로 인기가 높은 '마법의 눈'은 신의 눈, 파랑으로 둥근 눈이다. 파란구슬도 사람들은 악에서 구해준다고 믿었다. 성당의 둥근지붕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 파랑이다. 유테인은 하늘은 '야훼의 보좌'라고 믿는다. 야훼의 보좌는 사파이어(파란색 나는 보석)로 되어있다. 순수한 파랑과 순수한 흰색은 시온주의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국기에는 하얀 바탕에 파란별<다윗별>이 그려져 있다.

전통가옥에서는 신이 자기집을 찾아온다는 믿음에서 모든 문과 창틀을 파랗게 칠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밖에도 동양의 일부지역에서는 젖먹이를 수선에 감싸안는 풍습도 있었다. 물론사내아이들만이었지만 ..훨신 후에야 여자아이들은 부드러운 분홍색보자기로 보호 받았다.

파랑은 가장 차가운색이다. 파랑을 차갑게 느끼는 이유는 추울 때 파랗게 변하는 피부와 입술 등 우리의 경험에 근거한다. 파랑이 흰색보다 더 차갑다. 흰색은 빛을 의미하지만, 파랑은 그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850년경 인상주의자들은 갈색그림자를 없애고 그림자를 파랑으로 칠했다.

 차가운 파랑은 오만을 나타내기도 한다. 정신병원에서 발광하는 환자를 파란방으로 데려갔더니 안정을 찾았다고하는데 과학적인 의료기관은 색채효과를 치료에 이용하고있지 않다.

오히려 사상의학에 의하면 한국인의 50%는 태음인에 속한다고 한다. 태음인은 신체중에서 간과 담이 건강하게 태어난 사람들인데, 파란색은 바로 간과 담을 자극시키는 색이라고한다. 이색이 간과 담을 자극시켜서 기능항진을 시키면 그렇쟎아도 과부하가 걸려있던 간과 담이 더욱 자극을 받으면서 태음인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폐와 대장에서 탈을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태음인의경우에는 파란색의 벽지를 바른방은 피하겠다고 충고한다.

서양장기챔피언을 꺽은 최초의 컴퓨터의 이름은 '디프 부루'이다. 파랑은 남성의 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예로부터 내려오는 상징체계에서는 파랑은 여성의 색이었다. 파랑은 수동적이며, 물의 색이기도하며, 조용한 색으로, 적극적이며 강하고 남성적인 빨강과는 대조적이다.

기독교의 상징색으로 파랑은 마리아, 빨강은 예수, 퍼플보라는 성부, 녹색은 성령을 상징한다.  교황 그레고리 대제는 (540-604) "교회에 있는 그림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책의 역할을 해야한다." 는 기독교회화를 규정하는 최상위 법을 발표했다. 파랑은 '마리아의 색이다. 마리아가 울트라마린색을 입고있으면 '승리의 성모' 마리아가 파란망토를 입고있으면'자녀를 보호하는 어머니의 특성을 나타내며 경건한 신자들을 보호하고, 짙푸른 옷을 입은 성모는 슬퍼하는 어머니다.

파랑은 정신적인 미덕을 나타내는 중요한 색이다. 차가운 이성이 강조되는 데는 언제나 파이 '고통의 성모'이다. 예수와 함께 있는 그림에서는 마리아는 울트라 마린불루의 옷을 입지않는다. 예수와 함께 그려질 때 마리아는 값이 저렴한 색, 어두운 파랑의 옷을 입는다. 예수의 색은 전통적으로 빨강색이었다.

마리아가 빨강옷을 입은 그림도 많다. 세속적인 배경이 있는 그림은 마리아가 푸른 옷을 입은 경우 자칫 하녀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수공업자와 심부름꾼은 파랑색을 입었었다. 빨강은 귀족과 지배자의 색이었으므로 마리아는 빨강색으로 그려졌다.

1858년 프랑스 루르드의 우물가에 있던 열네살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나타난 마리아는 밝은 파란색 옷에 하얀 망토를 두르고있었다. 당시의 유행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모습이었다. 그후부터 '밝은 파랑-흰색'은 마리아의 의상에 가장 즐겨쓰이는 색조가 되었을 뿐아니라 은은한 파스텔톤의 파랑으로 그려진 마리아상은 조잡한 종교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번  선과색이라는 주제의 강의에서 색부분은 상당부분  에바헬러 저/ 문은배 감수/ 이영희 역<<색의 유혹>>,에서 인용합니다. 이책에 대한 인용부분을 별도로 밝히지 않음을 양해바랍니다.

1) 데이비드 바츨러 저/ 김융희 역《색깔이야기》pp.44-47, 아침이슬,2002, 서울, 참조

 

파랑3--서민의색

인쇄공장에서 많이 쓰는 파랑은 시안cyan인데, 화가들은 이를 '원초적 파랑'이라고 부른다. 화가들은 '울트라마린 불루나 '프러시안 불루'같은 전통적 색을 즐겨사용한다. '파리의 파랑'이나 '프러시안 부루'는 '울트라마린 블루'보다 값이 싸지만 '코엘린불루'나 '코발트불루'보다 갑이 약 다섯배나 비싸다.

화가들이 사용하는'울트라 마린'은 시대를 불문하고 가장 값비싼 색이다. 오늘날에도 역사적인 물감의 애호가들을 위하여 진짜 울트라마린이 생산되고있는데 최고의 품질은 kg당 가격이 1,500만원에 달한다. 광채가 아름다운 파랑, 울트라 마린의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금석은 불투명하고 짙은 파랑에 하얀줄이 나있고 황금빛 조각이 섞여있다. 옛날 사람들은 이 금빛 조각을 황금이라고 생각했다. 청금석은 금광이나 은광에서 발견되어 그 조각이 황금처럼 광채가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고양이 황금'이라고 불리우는 황철이다.

'울트라마린'은 '바다건너편'이란 뜻으로 청금석의 원산지를 가르키는 말이다. 청금석이 인도양. 카스피해, 흑해의 건너편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청금석은 대리석과 비슷한 돌이다. 청금석을 갈아서 분말로 만들어 이를 접착제와 섞으면'울트라 마린'이 된다.'코발트 불루'는 천재적인 위조화가 반 메헤렌의 발목을 잡은 덫이기도 했다. 그는 1935년경 베르메르의 작품을 위조했는데 그때는 베르메르의 진품에서 사용되어진 진짜 울트라 마린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는 고생 끝에 오래된 울트라마린을 구했지만, 거기에는-베르메르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단--코발트불루가 소량섞여있었다. 그래서 화학적인 분석결과 위조자의정체가 밝혀졌다.

파랑은 회화에서 가장 고귀하고 상징학에서도 신성한 색이지만, 옷에는 흔하게 사용되었다. 1570년 교황 피우스5세는 제례때 미사를 드리는 사제가 입는 옷과 제대보, 그리고 강독대장식에 사용되는 색을 정하면서 교회에서 파랑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파랑이 너무 평범하다는 이유에서 였다. 섬유염색에서 가장 유명한 인디고가 범인이었다. 인디고는 언제나 싸구려 색이었다. 인디고는 유화물감, 수채 물감등으로 제조되었지만 색이 흐릴뿐아니라 햇빛에 약해서 평가를 받지못했다. 화가의 파랑은 비싸고 고귀했지만, 염색가의 파랑은 값싸고 질이 떨어진다. 파랑은 가격에 따라 의미가 변하는 색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엤날부터 쪽으로 남색인 파랑을 염색해왔다. "청출어람"이란 ' 남색은 그 근원인 쪽보다 푸르다라고 하는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훌륭하게 될 때 쓰는 말이다. 이 쪽에도 '인디고'의 성분이 들어있었다.

파랑은 세계어디에서나 쉽게 염색할 수 있는 색이다. 인디고는 값이 쌌고 햇볕에 잘 바라지도 않았다. 인디고는 불루진스의 파랑으로 '창백한 파랑'으로부터' 검정띤 파랑'까지다양하게 염색할 수 있었다.

중세유럽에서는 인디고를 대청에서 얻었다. 인디고나 대청이나 모두 인간의 오줌으로 발효시켜서 사용한다. 인디고는 인도의 형용사인데 인디고는 인도에서 수입된 것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인디고는 대청보다 서른배나 짙은 파랑색을 냈다. 1498년 바스코타가마는 인디고를 얻을 수 있는 뱃길을 발견했고 독일, 영국, 프랑스에서는 인디고를 금지했다.  인디고를 '악마의 색'이라고 규정하고 인디고를 사용하는자는 사형을 시킨다는 법을 발표함에도 불구하고 인디고의 사용은 늘어갔다. 그러나 마침내 대청농가들은 사라져 버렸다. 19세기 중반 석탄 타르를 재료로 아닐린이라 부르는 타르색소를 제조하는데 성공했다. 15년동안이나 계속된 천연인디고와 '합성 아닐린과의 전쟁은 인공적인 아닐린의 승리로 끝났다.  프러시안 불루는 대청농민을 인디고로부터 보호하기위해 대청으로 물감들인 군복을 입힌것이었다.

 

블루칼라라는 말이 노동자를 의미하는 것이고 파랑은 예부터 가장흔하고 값싼색으로 서민이 애용해왔다는 사실만으로 현대의많은 사람들이 파랑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이해될 수가 없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계급을 색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자신을 중산층 도는 서민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자의식이 성장함에따라 청색이 중요한 색으로 부각되었을까? 또는 우리나라에서처럼, 태음인의수가 50%를 넘는 나라에서 각기질의 사람들은 그 기질이 상징하는 색을 좋아하게 되는 것일까? 태음인의 상징색은 파랑색이다. 또는, 17세기 이후의 이성의시기에서 사람들은 붉은색의 현란함보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파랑을 선호하게되었을까? 아무튼 내가 보기에는 파랑을 선호하는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사실은 매우 이해하기어렵다.

파랑하면 하늘의 색이 생각난다. 따라서 하늘을 하늘색으로 칠한 그림은 너무나 평범하게보인다.

가끔 그 평범한 하늘의 하늘색도 무한한 깊이를 가진 하늘로 보일 때도있다. 현대인들이 파란색에 매력을 느끼는 경우도 아마 이런이유때문일것이다.

 

중세에는 파랑의복은 누구나 입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광택이 도는 깨끗한 파랑만은 고귀한 신분의옷이었다. 작업복은 어디서나 인디고로 염색했다. 파란 색 가운이나 바지 작업복을 입은 남자는 '파란남자'라고 불렀고 이들의 직업은 '파란직업'이라고 불렀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노동자들을 '불루칼라'라고 하고 하얀칼라에 넥타이를 메는 '화이트칼라와 구분했다. 중국노동자들은 파란 개미'라 불리웠다.

불루진스란 이름은 제네바 상인의 파랑이라는 말이다. 마린부루는 해병의 군복색이다. 아닐린생산에 뒤이어 '인단트랜'이라는 색소가 나와 크게 성공했다. 불루진까지도 인단트랜으로 염색되었다. 1970년경 basf는 인디고생산을 중단했다.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인디고로 염색한 블루진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해진 것이다.  1970년대에는 옷의 값도 매우 싸졌고 누구나 새옷을 사입고 또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고있었다. 문화비평가들은 '소비테러'와 쓰레기를 생산하는 사회'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소비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날아빠진 진스가 그 징표였다. 블루진스는 진실하고 변함없는 가치로 돌아간다는 회귀의 상징이 되었다. 색바랜 불루진스에 대한 수요는 너무 많아서 공급이 부족했다. 불루진스를 경석으로 문질러 빨아서 처음부터 날게 보이는 스톤 불루진스가 유행했다. 불루진스는 거지와 백만장자, 청소부와 공주, 목사와 가난한 노동자 모두가 함께 입었다.

파란시간이란 작업시간이 끝나고 어스름이 밀려오는 시간이다. '불루칩'이란 주식시장에서 비싸기는 하지만 안정된 가치를 보유하여 가격변동이 없는 주식을 말한다. 파랑은 안정된 색으로 수면제와 안정제의 포장에 많이 사용되며 이불보와 잠옷에도 쓰인다.

'파란스타킹'은 전통적으로 여성들에게 부여된 삶의 목적인 '자녀, 부엌, 교회',그리고 이를 현대화한 '자녀, 화장, 남편의 출세'에 만족하지 않는 여자들을 가르키는 개념이다. 파란스타킹이라는 개념은 1750년경 런던에서 생겨났다. 영국에서는 파란연필이 검열을 상징한다. '피린영화'는 포르노영화를 뜻한다. '파란농담'은 음담패설이며, 거칠고 상스러운 사람의 언어는 '파란언어'이다.

영국의 여왕, 스웨덴의 왕, 독일연방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국가의 대표자들은 널찍한 하늘색 리본위에 최고훈장을 단다. 비단으로 된 하늘색리본은 어깨에서 가슴위를 지나 허리까지비스듬하게 놓인다. 그래서 '파란리본'은 일반적으로 최고의 능력과 업적을 기리는 징표이다. 사회주의국가에서는 파랑을 평화의 색으로 받아들였다. 성대한 행사를 열리면 깃발 세개를  꽃았다. 하나는 해당국가의 국기, 사회주의를 의미하는 빨강, 평화를 의미하는 파란깃발이다.

영국인이 나는 파랗다라고 말하면 우울하다는 이야기다. 지독한 파랑에 빠진은 더럽게 재수없는 일에 걸려든 것을 말한다.

음양오행에서는 파랑을 중요한 색으로 여기지 않는다. 중국사람에게는 파랑은 전혀 중요한 색이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청산, 푸른소나무, 등의 색상은 모두 진한녹색을 가르키는 말이었다. 음양오행에서도 동방을 뜻하는 청색은 동방의 수호신인 청룡에서와 같이 청색이란 파란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녹색을 의미했다. 동방은 계절로는 봄을 상징하고있는데 이는 녹색의 상징인 식물의 푸르른 생명력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도 청색을 말할때면 녹색을 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녹색은 색중의 왕인 노랑색을 함유하고있기 때문이다. 신호등에서도 전통적으로 항상 녹색을 사용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청색신호라고 부른다. 고대그리이스인에게도 '파랑'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 19세기 중엽에 이르면 석탄을 가공해서 만든 코크스가 산업용으로 중요하게 등장한다.

유기화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리비히의 제자였던 아우그스트 호프만은 이런 산업 폐기물에서 아닐린과 벤젠과 같은 유용한 물질을 분리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는 1845년부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초청으로 왕립화학대학에서 화학자를 양성하게 됐는데 당시 그의 제자였던 18세의 윌리암 퍼킨이 1856년에 말라리아의 특효약인 퀴닌을 합성하려는 연구를 하던 중에 뜻밖에도 아름다운 보라색 액체를 얻었다. 퍼킨은 이 액체로 옷감을 염색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천연 염료를 대체할 새로운 인공 염료를 합성한 업적을 남긴다. 퍼킨은 이 염료를 프랑스의 보라색 들꽃의 이름을 따라 '모브(mouve)'라고 불렀고, 그후에 빨간색의 알리자린 염료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방법도 개발해 영국의 섬유 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원자의 존재와 원자들의 화학결합으로 만들어지는 분자의 구조에 대한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서 달팽이와 쪽(藍)이 모두 '인디고'라는 똑같은 분자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알게 됐고, 그런 분자를 콜타르와 같은 값싼 원료로부터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했다. 합성 인디고와 합성 알리자린을 처음으로 개발했던 독일의 BASF는 지금까지도 전세계의 화학 산업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제약회사로 유명한 독일의 바이엘이나 영국의 ICI도 모두 같은 시기에 염료 생산으로 유명했던 회사들이다.

합성 염료 산업의 발전은 뜻하지 않은 새로운 소득을 안겨주기도 했다. 아스피린과 같은 의약품의 대량 생산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 화학이 발전하기 전까지는 의약품도 염료와 마찬가지로 동물이나 식물과 같은 천연 자원을 원료로 사용했었다. 그러나 염료 합성에서 얻은 화학적 지식을 이용해 값싼 합성 의약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길이 열렸다..1)

파란색은 야행성 곤충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무슨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노란색 포충망에는 풍뎅이류가 많이 모였다.

 

* "에바헬러 저/문은배 감수/이명희 역《색의 유혹》 예담, 2002, 서울"을 참고하였으며 많은부분 이책을 참고하므로  구체적으로 주석을 달지 못함을 양해바랍니다.

1) 이덕환 교수의 홈페이지

 

노랑1- 아시아의 노랑: 가장 고귀한 색, 깨달음의 색노랑은 6%의 남자와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노랑은 젊은층보다 노년층에 인기가 있다. 빛을 발하는 색에 대한 선호는 일반적으로 노년층에서 늘어가고 있다.  7%의 남자와 여자는 노랑을 천박하게 여겼다. 그들은 노랑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색이라고 대답했다.

어린아이들에게 몇 개의 빨간색 트라이 앵글과 초록색 원판이 주어진 다음 빨간색 원판과 같은 것이 어느 것인가를 가려내라는 문제가 주어졌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 아이들은 서슴없이 빨간색 트라이앵글이 있는데로 가서 모였다. 이것은 어린아이들이 '같다'고 생각하는것은 형태가 아니라 색채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생후 3개월된 아기는 빨강색과 노랑색 등을 좋아하는데 특히 밝은 노랑색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아기들이 자라서 어린아이가 되면 노란색에 대한 선호도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빨강, 파랑, 초록, 자주, 주황, 노란색의 순으로 좋아하고, 어른이 되면 파랑, 빨강, 초록, 보라, 주황, 노란색이 된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것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만큼 갓난아기처럼 순수한 무엇이고, 또 성인들의 후광이 모두 노란색으로 그려진다는 사실과도 연결된 듯하다.

동서양의 노랑에 대한 생각은 엄청나게 다른데도 불구하고 동서양 모두 그림에서 성인들의 머리뒤에서 빛나는 후광으로 노랑색을 채워넣었다. 오라소마에서는 인체에 7개의 차크라가 있듯이 후광들도 7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성인을 그릴 때 항상 노랑색인 황금빛으로 그린이유는 무엇일가? 성인들은 노랑색의 후광만 있을까?

노랑은 노력으로 얻은 지혜인데 우리는 깨달음으로가는 길은 수많은 노력으로 얻은 지식을 통한 지혜에 이름으로써 가능하다는 역설이 아닐까? 그래서 선불교나 기독교, 또는 어느 종교처럼 무조건적인 신앙이나 선을 통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간다는 것들은  노력으로 얻은 후천적인 지식과 지혜의 색인 노랑 후광을 설명해 주진 못한다.

노랑은 지성과 지식, 행복을 상징하는 색이다. 엘로우가 가진 지혜란 태어나면서 갖추어진 본능적인 지혜를 의미하는게 아니라, 배움으로써 손에 넣는 지식을 말한다. 즉 오렌지와 골드가 가진 감각적인 내적인 깊은 지혜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지혜이다.

이빛깔의 플러스 성질이 표현되었을 경우, 상당히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가 된다. 사려깁고 이해가 빠르기 때문에 매사를 논리적으로 조립해서 생각하는 것을 잘한다. 근면하고 성실하며 이지적이고 완벽주의자다. 자립적인 의지를 갖고있기 때문에 주변사람에게 안심감을 주고 스스로 나서서 기쁨을 주기도 한다. 센스있고 세련된 유모어 정신을 갖춘것도 특징입니다. 이 노랑색의 마이너스측면이 강조될 경우에는 항상 불안하고 사람을 의심하는 마음이 강하게 나타나고 질투를 제멋대로 하는 경향이 있다. 엘로우로 상징되는 불안과 공포는 현재 상황이 가져오는 것이지만 지나치게 두려움에 집중하면 그 마음이 일을 일으키는 경우도 없지 않다. 또 늘 앉고사는 강한 두려움은 신경계에 크게 영향을 미쳐서 그 결과로서의 정신적인 증상, 정신적 혼란을 가져온다. 처음부터 완벽주의에 보수적인기 때문에 융통성이없고 한가지 생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또 자기기분을 원할하게 잘 풀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타인이 있는 장소라도 상관없이 표현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또 엘로우의 날카로운 지성이 긍정적으로 움직이면 상당히 지적이고 뛰어난 판단력과 장소를 가린 유모어 정신으로 나타나지만 마이너스로 움직이며 날카로운 비판정신과 빈정거림,야유로 나타난다. 보색인 바이올렛을 사용하면 균형이 깨진 감정을 중화시키고 파멸적인 측면과 비판정신, 질투와 공포심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육체적으로는 신경계와 피부컨트롤, 류마치스, 관절염에 주의 해야한다.

오라소마 바틀에서 위아래가 모두 노랑인 엘로우/엘로우는  태양신경총에 해당되며 이는 윗부분이다. 타롯카드에서는 nine of cups 이다. 주역의 괘로는 42번째 괘로 상괘는 바람, 하괘는 천둥인 풍뢰익風雷益 이며 증가를 뜻한다. 이 괘의 특징은 "기쁨과 결합된 자발성"이다

상하모두 노랑을 선택한 사람은 친절하고 조화로운'쾌활한 사람. 이것은 이 사람이 움직이는 방법에도 반영된다(춤추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자연적 흐름속에 있고, 삶의 흐름과 함께간다. 긍정적 의미에서 어떤 금지도 모른다. 가장 다양한 삶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고유한 길을 찿는다. 쉽게 정보를 흡수하며 ,이 사람은 이것을 종종 유익하게 사용한다. 새로운 정체성을 계속해서 찾지만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 성공하지 못하면서도 지성에 의존하려고 노력한다. 삶에 거의 달콤함이 없다. 그러므로 단 것을 과식하는데 매달린다. 불행하며, 현재의순간보다도 미래의 일에 끊임없이 집중한다."나는 외부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내적인 지식을 창조한다"

노랑색의 포맨더를 사용하면 태양신경총의 균형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 타고난 지식이 깨어나도록 자극, 호흡을 통하여 더 많은 에너지를 얻도록 돕는다. 관능적 기쁨--즉, 감각기관(향, 미, 촉 등등)을 통하여 일깨워지는 기쁨--을 가져온다. 신경과민성 우울증과 계절적 우울증(특히 겨울)에 권장. 비 이성적 공포와 신경과민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흡연/알코올/커피/단 것 등을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습관을 끊은 과정에 도움이 된다.

태양총 차크라는 위부분의 차크라이다. 위는 알다시피 소화하는 기관이다. 나는 언제가 뇌와 위는 동일한 기능을 하는 기관이라고 말한적이 있지만, 실제로 뇌와 위는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노랑을 선택한 사람은 끊임없이 외부의 정보와 지식을 머리속에 집어넣고 소화시킨다. 그래서 머리속에 소화시킬만한 것을 넣지못하면 이번에는 뱃속에 음식물을 끊임없이 집어넣는다. 그는 왕성한 소화력을 가지고 있어서 무엇이든지 입을 통하여 위로 들어가는 순간 녹아져 버린다. 그렇듯이 그의 두뇌도 또한 모든 정보를 소화시켜낸다. 그가 받아들인 정보나 지식이 혼란스러워 머리속에서 그것들을 완전해독하지 못하고있으면 그와같은 혼란은 위장에서도 똑같이 반응을 일으켜서 음식물을 소화를 못시키고, 소화불량에 걸리게 된다.

그의 모든 에너지들은 위와 동시에 머리에 집중된다. 그래서 위와 머리에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사용하므로 그는 계속 먹으면서 계속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어야만 한다.  그는 좀더 평화스럽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계속 머리속에 입력시켜야만 한다.

갑자기 노랑색에 마음이 끌리고 옷 방의 커텐, 등을 노랑으로 바꾸었다면 "결단의 때와 같은 정신상태라는 것을 말해준다. 노랑색과 같은 밝은 색을 얻고싶을 때 그사람의 마음은 빛의 밝음과 따뜻함을 원하고있는 것이다.

 

노랑은 경험을 포함하며 태양, 빛, 황금을 상징한다.

 

 

노랑은 '빛의 색'이 되면서 '깨달음의 색'이 된다. 이슬람세계에서는 노랑은 지혜를 상징하고 고대유럽의 상징학에서도 노랑은 이성의색이다. 신의 상징은 노란삼각형으로 그려진다. 눈 하나를 노란 삼각형으로 그린그림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자를 상징한다.

 우리나라에서의 노랑색은 전라도 지방과  또 평등사상과 관련이 있다. 광주의 명산인 무등산은 불교의 용어로 등급이 없는 모두 평등한 사회를 말한다. 87년 대선때 기호3번을 단 김대중 후보의 군단을 '황색돌풍'이라고 말하였거니와 이번 노무현도 '황색바람을 일으켰다"

중국의 3황 중의 하나인 태호복희(주역의 팔괘를 발견하였고, 우리 동이족의 후예라고도 한다)의 여동생인 '여와(이름이 여호와 랑 비슷하고 연대도 비슷하다)가 흙으로 사람을 빚어서 구웠는데, 너무 덜익은 흰색은 서쪽으로 보내고, 너무 탄 검정색은 남쪽으로 보내고 자신과 가장 잘 맞는색인 잘익은 노랑색은 중앙에 남게 하였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중국인들은 노랑에서 생명을 선사하는 자연의 힘을 체험한다. 중북 북부지방은 늘 고비사막의 황사로 뒤덮힌다. 그 황사는 황토먼지로 비옥한 밭을 만들어준다. '노란강'인 황하는 황토를 끌어안고 흐른다. 노랑은 유럽인의 피부에는 어울리지 않아서 의복의 색으로는 사랑받지 못했다. 그러나 아시아인의 피부에는 매우 잘맞고 아시아에서의 노랑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중국은 항상 자신을 '중화'라고 표현하는데 모든 나라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음양오행에서 중앙은 황색이다. 중국역사에서 3황중에서 실제적으로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믿는 것은 황제黃帝이다.

1906년 중국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는 그의 비망록에 이렇게 적는다.

 

어린시절을 돌아볼때마다 기억위로 노란 베일이 드리워진다. 지붕의 기와도 노랗고 가마도 노랑이었다. 방석도 노랑이었다. 내옷과 모자와 안감도 노랑이었고 허리띠 역시 노랑이었다. 내가 먹고 마실 때 사용하는 그릇과 잔도 노랑이었다. 내 책들의 장정, 내방에 드리운 커튼, 내말의 고삐도 노랑이었다. 내주위의 모든 것은 노랑이었다. '빛나는 노랑'이라고 불리는 색을 사용하는 것은 황제만의 독점적으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노랑은 내가 유일한 존재이며, '하늘의 본성'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의식을 어려서부터 갖도록 했다.

푸이가 열살가량되었을 때 한 살어린 동생이 처음으로 그를 방문했다. 열살짜리 황제는 우연히 동생의 소매자락 안을 보았다.

"그것이 무슨색이냐? 누가 네게 그 색을 허락했느냐? 나는 기분이 상해서 물었다.

"이것은 살구의 노랑이 아닙니까?"

"거짓말! 그것은 황제의 노랑이다."

"그렇습니다. 폐하. 명령대로..."

"그것은 '빛나는 노랑'이다. 너는 그 색을 입은 권리가 없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폐하"

중국의 황제는 하늘의 아들이라고 했다. 황제의 색 노랑도 국가와 종교의 색이다. 정치와 종교의 상징이 같다. 노랑은 언제나 최고의 색이다. 왕을 위한 양탄자는 노랑색이다. 인도에서는 노랑은 신과 통치자의 지위를 가르키는 색이다. 크리슈나는 노란옷을 입는다. 노랑, 빨강, 녹색은 남성의 색이고 흰색과 검정색은 여성의 색이다.

중국은 노랑을 최고의 색으로 여긴다. 노란빛이 도는 종이를 가장 높이 평가하여 서적을 인쇄해도 노랑 검정의 대비가 자동으로 생긴다. 중국에서의 노랑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노랑의 재료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임신한 여자의 배를 노란 유황으로 문지르면 여자아이가 남자로바뀐다" 중국인은 황금도 노랑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금은 부의 상징이지만 노란 황금은 정절과  청렴함의 상징이다. 중국의 음양오행에서 각 방위마다 상징동물이 있다. '비늘있는 동물'용, '깃털있는 동물'봉황새, '갑옷있는 동물'거북이, '털있는 동물'호랑이, '벌거벗은 동물'은 인간이다. 바로 인간은 노랑색인 중앙의 동물로 표현된다. 중국의 계절은 5인데 일년 중 가장아름다운 계절은 늦여름이고 노랑색에 해당한다. 나뭇잎들이 노랗게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지구의 색을 중국의 황토처럼 노랑이라고 생각한다.

 

노랑2-밝음과 어둠의 색

세잔은 '지금 막 태어난 사람처럼 보라" 고 말했다. 세잔은 갓 태어난 아이는 감각이 아직 "해석의 베일"에 의하여 영향을 받거나 오염되지않은 순진무구한 비젼속에 살고있다고 생각했다. 화가의 일이란 이런 베일너머에 있는 자연을 관찰하는 것이며, 개념들과 물체들로 뒤얽힌 그물망으로 변하기전에 있었던,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다.  세잔에게 있어서는 이 세계는 "색의 파편들" 이었으며, 그래서 "그린다는 것은 색에 대한 감각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눈을 감고 취한채 의식없이 있으면 쇄도하는 색의 물결이 꿈처럼 밀려든다. 퀴스타프 모로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사물을 잘 보라. 그러면 틀림없이 색을 통해 사유하게 될 것이고 색속에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아무런 상상도 할 수 없다면 색은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색은 사유되는 것, 상상되는 것이다.

 

또 보들레르는 이렇게 말한다. "마치 꿈이 그 고유한 분위기 속에 깃드는 것처럼 착상 상태의 생각 역시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색으로 배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보들레르는 또 "색에 꿈꾸게 하는 힘을 부여하지 않는"예술가들이나 비평가들을 비난한다. 1)

바르트는 "만약 내가 화가라면 나는 틀림없이 색으로만 그릴 것이다. 색의 세계는 분명히 율법(모방도 아니고 유비도 아닌)이나 대자연 모두로부터 자유로운 것으로 보인다."율법이나 자연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자율성을 묘사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겠는가?2)

색은 크리스테바에게있어서 "주관과 객관의 불확정성" 자아가 언어로 형상화되기 이전의 상태, 세계가 주관과 완전히 분화되기 이전의 상태와 연계되어있다. "회화에서 색이 무의식에서 벗어나 상징적 질서속에 편입될 때 조차도 색은 상징적 질서의 와해속에서 존재한다.  색은 예술특유의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검열을 벗어나며, 무의식은 문화적으로 약호화 된 그림의 영역에 이입된다. 결론적으로 색에대한 경험은'자아"에 대한 위협을 만들어낸다. 또는 "색은 통일성을 파괴하는 것이다"그것은 마치 색이 자아형성과정을 그저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역행하는 것과 같다. 또 그것은 색이 자아분화를 방해하고 세계의 형상화를 방해하는것과도 같다. 여기서 "색은 상당한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3)

 

태양이 군림하는 7, 8월에 태어난 사자자리의 색이 노랑이다. 노랑은 성숙과 육체적인 사랑의 색이다. 노랑은 황금들판과 황금이삭을 연상시키고 섹쉬얼리티를 연상시킨다. 해바라기는 항상 태양만 바라본다. 그래서 '눈먼 정열'이라고 한다.

해바라기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이다. 군대에서 연대 rct를 하는 중이었다. 3일째쯤 되는 날 몹시지쳐서 그날의 숙영지를 얼마 안 남겨두고 행군 중이었다. 소나기가 쏟아져서 베낭은 흠벅젖고 군화속에까지 물이들어와 발바닥은 온통 부르텄다. 모두들 발을 땅에서 뗄 기운도 없었고 철모의 무게 때문에 고개를 들 힘도 없었다. 그래서 땅바닥만 보고 걸었다. 오던 빗줄기가 그치고 갑자기 맑은 햇살이 비쳤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서 앞을 보았는데 거기에 거대한 해바라기가 있었다. 해바라기의 노랑색은 태양 그자체의 광휘처럼 밝았다. 그 선명한 태양 빛 해바라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고등학교시절, 전남대학교 캠퍼스의 후미진 곳에는 나무 밴취가 몇 개 있었고 그곳에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이 서있었다. 11월초인가 나는 벤취위와 온 바닥을 덮어버린 그 노랑 은행잎에 정신이 아득할 정도였다. 그 노랑을 표현해 보려고 수차례 노력해 보았으나 항상 불만족인 상태로 끝났다. 나는 크롬엘로우와 레몬엘로우를 사용하였는데, 카드윰엘로우나 좀더 밝고 깨끗하고 안정적인 색이 필요했던 것 같다. 옆의 사진은 윤희생태학교 들어가는 입구인 두물머리길이다. 은행나무 터널인데 황금빛으로 빛나는 이터널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빛나는 노랑은 디오니소스의 옷이기도하다. 노란색은 흔히 영적인 기질이 강한 사람 또는 형이상학적인 기질의 사람들에 의해 선호된다. 또 청록색과 같은 어중간한 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재의 재능을 엿볼수 있다. 색채선호가 몹시 까다로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노란 문장이나 황금색 문장은 명예와 충성심을 나타낸다. 옛말에 인간의 몸은 빨간색이고 마음은 노란색이며,정신은 파란색이다라는 말이 있다.

 태양빛은 무색이지만 노랑으로 느껴진다.

우리나라아이들은 태양을 빨강색으로 칠하지만 유럽의 아이들은 노랑으로 칠하고 시베리아아이들은 흰색으로 칠한다고한다. 노랑은 태양이기 때문에 명랑하고 쾌할하며 낙관주의자이다. 스마일운동의 로고는 로랑이다. 노랑은 즐겁고 미소처럼 빛난다. 아름답고 값진것에는 노랑대신에 태양빛, 또는 황금빛이라는 용어를 쓴다. 노랑색의머리는 금발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영화<노랑머리>는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젊은이를 풍자한다.

 

 

반고흐는 프랑스남부지방에 관해 "이곳에는 유황같은 색이 사방에 널려있고 태양이 사람을 취하게한다."고 말했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고흐가 노랑을 유난히 좋아한 화가라는것을 알수있다. 고흐의 최후의나날에 그려진 까마귀가 나는 보리밭은 짙고 푸른 하늘색과 물결치는듯한 노랑색 보리밭이다.

일본인들에게 영향을 받은 반고호는 검은 색과 흰색을 일본인들이 하듯 평면색조로 처리하는 경우, 그들 사이의 동시대비는 초록색과 빨간색의 그것에 비해'자극적'이다. 고 생각했다. 그는 1888년 4월 베르나르에게, '나는 의도적으로 노란색과 파란색의 특징을 강조한다'라고 썼다. 같은해 6월, 그는 노란색을 칠하고 또한오랜지색을 칠하라'라고 분명히말했다. 8월말 그는<해바라기>에 대해 동생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이계획을 옮긴다면 12개 정도의 그림을 만들 것이다. 그 그림들은 모두 파란색과 노란색의 교향악이될 것이다. 얼마지난 9월, 그는 <노란 색의 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주제를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강한 의지가 생긴다. 태양아래 노란색의 집들 그리고 파란색의 비교할 수 없는 신선함. 참으로 다루기 힘든것들이다. 땅전체가 노랗다.

파랑/노랑-오랜지의 대비는 흰색고 검은색의 기본적인 대비가 채색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노랑/보라의 대비에도 적용된다. '나는 파란색과 보라색의 작은 영상들과 노란색 태양이 있는,온통 자주색과 노란색인 포도밭을그린 그림을 끝냈다. ,마지막으로 <씨뿌리는 사람>에 대해 그는 1888년 6월 베르나르에게 이렇게 썼다. '그림은 두부분으로 나뉘는데. 위쪽은 노란색이고 아랫쪽은 보라색이다. 푸른색바지는 노란색과 보라색의 과도한 동시대비로부터 눈을 돌려 휴식을 취하게 한다.

반고호는 남부 프랑스에서 색채화가를 위한 학교를 세우려던 큰 꿈을 이루지 못했다.4)

 

'노란색 집"이라는 이름의 집에서 고갱과 함께 기거를 했던 고흐는 그자신의 방인 '노란방'을 그린다. 두 개의 초상화, 두 개의 노랑색 액자, 두 개의 의자, 두 개의 베개 등은 사람과의 뜨거운 접촉을 기대하는 고호의 외로움을 그린 것은 아닐까? '노랑방'의 그림에는 표면의 밝음에 감추어진 그의 끝없는 어둠을 보는 듯하다. 빛이 강할수록 그로 인한 어둠도 깊고 날카롭다. 그 어둠과 비교해  한층 두드러진 노랑색으로 빛을 추구하던 고흐에게 있어서'노랑방'의 그림은 결국 얻을수 없었던 사람과의 행복을 영원히 간직하고있는지 모른다.

화가들에게는 광택을 잃지않은 노란물감이 있고, 변색하는 노란물감이 있다. 고흐가 쓴 크롬엘로우는 광채를 잃고 모두 칙칙한 색으로 변했다. 고흐는 돈이 없어서 카드뮴의 노랑을 살수 없었다. 그래서 값이 훨씬 싼 크롬엘로우를 사용했고, 시간이 가면서 바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두툼하게 칠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두 주인공의 사랑의 운명을 암시하는 것이 '노랑색 방'이었다. 그리고 죽는날까지 킨케이드와의 비밀스런 사랑의 기억을 새긴 노랑색 테이블이 프란체스카의 마음을 지탱해주는 것이다.  겨우 나흘동안이었던 두사람의 사랑의행로, 그곁에 늘있었던 식당의 노랑색 테이블, 진심으로 웃고 대화하며 같이 브랜디를 마셨던, 그리고 서로 껴안고 춤출 때 옆에있던 노랑색 테이블, 그리고 프란체스카가 마지막날 69세로 생애를 마칠 때, 그녀는 그노랑색 테이블을 안은 듯한 자세로 푹엎드린 채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영화에는 노랑색 테이블 뿐아니라, 방의 벽, 문 손잡이, 커튼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노랑색 방'을 연출했다.

노랑색 방만이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의 우주였다. 그러나 이 노랑색방이 두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은 행복의 기쁨만은 아니었다.  영화에서는 잔혹할 정도로 인생의 어두움을 상징하는 것 .그토록 너무나도 마음을 닫고 살아온 각자의 고독을 적나라하게 나타낸 것이다. "노랑색은 여러 가지 색상중에서 무엇보다 환한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빛을 비추어본다'라는 것은 지금까지 감추어져있던 사실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노랑색자체가 내면에서 표출하려는 것은 '외로움'과 '기쁨'이고 인간의 감정을 낱낱이 드러내 보이고픈 욕구이다.5)

동양의 경우, 브라만교(인도의 토착민인 드라비다족에 의해서 성립된 종교, 흰두교의 모체가됨)의 교도들은 노란색을 신성한 색이라고 여긴다. 힌두교의 우파니샤드(브라만교를 배척하고 제식보다는 지식을 중시하여 범아일체를 주장한 철학)철학자들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몸속에는 "히다"라는 핏줄이 있는데, 그것들은 머리카락처럼 가늘며 수천갈래로 갈라지고 그속은 흰색, 파란색,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으로 가득차있다. 부처의색도 흰두교에서와 비슷하게 노란색, 또는 황금색이었다.6)

 

1) 데이비드 바츨러 저/김융희 역《색깔이야기》p.70. 아침이슬,2002, 서울

2) 2) 데이비드 바츨러 저/김융희 역《색깔이야기》p108. 아침이슬,2002, 서울

3) 3) 데이비드 바츨러 저/김융희 역《색깔이야기》p.156. 아침이슬,2002, 서울

4) 길라 발라스 저/한택수 역《현대미술과 색채》pp.186-188, 궁리, 2002, 서울, 참조

5) 스에나가 타미오 저/ 박필임 역《색채심리》pp.37-54,도서출판 예경,2001, 서울, 참조

6) 피버. 비렌 저/김화중 역《색채심리》p.21,동국출판사,2003, 서울, 참조

 

노랑3--더러움/멸시의 색 노랑

이글은 포럼에이 게시판의  smellliket 라는 아이디를 쓰시는 분이 쓴글인데 재미있어서 인용했다.

<늙은 오크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쥬 Tie a Yellow The Old Oak Tree>(벅스에서 방금 검색해 봤심다) 토니 오를란도 & 던이란 싸구려 3인조의 곡이네요.

 

I'm coming home. I've done my time.

이제 집에가네..썩을만큼 썩었거든..

Now I've got to know what is and isn't mine.

이제야 내꺼는 내꺼고 니꺼도 내꺼고..가 아니란 걸 알았어..(졸라 멍청했군)

If you received my letter telling you I'd soon be free,

빵에서 나온다는 편지를 받았다면..

Then you'll know just what to do

당신 뭘 해야할 지 알지(두부라도...)

if you still want me,

여전히 날 원한다면..

Oh,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늙다리 오크나무에 노랑 리본 달아쥬.

It's been three long years.

빵에서 3년을 썩었어..

Do you still want me?

여즉 날 원해?

If I don't see a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노랑 리본을 못보믄..

I'll stay on the bus,

이 뻐스 타고 기냥 갈팅게...

Forget about us,

잊드라고...

Put the blame on me,

씨발럼 욕이라도 함서 말여...

If I don't se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Bus driver, please look for me,

기사양반 날 좀 보드라고요..

'Cause I couldn't bear to see what I might see.

나가 멀 볼지 무쟈게 궁금하닝께..

I'm really still in prison, and my love, she holds the key.

안즉 빵에 있는거 같구마니라..마이 러어브으 나으 그녀가 키를 갖고 있응게..

A simple yellow ribbon's what I need to set me free.

고거이 쪼맨한 노랑 리본이구마니라..

I wrote and told her please,

글케 썼구마니라..

Oh,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노랑리본 달아쥬 라고 말이지라..

It's been three long years.

빵에서 넘 오래 썩었구만이라..

Do you still want me?

안즉 날 원하남?

 

Now the whole damn bus is cheering,

갑자기 뻐스 안 작것들이 씨겁을 하네..먼일 있간디...

And I can't believe I see,

믿을 수 없구만...

 

A hundred yellow ribbons 'round the ole oak tree.

노랑리본이 천지를 덮었구만...흠미...미치는거...죽겄구먼...

노랑은 모든 화의 색이다. 시기나 질투 모두 노랑이다. 구두쇠 노랭이도 노랑이다. 시기와 질투는 사형으로 다스려졌다. 구두쇠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속이려고 한다고 믿기 때문에 늘 화를 낸다. 엤날에는 화가 담즙에 있다고 믿었다. 담즙은 노란녹색을 띤다.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은 담즙에 이상이 생긴다. 심하게 화를 내면 담로가 경직되면서 담즙이 장을 통해  배출하지못하고 핏속으로 직접 들어가 피부가 노랗게되고 피부가 노랗게되는 병을'황달'이라고 한다. 노란병은 노란약으로 치료한다는 원칙에 따라, 노란꽃, 노란무, 오줌, 그리고 버터에 볶은 노란거미도 효과가 있다고 마법사들은 믿었다.

러시아의 일부에서는 노란구슬을 가지고 다녔다. 그리이스에서는 금조각을 술에 넣어 사흘밤 동안 별빛을 받게한다음 그술을 환자에게 마시게 함으로써 '황금병'이라 일컷는 황달을 치료하려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전에 진로에선가 금가루 소주가 시판된 적이있다. 그들은 금가루를 해독제로써 음식물에 뿌리기도 했다. 말레이 일부에서는 질병과 전염병을 노랗게 칠한배에 실어떠나 보냈다. 맥시코 지방에 살던 원주민들은 하늘을 떠받치는 신에게 칸(Kan)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그 단어의 원뜻은 노란색이었다.  우리가 잘아는 징기스칸의 '칸' 도 king이라는 뜻이다.1) .

아즈테크(지금은 맥시코 고원지대에서 13세기-16세기에 걸쳐 존속했던 국가)인들 사이에서는 해마다 열리는 축제(7월에 여렸음) 전날에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그의식에서는 어린 옥수수의신(아즈테크 문명은 농경에 기초를 두었음)으로 분장한 젊은 여자가 등장했는데, 그여자는 얼굴부분은 빨간색으로 아랫부분은 노란색으로 장식되었으며 팔과 다리는 빨간색의깃털을 둘렀고 빨간 줄무늬로 된 장식된 신발을 신고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바로 사원의지붕꼭대기에서 신을 위해 죽임을 당하고 머리가 잘려지고 가슴이 찢겨져 심장이 꺼내질 여자였다.2)

베비트는, 노란빛을 변비, 배뇨의 촉진에 사용했다. 노란빛은 신경근으로 이루어져있는 뇌를 자극하는 요소일 뿐아니라, 신경자극의 중심적인 요소이기도하다. 색체요법에서는 노란빛이 변비치료제, 관장제, 하제로 쓰여졌다.

노랑이 검정과 섞이면 비이성적인 색이 된다. 영어에서 'yellow'는 '비겁한'이라는 뜻을 갖는다. 괴테는 칙칙한 노랑을 '간부의 서방'이라고 불렀다.

칸딘스키는 노란색에 대하여 혐오감을 품고있었는데 다음처럼 말했다.

" 노란색은 속물스럽기로 으뜸가는 색이다. 그 색에는 도대체 깊은 의미라고는 없다. 또 그 색이 파란색과 섞이면 어느것 할 것 없이 구역질 나는 색이 된다.  노란색을 인간의 본성과 대비시켜본다면 아마도 광기에 해당할 것이다. 광기 중에서도 서글프거나 우울한 공기가 아니라 난폭하고 미쳐 날뛰는 광기다." 또 칸딘스키는 노랑에 대하여이렇게 썼다.

날카롭게 고함을 치는 레몬빛 노랑을 오랫동안 보고있으면 고음을 내는 트럼펫 소리가 귀를 아프게 하는 것처럼 눈이 아프다. 노랑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찌르며 흥분시킨다. 노랑은 신맛에 뾰쭉하며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를 풍긴다.

노랑바탕에 검정색은 멀리서도 잘보인다. 노랑은 최적의 장거리 효과를 갖기 때문에 프랑스 국제 싸이클 경주대회에서 그날 종합성적이 가장 우수한 선수는 다음날에도 멀리서 눈에 잘띠도록 노랑색 유니폼을 입는다. 테니스공은 원래 흰색이었는데 윔블던대회에서부터 노랑색으로 바꾸었다. 노랑리본을 나무에 달면 친척이나 누가 전쟁이나 위험한 사업에 있다는 것을 알린다. 소설속에서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노랑손수건은 멀리서도 잘 띨 것이다. 노랑는 번개와 같다. 임기응변이 뛰어난 즉흥적인 색이다. 노랑은 금색다음으로 추근대고 거짓되고 허풍쟁이다. 경고를 알리는 색으로 널리쓰인다. 검정과 노랑의 줄무늬는  독성, 폭발성, 방사능물질, 경계표시, 위험한 모서리등을 경고할 때 쓰인다. 축구할 때의 엘로카드와 배에서의 노란 깃발은 격리를 의미하고 중세도시에 노란 깃발은 페스트가 발생했음을 알린다. 독일어로 노랑은 "째지는 날카로운 소리를 지른다"라는 뜻이 있다. 뭉크의 <절규>에서도 소리지르는 노랑이 보인다.

 

노란색소로 가장 유명한 샤프란은 봄에피는 꽃으로 크로커스속에 속하는 식물로 어느때나 비싼 값으로 거래되었다. 약 10kg의 모직을 염색하려면 1kg의 샤프란 색소가 필요한데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10만에서 20만송이의 샤프란꽃이 필요했다.  아랍세계에서는 샤프란이 널리 재배되었기 때문에 아랍어로 색은 자파란"zafaran"이었다. 샤프란은 약초로도 사용했다. 또, 전세계적으로 널리 애용되는 양념이기도하다. 샤프란은 치즈, 과자, 술, 향수 등에 색을 낼 때도 쓰인다. 샤프란은 인도요리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샤프란의 뿌리는 식용으로도 쓰였고, 이토록 다양하게 쓰였으므로 '식물의 왕'으로 부렸다.
 


중세에는 노랑이 멸시받는 자의 색이었다.  1445년 함스부르크 복식규정에 따르면 창녀들은 노란 머리수건을 써야만했다. 1506년 라이프치히 법은 창녀들에게 노랑망토를 입힐 것을 명했고 또 이탈리아 메란 창녀들은 노란 구두끈을 사용해야만했다. 미혼모들도 이 노랑의수치를 견뎌야했다. 독일의 남부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는 미혼모들에게 노란 모자를 쓰도록 했다. 이교도에게도 처형장에서 노란십자가를 목에다 걸어주었다. 빛을 진 채무자들은 노란 원을 옷에다 달고다녀야 했고 12세기 유대인들은 노란 뾰쭉하고 뿔처럼 굽은 모양의 노란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다. 유태인의 옷에 노란고리를 달고다녀야 했다. 노란고리를 보고 유태인과 거지를 안다고 하였다.

 

교회의 제례에서는 노랑을 써서는 안된다고 정했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노랑은 금색이라고 부른다. 노랑은 아무리 어두운 곳에서도 금새 눈에 띠기 때문에 노랑을 입고다니는 것은 보통 고통스런일이 아니었다.  노랑은 옷색으로 적합하지 못했는데 샤프란의 노랑은 너무 비쌌다.

샤프란보다 값이 싼 잇꽃으로 염색한 목면이 이집트로부터 건너왔다. '노랑초'라불리는 목서초도 노란 염색에 쓰였다. 복식규정이 폐지되고나서도 노랑은 인기가 없었다.  괴테는 노랑에대하여 이렇게 썼다.

"평범한 광목이나 부직포처럼 순수하지도 못하고 고귀하지도 못한 직물에 노랑을 염색하면 노랑은 자신의 에너지를 나타내지못하여 불쾌한 반응을 드러낸다. 눈에 잘띄지않는 미세한 차이로 노랑은 불과 황금의 아름다운 인상은 배설물의 느낌으로 변모하고 존경과 환희의색은 혐오, 불쾌의색으로 역전된다."

노랑이 배반자의 색으로 쓰이게 된 전통은 오래되었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옷은 대개 칙칙한 노랑으로 그려져있다.  16세기에 스페인에서는 카토릭교회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는 인간은 모두 이단자로 지목되었다. 이들은 종교 재판장에 나갈 때 칙칙한 노랑망토를 입어야 했다. 유럽사람들에게는 노랑은 "아시아인'의 동의어이기도 하다. '노란위험'이라는 정치적슬로건은 아시아가 유럽을 위협한다는 의미이다.

조금만 더러움을 타도 노랑은 빛을 잃고 갈색톤이나 회색톤을 띤다. 그래서 노랑은 새물건의 색이다. 노랑이 광택을 잃으면 '누렇게' 변한다. 세월이 흐르면 종이가 누렇게 변하듯 나이가 들면 치아가 누렇게 변하고 혈색과 눈의 흰자위도 누렇게 된다. 누런 변색은 노화와 몰락의 표시다. 화를 많이내거나 병이 들었거나 간이 나빠도 피부가 누렇게 된다. 로트랙, 오토 딕스, 에곤쉴레 같은 화가는 사창가의 남녀를 그릴 때 피부에 노란색을 썼다. 유럽의 상징학에서는 노랑은 나쁜 평판을 가르키며 흉한 외모의 색이다. 마네의 유명한 '올랭피아'가 그 심한 야유를 받은 것은 그녀의 피부를 하얀색으로그린 것이 아니라 바로 누런색으로 그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런 개가죽'이라고 혹평했다.

 1900년부터 알려진 한자노랑과 1950년부터 나온 니켈티탄노랑은 가장 훌륭한 노랑이다. 고대의 화가들에게 가장 유명한 노랑은 나폴리노랑으로 나폴리 해안에서 생산되었다. 인도의 노랑은 강한색이면서 명도가 높아 수채화물감에 사용되었다. 이색은 1750년부터 인도에서 수입되어 갈색공의 형태로 거래되었다. 그것은 망고잎만 먹이고 마실물은 거의 주지않고 키운 암소의 오줌이었다. 1921년 인도의 노랑은 사라졌다. 노란 색소를 얻으려고 취하는 동물학대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디아엘로우는 인공적으로 합성된 색이다. 노랑처럼 눈에 잘띄는 색이 없는데도 포장디자이너들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는 노란색을 피한다. 대부분 디자이너들이 노랑을 꺼리는 이유는 노랑에 다른색을 배색한 경우 부정적인 색이 나오기 쉽기 때문이다.

 노랑만큼 불안정하게 보이는 색도 없다. 노랑은 다른 어떤 색보다 곁에 있는 색에 의존한다. 노랑은 곁에 흰색이 있으면 빛나고 검정색이 있으면 추근댄다. 노랑은 낙관주의자색이다. 하지만 또 분노와 거짓, 질투의 색이다. 노랑은 깨달음과 이성의 색이기도 하면서 또 멸시받는자와 배반자의 색이다.

1) 징기스칸은 징기스탄의 '칸'은 한汗이라고 쓰는데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직함중에는 이와 비슷한 간이라는 것들이 있었다.(각간, 마립간 등등). 몽고의  '아보기' 와 우리나라의 '아버지' 인디언들의 '아파치'는 분명 연결성을 보여준다.

2) 피버. 비렌 저/김화중 역《색채심리》p.62,동국출판사,2003, 서울, 참조

 

녹색1-식물의 색설문조사에 응한 남자의 16%, 여자의 15%가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녹색을 꼽았다. 녹색은 특히 나이든 남자들이 좋아하는 색이다. 25세 미만의 12% 만이 녹색을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선택했지만 50세 이상의 남자는20%가 녹색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라고 대답했다. 나이든 삶들은 회색처럼 탁한 색을 싫어하고 젊음을 상징하는 색을 선호한다. 하지만 녹색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체적으로 남자의6%,여자의 7%가 연령과 무관하게 녹색을 가장 싫어하는 색으로 꼽았다. 녹색은 단순한 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녹색은 자연의 정수, 이데올로기, 삶의 양식이다. 녹색은 환경의식, 자연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동시에 기술사회에 대한 거부를 나타낸다. 녹색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군복과 유리병에 쓰이는 진하고 탁한 녹색을 '전형적인 녹색'이라고 대답했다. 반면 녹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신록의 녹색과 에메랄드의 녹색빛 바다를 '전형적인 녹색'으로 보았다.

그린은 뛰어난 균형과 조화를 상징하는 빛깔이다. 또한 자기가 있는 장소의360도를 둘러볼 수 있는 파노라마적인 시야도 있다. 이 빛깔의 플러스 성질이 표현될 경우 자연을 사랑하고 내츄럴한 조화를 지키는 사람이 된다. 풀, 나무, 산과 바다가 도시인에게 포근함을 주듯이 그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사람들이 편안해지고 안심할 수 있도록 인간관계가 부드러운 조화를 가져온다. 또 사람들과 잘 지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걸 가장 싫어해서 항상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여행과 모험을 좋아하고 자유분방하며 사리사욕에 구속되지 않고 사람들을 잘 돌봐주며 정시적인 호기심도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린은  자신의 감정이나 지식을 타인에게 잘 전달하며 ,매사를 모든 측면에서 균형있게 보는 능력도 뛰어나다. 자기가 가야할 길이 분명하기 때문에 한번 결단을 내리면 그 결단을 밀고 나가는 의지가 있으며, 진리를 탐구하고 넓은 시야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고자 긍정적으로 노력한다. 관대하고 매사에 여유를 가진사람이다. 이 녹색의 부정적인 성질이 표현될 경우에는 질투와 배신을 의미한다. 질투가 지나쳐 타인의 공간을 욕심내거나 남의 것을 항상 탐낸다. 또 자신의 감정을 너무 억누른 나머지 어중간한 발언과 태도를 취하며 책임을 회비피하고 나아가서는 감정과 정서결핍 상태가 될 수 있다. 육체적으로는 심장과 간, 암이나 종양 등 세포문제에 주의하여야한다.

이 색상은 전체적으로 공격적인 인간, 확신에 찬 인간, 즉 '옳은일을 하면 두려울게 없다' 라는 모토대로 고정된 자존심을 소유한 인간을 떠올리게 하고 나아가 이 색상의 완벽함은 자존심과 도덕적인 명망을 대변한다. 이밖에 명예와 가치로서의 명성은 억지로 거드름을 피우는 태도로,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자만으로, 또 위험스러운 기세당당으로 위장한다. 이런 사람이 갖는 명성에 대한 욕구는 곧 겉으로 드러난 명성과 상징적인 신분을 얻는데 온힘을 다한다. 다시말해서 외적으로 각광받고 찬란한 조명이 뒤따르는 ,즉 고정, 크기, 가치를 인정받는 그러한 명성을 뒤쫒는다. 그러니까 오직 초록색의 내적 고정성을 배재하는 사람은 인생의 대부분을 명예욕, 확증과 권세에 대한 절박감에 사로잡혀 산다.1)

점성술에서 녹색은 천칭자리에 속한다. 태어난 별자리가 천칭자리인 사람들은 천칭처럼 균형 잡혀있고 언제나 외교적으로 조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한가운데의 색이며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색인 녹색과 잘 어울린다.

올리브그린을 좋아하는 경우에는 올리브그린은 그린에 엘로우가 많이 들어간 빛깔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린에 엘로우의 성질이 더 많이 강조된 상태이다. 이 색의 플러스 성질이 표현되면 굉장히 강한 여성적 리더십의 자질을 가진 조화를 중시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이 가야할 길이 확실하며, 자신의 감정에 집착하는 일이 없고 타인에게 따뜻한 배려를 해 줄수가 있습니다. 마음이 넓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므로 주변에 안도감을 주며 마음으로부터 신뢰감을 얻을수 있다. 또 영적인 일에도 깊은 이해를 갖고있어서 그 지혜를 일상생활에 무리없이 살릴 수 있는 사람이며, 자기에게 깊은 집착이 없기 때문에 자기자신을 웃음소재로 만들만큼 강인함을 갖고있다. 이색의 마이너스 성질이 나타나면 항상 불평불만에 차있는 욕구불만 상태가 된다. 자기만 특별히 고통을 안고있다고 머리를 싸메거나 자학적이 되기도하는데 육체적으로는 대장 ,간, 담낭을 조심해야한다.2)

 생물학적 견지에서 본다면, 연두색은 대체로 무해무익한 색이다. 그러나 초록색 및 청록색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색이며 신경 및 근육의 긴장을 완화시킨다. 또 초록색은 심리적으로 거의 자극을 주지않는다. 따라서 이색은 앉아서 하는 작업, 주의를 집중해야 하는 일, 깊이 생각해야 하는일 등에 이상적인 작업환경을 제공해준다. 또, 청록색은 대체로 사람들의피부색과 반대되는 색이어서 청록색을 배경으로 하면 용모가 단정해보인다.3)

초록색은 가장 아늑한 색이다. 초록색에는 어떠한 방향으로서의 움직임도 없고 기쁨, 슬픔 또는 열정의 어떠한 변화도 없다. 그래서 초록색은 휴식의 효과를 낳는다. 하지만 그것은 '싫증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초록색의 하모니를 통해 그려진 그림들이 그러한 주장을 잘 입증시켜준다. 초록색은 부르조아 계층과 잘 어울린다. 그것은 '누워 움직이지 않는 건강한 살찐 암소와 유사하다.' 정신적인 가치로 볼 때 초록색은 회색과 아주가깝다. 초록색이 노란색에 가까워질 때는 '생생하고 활동적'이 된다. 반대로 파란색 쪽으로 깊어질때는 '심각하고 사색적'이 된다. 하지만 자신의 무관심과 평온은 여전히 간직한다. 음악적으로는 절대적인 초록색은 '조용하고 넉넉한 그러면서 중간정도의 저음을 담고있는 바이올린소리'에 비교될 수 있다.4)

완전한 초록색은 순수한 색상으로서 어디에서도 움직이지 않는 기쁨, 비애, 정열의 배음을 갖지않는다. 이 색상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뿐아니라, 부동의 스스로 만족하는, 사방팔방으로 제한된 요소이다.

보석중에서 가장 비싼 보석중의하나인 에머랄드가 녹색이다.

녹지대는 도시에만 있고 도시사람들만 찿는다. 숲을'녹색허파'라고 부르는 사람도 '그린벨트'를 지정하는 사람도 도시사람이다. 골프장에 번호를 붙인 그린도 문명의 산물이다.

클로버는 아직도 독일에서 토끼 먹이식물로 유익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클로버가 매우 드물고 비싼 시대가 있었다. 이때부터 독일의 일상회화에서 '아 그대는 초록색이 아홉이네'라고 놀라서 외칠 때 사용하는 관용구가 생겨났는데 네잎크로버는 본래 그것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여길만큼 아주 드물었다. 한 전설에서는 '이브가 파라다이스에서 추방될 때 아담과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으로 간직하려고 초록의 네잎크로버를 따갔다'라고 전한다.

화초를 잘가꾸는 사람에게 녹색손을 가졌다고하며 독일에서는 행운의 상징인 네잎크로버를 신년카드에 많이 그린다. 또 새해가 되면 네잎크로버 화분을 선물하곤 하는데 그것은 새해에 행운이 깃들기를 빈다는 의미이다.

녹색은 식물의 색이다. 식물의 잎속에 엽록소를 가지고있는데 이 엽록소의 색소가 바로 녹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엽록소는 녹색을 띌까? 왜 노랑색, 연두색, 파랑색, 빨강색, 주황색, 보라색, 하얀색, 검정색 등의 다양한 엽록소의 색을 가지지 않고 녹색을 가지게 되었을까?

  녹색은 우선 녹색의 빛만을 반사시키고 다른 색은 흡수한다. 그래서 녹색 이파리는 그의 보색인 빨강색을 가장 흡수하기 쉽도록 되어 있다.

   즉 색유리는 색이 아니라, 빛이다. 빨강색 색유리는 빨강빛 만을 투과시키고 그 외의 모든 색을 반사시킨다. 그러므로 빨강색의 색유리는 녹색의 색과 같다.

플리샌턴은 파란빛에 열광했지만, 그의 뒤를 따랐던 사람들은 플리샌턴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1895년에 플람마리언의 빨간빛이 식물의 성장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고했는데, 여러 가지 유리를 사용한 온실에서 식물을 배재하여 얻은 결과이다. 그는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등의 색유리와 투명한 유리를 써서 여러개의 온실을 만들고, 각 유리마다 유치한 방법으로나마 빛의 세기를 일정하게 조절하였다. 그가 얻어낸 결과에 의하면 빨간빛을 받은 식물들은 키가 컷으나 잎이 얇았던 반면 ,파란빛을 받은 식물들은 줄기가 약하고 발육도 불충분했다. 코베트가 1902년에 했던 실험에서는 ,낮 동안엔 투명한 유리를 통하여 햇빛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밤에는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 등의 인공광원으로 빛을 더 보충해주는 방법을 썼다. 이 실험을 통하여 코베트는 빨간빛이 상추의 발육에 현저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관찰했다. 프리츠 샨츠는 1918년에 행했던 실험에서 짧은 파장의 빛인 파란색보라색이 식물에게 해롭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포프는 1926년 실험에서 파란색 보라색쪽이 더 필요하다고했다. 현대의 연구는 식물이 빛을 밭는 양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위드로우박사의 실험에서 장일식물과 단일식물의 반응이 상이하다고 말했다. 장일식물의 경우에는 붉은 색에 민감하여 식물이 크게 성장했으며, 그리고 초록색 빛을 받은 식물은 성장이 저조했다.

학자들은 도마토를 키우면서 땅위에 풀이 못 자라도록 비닐을 깔았는데 여러 가지색의 비닐을 땅바닥에 깔았다. 그랬더니, 빨강색의 비닐을 깔아준 밭에 있는 토마토나무에서 가장 크고 풍성한 열매들이 열렸다.

이것은 빨강색의 선들이 열적인 에너지를 가장 많이 가지고있다는 것을 의미하나. 그래서 녹색의 잎사귀들은 그들의 광합성에 필요한 열적인 에너지를 많이 흡수하기 위하여 녹색의 엽록소를 취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무실로 사용하려고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그래서 외관상 시원해보이고, 또 보기에도 좋아라고 그늘 지게하는 망을 녹색으로 씌웠다. 그런데 사람들이 들어와 보고는 그 하우스가 검정색의 그물망으로 친 곳보다 더 덮다고 하였다. 나도 그 안에 들어가보니 실제로 녹색의 하우스가 검정색의 하우스보다도 더 더웠다. 여름에 빨강 옷을 입고 다닌 것은 보기에는 더워보일지 모르지만 훨씬 시원하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반대로 여름에 녹색 옷을 입고다니면 보기에는 시원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훨씬 더 덥다는 결론이 나온다.

  동물이나 곤충들은 그들의 몸이 적의 눈으로부터 잘띄지 않게 하려고 그들은 보호색을 띤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대부분 자연에서 살고있으므로 그들의 피부색은 대부분 녹색이 되어야 맞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동물이나 곤충들의 색이 녹색이다.

그런데 과연 이들은 보호색을 띄려고 주변의 색과 똑같은 색을 띄는 것일까? 학자들은 우리가 사물을 보는 경우에 단지 빛의 반사로해서 카메라가 이미지를 잡아내듯 그렇게 본다 라는 사실에 의문을 갖는다.  물체로부터 빛은 쏘아지고있는데, 물체로부터 빛이 반사되어나오는 것은 물체로부터 강한 빛이 쏱아져나오고 있으며 이는 다른 사물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물체가 그냥 객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체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나 다른 존재에게 주체로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있다는 것이다.

  일전에 나는 파란색의 벽지가 태음인에게 몹시 해롭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정글속에서 살아가는 이러한 생물들에게 무수히 쏱아지는 녹색은 엄청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 엄청난 녹색의 압력을 벗어나기 위해서 식물들은 녹색으로 치장한다. 그리고 동물들도 녹색으로 치장한다. 녹색은 주변으로부터 나오는 녹색의 에너지를 반사하게되므로.

일반적으로 숲은 그 주변의 온도보다도 여름철에는 5도정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에 의하면 한번 숲으로 내려 쏘아진 태양에너지는 형태만 바꿀 뿐 결코 없어지지않는다. 그래서, 숲속의 온도가 내려갔다면 이는 숲속의 잎사귀들이 그 에너지들을 흡수하여 탄소동화작용을 하여 물질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곤충들은 대부분 변온동물들이다. 그들은 태양으로부터 쪼여지는 에너지를 곧바로 체온으로 이용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녹색으로 몸을 치장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용, 악마, 괴물의 색은 무엇일가? 대부분의 사람이 가장 먼저 대답은'녹색'이다. 왜 그럴까? 녹색은 '비인간적인' 색이기 때문이다. 녹색피부는 인간의 것이 아닌 것은 물론 포유류일 수도 없다. 녹색피부는 변온동물의 피부이다. 이들은 태양에너지를 피부로부터 곧장 흡수해야만하는 것이다. 녹색피부는 사람들이 혐오하는 뱀이나 도마뱀 또는 공포를 불어넣는 용이나 동화속의 괴물을 연상시킨다. 동화속의 개구리왕자도 혐오스러운 동물이 아닌가? 현대적인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탄생시킨 괴물도 녹색이다. 화성의 외계인도 녹색난쟁이로 나온다.

우주공상영화의 경우 대개 외계인들은 도마뱀 형상의 '캡토이드;'라는 종류인데 이들의 피부도 또한 녹색이다.5) 악마가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날 때는 사냥꾼처럼 녹색옷을 입고있는 경우가 많다. 영혼의 사냥꾼이기 때문이다. 유럽인이 상상한 모든 악령은 녹색 눈을 가지고있다

 

1) 하랄드 브렘 저/김복희 역《색깔의 힘》pp.77-88, 유로서적, 2003, 서울, 참조

2) 노다 사찌코 저/손성애 역《오라소마 칼라힐링 레슨》pp.37-38, 라세, 2000, 서울

3) 파버.비렌 저/김화중 역《색채심리》p.320, 동국출판사, 2003, 서울

4)  칸딘스키《회화의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참조

5) 우주에는 인간하고 형상이 똑같은 인간의 조상들인 휴머노이드계의 우주인과 공룡의 조상이라고할 수 있는 도마뱀형상의 캐토이드계의 우주인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녹색2-조화의 색

"소나무가 발산하는 약간 이끼낀 바위색의 냄새는 태양밑에서 매우 강렬하지요. 이곳 목초지에서 매일 아침 느껴지는 시원스러운 초록의 냄새를 자갈이나 생 빅투아르 산의 대리석 냄새와 결합시키지않으면 안됩니다. 마는...... 그것을 표현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시인조와상 가스케가 전하는 세잔의 말에는 그가 그림속에서 초록색을 다른 요소와 조화시키려고 고심했던 흔적을 였볼 수 있다.

이와같은 초록색의 세계는 세잔의 성격에서 기인한것이지도 모른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전 팔레트 위에 미묘한 단계의 구별되는 색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 결과 그는 혼탁하지 않은 화면을 만들 수 있었다. 더욱이 "세잔은 하나의 붓에서부터 다음의 붓으로 옮기기까지 20분이나 걸려다고 한다. "

그렇지만 세잔의 표현이 전부 온화했던 것은 아니다. 젊었을때부터 아버지와의 갈등, 부인과의 불화로 괴로움을 겪었으며, 화가로서의 성공은 만년이 되어서도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고, 오로지 자신만을 믿고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조용하게 보이는 초록색의 배후에는 확고한 그의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세잔은 인생의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 노력의 성과가 이론적으로 정당하다고 스스로 느낄때까지 ,침묵속에서 작업하고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는 "색조 관계가 정확히 결정되어있으면 조화는 스스로 완성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그 성과의 하나가 무엇보다 '조화'였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자연이 보여주는 온화함과 존재감의 조화에서 보듯이 세잔의 회화관이야말로 변용이 풍부한 초록색을 사용한 것이다. 1)

엤날에는 초록색을 물을 대표하는 색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마네 이전에는 모든 바다는 녹색으로 그려졌다. 회색빛을 띤 녹색은 허위와 기만을 의미한다. 그러나 연한고 선명한 녹색은 동정과 연민을 의미한다.

초록빛에는 혈압을 낮춰주는 작용이 있다고 한다. 또 이빛은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서 안정제나 최면제로 작용하기 때문에 신경과민, 극도의 피로, 신경통, 두통, 초조감, 신경성불안감 및 탄환충격(가까이에서 폭발한 폭탄 때문에 일어나는 기억력, 시각 따위의 상실증 :역주)등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된다. 화를 잘내는 사람과 신경질적인 사람 다혈질인 사람에게는 초록색이나 파란색이 필요하다.

초록색은 물고기의 눈에 가장 밝게 보인다. 물고기는 빨간색을 피하거나 굉장히 좋아하는데 광선이 물을 통과하는 동안 빨간색은 물에 바로 흡수되어버리기 때문에 물고기에게 빨간색은 그리 흔치않은 경험이다. 초록색이나 파란색 빛을 받을 때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사무실이나 공장 등과 같이 일상적이거나 단조로운 일을 하는 장소에 적합하다. 초록색과 파란색은 혈압을 떨어뜨리지만 나중에는 혈압을 상승시킨다.

 뉴우톤은 17세기에 무지개의 색을 7음계와 연관시키기도 했다. 그는 빨간색은 도에, 주황색은 레, 노란색은 미, 초록색은 파, 파란색은 솔, 남색은 라, 보라색은 시에 연관시켰다. 초록색은 질투를 나타내는 색이다. 또 그리너라는 말은 풋내기직공을 의미하고 그린 혼즈는 시골에서 갓올라온 촌뜨기를 의미한다. 초록색은 6각형이나 20면체를 연상시키는 색이다. 이색의 느낌은 신선하고 부드러운데, 그 이유는 이 색이 눈에 초점을 명확하게 하지않으므로 모난 느낌을 그리 많이 주지않기 때문이다.2)

지구의도처에서 기아현상이 나타났을 때 ,사하라 남쪽지역 한발은 이 부근의전지역을 황폐한 사막으로 만들어서 거대한 '기아행진' 즉 대 민족이동(4-6세기 게르만 민족이동)을 초래했다. 이 역사적 지식을 통해 우리는 지구에서 신선한 초록색이 계속적으로 새롭게 싹틀때에야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정치계에서도 모든 정당이 앞다투어 '녹색'을 장려한다고 적극 나서고 그린피스는 널리 확산 되어가는 환경파괴와 투쟁한다. 그리고 일류예술가들은 녹색 장려사업에 적극참여한다. 초록색이 신선한 식물의 성장 , 식물과의 관계, 또 서로의 결합에서 오는 풍작을 기대하고 있었다. 수많은 의례와 제사의식의 상징은 이러한 관계를 반영해 주고있었다. 예를 들어 고대 팔레스티나에서 결혼식 때 신부는 초록색 드레스를 입었다.

모권시대에는 파란색과 마찬가지로 초록색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철저하게 달의 주기에 맞추어서 살던 동양에서는 초록색을 달의 색깔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들에게 달은 물(밀물썰물)과 식물성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는데 신기하게도 여성의 월경주기와도 달의 순환과 동일한 것이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달, 물, 식물의 성장은 밀접하게 관계되어있다고 믿고 초록색을 통해서 분명한 사랑원칙을 세웠다. 점성술에서는 초록색을 바다의 처녀 또는 사랑의 유성과 동등하다고 여겼다.

그리스에서는 이 두 힘이 거품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와 포세이돈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비너스, 그러니까 여기서는 여성적인 미와 조화, 사랑, 사랑과 관계 있는 모든 것의 상징으로관주했다. 이슬람에서 예언자 모하메드는 '희망의원칙'을 그의 초록색 예복을 통해서 체현했고 초록색의 기치를 앞세워 신성전쟁을 주도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초록색은 봄의 색상으로서 부활과 영생을 기원하는 희망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지상에서 신의 자비가 함께하는  파라다이스를 갈망하는 꿈의 색상이기도 하다. 그 어떤달보다 오월은 봄의 소생이자 여름을 준비하는 기쁨을 나타내는'초록색의 달'이다. 이미 중세기에 지어진 '초록색'연가에서처럼' 기쁨의 달'인 오월에 종종 새싹과 같은 사랑이 피어오른다.

초록색의 상징적 언어로는 '그는 나한테 초록색이 아니야' 라는 뜻은 보통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가르킨다.이교도시대에는 자작나무아래에서 신성하게 논밭, 가축, 인간의 다산을 기원하는 제물의식을 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높이 쌓은 각양각색의 띠로 장식한 자작나무를 남근의 상징으로 여겼다.

서양에서 녹색의 시간은 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경제적 문화적 번영기를 뜻한다. 일생을 통해 아무것도 이룩하지 못한 사람은 '녹색가지를 한번도 손에 잡아보지 못한 사람'이다.

중국에서는 녹색장식석인 옥을 가장 아름다운 돌로 꼽는다. 옥은 특별히 생산을 상징한다. 중국의 상징학에 따르면 옥은 하늘에 사는 용의정자로 남성적인 천상 생명력의 진수이다.  1997년 홍콩에서 가장 비싼 옥 장신구를 판매한 기록을1500마르크로 팔렸다. 아시아 경매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그 장신구는 스물일곱개의 옥구슬로 만든 짧은 목걸이였다. 영국에서는 그린미트라는 말까지 쓰는데 이는 고기의 색이 녹색이라는 뜻이 아니라, 신선한 고기라는 뜻이다. 그린머신은 공장에서 막나온 기계다. '녹색결혼'이란 말도 혼인관계가 아직 뿌리내리지 않은 결혼의 첫날을 의미한다.

감정도 발전하고 자란다. 중세문학에서는 녹색은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색이다. 중세문학에서 사랑의 화신이었던 여인 민네는 녹색드레스를 입고있었다. 괴테와 함께 독일고전주의를 완성했던 대문호 프리드리히 실러는 막 싹튼 사랑을 우리의 관계는 아직녹색이네"라고 표현했다. 밝은 녹색으로 수놓은 모자는 언제나 처녀를 위한 모자였다.

녹색편은 왼쪽으로 심장이 있는쪽이다. 로마인에게는 녹색은 비너스의 색이다. 비너스는 정원과 야채, 포도밭의 여신이다. 비너스는 황소자리에 속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점성술사들은 녹색을 황소자리와 연결시킨다. 황소자리는 4월과 5월에 태어난 사람들로 봄색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녹색은 마호메트가 가장 좋아했던 색이다. 마호메트는 녹색외투에 녹색터반을 둘렀다. 이슬람의 가장 귀중한 성물은 '잔드샤크 이 세리프', 즉 성스러운 깃발이다. 그 깃발은 녹색이며 황금수가 놓아져있다. 마호메트는-코란에 적혀있듯이-신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산사람은 후에 감각적인 즐거움이 가득찬 천국, 아름다운 자연의 낙원, 꽃피는 초원, 그늘진 숲, 영원한 오아시스를 상으로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천국이 녹색세상이라는 사상은 사막의민족에게 환영받게 마련이다. 사막한 가운데서 녹색은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녹색은 물질적 정신적 풍요를 뜻한다.

고대 이집트도 녹색은 남성적인 색이었다. 이집트의 신 오시리스는 피부가 녹색이다. 그는 생명의 신인 동시에 죽음의 신이었다. 영원한 회귀를 믿는 종교들에게는 생명과 죽음이 모순이 아니었다. 오시리스의 또 다른 이름은 '또 다른 녹색'이었다. 성령의 색은 녹색이다. 성령은 하얀비둘기로 그려지기도하며 이때배경은 주로 녹색을 사용했다.

1) 스에가나 타미오 저/박필임 역《색채심리》pp.58-64, 예경, 2001,서울, 참조

2) 파버.비렌 저/김화중 역《색채심리》 동국출판사, 2003, 서울

 

녹색-독녹색

옛날에 다도는 일본인이 느끼는 최고의 정신세계를 느끼는 방법이었다.

리큐는 젊어서부터 무척 재능이 뛰어났었다고 전하는데, 그에 대한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그는 15-16세에 스승 죠오와 만났다. 소년 리큐에게 죠오는 청소를 끝낸 마당을 가르키며"청소를 하거라"고 명한다. .이에 리큐는 한 구르의 나무에 다가가 나무를 흔들어서 초록의 잎을 떨어뜨린후"청소를 다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와같이 정리되어 완결된 것에 어지러움을 가미하고 구조를 붕괴시키는 것에 리큐의 의미가 있다.

다도의 극치의 정신은 '마시기 좋게 젖고, 숯은 물을 끓이도록 놓고, 꽃은 그 꽃에 어울리게 꽃고, 라는 표현을 통해서 알수있듯이 , 바람부는 그대로 활을 그리고, 그것에 따라서 더욱 부드럽게 살아가는 대나무 숲을 닮은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에 떠있는 이야기인데 재미있어서 퍼왔다. 사람들은 모두 카멜레온이 자기를 숨기기 위해 색깔을 바꾼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지난번에 주장한 내용과 비슷하다.-나는 과도한 정보색채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색을 변한다고 말했다.)

 

카멜레온은 기분에 따라 색을 바꾼다.

기분이 좋거나,

화가 나거나,

겁이 나거나,

빛이 아주 많거나,

춥거나에 따라..

 

그러면 카멜레온의 기본색은 무엇일까? 그러니까 카멜레온 어떤색으로 가장 많이 관찰될까? 역시 초록색일 것이다. 카멜레온도 또한 파충류로서 태양빛을 받아서 곧바로 체온으로 사용해야하기 때문이다.

 

녹색이 넘쳐나는 북 유럽에는 녹색에 대한 경험이 사막과는 전혀 다르다. 녹색이 아무리 무성해도 부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며 생존에도 도움이 안된다. 녹색이 일상적인 곳에서 이색은 악마의 색이 되기도 한다. 일상적이며 부정적인 의미의 녹색은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여성적인 특성을 갖는다.  '녹색주둥이'는 잘난척하는 젊은이를 말한다. '녹색뿔'은 어린염소의 뿔에 녹색이 감도는데서 나오는 말로 신참내기를 가르킨다. 이와 반대로 초록이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신출내기, 풋내기, 같은 단어들이다. 파라다이스에서 음식으로는 처음 먹은 사과 때문에 추방되었다. 이들은 음식이라기보다는 인식의 나무를 먹었기에 나체가 된 것을 부끄러워했다.

'내눈이 녹색으로보이냐?'고 물으면 '나를 바보취급하니?'라는 뜻이다.

기독교의 교리에 따르면 녹색뱀과 이브로 인하여 세상에 악이 생겨났다.

프로라는 로마인이 섬겼던 꽃과 식물의 여신이다. 실비아는 라틴어로 '숲'을 가르킨다. 고대독일어의 비타,인데, 린다는 보리수나무이다.  '올리비아'는 올리브나무이다. 라틴어' 라우렌치아'라우라, 그리스어의 디프네도 월계수나무에서 나온 이름이다. 프랑스어의 클로네는 신록의 녹색, 염소와 같은 밝은 녹색이다. 에스메랄다는 에메랄드녹색이다. 남자이름도 많다. 라우르스, 라우린, 로렌츠, 라르스가 있다. 플로라의 남성형인 플로리나도 인기가 있는 이름이다. '이브'는 주목에서 나온 이름이다. 바이트, 비투스, 비토,는 고대의 고지독일어인 비투,즉 숲에서 나온 이름이다.

녹색은 독의 색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녹색은 건강의 색이기도하다. 녹색이 독의색이된 것은 예술물감때문 이었다. 고대부터 알려진 '빛나는 녹색'은 구리조각을 초에 넣어 만들었다. 구리조각을 초에 담가두면 구리조각에 녹색 녹이 생긴다. 이녹을 끍어내어 풀이나 계란노른자, 기름등의 접착제와 섞으면 호가들이 물감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해서 얻은 녹색은 --오래된 동판지붕에서 볼 수 있지만--색이 진했다. 이색은 '구리녹색'이라고 부르며 독성을 지녔다. 1814년 독일의 슈바인푸르트에 있는 한 염료공장에서 구리조각을 비소에 용해시켜서 더 진한 녹색을 생산해내는데 성공했다. 이 새로운 녹색에는 '수바인푸르트의 녹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슈바인푸르트의 녹색' '황제의 녹색' '파리의 녹색' '라이프치히의 녹색', '스위스의 녹색' 등 대부분의 경우 생산지에 따라 여러 가지이름으로 시장에서 거래되었다.

비소는 가장 강력한 독이다. 녹색의 독은 습기만 있으면 배어져 나왔다. 비소는 눈에 보이지않는 가스로 변했다. 녹색은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했던 색으로 그의 운명을 결정하였다. 그가 유배된 세인트헬레나 섬은 온통 녹색으로 꾸며졌다. 얼마전 프랑스화학자들은 나폴레옹의 시체를 분석했다. 1821년 5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나폴레옹이 자연사인지 확인하기위해서였다. 분석결과 , 나폴레옹의 머리카락과 손톱에서 다량의 비소가 검출되엇다.

.노랑과 녹색은 담즙의 색, 영원한 노여움의 색이다. 영국에서는 녹색을 시기심과 밀접하게 관련된 색이라고 생각했다. 녹색눈길은 시기심에 가득한 눈길이다. 녹색은 문명의 경계선이다. 이슬람에서는 악과 녹색의 결합을 상상할수도 없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인은 용을 사악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용은 황제며 봄과 생산의 상징이다. 반대로 프랑스에서는 녹색은 불행의 색이다. 녹색자동차는 타지 않는다. '나는 녹색이다' 라는 말은 무척 화가 났다는 말이다. 독일에서도 녹색은 격한 분노의색이다.

녹색은 변절의색이었다.

레오나르도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도 녹색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보아 그녀는 귀족이 아니다. 녹색은 시민의색이다. 괴테는 상인과 수공업자, 피고용인이 유용하듯이 녹색도 유용한 색이라고 하였다. 파랑은 노동자의 색이다. 괴테는 파랑을 천하고 상스러운색이라 하였다. 시민과 노동자는 사회적 관계를 맺을수도 있고 혼인도 가능했지만 시민의 입장에서는 노동자와 혼인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고 따라서 노동자와 언제나 거리를 취하며 서로간의 신분차이를 강조했다. 그래서 녹색과 파랑이 다투며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당시에는 '녹색과 파랑을 한 옷은 돼지나 입는다."

텔레비젼이 없던 시대에 카드놀이탁자는 부유한 시민의 살림살이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목이었다. 사람들이 모여앉아 카드놀이나 주사위던지기놀이를 즐겼던 탁자는 녹색 펠트천으로 씌어져 있었다. 녹색은 눈에 편안한 색이었고 카드나 주사위와도 좋은 대조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당구대도 전통적으로 녹색팰트로씌었다. 이민자들이 갈망하는 '그린카드'는 미국입구에 녹색 등을 켜주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미국에서 아무제한없이 체류할 수 있고 일할수있는 권리를 뜻한다. 수술복이 녹색인 것도 기능적인 이유 때문이다. 외과의사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능도 있지만 녹색 옷에 피가묻으면 갈색으로 보이지 때문에 사람을 놀라게 하는효과가 약화된다는 장점이있다. 녹색은 빨강의 보색이다. 상처처럼 빨간 것을 오랫동안 집중해서 바라본 다음에 하얀 옷을 쳐다보면 녹색 잔영이 보이는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녹색 수술복을 보면 녹색 잔영은 눈에 띄지 않는다.

 

검정1- 태초의 검정

 

'검다'란 단어의 어원은 아마도 땅신(지신)을 의미하는 '감'으로부터 나온 듯 싶다. '감'이 '검'으로 진화가 된 듯하다. 즉 하늘의 색인 흰색과 땅의 색인 검정으로부터 모든 물질인 오방색이 나온다. 그런데 오방색인 흰색, 검정, 빨강, 노랑, 파랑(녹색)에서의 흰색과 검정은, 수묵화에서 보이는 흰색과 검정과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오방색은 물질로서의 색을 말하는것이고,

음양에서 말하는 즉 수묵화에서 말하는 검정색인 묵색은 바로 음양의 빛을 말한다.

즉 태극의 표현이 바로 흑백의 세계다. 태극은 음과 양이 서로에게 침투되어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계속하여 변한다. 마치 지구에 태양의 빛이 내리쬐면 지구의 반쪽은 낮이고 반쪽은 밤이 된다. 이 낮과밤은 서로 자리를 바꾸어가면서 끊임없이 변한다.

수묵화에서 보이는 흰색은 오방색에서 말하는 흰색이 아니라 흰빛을 말한다.

검정도 마찬가지다. 대립의 원초적 형태로서의 흑백에 있어서 검정색이 반드시 흰색과 반대되는 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검정도 흰빛과 동일하게 그것도 하나의 빛이다. 

융의 주장으로는

"천문학적으로"태양의 별'인 토성은 연금술적 의미에서 검정색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검정은 비밀스러운 존재로서 이중성을 갖는다. 즉 그것은 겉은 검지만 속은 희다..... 사투르니아에서 흘러나오는 밝은 물은..'가장 완전한 물이며 우주의 꽃이다'

그러니까 흑과백은 여러면에서 완전동일한 것이기도하다.  신화론적으로 볼 때 양자는 피안의색, 경계선의 색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생리학적으로 볼 때 검정색 표면은 밝기면에서나 합성면에서 흰색과 똑같이 잔존하는 빛의 일부를 반사시키기 때문이다.

노자는 검정을 '현玄'이라고 하며 이를 세상만물이 나오는 근원으로 설명한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고상무욕, 이관기묘, 상유욕, 이관기교

차양자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위현, 중묘지문

 

도는 도이지만 항상 도는 아니다. 이름은 이름이지만 항상 똑같은 이름은 아니다.

천지의 시작에는 이름이 없었고, 만물의 모태가 있고서 이름이라는게 생겼다.

고로, 항상 욕망이 없이보면 그의 묘한 것을 볼 수 있고,

항상 욕망으로보면 그 교를 볼 수 있다.

교와 묘 이두가지는 동일한 것에서 나온 두 개의 다른 이름이다.

이 동일한 것을 검을 현이라고 한다.

검고도 검은 것은 모든 묘한 것이 나오는 문이다.

 

즉 검을현이라는 것은 모든 존재가 나오는 문이다.

이는 성경에서 최초의 어둠으로부터 모든 것이 창조되는 과정도 동일하다.

'감'은 지신으로서 온갖 종류의 생명을 태어나게 한다. 노자의 '현빈'도 모든 것의 모태가 된다.

그래서 수묵화에서 사용하는 먹의색이란, 이러한 '감'또는 '현'의 색이다. 이는 색이 아니라, 흰빛인 여백과 마찬가지의 의미로,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서 그 정신성을 의미한다. 수묵화는 물질의 세계를 그리려는 것이 아닌. 그냥 정신의 세계인 것이다.

채색화가 되면, 채색화속에서의 흰색이나 검정색은 수묵화속에서의 검정색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그냥 물질계속의 하나의 상징을 드러낸다. 그냥 오방색의 하나로서, 흰색은 서쪽을 상징하고 가을을 상징하고 쇠를 상징한다든지, 검정은 북쪽, 현무, 물, 등을 상징한다든지 구체적인 현실을 드러내는 것으로 변한다.

 

고로, 항상 욕망이 없이보면 그의 묘한 것을 볼 수 있고,

항상 욕망으로보면 그 교를 볼 수 있다.

교와 묘 이두가지는 동일한 것에서 나온 두 개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수묵화란 너와나의 구별이 없는 모든 것이 혼연일체된 세계,  색즉시공 공즉시색, 자연합일, 신인합일, 혼연일체, 무아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세계이다. 모든 존재는 개별주체로 분리되면 욕망이라는 것에 의하여 작동된다. 분리란 곧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개체들이 분리된 상태에서는 이름이라는 것들이 존재한다. 개체들은 모두 욕망으로서 살아간다. 이것을 동양화에서는 채색화라고 부른다.

대립의 원초적 형태로서의 흑백에 있어서 검정색이 반드시 부정적인 역할만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검정은 건조한 법칙과 규정의 강압에 대항하는 용기를 의미 할 수 도 있고 힘과 자유를 의미할 수도 있다. 신화에 따르면 흑백은 아무탈 없이 쉽게 교체되고 함께 결합될 수 있다. 가장 검은 검정속에서 출발지점을 찾는 연금술사들은 백미를 시간적흐름의 두번째 단계로서만 인식한 것이 아니라 검정색안에도 백미가 있다고 파악했다.

 물리적으로 보면 검정이 "빛의 상실'이란 것은 말도 되지않는다. 반대로 검정색은 모든 파장을 받아들여 자신속에 머물게 하는 유일한"색"으로서 상당한 정도의 빛으로 가득차 있다.

눈의 매력은 너무도 커서 예로부터 빛을 발산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이론가들은 동공이 광선을 양방향으로 통과 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즉 눈의 내부광선은 시지각광선으로서 바깥으로 나가서 사물과 접촉하여 사물고유의 빛과 결합한 뒤 그런 방식으로 세계의 영상을 눈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사물들이 보이게끔 만드는 빛은 동시에 많은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어둠과 그늘이 없었다면 창조의 가장 고귀한 부분이 가려진 채로 남아 있었을 것이고, 태양과 함께 지평선 위에 별이 창조된 넷째 날처럼 하늘위의 별들은 보이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신앙의 가장 큰 신비는 그림자를 통해 암시된다... 생명자체는 단지 죽음의 그림자일 뿐이며 죽은뒤의 영혼은 단지 생명의 그림자만을 버릴뿐이다. 모든 사물들이 이런식의 표현속에 포섭된다. 태양자체는 단지 어두운 그림자의 영상일 뿐이며, 빛은 단지 신의그림자에 불과하다.

실제로 그림자는 빛의 감소에 의해 생성됨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존재가 진정한 듯 꾸며낸다. 이런 그림자 현상에 대하여 모든 시대의 인간들이 관심을 가졌었다. 사람들은 그림자에다 마력을 부여했고 그래서 그림자를 받는자가 선 또는 악하게 될 수도 있고 심지어 치유될 수도 있었다. 신자들은 사도 베드로가 지나는 곳에 환자들을 세워놓거나"그들을 침대 또는 들 것 위에 올려놓아서 베드로가 올 때 그의 그림자가 그들 위에 닿도록 했다." 과거에는 "그림자'가 너무도 강박적인 신비주의자에 물들어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림자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검정-흰색-빨강은 아프리카 대륙의 신성한 색들이다. 그리고 가장검은색에서 출발하여 '백미'를 거쳐 '빨간사자'의 승리에 이르는 길을 걷는 연금술적 과정의 비밀스런 영상 또한 검정-흰색-빨강과 연결된다. 아담이 검정색, 흰색, 그리고 빨강색으로 창조되었다는 지식 또한 비밀스럽다.

비록 검정이 검정-흰색-빨강의 삼원색의 모든 질서에서 흰색과 빨강옆에 동등한 것으로 서있을지라도 검정은 주로 생산적인 대지 또는 먼 세계들의 알 수 없는 어둠을 의미하는 것 같다. 무덤의 어둠 또는 탄생의 구덩이의 어둠을 생각해 보라. 그것은 아직 본래적인 검은색은 아니며 현실의 검정은 더더욱 아니다.

마하마야 불교의 신적인 악령정복자인 끔찍한 검정색 부타다마라에 대해  그는 마치 천개의 해처럼 빛난다. 검정색이 빛나는 것을 볼 수있기 위해서는 수백년간의 동아시아의 눈과 그들의 노련한 ,동시에 명상적인 검은 먹을 다루는 솜씨가 필요했다. 검정색의 특수한 집합된상태인 먹은 패쇄된 검정을 열어서 그것이 말하도록 할 수 있다. 먹은 그것이 농축되면 마치 두눈과 같은 광채로 빛난다"고 18세기 화가 충시엔은 열정적으로 말했다.

"먹을 마른붓으로 칠하면 기이하게 혼란스러운 효과를 내며 무수한 유희종류를 펼쳐보인다. 琉??물기있는 붓을 쓰면 먹은 색이 되어 빛남이 떨어진다. 그런 다음 그것은 가을 연못처럼 맑고 봄산처럼 빛을 발하며 아침 꽃처럼 화사하게된다.

선(仙)화가에게는 바로 무엇보다도 검정먹이 "맑으며 광채를 내는 것이다." 먹 속에는 기만적이고 수다스러운 색이 절제되고 있고 추방되는 동시에 지양되어있다."먹을 다루는 자는 다섯가지 색을 지배한다. "검정색은 깨닫는 자를 과거의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모든 회화적 요소처럼 색을 다루는 일은 배울 수 있으나"먹'은 그렇지 않다. 먹은 직접 가슴으로부터 흐른다. 먹에서 현자를 나타낸다. 선에 있어서 가장 심오하고 완전한 검정은 모든 대립의 부정 그러니까 절대적 긍정과 최고의 자유를 의미한다. 피에르 슬라쥬는 마치 수백년을 초월하여 중국의 수묵화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태도로 자신의 검정색 그림에 대해 설명한다.

선분의 대화성을 포기함은 (감각적 특성 때문이 아닌 정신적 특성 때문에 선택된) 색의 대화성의 포기에 해당된다. 가장 밝은 태양빛조차도 이슬람과 기독교신비가에게는 단지 진정한 빛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해가 꺼진뒤의 어둠이 아니라, 창조 이전의 어둠이다. 즉,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세계의 정신적인 씨앗들로 채워진 빛 그것은 빛 이전의 빛이고 원초적상태의 창조성이다.

검정은 '공간'도 아니고 '공허'도 아닌 '무'인 동시에 '모든 것'이다.

죽은 검정과 빛나는 검정의 차이는 그 어느곳에서도 페르시아의 수피즘에서 만큼 고도로 발달되고 철저하게 경험되지는 못했다. 신비가에게 '낮은 단계"의 검정은 한편으로는 그 안에 빛이 갇혀있는 검정색 물질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악을 명령하고' 신적인 빛을 거부하는 저급한 영혼을 나타낸다. 수피가 낮은 단계의 검정에서 해방되면 그는 신비적인 여행을 시작한다. 성숙되기까지 여섯가지의 골짜기를 방황하고 나면 일곱 번째 골짜기에 닿게되는데 ,그곳이 검정색이다. 몇몇의 수피에게 검정색은 최고의 정신적 단계, 빛 중의 빛 그리고 신의 순수한 본질을 의미한다. 빛나는 검정곁에 아무 준비없이 접근하는 자는 눈이 멀기때문에 7만개의 물들인 천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이 검정은 기다리지 않으며 정지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달려들고 확장되면서 우주를 채운다.. 그리고 정화되지 않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결국 파괴까지도 소멸시킨다. 검정은 모든 가시적인 것의 근원으로서 볼 수 있게끔 해주는것이기 때문에 검정자신은 불가시적인 채로 남아 있어야 한다. 절대적인 주체는 관찰당하는 객체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각이 가능해지는 것은 정신적인 발전단계에 달려있다. '신적인 본질의 빛, 검정을 너는 보는가? 생명수는 바로 이 어둠 속에 들어있다." 종말과 시작, 검정색 죽음과 신적인 빛의색, 세계의 쪼개진 틈에서 우리를 엿보는 검정색 혼돈, 이것들은 해소 불가능한 이질성 때문에 우리를 혼란시킨다..

여러가지형태의 '하얀 여신'은 "시간의 첫번째 자식"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결코 이해할 수 없고 파악할 수 없는 '검정'은 "시간'은 하얀여신보다 앞서서 존재했었음에 틀림없다. 원래시간은 최고신의 현현으로 간주되며 ,모든 존재 속을 꿰뚫고 흐르며 생명의 시간과 운명을 규정하는 생명의강으로 간주된다. 생명과 죽음과 새로운 시작이 있는 이러한 힘이 있는 영역은 다름 아닌검정, 즉 신의 가장 어두운 광선일 수밖에 없다. "가장 검은 검정"속에서 연금술도 시작되었다. 연금술의 최고목표 즉"현자의 돌",변모되고 정신화 된 원초적 물질, 파라다이스의 빛 등 그것은 여러 가지 이름을 달고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순환이 괴도를 달았다. 그것은 출발점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에도 검정색이라고 불리었다.

동양화의 수묵화중에서도 유독 사군자는 항상 문인화들이 즐겨 그리는 주제이면서도, 오로지 색상이 없이 검정색 하나만으로만 그려져온 것은 몹시도 중요하다. 물론 이 검정색인 먹빛은 현상의 세계에서 말하는 검정색이 아니라, 물질이 생겨나기 이전의 근원으로서의 음양의 세계 즉 정신의 세계의 한 축을 말한다. 태극문양이 음양이 서로 겹치고 변해가는 모습을 표현하듯이 흰빛과 검은빛은 꼭 구별지어 말 할 필요가 없다. 사군자의 먹빛은 흰빛과 마찬가지로 그 것의 신성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동양의 경전에는 태초에는 무였다. 무에서 모든 것이 생겼다고 가르친다. 인류의 태초에는 혼란, 어두움, 빛의 부재와 같은 절대적인 무가 지배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것은 오직 자연의 힘이었다. 다시 말해서 자연의 힘에서 빛의 생성, 조명, 생명을 끊임없이 거친 후에야 거룩한 아침을 맞는다. 다시 말해서 끊임없는 빛과 어두움, 삶과 죽음이 서로 투쟁하고 교차하고 순환을 이룬다. 자연의 섭리에서 하나라는 것이 반쪽의 의미로서 또 다른 반쪽을 만나 하나가될 때 비로소 완전한 전체속에, 즉 둘은 함께 전체 속에 포함되나. 이는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음과 양의 결합과 같은 이치이지만 이러한 세계상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기초를 이룬다. 그러니까 종교들은 외형적으로는 다양하지만 모두가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두고 관찰하는 이원론을 펴는 것은 동일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탄은 인간에게 빛을 가져다주고 다시 빛을 소멸시켜버리는 존재였다. 이후 악마의 화신은 절대적인 신, 하느님의 적대자로서 사악하고 어두운 존재가 되었다. 악마는 세상의 나쁜짓, 육체의 본능, 인간의 노동을 자신의 소유로 삼아서 변화시킬 수 있는 사악한 욕망의 실체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하늘에 살고 악마는 지옥에서 산다. '지옥'이라는 말은 죽음의 여신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한다. 이의 원천은 따지고 보면 인류의 어머니인 '이부'이다. 악마는 악과 그의 모든 애매모호한 형체를 지닌 욕망을 표출하는 능동적인 유혹자로서 묘사된다. 그래서 악마를 대신하는 검은색은 종종 붉은 색과 동격화된다. 악마는 여러 종교에서 주신과 대적하는 적대자이다. 이집트는 밝고 생생한 창조적인 신을 '프타'라고 했고, 저승의신을 ' 카'라고 했다. 신으로 추대되는 '오시리스'와 검은악마 '이시스' 역시 이승과 저승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의 구조, 지각과 질서을 상징했다.

흰두교의 시바는 최고의 신이며 시바의 아내인 '칼리'는 악마의 여신이었다. 즉 "검은 칼리"였다. 오늘날의 집시는 마리아와 더불어 세상의 수호천신녀인 '검은 사라-아브라함의 처)를 매년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역에 있는 '래 생트 마리 댈라 매어"에서 최고의 성녀로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있다. 이와 비교할 수 있는 성녀숭배의식은 부활절의 '검은 마돈나'등이 있다. 검은색과 흰색에 대한 논쟁은 전 인류사의 모든 종교적인 기대, 상상, 시각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서양의 체스놀이에서 동양의 바둑에서 흰색과 검은색은 서로 밀고 밀리는 싸움을 한다. 이 두가지 색상의 표적놀이를 널뛰기나 다른 놀이에서도 발견 할 수가 있다. 널뛰기는 구석기시대이래 잘 알려진 목동의 놀이였다. 한쪽은 흰옷, 한쪽은 검은옷을 입고 놀이를 즐긴다. 인간의 내면은 항상 흰색과 검정색의 싸움이며 어느쪽이든 정당한 선택을 위해 내면 깊숙히에서 투쟁한다. 마찬가지로 악령, 미술사, 요정, 운명의 신, 난쟁이, 빛과 어둠의신 역시 불후의 투쟁속에서 만난다.

 

검정2-부정의 색 

 

검정은 남자와 여자의 10%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며 연령별로는 선호도의 차이가 가장 크다. 검정만큼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색은 없다. 14-25세의 남자 20%가 검정을 가장 좋아하는색으로 선택했지만 26-49세의 남자는 9%만이 검정을 선택했다. 또 50세 이상의 남자는 아무도 검정을 택하지 않았다. 여자도 연령에 따라 검정에 대한 선호에 큰 차이를 보였다. 젊은 여자들은 15%가 검정을 좋아하는 색이라고 대답했지만 50세 이상에서는 6%만이 여기에 해당된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검은 이름이 인기가 있다. '검은 여자'를 뜻하는 그리스이름은 '멜라니", 영어 이름은 '파멜라', 이탈리아 이름은 '모레나', 페르시아이름은 '라일라'이다. 흑인을 뜻하는 라틴어 '마우리티우스'에서 나온 프랑스이름 '모리스' 독일이름'모리츠'도 인기있는 이름이다.

검은 상복을 입는 것은 검은 악령을 쫒아버린다거나 상복을 입은 사람을 데려가지 못하게하는데 있었다. 기독교에서 검정은 죽음에 대한 슬픔, 회색은 최후의 심판, 흰색은 부활을 상징한다. 그래서 죽은자를 애도하는 사람은 검은 상복을 입지만 죽은자에게는 부활을 위해 하얀 수의를 입힌다. 죄인을 데려가기 위해 지옥에서 온 죽음은 검은 외투를 두르고 있지만 신이 보낸 죽음은 하얀 옷을 입고 있다. 상복이 흰색인 문화권도 많이있다. 하지만 그때의 흰색은 흰색이 아니라 색의 부재를 뜻한다.  상복의 색이 검정색인가 흰색인가는 종교적 관념에 따라 달라진다.
 


사후의 세게에 초점이 맞췄던 초기기독교인들은 장례식에 하얀옷을 입었는데 그들에게 죽음은 부활의 축제였다. 불교처럼 죽음을 완성으로 나아가는 길로 이해하는 종교에서도 상복은 검정이 아니라 흰색이다. 고대이집트에서는 노란 상복을 입었는데 그들에게는 노랑은 영원을 상징했다. 하얀 상복을 입는 민족에게는 대개 검정이 다산의 상징이다. 다신이 검정이면 죽음은 흰색일수밖에 없다. 전세계적으로 종교적 사고가 힘을 잃어가면서 상복의색이 검정으로 통일되고 있다. 예전에 여왕은 하얀 상복을 입어 검정 상복을 입는 평범한 이들과 자신을 구분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옛지배자의 색인 보라색 상복을 입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모두 검정과 관련된다. 그리스어로 검정은 '멜라스' 노랑은 '클뢰', 이 둘을 합치면 '멜랑콜리'가된다. 예전에는 맬랑콜리한 사람의 피는 검정색이라고 믿었다.

연금술은 원래 '검은 예술이다'.'연금술'의 아랍어로 검정을 뜻한다. 검은 마법은 악마의 힘을 불러낸다. 검은 미사는 악의도움을 믿고 기원했던 자들이 올렸던 숭배의식이다.

검정의 별자리는 토성이 수호성인 염소자리이고 여기에 속하는 보석은 다이아몬드이다. 다이아몬드가 순수 탄소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옷깃이 까맣다고하면 더럽다는 뜻이다. 손이나 발, 귀가 까매도 더럽다는 뜻이다. '남의 것은 손톱 밑에 검정도 못 참는다'는 말은 남이 가진 것은 똥도 시기한다. 라는 뜻이다. 언어의 의미전이 현상은 검정을 '악한 것'의 동의어로 만든다. '남에게 흑칠한다'는 남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한다. 영어의'블랙메일'은 검은 편지는 협박이란뜻으로 사용된다. 프랑스의 검은 동물은 무서운 악령을 뜻한다. 검은박쥐의 날개가 악마를 표현하는 옛상징이다. 못된 사람은 검은 양이라고 한다. 검정은 사물의 특성을 가장 나쁘게 이야기하는 표현이다.

검은날에는 불행한 일이 생긴다. 주식거래소는 '검은 날'에 휴장하곤 한다. '검은날'이었던 1869년 9월 24일, 미국의 금시장이 와해되었다. 검은 금요일이었던 1929년 10월25일에는 모든 주식이 폭락했고 신용으로 주식을 샀던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평생 값아야 할 부채를 걸머지게되었다. 독일의 검은 금요일은 1927년 5월 13일이었다. 그날 추락한 주가는 몇 년이 걸려도 회복되지 못했고 많은 주식들은 그날 잃은 손실을 회복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야했다. 언어학자들은 '검은 금요일'을 20세기의 100가지단어명단에 올려놓기까지 했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검은 고양이를 두려워한다. 검은 고양이가 왼쪽에서 나와 앞을 가로질러가면 특히 기분 나쁜 일이 생긴다고 믿는다. 예전에는 암소나 늙은 여자도 다가올 불행을 말해주는 징표였다. 까만 까마귀도 불행의 화신이다. 불행이 연이어 오듯이 새까만 아스팔트의 끈끈한 역청도 길게 늘어지며 잘 떨어지지 않는다.

검정은 금지된 일, 하지만 은밀히 벌어지는 일을 가르킨다. 독일어의 '검은 노동'과 '검은 거래'는 형사처벌대상이며 '검은 돈'은 탈세해서 번돈을 뜻하나. 세금을 내지 않은 밀주는 '검게 주조된 술'이다. 검은 청취자와 검은 관객, 검은 승객도 요금을 내지 않은 사람들이다.

검정-빨강-갈색은 폭력과 잔혹성의 색조이다. 1919년 이탈리아에서 검정은 파시스트운동의 색으로 처음 등장했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들은 '무모한자'를 자처하며 사회주의 운동의 파괴를 목표로 삼았으며 검은 셔츠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다. 1933년 영국과 네덜란드의 파시스트들도 검은 셔츠를 입었다. 이탈리아, 영국, 아이랜드에서 '검은자'는 파시스트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농민들은 밭에서 일할 때 검은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었으며 교회에 갈 때에는 하얀셔츠에 검은 양복을 입었다. 그러므로 누구나 검정의복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파시즘정당모임에 나갈 때에는 일요일에는 입는 검은 양복에 일할 때 입는 검은 셔츠를 입으면 되었다.

파시즘은 엘리트 의식을 강하게 내세웠지만 대중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해 표면적으로나 프롤레타리아 적인 면을 표방할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검정의 동질화 효과를 이용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구성원임을 띄게 해주었다. 검은 제복은 또 조직의 규모가 방대하다는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검정은 위대함의 색이며 남성적인 색이기에 이런 맥락에서도 파시즘의 이념에 부합했다.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권력을 쟁취하려는 정치조직은 죽음의 상징색을 이용하는데, 자신의 확신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생명이라도 희생시킬 자세가 되어있다는 표현이다. 빛의 화가인 인상주의자들은 검정을 팔레트에서 추방했고 그러한 검정색의 포기를 거의 신앙의 지경으로까지 고양시켰다. 클로드 모네가 죽었을 때 검은 천으로 덮은관을 묘지로 옮기려했을 때, 그의 친구 클레멘소가 다가가서 색채 찬란한 커튼을 창문에서 때네서 관위에 덮었다. 검정은 모네에게 죽어서까지도 하나의 모욕 같은거였다.

그리스신화의 저승은 삶의 반대측, 영원한 밤, 죽음, 또한 모든 외적인 모습을 시들게 죽게하는 겨울의 원칙을 구체화하나. 그러나 이들의 저승의 개념에서는 겨울을 새로운 싹을 내기위해 준비하는 자연의 섭리로써 이해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리스인들에게는 재생이라든가 영혼이 이동하고, 혹은 영생한다는 사고와는 달랐다. 여기서는 신의존재가 단지 창조와 근절과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의인화되어 묘사된다. 즉 미래를 형성하는 능동적인 빛의 신인 제우스와 과거를 감시하는 수동적인 어둠인 지하의 신 하데스를 인격화한다. 이와 같은 선과악의 투쟁은 인류의 태초부터 발전해온 빼놓을 수 없는 비김수이다.

심리학자 애릭프롬은 선과 악을 내적으로 작용하는 '생명애착',즉 삶의 긍정과 '삶의 거부', 즉 삶의 기피라고 지칭했다. 그렇다. 삶의 긍정은 모든 생명에 대한 정렬적인 사랑이다. 생명을 사랑하는 인간은 단지 나이만 먹어가기보다는 늘 무엇인가를 구축한다. 이런 사람은 많이 갖는 것 대신에 스스로 많은 ,즉 큰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이는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나이를 확인하려는 것보다 차라리 새로운 것을 체험한다. 그에게는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거친 모험일지라도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훨씬 즐거운 일이다. 그는 단지 일부보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오직 합계보다 구조를, 결과보다 과정을 훨씬 더 높이산다. 그이사랑, 이성과 화합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권력을 통해서가 아니고 또 사무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대하는 그런 태도로서가 아니고 어떤 사건을 이성적으로, 그러나 구분해서 인간적인 태도로 처리하고자 한다.

검은 색은 삶을 기피하는 것, 즉 모든 긍정적인 발전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을 암시하는 색이다. 생명이 타고남은 재, 숯이 바로 검정이다. 여성이 검은색속옷을 입으면 매우 자극적이된다. 하얀 피부에 강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이집트와 인도에서는 검은색 속눈썹 터치를 넓고 두껍게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 이런 화장을 한사람은 얼굴 전체가 마치 시커먼 눈속에 감추어져있는 듯 신비하게 보인다. 이와같은 의미에서 뺨에 검은색 미점을 찍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검은색 의상, 가방 혹은 가죽 잠바는 일종의 신경성이나 심리적인 상태를 체크해야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검은색은 멋쟁이들이 입는 상복과는 다른 의미에서 매우 유행하는 색으로서 검은 색 의상을 착용함으로써 보통 남들과 달라지고 싶어하고, 의식적으로 세상과 경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또한 검은색 리무진, 검은색 양복, 검은색 서류가방은 보편적으로 다양한 세계에서 두들러지고자 하는 외모와 가치를 전달하고자 함이다. 이처럼 검은 색이 내면을 감추고 겉으로 과장 내지는 과시효과의 기대를 암시하려는 의도로 사용되는 경우는 심리적으로 정상일수는 없다. 색체심리학적으로 검은색은 보통 외형적인 성향을 지닌 성인의 경우 싫어하는데 비해 우울한 사람은 검은색을 입는 습관이 있다.

검은색의 절대성은 결정적인 것, 구제될 수 없는 것을 시사한다. 권태감에서 시작하여 검은색 강박 신경증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강요성을 띤다. 이색은 끊임없이 내적 혹은 외적 갈등을 보인다. 검은 색을 거부하는 사람은 어떠한 분야에서도 내적으로 참을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은 사물을 꾀뚫어보지못할 뿐 아니라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이들은 파괴적인 사건들, 심연과 운명의 힘 앞에서 불안해한다. 검은색은 신경병을 유발하는 원초적인 불안과 연관이 있다.

그래서 어린이가 검은색을 애호하는색이라고하면 ,이랍ㄴ적으로 매우 놀란다. 왜냐하면 이색은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어린이가 꺼리는 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어린이가 왜 검정색을 선택하는지 알면, 본질적으로 검정색이 진한색이라면 지성적이고, 이론적인 경직된, 적대적인 삶에 대한 사상의 토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적인 사색을 상징하는 측면도 지닌 색상이다.

검은 색의 특징은 다른 모든 색상보다 사람을 놀라게 하고, 의식적인 도발에서 최대한 관심을 끄는 주역으로서 기능이 뛰어난다. 따라서 해적의 검은 깃발, 전사들은 농민전쟁에서 검은색 마스크를 섰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무법을 옹호하는 표시로 검은 제복을 입었다. 오늘날에는 경제불황일 때 절약, 긴축정책의 심리적 요인이 압박할 때 사람이 검은색 옷을 입는 유행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다고 한다. 이슬람시대 이전의 페르시아에서 모든 악의구현이며, 빛의 천적의 구현인 검은 아리만은 "밑도 끝도 없는 암흑"속에 거주하면서 거기에서 암흙과 질병과 죽음을 인간세계로 보낸다. 코란에는 '불행한 왼손잡이 동료들'이 사후에 '검은 연기로 된 음지에서'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하여 비탄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저주 받은자들의 골짜기인 게헤나에는 "광폭한 암흑과 뚫고 들어 갈 수 없는 우울'이 지배하고 있다. 이것은 헤노흐라는 위작경전에도 언급되나."거기에는 빛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다 캄캄한 불이 온종일 타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지옥은 붉은 것이 아니라 검다. 왜냐하면 빨강은 아직 한줄기 번쩍이는 빛을 담고있기 때문에 결코 모든 희망을 내버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옥 구덩이의 빈틈없이 초현실적인 검은색에서는 어떤 탈출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가장 깊은 검은색으로 체험하는 것은 우리 내부에 숨어있는다. 그것은 우리가 한때야행성 동물들과 그밖의 무서운 존재의 지배를 받고 무력감을 느끼던 그때의 낯선 어둠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인 것이다. 중세의 유다는 거꾸로 된 후광 즉 '검은 후광'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다. 중세의 끔찍한 페스트는 '검은 죽음'이라고 불리었다. 칸딘스키는 검정색을 가능성없는 허무처럼, 해가 꺼진 뒤의 죽은 허무처럼, 미래와 희망없는 영원한 침묵처럼 그렇게 검정은 내적 음향을 울린다. ..그것은 타다남은 장작가지와 같고 시체처럼 요지부동의것이기도하다.라고말했다.심리학에서는 격식화, 불안, 강박적 반작용을 의미한다. 속죄양인 검은 염소처럼, 대개 불운을 의미하며 '신이 금지한'모든 것을 검정에 투사한다. 그런데 검정숯이 변하여 다이아몬드가 되고 검정은 흰색과 융합된다. 우리 눈의 중심은 검정색이고 더군다나 빛을 반영하고 있다. 연금술의 비밀스러운 재일 재료는 검은색 물질이었다.

토성은 '검은 태양'에 속한다. 처음에는 악한이 아니라 충만과 행복의 신이었다가 시간의 신과 동일시되었다. 시간의 측면인 생명력과 파괴적인 검은 냉담성과 동일시되었다. 또는 오시리스와 동일시되었다. 오리시스는 때로 검게 묘사되며 생식적인 쇄신의 위안적인 그리고 죽음없는 주기적으로 기억하기위해 심지어는 다산적인 나일강 진흙으로 빛기도 했다. 인도여신 '칼라'즉 시간의 여성형인 그녀는 무엇보다 검으며 칼라하트리보다도 더 적나라하게 들끓어오르는 다산성과 모든 존재속에 있는 생명력뿐만 아니라 죽음 그리고 죽음보다 더한것인 끔찍한 살인광을 구현하고 있다. 그녀를 보면 원초적인 대모신이 한때 얼마나 절대적인 힘을 소유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카토릭교회의 색채 찬란한 의식과는 반대로 "모진 속죄를 하는"모든 날에는 검정색이 사용되었다.

검정색 승용차는 권력의 상징으로 보인다. 또, 영화속에서나, 텔레비젼의 드라마속에서 나오는 깡패집단의 우두머리들은 항상 검은 양복에, 검정 썬그라스를 끼고, 검정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그들의 오만과 그들의 특권층의 권력을 드러내기에는 검정색이 너무나 훌륭하다.

검정색은 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예외없는 지배권을 약속했다. 그것은 자기주장이 있고 자기주장을 하고 싶은 사람의 색이며 법관, 변호사 성직자같이 타당한 권리와 확고한 권력을 가졌다고 믿는자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권력과 힘을 조정하려고 시도하는 자의색이다. 해적들은 검은 깃발을 달고 항해하며 어떤 권리와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여러 비밀결사조직은 자주 자신들을 검정색 상징으로 표시된다. 세르비아의 '검은손'은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 발발에 기여했다. 그리고 분열된 유고슬라비아의 당면한 위기의 초기에도 검정색 반역이 존재한다. 불법 무임승차자(검정색으로 승차한자),불법노동자(검은 노동자),불법 시장에서 금지된 것이나 관세를 물지않는 것을 사는자는 결코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성취감을 가지며 작은 군주로 느껴진다. 거부적인 느낌이나 형체를 형성하는 잠재력으로서 거의 비물질적인 선은 검정색의 한 현상 방식이다. 칸딘스키와 그외 다른이들의 비난이 여기서 확증되는 듯하다. 즉 검정은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멍" 틈 또는 그리고 거리라면 검정은 높을수도 깊을수도 없으며 다른 생각 가능한 것도 파악 가능한 것도 아닌 허무공간이다.

본래 가장 조밀하고 어두운 물질과 결합되는 검정색은 완전히 빗물질화 되어 나타난다. 빛과 어둠뿐아니라 심지어 물질의 완전한 부재상태, 허무, 빈틈은 어떤 검정 표면보다도 검다.

'검은 구멍", 즉 상대적으로 작은 구멍이 뚫린 텅빈 공간이다. 그 속으로 들어간 빛이 내부 여기저기를 비추면서 그 속에 거의 완전히 같혀있게 되면 그런 비속세적인 검정을 볼 수있다.

미술사에서 흑백그림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피카소의 '게르니카' 일 것이다. 피카소와 그의 연인 프랑소와즈와의 관계를 그린 영화'살아있는 피카소'의 서두에는 피카소의 아트릴에를 나치의장교가 가택 수색하고있는 장면이다. 천천히 작품을 보고있던 장교가 가택수색하고 있는 장면이다. 천천히 작품을 보고있던 장교는 문득'게르니카'에 눈길을 멈춘다. 나치의장교가 피카소에게 심문한다" 이것을 당신이 그렸소?"라고 묻자 피카소는 태연스럽게 대답한다" 아니, 당신들이야"라고. 마치 이 그림은 나치 독일의존재가 피카소를 통해 그려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스페인의 내란 중 프랑코 총독의 요청으로 히틀러는 스페인의 도시 게르니카를 무차별 폭격한다. 조국의 거리가 파괴된 것에 충격을 받은 피카소는 7-8m 길이의 캔버스를 향해 울분을 터트리듯이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은 당시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발표되어 전세계에 반전의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다.  실은 이 그림을 단념하려고 했던 사진기록이 남아있다. 당시의 연인, 사진작가 드라 마르가 촬영한 것으로, 소묘 단계에서 완성단계까지의 변화를 아홉장의 사진으로 볼 수 있다. 피카소는 당초 착색된 벽지를 캔버스에 붙이는 등 실험적인 수법으로 시도하기도 했으나, 최후에는 그것을 벗겨냈다고 한다. 화면에서 일체의 색을 깨끗이 지우기 위함이었다. 조각가 무어는 '왜 색을 사용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색채는 어떤 구원을 의미하기 때문이네"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무어는 "이 그림에서만 구원을 배제하려고 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피카소는 "타인에게 무관심 할 수 있을까? 이렇게도 풍부하게 주어진 인생에게  그럴수는 없다. 그림은 집을 장식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적에 대한 전쟁의 방어와 공격의 수단인 것이다."

피카소가 조국의 비극에 마음 아파한 현실에서 탄생한 것이 "게르니카"이라면, 현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스스로 인종적 조국이라고 말하는 유태인의 비극을 그린 것이 '쉰들러리스트' 이다.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최초의 모노크롬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유대교의 기도에 사용되는 촛대의 불이 자연스럽게 타면서 연기가 올라가는 순간, 스크린은 색채가 사라지고 흑백으로 바뀐다. 사람의 시야에서 색이 사라질 때 이토록 불안을 느끼게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중세말기의 세상은 점차 말세가 다가오는 줄로 생각하였다. 설교의 주제는 허영이었다. 허영이란 세속적인 즐거움에 마음을 쫒은 나머지 하나님을 등지는 행동이므로 죽음을 낳는 죄라고 했다. 허영을 가장 분명히 드러내는 것은 의복이었다. 아무도 죽을죄를 자랑하지 않으려고 모두가 검정옷을 입었다.

값이 싼 '가난한 검정'의 염색은 1kg을 염색하는데 4kg의 오리나무 껍질이 필요했다. 오리나무껍질을 잘게썰어 며칠간 물에 담가놓은 다음 끓여서 죽을 만들었다. 이죽에 직물을 넣어 염색했다. 값도 싸고 방법도 간단하여 흔히 사용된 방식이다. 하지만 '가난한 검정'은 어두운 회색이었다.

수도회의 색을 정하는 과정에서 수사들은 수도회소속을 알리는 일외에도 수도복이 아름답게 보이도록 신경을 썼다. 이러한 수사들의 허영심은 972년 마인츠의 대주교는 "직조할 때 검정천에 흰실이 들어간 옷은 거절하고, 검정 모직도 세련되지 않다고 타박하고, 물감들이 옷만을 찾았다."라고 질타했다. 염색된 모직은 자연모직보다 몇배나 더 비쌌다. 검은 수사만 수도복을 추가로 염색한 것이 아니었다. 갈색 수사와 회색수사도 마찬가지였다. 수사회가 일부러 겸손한 색을 선택했는데도 단일하게 염색된 수도복은 가난한 사람들이 입는 염색하지 않는 옷과는 엄청난 대조를 보였다. 검정염색은 갈색이나 회색염색보다 더 비쌌고 ,검정은 수도회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검정은 기독교 성직자들이 입는 의복의기본색이다.

또 교회는 보수세력이므로 성직자의 색은 자연스럽게 정치적 보수파의색이 되엇다. 너무도 경건한 칼 대제5세는 세계도피의 상징으로 검정색을 사용할 줄 알았다. 1556년 퇴직후 그는 심지어 검은색 도배를 한 공간을 만들 정도로 검정색을 진지하게 취급해다. 반대로 궁정관리들은 지정된 암흑색의 의미를 전화하는데 성공했다.. 즉 검정색의 겸손대신에 오만을, 거친 모직 대신에 우단과 비단을, 그리고 기독교적 형제애 대신에 엘리트적인 특권의식을 상징하게 되었다. 금과 보석이 검정색 아닌 그 어디에서 그렇게 화려하게 빛날 수 있었단 말인가!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검은 의상을 슬픔뿐 만 아니라 특권층의 오만을 나타내는 대립적인 표현으로 입는다.

 

검정3-- 화가의 검정색 

나는 학창시절 판화에 열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유화를 그리곤 했는데 항상 가장 큰 불만은 유화에서 검정색이 너무나 흐릿한 회색이란 것이었다. 어느날 나는 외국에서 수입한 납튜브에 들어있는 판화용 검정물감으로 유화에 칠해보았다. 그랬더니 유화의 아이보리 검정색이 아주 밝은 회색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화가들은 진한 검정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약3,000년 전부터 램프에 사용되는 기름의 그을음을 긁어내어 접착제와 섞은 검정이 사용되었다. '그을음 검정'은 오늘날에도 색연필이나 진한 검정의 묵화 물감, 수채화물감, 유화물감 그리고 인쇄용 잉크로 가공된다. 하지만 이 검정으로는 직물을 염색할 수 없다.  BC2000년에 중국의 교양인들은 먹을 사용했다. 진짜 중국 먹은 이미 15세기부터 수입되엇다.

우리가 검정색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검정색이 아주 어두운 흰색으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은 새로운 것으로 무용한 짓이었다. .왜냐하면 검정색은 다양한 방식으로 -송진이나 역청을 태움으로서-나온 그을름에서도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심지어 연기가 빠지지 않는 제조공장을 짓기도 했다. 가장 선호되는 검정색은 이런 식으로 소나무에서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든 검정색은 난로나 목욕탕의 그을음으로 위조되기도 했다.

19세기말에 이르러 비로소 옛 물감이 완전히 배척되지 않은 합성 아닐린 검정색과 산호철 검정색이 탄생되었다. 16세기와 17세기에 검은색 의복이 유행했을 때 초상화가는 모텔의 단조로운 검정색으로부터 회화적인 것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검정색 표면을 노련하게 세분화시켰다. 

 

20세기 몇몇 화가들과는 반대로 프란츠 할스와 그의 동시대인들은 그렇게 많은 검정색을 마음대로 그림에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색인 검정색의 특성을 의해 전혀 도전받는 듯한 느낌을 갖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오히려 좋든 싫든 검정색을 유색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검정색 그림 물감의 원료들은 색의 차이를 식별가능케 한다. 고대의 많은 유명화가들은 스스로 자기 고유의 검정을 고안해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무엇보다도 유채색적인 검정색에 대한 그들의 감수성과 관련되었던 것 같다. '트리지뇽' 즉 석탄화된 포도주 찌꺼기로 만든 검정색으로 약간의 회갈색을 띤 이색은 아테네 화가 '엘레판티움'은 자칭 아펠레스에 의해 회화에 도입된 것으로 상당히 맑고 심오한 검정색을 공급하는 반면 보통 뼈의 검정색은 파르스름하다. 특별히 검은 뼈대 검정색을 제조하기위해서 어떤 화가들은 무덤에서 반쯤 탄화된 해골을 파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플리니우스는 설명하고 있다. 
 


 반고호는 프란스할스의 그림에서 27개 이상의 검정색 뉘앙스를 구분해 내려고 했다. 27개의 검정색톤은 다른 유채색과의 혼합을 통하여만 만들어질 수 있다.  반고호는 검정대신에 회청색과 붉은 갈색을 섞었고 그것을 가장 심오하고 가장 아름다운 검정색으로 간주했다.

반고흐에게 유일하게 그의 예술을 믿고 후원했던 동생이 어느날 검정을 써서는 안 된다는 편지를 보내왔을 때, 반고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않단다. 검정과 흰색은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다. 검정과 흰색을 폄하하면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봉착하게된다. "고호는 나중에 시중에 나와있는 검정보다 더 짙은 검정색을 원했다. 그는 인디고와 테라시에나, 프러시안 부루 그리고 불에구운 시에나를 섞어서 검정보다도 더 검은 검정을 만들었다. "자연에는 검정이 없다는 말을 들을때마다 나는 물감에도 사실은 검정이 없다는 생각이든다." 그는 동생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검정을 쓰지 말라는 네 충고의 진의를 너도 이해하고있니? 네가 그 말로 의도하는 바를 너는 알고있니? 이 질문은 검정이 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인상주의선구자였던 르노아르는 나중에 이런 질문을 했다. "인상주의가 이룬 단 하나의 기술적 개선이-색이라고 할 수 있는-검정의 추방입니까?"르누아르는 이렇게 대답했다. "검정이 색이 아니라구요? 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되었습니까? 검정은 색의 여왕입니다. 나는 언제나 프로이센의 파랑을 싫어해지요. 나도 검정을 빨강과 파랑의 혼합으로 대치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코발트 불루나 울트라마린 부루를 사용했지만 결국은 상아의 검정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르누아르는 검정을 "색의 여왕"이라고 말했다.

그림자는 현실속에서 색 전체를 내포하지만 회화에서 그림자의 묘사는 오랫동안 검정에게 맡겨져다. (중세에는 그림자는 아예 그리지 않았다) 알브레이트 뒤러는 "그림자'를 그리는 평범한 기술에 대해 분노하며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았다.

너의 전체가 빨강으로 된 빨간 사물을 그려야해.... 그 빨강이 검정칠로 완전히 망쳐버렸다는 말을 듣기전에 그림자 또한 그렇게 그려야해.

무색의 거의 추상적인 가느다란 선은 세상의 모든 색을 발생시킬 수 있고 또한 가능할 수도 있다. 마티스는 그의 펜화가"그 느낌의 가장 직접적이고 순수한 전달체"라고 말한다.

펜화속에서는 생명수와 감각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뿐아니라 색과 대등한 여러 가치와 빛이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백지위에 움직이는 선이 빛을 만들어내면서도 감동적인 흰색을 상실하지 않을 때, 나는 거기에 더 이상 보탤것도 뺄 것도 없다. 조셉보이스는 1981년 뒤셀도르프에서 있었던 "검정-전시회"에서 작은 구멍을 통해 굽어진 검은 난로 연통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그런 검정색 체험을 해 보였다.

역사상에서 검정색의 마술사라고 불릴만한 화가들이 많이 있다. 티치아노가 그렇고 마네가 그렇고 마티스가 그렇다. 마네는 티치아노의 검정색에 빨려들어갔고, 마티스는 마네의 검정색을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극찬했다.

티벳의 만다라에서는 불꽃 동그라미 뒤에 두 번째의 보호적인 동그라미가 뒤따르는데, 그것이 바로 검은색이다. 검은색 원은 뚫을 수 없는 경계선으로서 미숙한 악령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선의 또 다른 창조적 잠재력은 금을 그어서 내부를 만들어내는 능력에서 전개된다. 인간이 불을 다스렸을 때 숯이 된 나뭇가지의 놀라운 성질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을 집어들고 장난하다가 자시의 몸이나 나무 또는 돌 위에 생긴 검은 선을 보고 놀랄 것은 어린이였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글자가 수십만년 전에 고안되었던 것이다.

훨씬 뒤인 약 3만년 전 초기시대의 한천재적인 호모사피엔스가 검은 선의 마력적인 힘을 발견했다. 즉 검은 선은 한 내부를 외부로부터 분리시킴으로서 균질적인 무의미한 평면으로부터 무엇인가를 강조해 주며 무로부터 유를 창조할 수 있다. 테두리가 처진 평면은 형체가 되며 마치신의 호흡이 닿는 듯 갑자기 하나의 동물이 된다. 그러는 동안 선 자체는 후퇴된다. 즉'윤곽을 가진"야생마가 공간과 색과 박동치는 생명성을 통해 벽에서 튀어나올 듯이 보이면 더 이상 그것은 선으로 지각되지 않는 것이다.

동굴회화 초기에만 검정이 진정한 그림자기능을 했었다. 움푹 들어간 선의 그림자 효과를 통해서만 인식 가능한 갈라진 틈에서 검정색은 그림자를 모방해내고 강조해고, 그림자를 떨어지는 빛의 의존성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색들이 밑바닥으로부터 빛나도록 하는 것은 혼색의 역할로 유보되어있다. 검정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색들이 충분히 자기 고유의 빛들을 주장하거나 제한된 흰색바탕을 자신아래 깔고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비로소 검정은 색들을 빛을 발하게 할 수 있다. 석기시대의 사람들은 검정색이나 붉은 황토색으로 암벽에 손자국을 남겼는데, 색칠한 손바닥을 두드리기도 하고 반대로 음곽이 새기도록 손위에 색가루를 후후 불기도 했다.

검정색은 자연의 법칙에 속한 것이었고, 흰색은 문자(구약성서)의 법칙에 속한 것이었고 그리고 빨강색은 은총(예수의 피를 통한 구원) 법칙에 속한 것이었다.

검정과 빨강은 둘 다 박동치는 생명을 의미 할 수도 있다. 검은 대지와 빨간피 모두 생산적인 것이다. 이둘의 결합은 유령같은 흰색의 가상세계에 공동으로 대항할 것을 요구한다.

계몽이란 정신에 빛을 가져다주어 모든 것을 명료하게 인식하게 해준다는다는 것이다. 계몽된 정신은 감각적 세계가 보여주는 이미지를 허구로 여기고 그 세계를 하나의 환영으로 여긴다. 그러나 환영 역시 빛으로부터 유래하기는 마찬가지다.

재미있게도 성직자와 함께 여성은 "색의 오염에 물들지 않은 채 순수하게 남아있었다."이때는 색이 봉기한 기간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검은색, 흰색 ,회색은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극히 중요한 색상으로 여겨졌다. 이색들은 붉은색보다도 훨씬 더 '표준' 색의 개념으로서 어떤 상징성 이상의 원칙을 따른다.

서양에서는 장례식에 관뚜껑을 열어놓아 고인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때 죽은 이의얼굴을 살아있을때처럼 생기있게 보이도록 화장을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이미지'라는 말은 죽은 시신을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시체 대신 시체와 똑같은 모습의 인형을 만들어서 장례식에서 사용하는 관습에서 비롯된 데드마스크라는 뜻의 '이마고'란 라틴어에서 비롯되었다. 바르트가 말하는 화장으로서의 색이 이처럼 가장과 윤색의 의미를 내포하고있는 이미지와 같다 는 뜻을 가지고있다.

동양화가 그렇듯이 현재의 많은 작가들도 정신성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는 꼭 흑백의 세계로 돌아가곤 한다. 요즈음 많은 사진들이 칼라를 뽐내고있지만 아직도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사진작가들이 많이있다. 이는 아마 흑백이라는 것이 가지고있는 정신성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흰색위의 검정', 다시말해서 글로 씌어진 문서는 그냥 말로 한 것보다 훨씬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문서만이 법률적으로 구속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흰색에 검정으로 되어있다"는 말이 있는데, 문서화 된 것은 진리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진리라는 뜻으로 쓰인다. 또 진리에는 상승도 하강도 없기 때문에 유채색으로 인쇄된 문헌은 신뢰도가 낮아보인다.

검은색가구는 과시적이지만 무겁고 조야하다. 검정은 주변과 강력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에 각지고 단단해보인다. 검은가구는 흠집이 눈에 잘띄기 때문에 쉽게 낡아보인다. 흠없는 검정만이 우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은 현대적디자인의 고전적인 문구로, 복잡한 장식이나 쓸데없는 무늬, 색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검정, 흰색, 회색 즉 '중립적인'색은 모든 경우에 사용된다.

유채색을 포기하면 ,객관성과 기능성에대한 요구가 생겨난다. 검정은 가장 과시적인 색채 포기선언인 동시에 허영심에 대한 포기선언이기도 하다. 그래서 검정은 가장 고귀한 색이다. 디자이너 제품인 검은 책상위에는 종이크럽부터 연필깍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검정이다. 텔레비젼, 오디오 스테레오, 카메라, 예물시계 등 가장 현대적으로 보여야 할 기술제품은 모두 검게 만들었다. 색은 사라지고 기술이 전면에 나섰다. 새로운 기술이 아닌 일상용품에는 유채색이 비교적 많이 사용된다.

이런 현상은 오래전부터 관찰된다. 첫 번째 자동차는 물론 검정색이었다. 당시 핸리포드는 모든색이 자동차에 어울린다고 말했지만 포드사의 유명한 모델 포드T는 수십년간 검정으로만 생산되었다.

블랙박스는 원래 마술사들이 사용해던 검은 상자였지만 나중에 정보기술의 전문용어가 되어 미지의 정보를 시스템 가동번호로 변환시키는 시스템을 가르키게 되었다. 예를 들어 블랙박스는 항공기술과 관련하여, 비행기안에서 행해진 모든 지시를 기록하는 비행기록기를 뜻한다. 블랙박스는-그 사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모를 때에도-객관적인 사실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검정4- 검정색 옷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들은 의복의 색이나 옷감 등에 의하여 신분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염료의 값이었다. 귀한 염료는 그만큼 값이 비쌌고, 모든 인간들의 평가들은 그의 내면이 아니라, 그이외면 즉, 얼굴이나, 그의 옷에 의하여 판단되어지고 결정되는 것이었다. 인간들의 의식수준은 이토록 천박한 것이었다.

최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의복에 그 많은 돈을 투자하고, 또, 수많은 패션용품들이 고가로 팔리며, 고관대작들의 옷로비 사건이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의 천박한 의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어느정도 만족스러운 검정색 톤에 도달하기위해서는 적어도 분리된 두 개의염색과정이 필요하다. 하나는 국산 청염료를 통한 파란색 염색이고 또 하나는 철가루를 통한 검은 갈색의 염색이다. 이렇게해서 두 개는 서로 보완되어 반쯤 순수한 검정으로 합성한다.

 터키가 고대염색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였을 때, 1477년 막시밀리언 황제는 용병들의 고달프고 가난한 살림살이를 고려할 때 그들에게도 즐거움을 허용해 주어야 한다. "용병들의 옷은 더욱 화려해졌다. 시민들은 화려한 색의 의상이 젊잖지 못하다고 비난하며 자신들은 값비싼 직물에 검정물감을 들여서 입었다. 검정물감을 들인 비싼직물은 용병들이 싫어했던 유일한 소재였다.

검은 옷이 점차 인기를 누렸던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인도로 가는 바닷길이 발견되고 나서 인디고가 유럽으로 들어왔다. 인디고의 파랑으로 염색을 한 직물에 몰식자 벌의 애벌레집에서 나온 검정으로 다시한번 염색을 하면 아름다운 검정을 만들 수 있는 염료, 즉 청목을 가져다주었다. 중미가 원산지인 청목을 가늘게 잘라 수주일 동안 물에 담가 얻는 색소로, 비단을 진한 블루블랙으로 염색할 수 있었다. 물론 수입에 의존했던 청목은 값이 비싸서 검정은 더욱 고상한 색이되었다. 20세기에도 나일론스타킹과 란제리 등 합성섬유를 진한 검정으로 염색하는데 청목보다 더 좋은 염료는 없다.

 

 스페인에서는 수백년 동안 단 하나의 색, 검정만이 유행이었다. 카를로스1세는 어떤 교황보다도 더 교황다웠다. 그는 검은 수도복을 입었고 고백성사신부와 함께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1556년 권좌에서 물러난 그는 유스테의 히에로니미텐 수도원 옆에 위치한, 검은 벽지를 바른 검은 궁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스페인제국의 검정색 유행은 전무후무할 만큼 훈육적이었다. 옷이 귀까지 올라갔다. 1540년경부터 주름을 잡거나 물결무늬로 접은 주름장식칼라가 유행하였는데 ,도저히 고개를 돌릴수가 없을 정도로 턱위 몇cm나 올라왔다. 남자들은 당시 유행했던 코밑수염과 짧고 뾰쭉한 턱수염 덕분에 주름장식 칼라와 작별을 고해야했다. 주름장식칼라는올라오는 주름장식을 하면 고개를 움직일수없었고 얼굴을 똑바로 보여줄 수밖에 없어서 어떤 감정의 움직임도 숨길 수 없었다.
 


스페인 귀족들은 색은 포기했지만 비단과 메리노 울로 부를 고시했다. 값비싼 메리노울은 전통적으로 스페인의 고위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검은의상에는 보석이 어울려서 예복은 진주와 보석으로 수를 놓았으며 --남녀를 불문하고--가능하면 많은 장신구를 달고 다녔다. 1525년경 프란츠1세는 검정 벨벳 양복에 사용할 황금단추 13,600개를 프랑스에서 주문했다.

스페인에서는 종교재판소가 아직 기세 등등했지만 ,독일에서는 종교개혁파가 승리를 거두었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개신교의 이념은 시민의 새로운 자의식에 부합되었다. 가토릭교회의 착취에 대한 시민들의 반항은 성화파괴로 이어졌다. 교회에 걸린 성화를 떼어내 때로는 파괴하기도 했다. 색은 모두 금지의 대상이었다.

루터는 설교 때 유색 제레복을 입지않는 것으로도 가난한자나 부자나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신념을 표현했다. 루터는 검은 옷을 입고 설교했다. 루터는 입었던 장식이 없는 설교복은 당시 평범했던 겉옷이었고 검정은 당시의 복식규정에서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하느님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므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은 것이다. 루터의 검은 설교복은 시민적 권위의 상징이 되었고 수백년간 교수들의 일상복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시장이 행사장에 입고 나타나고 공식적인 관복이며 판사들의 공식제복이다.

1900년경의 결혼사진을 보면 거의 모든 신부가 바닥가지 내려오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있으며 면사포만 흰색이다. 돈이 있는 신부는 검은 비단드레스를 입으며 나중에 파티복으로 사용했다. 검은 혼례복과 흰 혼례복의 대조는 색체의 대조에 그치지 않는다. 흰 혼례복은 일생에 단 한번만 입는데 예전에는 그런 사치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 검은 혼례복은 심리적으로도 적당한 색이었다. 예전에 결혼은 기업의 합병과 같은 거래였다. 상속받을 재산이 없는 사람은 결론도 할 수 없었다. 19세기까지도 부양할 소득을 증명하여야 결혼은 허가 받았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것은 낭만주의적 이 사유로 ,이혼이 가능해진 시대에 와서야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예전에는 뜨거운 감정대신에 차가운 이성이 존재했다. 검은 혼례복도 이성적인 선택이었다.

우아함은 고구함, 자연스러움, 세심함 그리고 단순함의 혼합이다

-크리스찬 디오르

검정은 단순함과 우아함의 정수이다.-지아니 베르사체

검정은 예술과 패션의 만남을 상징한다.-이브 로랑생

검정은 누구에게나 잘어울리는 색이다, 검은 색을 입으면 안전하다--카를 라거펠트

나는 낮에도 밤에도 검은 옷을 입는다. 검은 옷은 언제나 어울리고 인품을 강조한다--도나카란

우아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눈에 띄는 화려함을 포기해야한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색도 포기한다. 검정은 위험요소가 없는 우아함이다. 이런 점은 특히 보수적인 남성복 패션에서 우아한 신사복과 연미복, 스모킹은 언제나 검정이다. 스모킹 바지는 언제나 옆선에 검은 새틴 띠가 박음질되어있는데 이는 군복의 옆선장식에서 남은 흔적이다. 여자는 세가지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검은 치마, 검은 스웨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의 팔이다.

스위스의 여성화가 피필로티 리스트는 다양한 의상을 통한 자아의 변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의견에 따르면 ,현란한 색의 옷을 입은 사람과 달리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내면에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요란하게 꾸밀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항상 충고를 하는데 젊은 여성들이 남성을 고를 때 외모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남자들은 틀림없이 그가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라고.

검은 옷은 해를 거듭할수록 인기를 더해간다. 특히 청소년들이 검은 옷을 좋아하고 요즈음에는 어린이들까지 검은 옷을 입는다. 이러한 동향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검은 옷은 사람의 개성을 얼굴에 집중시킨다. 검은 옷이 개인의 책임을 드러내는 상징이라고 설교했던 개신교와 마르틴루터는 ,개성에 관한 최근 철학인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엄청나게 차이가 있지만 목표는 같다. 따라서 유행이 반복되고 있다. 실존주의는 1950년경 이중적인 의미에서 유행하는 철학이 되었고 실존주의 세계관은 의복에서도 표현을 얻어 실존주의자들은 검은 옷을 입었다. 실존주의를 대중적인 제스처로 드러낸 여가수 줄리에트 그레코는 검게 칠한 아이라인 검은 코듀로이 바지, 그리고 목까지 올라가는 검은 스웨타로 유명하다. 경계의 색인 검은 옷은 대중의 가치에 더 이상 순응을 하지않고 대중을 초월하려는 모든 집단에서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검정색 옷은 역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풍긴다. 검정색 양복이나, 검정 가죽잠바, 검정 썬그라스, 검정승용차, 검정 가죽장갑을 생각하면 우리는 깡패나 암흑가의 갱을 떠올린다.

로큰롤팬과 펑크족도 검은옷을 즐겨입었다. 검정은 저항하는 자 부정의 색이다. 검은옷을 점점 더 선호하는 두 번째 이유는 1950년경 유행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움직임에서 볼 수 있다. 1950년대에 들어서 합성섬유나 합성염료의 재조 뿐 아니라 대량생산으로 의복의 가격은 점점 더 내려갔고 아무리 평범한 여자라고 과거의 가장 부유했던 숙녀보다 더 많은 옷을 소유하게 되었다. 패션디자이너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뀔 때마다 치마길이, 디자인과 색을 바꾸었다. 지난 시즌의 옷은 벌써 구식으로 낙인찍혔고 센스있는 여자라면 매일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또 똑같은 옷을 입은 두명의 여자가 만나면 -그것 때문에 개성이라도 잃은 듯, 여성의 개성이 옷에서 표현되는 듯이-당황해했다.

더 많은 옷, 더 빨리 변해가는 유행의 테러는 1970년경 극단적인 정점에 달했고 유행을 거부하는 여자들이 늘어갔다. 청바지 차림의 유행이 생겼고 모든 사람이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같은 차림을 했다. 또 세컨드 핸드룩이 유행하기도 했다. 50년대부터 의복과 스타킹, 구두, 메이크업을 반년마다 또는 분기마다 결정했던 유행색은 사람들의 관심을 잃었다. 

유행에 무관한 색을 원하는 여성이 늘어갔고 패션계는 여성고객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부터 유명디자이너의 컬랙션은 유행과 가장 상관없는 색, 검정이 주조를 이루었다. 패션쇼에는 아직도 다양한 색이 쓰이지만 실제로 팔리는 옷은 검은옷이다.

패션쑈를 관람하러 오는 관객들도 검은 옷을 입고 패션디자이너들도 사제처럼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정으로 휘감고있다. 원래 유행과는 아무상관이 없는 색, 검정은 이렇게 유행에 중요한 색이되었다. 영원한 젊음이 이상인 사회, 패션모델의 나이가 점점 더 어려지는 사회에서는 검정이 지배적인 가치를 강조해주는 색이다. 검정은 빛을 반사하지 않기 때문에 나이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젊은이가 입으면 청춘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고 나이지긋한 중녕이 입으면 축쳐진 턱, 주름살이 분명하게 더욱 확연히 보인다. 검정은 나이를 폭로하므로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검정을 입으면 더 늙어 보인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는 검정이 때론 다른 의미를 갖는다. 아프리카에서 검정은 가장 아르다운 색이다. 검정은 아름답다. 우간다의 국기 검정-금색-빨강에서 검정은 민족을 상징한다. 안티구와 말라비의 국기는 검은바탕에 떠오르는 태양이 그려져 있다. 독립국가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비유이다. 아프리카의 자유의 상징은 검은색이다.

화장품 회사들도 흑인을 위한 메이크업 제품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흑인을 위한 메이크업은 백인여자들의 무광 메이크업과는 반대로 투명하고 반짝인다. 피부색이 밝으면 그림자 지는부분이 얼굴의 윤곽을 결정지어주지만 피부색이 검으면 광택부분이 얼굴의 윤곽을 보여준다. 검은 피부에는 무광 메이크업을 해서는 안된다. 윤곽이 없는 얼굴은 마스크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즈음 패션쇼에 흑인여성이 등장했다. 의상의 색으로는 검정은 모든 흑인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 되었다. 죽은자가 다시 살아나 지구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하느님이 어떻게 생겼냐고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그녀는 흑인이더군요"

 

주황1-행복의 색

 

여자의 3%,남자의 2%가 주황을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꼽았다. 주황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여자의9%, 남자의 6%가 주황 가장 싫어하는 색이라고 대답했다. 최근 몇 년간 주황에 대한 선호도가 분명히 높아지고 있다. 1988년의 조사에서는 여자의14%, 남자의 9%가 주황을 가장 싫어하는색이라고 대답했다. 

주황은 -빨강이나 녹색과는 달리- 잘 떠오르지 않는 색이어서 주황이 연상되는 개념은 소수에 불과하다. 주황은 이국과일 오랜지에서 따온 이름이기 때문에 이국적인 색이다. 사방에 주황이 있는데 우리는 잘 보지 못한다.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도 사실 주황에 가깝고, 금붕어도 주황에 가깝지만 황금색이라고 한다. 호랑이는 검정과 주황 줄무늬고 여우와 오랑우탄 새끼도 주황이다.

지붕위의 기와도 빨강보다는 주황에 가깝다. 게다가 당근처럼 분명한 주황은 또 어디이겠는가? 그래도 당근은 '빨간 무'라고 한다. 빨강머리도 사실은 주황머리이다. 반고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주황으로 그렸다. 주황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할 뿐 어디에나 있다. 유럽에 오랜지가 들어오기 전에는 '주황'이란 단어가 없었다. 괴테도 주황을 '노랑빨강'이라고 불렀다.

주황은 태양처럼 밝은 에너지를 갖고있으며 깊은 지혜와 통찰력, 조화와 신성을 상징한다. 주황의 플러스성질이 표현되면 주변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며, 발랄하면서도 환한 성격을 갖게한다. 분석적으로도 사려깊으며 타인으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또 평화를 사랑하고 조심스럽고 협조적이기 때문에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순조롭고 좋은파트너로서 사랑을 받습니다. 생각이 편중되지않고 균형을 취할줄 알며 헌신과 융통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감수성이 상당히 예민한 사람이기에 감성을 사용하는 일에 종사하면 자신의능력을 십분발휘 할 수 있는 성격으로도 발달되어있어 활홀경에 도달하기가 쉽습니다.

주홍은 레드의 다양성과 엘로우의 지혜가 연결된 색깔로 태양에너지의 빛이기 때문에 이 빛에 속한 사람은 삶에 대한 열정과 향상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또 인내심이 강해서 일을 하더라도 밀고 나가는 힘이 있어서 일에 대한 달성감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 주홍의 마이너스 성질이 표현되었을 때 과거 또는 현재에서 감정적 또는 육체적으로 심한 쇼크를 받고있어서 그 쇼크를 놓아 버리지 못하고 겁에 질린 상태가 됩니다. 자신감을 잃고 자기가 일을 결정하지 못하게 되거나 우유부단해지기 때문에 지나치게 타인에게 기대거나 의존하며 비관적으로 되기 쉽습니다. 무슨 일이든 곧 바로 타인이나 자기 이외의 무엇인가 탓으로 돌리기 쉬우며 ,일방적 의존으로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큰 나머지 끈질기게 고민하는 경향이 있어 타인으로부터 부담스럽게 느껴지게 합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반면 상처받기 쉽고 과거에 축적된 공포로 떨고 있습니다. 더불어 부주의하고 경솔한 면도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장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공포는 복부에서 발생합니다. 그러니 복통, 대장, 소장의 병에 충분한 주의를 바랍니다. 또, 난소 ,비장, 담낭 병에도 주의를 바랍니다.

선사시대에 루시라는 여자의 뼈가 발견된 동부아프리카 올두바이 계곡의 분묘를 보면, 붉은 황토처리가 되어있는데 ,이는 황토물질이 주변에서 얻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산지로부터 운반되어 의도적으로 쓰여졌음이 틀림없다. 창세기의 아담은 아다마 즉 붉은 황토로 빛어졌다. 러시아어를 비롯한 많은 언어에서는 빨강은 아름다움의 동의어다. 엤날 동굴화가들은 색깔을 목적에 맞게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색을 분쇄하여 고운 가루로 만들어서 속이 뚫린 뼈속에 집어넣어 연필을 만들었고 때로는 거기에 지방, 식물즙 또는 피를 섞었다.
 


이런 첨가물이 단지 촉매제인지 아니면 마력을 강화하는데 쓰이는지 알 수 없다. 마력이라는 말은 고대 노르웨이어로는 타우푸르 였고 앵글로 섹슨어로는 티퍼,즉 붉은 황토와 연관되나. 독일에서는 점치는 막대기로 발전되었는데 막대기는 불게 염색되었으며 처음에는 필르 칠했으나 나중에는 붉은 황토를 칠했다. 동굴벽화의 주홍색은 붉은 황토로 칠해졌으며

대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가 지배하는데 '어머니의 대지'라는 관념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등을 비롯한 고대무덤에서 붉은 황토를 생산하였고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다.

 

붉은 황토가 아무리 빨갛다고는 하나 아무리 높은 열로 구워도 절대로 맑게 빛나는 빨강에 도달할 수 없다. 그것은 출생, 즉 흙의 어두움을 부인할 수가 없다. 주홍의 구성요소는 황과 수은으로 생명에 해로운 것이다. 주홍은 화산근처의 온천에서 약 80°C에서 형성된다. 주요생산지는 과거의 유고슬라비아와 캘리포니아 그리고 스패인이다. 주홍, 그것은 더 이상 피나, 땅, 동굴설화 그리고 태모신과 관계없다. 주홍은 개양귀비의 타오르는 빨강, 불타는 아궁이의 주홍색불꽃 그리고 지혈봉 색깔과 같다.

BC 700년경에 벌써 사람들은 건물의 내부에 회반죽을 바르고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그때 붉은 황토가 가장 많이 선호되었다. 어떻게 방 전체를 주홍색으로 칠할 수 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혈압이 상승하고 호흡은 가빠지며 감정은 자극되어 극도의 흥분된 반응을 보이는 그 물리적 효과는 그렇게도 많은 유행적 오만을 통해서도 가라앉지 않았다. 칸딘스키는 주황에서 팡파레의 음향을 들었고 ,주홍에서는 귀를 찌르는 듯한 작은북소리를 들었다. 이집트에서 중국에이르는 장수를 상징하고 심지어 불사까지 상징하는 불새, 피닉스는 중국에서 무엇보다도 '주홍색의 새(봉황새) 또는 '불꽃의 실체'라고 불린다. --주작.
 


불새속의 불태우는 불과 생명을 소생시키는 빛, 불새는 한편으로는 모든 생명을 말살시킨 아주 생생한 대 화재에 대한 기억일수도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화재 뒤에오는 절망감과는 반대로 생명을 잇게하고 심지어 새로이 그리고 젊게 만든 경험을 간직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티벳물교에서 붉은색 부처는 가장높이 추앙되는 아미타바 즉 '거대한 빛의 부처'이다. 최고천사 들 세라핌(여섯 날개의 천사)은 '불타오르는 자, 화염속에 서있는 자'를 의미한다. 5세기 기독교적 저술가 소위 위-디오니소스'에 따르면 그 천사들은 불타오르고 또한 태우면서 정화하는 힘을 가지고있으며 ,모든 어둠을 퇴치하고 파괴하는 성질을 가진 것으로 스스로를 남김없이 드러내며 스스로 불타없어지지 않으며 항상 똑같이 존재하며 빛의 형태로 난타나는 것이다. 양피지는 주황색이다.

양피지위에 성스런 문장을 검정색으로 줄줄이 써간다. 그때 수도사에게는 예술적 탄성보다는 신의 대영광을 조용히 빛내는 것이 보다 더 중요했다. 진짜 주홍을 쓸 수 없을 때 연단으로 대체했는데 , 연단의 주황빛은 주홍을 연상시켰지만 무엇보다도 그와 똑같은 불길같은 찬란함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 가열된 납에서 나온 연단은 오래된 색깔이었다. 그러니까, 주홍은 최고천사의 빛에서 가장 야만적인 전투와 섹스에 이르는 모든 영역을 포괄하고있는 것이다.

주황색은 즐거움과 사교, 흥겨운 일을 연상시키는 것은, 이색이 지닌 가장 훌륭한 장점이다. 빨강과 노랑은 너무 대립적이어서 함께 어우러지지 못하지만 주황이 들어가면 이 둘을 연결하며 조화롭게 만들어 흥겨워진다.

따라서 주황의 상징은 '행복'이라고 한다. 주황은 파랑의 보색이므로  파랑의 정신적이며 사색적이고 고요한 특성과는 정반대이다. 반 고흐는 "파랑이 없는 주황은 없다"고 말했는데 '주황이 파랑으로 둘러 쌓여 있을 때 가장 강렬한 영향력을 지닌 빛을 발한다" 는 의미이다. 파랑은 진할수록 어두워지며 주황은 진할수록 빛을 발한다.

마티스와 들로네는 '삶의 기쁨'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주황-노랑-빨강의 색조로 표현했다. 로마인들이 바커스라고 불렀던 디오니소스는 다산과 몰아, 물신주의 신, 다시말해서 세속적인 즐거움의 신으로서  주황색을 입고 있다. 바커스를 숭배하는 사원에는 남자사제는 없고 여자사제들만 있는데 그녀들은 주황색 옷을 입고 포도잎으로 엮은 화관을 쓰며 포도주에 취한 몰아지경에서 디오니소스를 찬양한다.

노랑의 활동성이 고조되면 주황이 되고 그 도가 지나쳐서 흥분하면 빨강이 된다. 주황은 빛과 따스함의 결합체로 아는 한 공간분위기를 만드나. 주황은 밝지만 노랑처럼 눈부시지 않으며 따뜻하지만 빨강처럼 덥지 않다. 주위를 밝히고 덥혀주는 주황은 정신과육체가 함께 즐거운 이상적인 혼합이다. 중국에서 주황은 변화의 색이다. 중국과 인도에서의 주황 이름은 과일 오랜지가 아니라 샤프란, 즉'식물의 왕'이라는 식물의 주황색소에서 나왔다.

변화는 유교의 근본원칙이다. 음과양은 끊임없이 변하나. 누구나 혼자 살 수 없으며 타인에게 반응을 보인다. 아시아의 회화에서는 주황색을 입은 신과 인간이 자주등장하나. 하늘이 주황색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주황, 샤프란이 최고의 완벽한 상태를 뜻하는 색으로 불교의 상징이 되었다. 한 장의 천으로 몸을 감는 승려의 옷은 주황이다.

금붕어는 가장 중요한 상징의 하나로 깨달음을 상징한다. 인도의 국기는 주황-흰색-녹색이다. 주황의 깃발은 불교를 상징하지만 '용기' 와 '희생정신'을 상징한다. 티베트불교의 수장인 달라이라마는 언제나 주황색 옷을 입고 있다. 인도의 회화를 보면 신은 빛나는 주홍으로 그려져 있다.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신이 자신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있다고 생각한다. 인도에서는 주황이 유럽보다 훨씬 세분화되어있다. 유럽인들이 노랑이라고 부른는 것도 인도에서는 주황이 된다.

주황은 행복을 나타내는 색이다. 좀 진지하고 무거운 점은 없지만, 그래서 유치원 아이들을 주황으로 표현하면 딱 알맞을 것이다. 그들은 인생의 진지함이나 그런 것보다도 감각적인 만족과 행복감에 넘쳐야할 시기이므로.

 

주황색2--식욕의 색, 싫증나는 튀는 색

 

주황색은 복합적인 아로마를 가진색이다. 빨강은 단맛, 노랑은 신맛이 나며 아시아 요리에 많이 쓰이는 주황색소스는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 살구, 복숭아, 망고, 당근, 콘프레이크, 셀러드 드레싱, 새우, 연어, 바닷가재, 빨간 캐비어, 소시지 등 많은 식품이 주황이다. 먹을 수 있는 호박꽃도 밝은 주황이며 치즈의 껍질부분도 빨강띤 주황이나 노랑띤 주황이 많다.

빵가루를 입혀 프라이팬에 노릇노릇하게 구워낸 바삭바삭한 요리는 모두 주황이며 피망과 카레로 요리한 닭, 사프란이 들어간 음식도 주황이다. 주황음료는 -레몬쥬스에 염색을 한것도-- 처음에는 오랜지 맛이 나는 것 같다. 

 

훈제연어가 오랜지맛이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주황색 음식은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주황은 노랑과 빨강의 합색이다.  사상의학에서는 노랑은 위와 관계되어 노랑색은 위를 자극한다고 하나. 빨강색은 심장을 자극하고, 그래서 주황색은 심장에서 혈액을 원할히 공급하게하고 위의 소화작용을 왕성하게하기 때문에 주황색을 보면 식욕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맥도날드, 캔터키치키, 롯데리아, 킹스버거 등 음식체인은 거의 모두가 주황색을 주로쓰고 있다. 또한 이들 패스트푸드점들은 사람들이 매우 붐비는곳인 도시중앙에 주로있는데, 좁은 장소로 인하여 사람들이 서서 음식을 먹거나 아주 적은 공간을 차지하는 의자와 탁자만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주황색은 사람의 실증을 빨리 느끼게 함으로써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곧바로 떠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의 주황색은 이러한 점에서 매우 효과적이며 음식점 점원의 의상부터 머리의 모자 곳곳에 붙은 포스타나 커텐까지도 모두 주황색을 쓰고 있다.
 


주홍은 '튀는'색으로 외향적인 색이며 잘난척하는 허풍쟁이의 색이다. 이점에서 주황은 ,과시적인 색으로는 금색 다음의색으로 꼽히나. 괴테는 '노랑빨강'이 최고의 에너지를 가진 색, 어린아이와 자연인, 원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라고 생각하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힘이 넘치고 건강하지만 원시적인 사람들이 특히 이 색을 좋아하는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니다. 이 색에 대한 원시민족들의 각별한 선호가 눈에 띈다. 아이들도 마음대로 색칠하는 시간을 주면 치노버와 메니히를 많이 쓴다. 괴테가 살던 시대에는 제복의 상의가 진홍색이어 사. 군신간의 위계질서가 분명한 나라에서 경찰, 국가관리와 마주치는 일은 어떤 색깔의 제복을 입었는지 상관없이 불쾌한 일이었을 것이다. 

주황은 시각적으로 튀어서 광고디자이너들이 어디서나 많이 이용한다. 광고용지나 광고문구에도 주황이 많이 들어가나. 그래서 주황광고에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주황광고에는 눈길한번 주지않고 책장을 넘기거나 주황광고 용지를 읽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던지는 소비자가 많다.

주황은 귀챦은 광고의 정체를 드러내주는 색이되었다. 즐거움의 색, 주황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주황은 값비싼 사치품의 색은 되지 못한다. 오쇼 라즈니쉬는 제자들에게 항상 주황색 옷을 입어라고 하지만 그 자신은 주황색 옷을 입지않고 언제나--신과 같이--하얀옷을 입고 나타난다. 라즈니쉬는 최고급승용차 롤스로이스를 100대 이상 소유했지만 주황은 한 대도 없다. 주황 롤스로이스는 그 자체가 모순이다. 주황은 사치품을 우스깡스럽게 만든다.

주황이 가장 비현실적인 색으로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수십년 동안 사용해왔던 것에 근거하나. 플라스틱은 오랬동안 주황으로 생산되었다. 1970년대 플라스틱 시대가 처음 열렸을 때 사람들은 인공재료에 관심을 가졌다. 플라스틱제품이 차츰 많아 지면서 주황제품도 많아졌다. 물바가지부터 프라스틱 손잡이까지 주황색이었다.

처음에는 주황색이 현대적인 디자인의 아방가르드 색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구식디자인을 상징하는 색이 되었다. 주황옷은 튀고싶은 사람이 입는다. 주황은 독창적인 색, 자유분방한 색이다.

 

독은 주황 바탕위에 해골로 표시되나. 점멸 경보등은 다 주황이다. 빛나는 주황은 주위가 어두울 때 가장 눈에 잘띄고, 빛의 조건과 무관하게 바다와 가장 강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에 구명보트나, 구명조끼의 색이 되었다. 도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조끼도 주황이다.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들의 작업복도--독일에서는 주황이다. 교통전문가들은 어두울 때나 안개가 짙게 끼었을 때 눈에 잘띄는 차로 주황색 차를 권하지만, 주황색 자동차를 사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실상, 검정색보다 주황색이 비싸기 때문에 검정색차 보다 주황색차가 더 비싸다.

주황색 옷은 남자보다는 여자가 입지만 주황색에 잘 어울리는 여자는 드물다. 주황색 옷은 전형적인 유행으로 피부색이 어두운 여자, 피부가 갈색으로 그을린 여자에게 특히 인기가 잇다. 피부가 하얀 여자가 주홍색 옷을 입으면 주황색의 강렬함 때문에 옷을 입은 사람의 인상이 약해지거나 흐려진다.
 


암소의 오줌으로 만든 '인도의 노랑'은 들로네가 "삶의 기쁨"이란 작품에서 사용했던 밝은 주황이다. ."구운 오커,'시엔나의 흙'등 갖가지 흙으로도 주황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인에게는 그런 색이 갈색톤으로 보인다. 샤프란과 잇꽃은 주황색을 얻을 수 있다. 오를레안이라는 관목의 씨앗껍질도 주황염료의 재료이다. 자두 크기만한 싸앗 껍질을 쪼개어 물로 발효시키면 빨간죽이 나오는데 이는 식품 염색할 때 쓰인다. 네델란드의 에다머 치즈껍질은 지금도 오를레안으로 염색한다.

부처꽃과에 속하는 헤나의 뿌리로 만드는 천연염료 헤나는 머리카락과 피부염색제로 사용한다. 직물이나 가죽도 헤나로 염색할 수 있다. 헤나로 가죽을 염색하면 빨강띤 갈색이 되며 비단이나 목면을 염색하면 빛나는 주황이 된다. 헤나는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는네 이집트공주들 몇몇 미라도 머리카락이 헤나로 염색되어있다.

주황은 네델란드의 국가색, 네델란드의 왕가인 오랑주(오랜지)가문의 색이다. 오랑주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개신교였고, 영국과 아일랜드의 개신교도들은 "주황색 사람'을 자처했다.

아일랜드의 국기색은 녹색-흰색-주황이다. 가토릭의 녹색과 개신교의 주황사이에 있는 하얀줄은 가토릭과 개신교간의 평화협정을 상징한다. 네델란드 국기는 빨강-흰색-파랑이다. 하지만 네델란드 사람들은 오랑주 왕조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빨강을 주황으로 부른다. 오랑주 왕가에 속한 사람들은 생일을 맞으면 충성스런 신하들은 주황깃발을 올렸다. 여왕 베아트릭스의 사진에는 주황색 장미가 많이 보인다. 여왕도 주황색 옷을 즐겨입었다. 국제 스포츠행사때 네델란드 선수들은 주홍색 셔츠를 입는다. 네델란드 사람들은 주황이라는 형용사를 원급, 비교급, 최상급으로 변화시키며 이를 언어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치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주황처럼 강한색에 매우 잘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황3-붉은 흙 

 독일언어에서 '그런 주홍같은 일이 있나' 라는 말은 다름아닌 유치한 바보짓을 의미하나. 주홍글씨라는 소설에서 보면 주홍글씨로 A라는 글자를 새겨 가슴에 달고 다니는데, 이는 정절을 지키지 못한 여인에게 내리는 치욕의 형벌이었다.

주홍의 문제가 제아무리 널리 전파되고 개가를 울리더라도, 옷감을 염색하는 문제가 생기다 주홍의 독재는 끝이 나고 만다. 황토나 주홍염료는 그러니까 광물성의 용해되지 않은 색은 단지 직물의 표면만을 뒤덮으며 지속력 있게 물들일 수 없기 때문에 가장 호화찬란한 주홍치마까지도 단 한방울의 주홍색조차 띠지 못했다. 화가와는 달리 염색공들은 대개 자연 속에 완성되어있는 고체의 또는 풀 같은 염료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염색공은 직물 속에 깊게 스며들어가 가능한 한 다시 풀리지 않고 직물과 결합한 채로 머무는 염료를 필요로 한다.

어원에서 드러나듯이 '마술을 걸다',와 '붉게 염색하다'는 말이 동일한 어근을 갖는 것 역시 염색작업의 비밀을 암시하다. 색을 통한 변화와 탈바꿈은 '마술'과 맞닿아있으며, 그것은 '마술'그 자체이기도 하다. "죽은 물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식물이나 심지어 광석의 영혼은 본래 행동적이며 색으로 자신을 현시 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있었다. 그것은 물질에 가해지는 비물질적인 과정이었다 .

중국의 연금술사들은 속세의 주홍과 현자의 돌의 동일성을 너무나 문자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주홍으로 불사주를 담갔다. 안타깝게도 주홍속에는 약 86%의 수은이 내포되어있었고, 이것은 자주 불사의 꿈을 좌절시키는 것으로 끝이 난다.
 


주홍색유리의 발명은 마치 천상의 불을 사른 듯한 꿈같이 아름다운 빨강을 물질세계 안에 가져다 놓았다. 염화주석의 피어오르는 영혼을 만난 안드레아스 리바비우스가 이 발명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1679년 보다 젊은 동료하나가 발명을 완성했다. 녹인 유리에 염화은을 넣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않고 무색의 투명한 유리속에서는 아무것도 나타나지않았다. 또 한번의 가열이 화려하고 투명한 홍옥의 빨강을 마술적으로 지어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특정한 온도에서만 가능하다. 반 아이크의 폭넓은 지식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회화기법의 관점에서도 주홍의 광채를 수백년간 보존 가능하도록 했다. 주홍은 빛의 작용으로 갈색이 되거나 혹은 거의 까맣게 될 수 있었고 그것은 이미 봄베이 화가들이 씨름해야했던 하나의 문제였다.  반면에 얀반 아이크는 주홍위에 두 번째 층의 색을 씌었다. 그것은 투명하고 어두운 꼭두서니의 빨강으로 밝은 주홍색을 효과적으로 보존할 뿐아니라  깊이와 신비 광택까지 부여했다.  염색용 색인 꼭두서니는 회화용으로 사용되기 전에는 유약 칠을 필요로 했다 즉 붉은 용액을 분필이나 석고위에 입혀서 마치 양피지처럼 사용할수 있게 했다. 진지하고 단순한 회화를 이상으로 삼았던 플리니우스는 주홍은 너무도 아름다우며 매혹적인 꽃 피어오르는 색의 예로서 저주받아야 마땅하다고 했다

나는 10호 정도의 캔버스에 미리 버밀리언(주황)으로 바탕칠을 한 후에 그 위에 눈덮힌 산을 그린적이 있다. 이 그림을 그린후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흰색과 주황색 모두 검정색으로 변하여갔다. 지금은 다른 사람 손에 있어서 그림의 원형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상상할 수 없지만, 아마도 매우 어두운 색으로 변화임에 틀림없다. 버밀리언과 징크화이트는 아마도 화학반응을 일으켰던 것 같다.

동굴화가들은 밝은 노랑은 전혀쓰지 않았다. 물론 동굴화가들은 빨간황토보다는 보통의 황토를 훨씬 많이 보았고 구하기 수월했음에도 불구하고 빨강황토를 사용했다.

  전라도 땅은 매우 붉다. 무안이나 해남처럼 남쪽 끝에 가까울수록 더욱 붉다. 경상도 땅의 색깔은 붉은색이 없다. 나는 어릴적에 할아버지산소를 찾아가던 기억이 난다. 눈이 녹은 길은 길 양쪽의 하얀 눈이 녹지 않은 채로 있었고, 가운데 길만 녹아서 마치 불타는듯 밝게 빛났다. 매우 선명한 붉은 흙빛은 하얀눈들을 더욱 하얗게 빛나게 했다. 그 하얀눈과 붉은 길의 대비만으로도 충분히 삶의 기쁨이 되곤 하였다.  여름이면 풀숲과 붉은길의 대비는 마티스나 고갱의 그림보다도 더 강렬한 원색들의 힘을 발산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색채의 감각은 매우 강렬하면서도 풍부하다고 한다.

그 붉은 색은 주홍색에 가까웠다. 그 붉은색의 땅 때문에 노랑색의 곡식도, 초록색의 나뭇잎도, 하얀눈도, 갈색의 나무등걸도, 파란하늘도 모두 그 찬란한 빛을 발하고있었다.

 

보라1- 복잡한 심리의 색

보라는 혼합된 감정을 나타내는 색으로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다. 여자의 12%와 남자의 9%가 보라를 가장 싫어한다고 답했다. 보라를 가장 좋아한다고 답한 사람은 3%에 불과하다.

바이올렛은 레드(에너지 빛깔)와 블루(고요함의 빛깔)라는 서로 다른 정반대의 빛깔이 섞이어 생긴 빛이다.

 

 

이 빛깔은 힐링과 봉사, 또는 깊은 영성을 상징한다. 이 빛깔의 플러스 면이 표현되면 그 사람은 자신감에 가득 찬 자신가가 된다. 행동력이 있으며 비즈니스에서도 수완을 발휘하고 조직을 만들어 성공하는 능력도 있습니다. 블루의 특성인 영성 부분이 낡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없애고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내어 자기재발견과 성장을 반복해나갑니다. 자비심이 깊고 남에게 봉사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을 치유하는 일을 하게되면 그 재능을 십분 발휘하게 됩니다.

지구상에서 문화나 물질문명에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 남아메리카의 원시림, 중앙아프리카, 아시아내륙에 사는 원주민들, 신비주의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신비스러운 빛을 발하는 보라색을 모든 면에서 특별히 사랑한다.

교회의 큰 인물은 '보라색'이라고 하여  '중성'에 속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보라색을 사회성과 연관시켜 볼 때 자기존재가 평범하게 인정되지 않는 일반사회에서 결코 방해를 받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평범한 직업이 아닌 '밀수꾼', 동성연애자와 같은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보라색을 택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보라색은 문화수준이 높고 복잡할수록, 지적인 자부심과 수입이 높을수록, 외교적 성격을 띠는 의복차림과 같은 외부에 드러나는 색상으로는 선호되지 않는다. 나치독일의 담자색과 보라색은 의식적으로 활용되었다. 보라색은 민감성, 변화, 매혹적인 쾌락, 강하고 깊은 신비주의가 반영된다. 보라색은 의미상 육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지적이고 합리적으로 성숙해갈수록 보라색을 싫어한다.

또, 왜 자기가 여기에 있고 자기는 무엇을 탐구하는 일에 강한 관심을 보이며 ,그것을 밝혀내기 위해서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거나 이미 그것을 찾아낸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 빛깔의 마이너스 측면이 표현될 경우에는 로얄블루의 경우와 비슷해서 극단적으로 우울해지거나 자기불신, 무관심, 두려움, 고뇌로 고통받게 됩니다. 생각에 빠지거나 깊은 우울증에 괴로워하며 이런 곳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또 삶에서 물질이라는 난관에 부딪히는 일도 있습니다. 신체적으로는 머리와 관련이 있다. 역으로 중성적인 보라색을 유난히 거부하는 성인에게도 문제가 발견된다. 이런 사람은 민감하고 육감적인 체념으로 자기자신을 포기하는가하면 그의 감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자아가 손상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인간은 이성과 감성이 동일하고 개인적인 지위에서 공명성과 신용성이 투철하다. 그래서 이런 이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예민한 감정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비판적으로 결정하려든다. 거기다 이런 사람은 인간만이 가지고있는 풍부한 감정을 공유하기보다는 ,지나친 독단으로 인해 모든 속물근성과 경쟁자의 모습으로 보여지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신, 목적에 유용한 정서를 지니고 , 나아가 미학적인 지각대신에 , 종종 유행하는 기호만을 모방하는가하면 ,의식적으로, 그러니까 겉으로 감동케 하려고 한다. "보라색을 거부하는 사람은 보통 무슨 일인가 꾀하며 전진하는 채하지만 사실상 전진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찾으려고만 한다.(괴테)"

바우하우스의 교사인 요하네스 이덴은 학생들에게 가장 싫어하는 색을 사용하는 연습을 시켰다. 그 결과 대부분의학생은 가장 싫어했던 색의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었다. 색채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인간은 그만큼 자유롭게 살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와씨는 '색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나라는 전체주의이다'고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라색이 고귀한 색으로 사용된 것은 애증을 치료하는 융화된 치유의 색이기 때문이리라

보라2-권력의 색

모든 인간들 특히나 옛날의 사람들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속물적이고 유치한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을 평가할 때, 그들의 지위나 그들이 입는 옷등 외모로만 평가하려고 했다. 그래서 항상 고귀한 색이란 그 당시에 가장 비싼 색을 말하는 것이었다.

영어와 불어의 바이올렛은 보라를 나타내는 색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꽃이름(제비꽃)이다.  라일락도 연보라를 나타내는 색이름이자 꽃이름이다. 보라는 가장 아름다운 죄의 색이기 때문에 당연히 여성적인 색이다. 비올라, 비올레타, 비올레트 등의 여자이름으로 쓰인다. 보라색 자동차는 1995년 처음으로 유행되었는데 주로 소형차, 소위 여성을 위한 모델이었다.

 화학물질 요오드도 바이올렛에서 나온 이름이다. 요오드에 열을 가하면 바이올렛 같은 보라색증기가 발생한다.  바이올렛과 폭력의 언어적 근접성도 눈에 띤다. 이탈리아어인 viola는 바이올렛을 가르키지만 비올렌티아는 '폭력'을, 비올라레는 '폭력을 행사하다'라는 뜻이다. 영어와 프랑스어의 violation, violence도 폭력을 의미한다.  퍼플의 색은 권력의 색이 되었다.

 

제목:탑, 1990년, 마카로니에 락카칠한 것을 아크릴관에 넣음.

 

어떤 화창한 날 페니키아의 신 멜쿠아르트가 그이 연인인 요정 티로스와 함께 지중해 해변을 즐겁게 산책하고 있을 때, 그의 개가 땅으로 기어가는 가시달팽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깨물다가 주둥이를 다쳤다. 고대의 퍼플은 달팽이로 만들었다. 바다에 사는 퍼플달팽이의 집은 갈색-흰색의 줄무늬에 거친가시와 파이프모양의 꼬리가 달려있어서 동물학자들은 퍼플달팽이를 '가시달팽이'라고 부른다. 주인이 수건으로 피를 닦아내자 수건 위에는 생전 처음 보는 아름답고 기품이 넘치는 색이 묻어났다. 티로스는 멜쿠아르트가 이 새로운, 비할데없이 아름다운 호화찬란한 색으로 옷 한 벌을 만들어 준다면 그가 갈망하는 사랑의 보답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신은 서둘러서 잡을 수 있는 모든 가시달팽이를 손수 긁어모았다. 이것으로써 전설은 티로스의 자주색이 신적인 후광을 띠고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제목:공작새, 1990년, 믹서기 부품, 아크릴관, 투명아크릴판, 칼라압정, 칼라크립, 크레파스토막들, 수수깡

역사상 가장 유명한 퍼플은 페니키아의 도시 티레와 시돈(오늘날 레바논의 도시 수르와 사이돈)에서 생산되었다. 퍼플은 이탈리아에서도 생산되었으며 타렌트의 몬테 타스타세오는 가시달팽이로 이루어진 산이다. 썩어가는 달팽이에서 나온 뿌연죽을 열흘동안 은근한 불에 달여 줄이면 악취는 점점 심해지고 노랜색을 띠며, 여기에 담근 모직이나 비단도 뿌연 노란색이지만 햇빛에 말리면 처음에는 녹색으로 그 다음에는 빨강색으로 마지막에 퍼플로 변하나. 퍼플은 햇볕에 의해 생겨난 색이기 때문에 바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색이 햇볕에 바랫던 시기에 퍼플이 영원을 상징하게된 까닭도 여기에 이다.  달팽이의 종류에 따라 색이 달랐다. 퍼플비단 1m를 사려면 수천 달러를 지불해야했다. 현재에도 퍼플1g 가격은 약200만원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원의 커텐과 사제의 의복 색을 정해주었다. 파랑띤 퍼플과 빨강띤 퍼플 그리고 진홍색을 쓰되 금빛이 돌도록 하라! 고대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색이 곧 지배자의 색이었다. 퍼플옷을 입는다는 것은 황금장신구를 다는 것보다 더 큰 특권이었다.

퍼플 옷을 지으려면 몇 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중국산 비단을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보내어 세계최고의 비단 직조공들의 작업을 거친 다음 페니키아의 티루스로 보낸다. 티루스에서 퍼플 염색이 다 끝나면  다시 이집트의 알랙산드리아로 보내서 금실로 수를 놓는다.

로마제국에서는 황제와 여황제 그리고 황제 계승자만이 퍼플옷을 입었다. 장관들과 고위공직자들은 다만 퍼플 장식만을 달 수 있었다.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시저의 법을 지킬 필요가 없었으므로 자신의 배에 달린 돛을 퍼플로 염색하게 했다.  황제가 서명할 때 잉크도 퍼플이었다. 여황제가 자녀를 분만하는 방은 퍼플로 발라져다. 여황제 데오도라는 532년 폭동이 일어났을 때 "나는 퍼플의 옷을 절대로 벗지 않겠다. 또 단 하루도 나를 만난 사람이 여황제가 아닌 다른 말로 나를 부르게 하지 않겠다. 퍼플은 수의로도 훌륭하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은 터키에게 점령당했고 황제직영의 퍼플염색 공장은 파괴되었으며 염색공들은 죽음을 당했다. 동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퍼플 염색도 종말을 맞았다. 그 뒤에는 빨간 케르메스 염료가 가장 비싼 값으로 부상했고 퍼플은 붉은 기를 띠게 되었다.

경건함을 나타내는 색조에서 흰색은 신의색이며 검정은 정치의색이며 보라는 신학의색이다. 가톨릭교회는 보라색제복을 가진 유일한 공공기관이다. 가톨릭 성직자들이 평상시에 입는 검은 수단에도 색으로 서열이 표시되는데 주교의 수단에는 보라색단추, 추기경의 수단에는 빨간 단추가 달려있다.

교회의 보라색도 기원은 퍼플이다. 교회는 세속적 권력의 색인 퍼플을 영원과 정의의 색으로 해석함으로써 권력을 추구하면서도 신의 겸손한 종으로 나타나야하는 모순을 해결했다. 1464년 교황바오로2세는 추기경의 의복염색에 키르메스를 사용하라고 명령했다. 추기경의 퍼플은 그때부터 파란빛이 약간 도는 빛나는 빨강이 되었고 추기경 밑에 있는 주교들의 의복은 키르메스와 케르메스보다 저렴한 인디고를 섞어서 염색하여 보라색이 되었다. 이렇게 서열은 색의 가격에 따라 정해졌다.여성운동은 1870년경 선거권을 얻기 위한 투쟁으로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1918년 영국에서 여성 참정론자들이 승리했고 독일에서는 1919년, 프랑스에서는 144년에서야 여성투표권을 얻어냈다.

1908년 영국여성인 에멀린 페틱 로렌스는 보라, 흰색, 녹색을 여권운동의 색으로 발표했다. "지배자의 색인 보라는 여성의 투표권을 위해 싸우는 모든 여성의 혈관속에 흐르는 왕의 피를 상징하며, 또 자유와 품위에 대한 여성의 자각을 상징한다, 흰색은 사적인 삶과 정치적인 삶에서 정직함을 상징하나. 녹색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당시 여자들은 대개 흰 블라우스와 흰 스커트 또는 보라색스커트를 가지고있었다. 보라색 스커트는 1900년을 전후해 대단히 유행하였다. 녹색은 언제나 일상복의 색이었다. 여권론자들은 데모를 할 때 보라-흰색-녹색의 넓은 리본을 달았다.

1970년경 보라는 다시한번 여성운동의 색으로 유명해졌다. 여성운동은 오늘날까지도 '여성의 유산결정권' '동일한 노동에 대한 동일한 임금'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1980년경 연보라색 멜빵바지 유행을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새로운 패미니즘의 유행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은 보라에서 하나로 결합된다. 보라보다 더 강하게 동성애를 상징하는 것은 없다. 연보라색손수건은 동성애자라는 표시였다. '보라색 손'은 미국남성동성애해방운동'의 상징이다. 1980년경부터는 무지개 깃발이 남성동성애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무지개는 원래 노아의 대홍수 뒤에 "나는 생명을 두 번 다시 멸망시키지 않겠다'라는 하나님의 표식이다. 

오늘날 동성애자들은 보라색이 왕의색 이었다는 것을 잘 모르며 '해방된 여자의색' , '절망에 빠진 여자의색'으로 생각한다. 자주색이라는 이름에는 움직임과의 연관성이 내포되어있다. 자주색 자신이 움직이며 또 다른 이는 자주색은 정지된 중심이고 그 주위에 있는 세계가 회전한다고 본다. 또는 자주색자체가 움직임에서 생성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광택과 색의 교체 모두가 율동과 연관된다. 색 자체는 옷을 입은 자나 관찰자가 움직일 때에 비로소 교체되며 움직일 수 있다.  고대중국에서는 자주색이 북극성의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자주색은 움직이지 않으며 모든 별을 비롯한 하늘이 그 주위를 회전하는 중심이자 바퀴 같은 거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색이 빛과 어둠의 혼합에서 생성되며 따라서 서로 대립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자연 속에서는 그것은 하나의 동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같은 자연이 한번은 어둠으로 , 또 한번은 빛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보라3-교회와 비현실의 색

보라색이 가토릭교회의 전례에 쓰이면 참회를 뜻한다. 고해성사를 집행할 때 신부는 보라색영대를 길게 늘어뜨린다. 고해성사실에 있는 커텐은 대게 보라색이다. 보라색은 금식기간의 색이다.  기독교의 상징체계에서 보라색은 겸손의 색이다. 왕은 권력으로서 다스리지만 추기경과 교회는 겸손으로서 다스린다.'바이올렛(제비꽃)도 겸손의 꽃이다.

 

 

보라색보석인 자수정도 같은 효과를 가진 것으로 해석했다. 고대상류사회에서는 자수정을 술잔으로 사용했다. 자수정잔에는 물을 따라도 포도주처럼 보이기 때문에 술에취하고 싶지 않으면 물만 부어먹어도 아무도 몰랐다. 자수정의 어원은 '술에 취하지 않는다'라는 뜻이었다. 추기경은 교황으로부터 자수정 반지를 받으며 겸손을 뜻한다.

물고기자리는 자수정과 연관시키는데 대게 생선만 먹는 금육기간이다. 네푸툰은 지배자이므로 보라색을 입을 권리가 있다. 보라는 물고기자리와 쌍둥이자리의 색인데, 두 마리의 물고기, 두 인간 은 남성의 특성과 여성의 특성이 합해진 보라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보라색 옷은 겸손이나 참회의 느낌을 주지않고, 자유분방한 느낌을 준다. 보라-은색-금색은 관습을 벗어난 우아미, 검정-은색-금색은 전통적인 우아미를 나타내는 색조다. 보라는 특별한 색을 선택하려는 마음을 드러내준다. 보라색 옷을 입은 사람은 튀고싶어 하며 자의식보다 강한색의 옷을 입은 듯 변장이라도 한 것같다.

경건함을 나타내는 색조에서 흰색은 신의색이며 검정은 정치의색이며 보라는 신학의색이다. 가톨릭교회는 보라색제복을 가진 유일한 공공기관이다. 가톨릭 성직자들이 평상시에 입는 검은 수단에도 색으로 서열이 표시되는데 주교의 수단에는 보라색단추, 추기경의 수단에는 빨간 단추가 달려있다.

교회의 보라색도 기원은 퍼플이다. 교회는 세속적 권력의 색인 퍼플을 영원과 정의의 색으로 해석함으로써 권력을 추구하면서도 신의 겸손한 종으로 나타나야하는 모순을 해결했다. 1464년 교황바오로2세는 추기경의 의복염색에 키르메스를 사용하라고 명령했다. 추기경의 퍼플은 그때부터 파란빛이 약간 도는 빛나는 빨강이 되었고 추기경 밑에 있는 주교들의 의복은 키르메스와 케르메스보다 저렴한 인디고를 섞어서 염색하여 보라색이 되었다. 이렇게 서열은 색의 가격에 따라 정해졌다

보라는 허영의 색이다. 기독교전통에서는 허영은 일곱가지 중죄중의 하나였다.  독녹색의 작은 유리병에 담긴 크리스찬디오르 향수는 보라색으로 포장되어있다. 그 향수의 이름은 '뿌아종' "독'이다.  위험할 정도로 매혹적이라는 뜻이다. 보석함은 흔히 보라색 벨벳으로 장식되어있다. 보라나 연보라는 초콜릿포장으로 늘 인기가 높다. 보라는 달콤한 죄의색이기도 하다. 보라는 마법의 색이다. 남을 해칠 목적으로 하는 '검은 마법'이 아니다. 마법사는 보라색옷을 입는다.  모세의 시기에는 사제와 마법사는 저승의 매개자로 같은 서열에 속했다. 이성의 색인 노랑에 반대되는 보라는 신앙과 미신의 색이다.

 

 

보라는 감각과 정신, 감정과 이성, 사랑과 체념을 연결한다. 보라에는 모든 대립이 녹아있다. 보라는 눈에 보이는 영역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사이의 경계선이다. 밤이 깊어 완전한 어둠에 빠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보이는 색이 보라이다. 인도의 상징체계에서 보라는 방황하는 영혼의 색이다. 현대의 상징체계에서는 비현실적인 자극에 의식을 열어준다는 심리적 마약의 색이다. 이런 약제이름에도 '퍼플하트' '퍼플레인'등 보라색이 자주 들어간다. 1970년대에는 의식의 확장이 주요 이슈였고 보라가 유행했다. 당시 인기를 누렸던 록 구릅도 '디프 퍼플'이었다. 아 내마음 속에는 두 개의영혼이 살고 있다네'이는 전형적인 쌍둥이자리의 한탄이다. 쌍둥이자리는 상업의신 머큐리에 속한다. 상업은 언제나 변화를 의미한다.

모든 죄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죄는 -많은 사람들에게-섹스일 것이다. 빨강이 섹시한 빛을 발하려면 반드시 보라가 필요하다. 빨강-보라-검정-분홍은 순서에 상관없이 부도덕, 유혹, 섹스의 섹죄다. 섹스는 빨강보다 보라에 더 많이 들어있다. 이것이 보라의 비밀이다. 오스카와일드는 금지된 섹스를 "회색시대의 보랏빛 시간"이라고 불렀다.'퍼플의 정열'은 유명한 미국칵테일로서 알코올 함량이 높아서 섹스에 대한 망설임을 없애준다고 한다.

보라는 자연에서 가장 드물게 발견되는 색으로 가장 부자연스러운 색이다. 보라는 189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된 세기말 예술양식에서 가장 인기를 누렸으며 100년대 영구에서 '아르누보'로 불렸으며 독일에서는 '유겐트 양식'이라고 알려졌다.  유겐트양식의 예술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매혹적인 여인들은 대부분 은색과 금색이 배색된 보라색 옷을 입고 있다.  당시에는 일차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인위적이지 않은 것은 예술이 될 수 없는 시대였다.

당시는 산업의 발전으로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으며 자연스러운 것은 단순한 것으로 멸시받았다. 유겐트 양식의꽃과 식물장식을 보면 ,자연은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나타난다. 모든 장식이 기술적 대량생산이 가능한 샘플같이 보이나. 인위적인 유겐트 양식의 미학에는 보라색이 필요하다. 보라색 가구가 있는 살롱은 생활문화의 정점으로 평가되었다. 대개 검정과 배색된 보라색 인테리어를 오늘날 대낮의 환한 박물관에서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예전에는 석유 등잔불 아래 서서 보게되는 은밀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보라는 인위적으로 합성된 첫 색소이다. 1856년 영국의 어느 실험실에서 퍼키스가 '퍼킨스 모브'를 특허 내었다. 1890년대를 모브의시대라고 불릴 정도였다.

혼합색은 모호하고 비현실적이며 불안한 느낌을 준다. 연보라는 가장 모순된 색이다. '보라빛 시간'이 늦은 오후, 여명의 시간을 가르키는  가장 우아한 표현이었다. 가장 모호한 색인 보라는 거짓과 훼절의색이다.

보라를 만들려고 빨강과 파랑을 섞으면 갈색이 나오기 쉽다. 본인도 그림을 그릴 때 순수한 보라색을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훌륭한 보라색 색소는 코발트보라이다.  유화나 인쇄에 쓰이는 코발트보라는 색 중에서 가장 비싼 색이다. '밝은 코발트보라'는 비소에서 얻는데 독성이 가장 강하여 수채화 팔레트를 보라색으로 물들이는 장본인이다.

독일에는 최후의 발악, 연보라"라는 엤말이 있다. 완전히 꺼지기 전,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섹스에 대한 욕망을 가르키는 말이다.  노처녀는 연보라색을 입는다. 나이는 들었어도 결혼할 수는 있다는 뜻이었다.  연보라는 즐거움이 없는 생동감이 있다고 괴테는 말했다. 라벤다, 바이올렛, 로즈마리가 풍기는 보라색향기도 노처녀를 연상시킨다. '퍼플하트',즉 보라색심장은 가장 많이 수여되기 때문에 가장 유명한 훈장이다.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미국의 군인 그리고 당사자가 그 부상으로 사망하였을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 이 훈장을 받는다. 보라는 삶과 죽음의 가운데에 있다.

괴테는 자주색을 "모든 색중에서 최고의색: 이라고 칭하고 마력적인 이름인 "복숭아꽃"을 선사했다. 복숭아꽃은 원래 밝은 자주색이며 인간의 육신과 관계된다. 밝은 피부를 가지는 독특한 이 색은 모든 시대에 있어서 초상화가의 능력을 측정하는 시금석이었다. 괴테는 자주색을 '복숭아색'이라 했다가 '연지색' 또는 '빨강' '장미빛'으로 불렀다. 플라톤도 자주색을 가장 아름다운색으로 간주했다.

신적인 어둠이 근원 속에 있는 아직 있고 파악될 수 없는 피안의 빛을 나타내 보이는 경험이 기독교 신화에서 되살아났을 때 , 자주색 속의 어둠도 빛의 최고형태로 나타났으며 자주색이 처음으로 성스러운 힘 즉 신적인 위엄의 색으로 상승되었다.  괴테가 자주색 유리를 들여다보았을 때" 자주빛 유리는 무시무시한 빛 속에 들어있는 경치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 색은 심판의 날에 천지에 두루 퍼질 것임에 틀림없다"

1997년 12월 영화감독 이따미 쥬조우씨가 자살했다. 그의 부인 노부꼬씨의 인터뷰 때의 의상은 보라색이었다. 보라색은 복잡하고 깊은 슬픔이나 상반된 감정을 숨기는 미묘한 색이다. 색체 심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보라색을 '침체된 우울한 기분이나 체험을 가진 불행아' '정서불안을 가져오는 몸의 기능저하'라고 본다.

빨강과 파랑을 고집하여 보라색을 그리는 소년의 생활을 점검해보았다. 그는 학교에서 이지매를 당하고 있었고, 오후에 울면서 귀가해 어머니에게 분을 푸는 일이 계속되었다. 때로는 자기동생에게 "너는 아직 학교에 가지 않으니까 참 좋겠다"라고 말하면서 부러워했다고 한다. 보라색 속에는 빨강의 감정의 앙양, 파랑의 감정의 침체를 융화시켜 균형을 잡으려는 욕구가 있다

30대 후반의 여성은 20대 후반에서 30대에 걸쳐 2~3년기간 동안 엷은 보라색에서 짙은 보라색, 선명한 보라색이 나열되어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혼문제로 괴로워하던 시기였다. 컬러 히스토리에서 보라색이 나타나기 2년전에는 빨강과 파랑이 배색되어 있는 경우가 있었다. "이 빨강과 파랑옷은 어떻습니까?"하고 질문했더니 "네, 거의가 옷의 배색입니다. 이시기는 공적으로 이 배색만 입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빨강이 점차 퇴색되어 갔습니다만."

금색

금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여자의 1%에 불과했다. 남자들 주에서 금색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의 2%,남자의 3%는 금색을 가장 싫어한다고 말했다. 금색은 가장 아름다운색으로 꼽히는데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금색을 생각하면 맨먼저 귀금속인 금이 생각난다. 금은 돈이고 행운이며 사치이다. 금은 귀하지만 세계어디에나 있다. 1톤의 흙속에는 금 0.005g 포함되어있어서 비록 흔적에 불과한 정도지만 황금은 지구도처에 숨겨져있다.

이 빛깔은 보다 깊은 내적인 지혜를 상징하는 빛으로 오랜 옛날부터 존경받는 빛깔이기도합니다. 플러스 성질이 표현되면 이번 생에서 상당히 높은 레벨의 기쁨과 행복을 맛볼수있다. 종교화에 그려진 성자를 둘러싼 광휘가 골드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행복과 기쁨을 받아들인 충만감을 나타낸 빛입니다. 또 골드는 깊은 힐링에너지를 가진 빛입니다. 이 골드의 플러스성질이 강화될 경우 ,자기의 가치를 확실하게 인정할 수 있고 , 평화와 정의에 넘치는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존경받게됩니다. 우호적이고 즐거운 사람이기 때문에 팀을 짜서 하는 일에도 능력을 발휘한다. 또한 독창적이며 자기표현이 뛰어난다.

 

1985작, 봄,여름,가을 겨울,연작중 봄으로서  닭깃털을 염색하고 표백한 것을 붙였다.

 

금빛의 마이너스 성질이 표현되면 깊은 불안과 공포로 이어진다. 무언가 깊은 부분에서 겁에 질려있거나 공포를 안고있어서 자기의 감정을 억누르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또 표면적이고 남을 비롯해서 매사에 무척 비판적이다. 황금은 속세적일 뿐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나타내는 태고적 상징이며 구원과 진리의 불가침성의 상징이고, 또한 악마적 속임수의 상징이기도하다.

황금은 납보다 무겁고 다른 어떤 금속보다 부드럽고 유연하다. 인간들이 신의계획처럼 아무죄도 짓지않고 행복하게 살았던 잃어버린 "황금시대"에 관한 우울한 역사가 전세계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당시의 인간들은 모두가 선했고 순금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수천년 된 꿈을 새롭게 부활시킨 2세기에 새롭게 부활시킨 루키아인들은 그렇게 주장한다.

순금으로된 거리가 있는 "천국적인 예루살렘"역시 과거와 미래가 서로 구분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피안속의 파라다이스와 같은 것으로서 빛나는 동경의 안개속에 놓여 있다. 그러나 황금시대에 관한 많은 은유들속에서 천국적인 금속의 이질성이 반드시 그 금속의 초지상적인 탄생을 보증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경고와 두려움이 깔려있다.

bc3000년경파라오 메네스는 황금을 의도적으로 세계적인 가치로서 도입한 최초의 인간이었던 것 같다. 그는 규격화되어 그의 이름이 표시된 14kg의금은 이를 생산케하고 그것을 교환수단으로 유통시켰다. 이집트에서는 황금이 선사시대의 침묵을 깨고 출현하자마자 태양신 레가 지배하는 바로 그 영역에서 이미 기이한 금속과 인간간의 영광의 관계와 더불어 이중적인 관계가 거대하게 그리고 선구적으로 전개되었다.

중세의 기독교회화는 황금색 없이는 생각불가능 했다. 사람들이 모든색과 모든 물질속에서느끼고 싶었던 것 즉"비물질적 빛의 존재를 즉 빛과 광채를 황금은 확실하게 그리고 아주 생생하게 제공한다"787년 니케아 2차종교회의에서 신학자들은 "그림의 창조가 화가의 착안에의해서가 아니라 카토릭 교회로부터 발생되는 것"이라는 신념을 그리고 화가에게는 단지 물리적 테크닉적인 과정만이 위임된다는 신념을 공표했다. :창조자"그리고 위탁자는 거만함과 그리고 예술가를 수공업자로 취급하는 경멸로서 근세초까지 화가와의 계약을 주관했다.근세초 예술가들은 서서히 자의식을 찾게되고 권위있는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감히 요구했다.

오늘 1485년 10월 23일, 위에 언급한 프란세스코는 위에 언급한 도메니크에게 목판위에 그림한개를 그릴 것을 위임하노라 도메니코는 언급된 판을 손수 색칠하며 그리되 모든 세부적인 사항은 본인 프라베르나르도가 최선이라고 여기는대로 따를 것이다. 도메니코는 자신이 좋은색으로 판을 색칠하고 필요한 장식부분에는 금가루를 쓸것이다. 그리고 그림이 확정된 가격에 미달된 경우 프라 베르나르도의 기준에 따라 그림값을 내릴 것이다.

하나의 그림에"언급된 도메니코"역시 당연시하고있는 것이다.

당대의 비평가들은 그림에 황금을 사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들은 거기에 동요됨이 없이"금가루"에 대한 정통적인 소망을 간직하고있었다. 그동안 습관과 경험에 길들여져서 금의 원래의미는 예술영역에서 찾아볼 수 없고 단지 신학적인 명상과 신비적인 경험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bc3000년경파라오 메네스는 황금을 의도적으로 세계적인 가치로서 도입한 최초의 인간이었던 것 같다. 그는 규격화되어 그의 이름이 표시된 14kg의금은 이를 생산케하고 그것을 교환수단으로 유통시켰다. 이집트에서는 황금이 선사시대의 침묵을 깨고 출현하자마자 태양신 레가 지배하는 바로 그 영역에서 이미 기이한 금속과 인간간의 영광의 관계와 더불어 이중적인 관계가 거대하게 그리고 선구적으로 전개되었다.

중세의 기독교회화는 황금색 없이는 생각불가능 했다. 사람들이 모든색과 모든 물질속에서느끼고 싶었던 것 즉"비물질적 빛의 존재를 즉 빛과 광채를 황금은 확실하게 그리고 아주 생생하게 제공한다"787년 니케아 2차종교회의에서 신학자들은 "그림의 창조가 화가의 착안에의해서가 아니라 카토릭 교회로부터 발생되는 것"이라는 신념을 그리고 화가에게는 단지 물리적 테크닉적인 과정만이 위임된다는 신념을 공표했다. :창조자"그리고 위탁자는 거만함과 그리고 예술가를 수공업자로 취급하는 경멸로서 근세초까지 화가와의 계약을 주관했다.근세초 예술가들은 서서히 자의식을 찾게되고 권위있는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감히 요구했다.

오늘 1485년 10월 23일, 위에 언급한 프란세스코는 위에 언급한 도메니크에게 목판위에 그림한개를 그릴 것을 위임하노라 도메니코는 언급된 판을 손수 색칠하며 그리되 모든 세부적인 사항은 본인 프라베르나르도가 최선이라고 여기는대로 따를 것이다. 도메니코는 자신이 좋은색으로 판을 색칠하고 필요한 장식부분에는 금가루를 쓸것이다. 그리고 그림이 확정된 가격에 미달된 경우 프라 베르나르도의 기준에 따라 그림값을 내릴 것이다.

하나의 그림에"언급된 도메니코"역시 당연시하고있는 것이다.

당대의 비평가들은 그림에 황금을 사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들은 거기에 동요됨이 없이"금가루"에 대한 정통적인 소망을 간직하고있었다. 그동안 습관과 경험에 길들여져서 금의 원래의미는 예술영역에서 찾아볼 수 없고 단지 신학적인 명상과 신비적인 경험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제목:황소, 1990년,아크릴관,크레파스토막,아크릴봉,철사

 

이미 bc3000년경 이집트인들에게는 나일강진흙에서 씻어낸 금만으로 부족했다. 그들은 원시적 공구를 가지고 '산을 파헤치고' 10미터 깊이의 갱을 뚫어야했다. 신들과 신전 그리고 신들과 대등한 왕들은 금을 요구했고 금은 그들을 위해서 쓰여졌다. 황금이 천사들에게 속할뿐아니라 천사들의 육신임에 의심이 없었다.

황금은 얇게 종이처럼 만들어졌다. 여기서 황금은 두 갈래길을 가게된다. 하나는 현실세계로서 견고한 물질적 형상을 한 값비싼 금속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교묘한 속임수는 하지만 권력과 이기주의, 사치 그리고 아주 야만적인 세상연극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간다. 모든시대의 독재자들은 황금을 가지고 미심쩍은 유희를 일삼았다. BC6세기 페르시아와 다리우스 1세는 영토 관할권리를 순금5kg의 판위에 써서 "영구화"시켰다. 왕은 '보물' 즉 왕같은 황금을 가진자였다. 세속적인 힘과 신비로운 힘이 왕속에서 일치되고 그의 지배가 정당화되었다.

두 번째의 길은 천상의 물체의 찬란함과 관계되나. 황금이 공간과 한계를 뛰어넘고 거의 허무적인 금박종이 속에서 거의 비물질적인 존재를 취하여 빛과 하늘과 영생을 지시할 때, 그 때 비로소 찬란함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순수성과 단순성에 있어서 온전한 그런예로서

 '엘도라도'라는 이름의 인디언 족장은 금으로 목욕을 한다고 했다. 라인강은 사금이 많기로 유명하다. 금광에서 나오는 금과 강에서 나오는 사금은 자연적인 방법으로 생산된 금이다. 이 금에는 항상 은, 구리, 플라틴, 수은 , 철, 팔라듐, 니켈의 금속이 들어있다.

금을 인공적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5,000년전부터 시작되었지만 두 가지를 발견했을 뿐이다. 1669년 연금술사 브란트는 금색의 기본원료인 오줌에서 인을 발견했다. 1710년 뵈트거는 하얀금, 즉 백색 도자기의 비밀을 발견했다. 금은 명예의 색이다. 승자는 금매달을 받는다. '황금같은 정절'이라는 말도 있다. 금은 태양에 속한다. 옛날 사람들은 금이 태양에서 나왔으며 지구로 온 하늘의불이라고 생각했다. 잉카인은 금을 태양의 피라고 믿었고 멕시코 인디언들은 태양신의분비물이라고 믿었다. 금은 가장 고귀한 금속으로 남성적인 특질을 갖고 은은 여성적인 것이다. 성인들의 머리뒤에 그려지는 후광은 아우레올레라고 하는데 라틴어로 금을 뜻하는 아우룸이 그 어원이다. 금은 세속적인 것을 귀하게 만든다. 중세의 회화에서는 금은 천사의 빛을 상징한다. 1500년까지 성스러운 주제는 늘 금바탕에 그려졌다. 러시아의성화는 오늘날가지 금바탕에 그려진다. 엤날에 그려진 성화들은 목재판에 석고바탕처리를 하고 그위에 금박을 입혔다. 성인의 후광처럼 섬세한 금사장식은 아마기름과 고무액위에 금박을 붙인다. 물기는 새의 깃털로 쓸어내지만 찌꺼기 금은 물론 다시 사용하나. 커다란 평면이 금으로 처리되어있으면 그 아름다움이 사람을 끄는 힘이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을 과시하기 때문에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광고에서도 금은 과시를 나타낸다.

황금이 비범한 물질로 취급되고 빛의 구현으로 취급된 것은 중세 저네에 걸쳐서 사고와 직관의 모든 영역을 지배했다. 그림속의 황금도 그런 맥락에서만 이해가능하다.

황금은 소우주며 하나의 작은 세계이다. 그리고 천상적 물체며 천국 그 자체로서 태양에 빛이다. 그러므로 황금은 불로되어 있으며 최고의약이다. 그 속에는 하늘의 모든 별이 들어있고 지상의 모든 약초들이 들어있다. 연금술은 '우리의 황금은 세속적인 황금이 아니다' 이세상의 죄악은 땅에서 발견되는 사물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끔찍한 어리석음 또는 속되고 눈먼 탐욕 때문이다."

식자들에게는 황금은 아무리  창조적 빛의섬광으로서 물질세계를 탄생시키고 그 속에서 계속해서 작용하고있는 것이다. 13세기 한 저자는 '사물이 가진 빛의 양만큼 그것은 신적인 존재를 가지고있는 것이다"라고 그 당시의 관념을 요약하고 있다. 그러한 근원적 정신적 빛은 무엇보다도 광채속에 가장 설득력있게 현시된다.

플라톤이 그의 삼원색이외에 광채를 색채세계의 네번째 신체적 보물가운데 하나로 취급했다. 마치 광채가 세계속에 신의존재한다는 유일한 증거물인 듯이 모든 사물속에서 광채를 찾는 것은 그 당시 거의 병적인 욕망이 된 듯하다. 거대한 빛의 광채를 포착하기위해서는 보석이외에 또는 보석에 앞서서 황금이 요구되었다. 황금은 빛을 발하고 살아숨쉬며 성장하고 변모하며 완성을 향해 노력한다.

탄생시 황금은 납, 소위 태아 상태의 황금에 불과하며 성장, 성숙과정을 통해 다른 '비천하 s'금속을 거쳐서 서서히 목표에 도달하고 진정한 황금이 된다는 것(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모든 물질의 변화가능성이론은 그 당시에 인정되었다)그리고 적합한 처방을 통해 그런 자연적인 과정을 도울 수 있다는 것, 이 모두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로 생각하였다. 그런 연금술의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금속 뿐아니라'선한 영혼'들도 순금으로 정화된다고 믿었다. 좋은 것에는 항상 금이라는 형용사가 붙은다. '황금의 손' '황금의 발' '황금의 목소리'

황금의 특수한 성질들은 태초부터 세계도처에서 신들의 대명사로 그리고 특히 태양신의 광채의대명사로 운명지워졌다. 물론 이광채는 오벨리스크의 불꽃의 신적인 빛으로서의 변화에 비하면 소박하게 표현된다. 고대의 모자이크에선  황금주사위로 된 광채점들이 여기저기 장식효과를 내기위하여 첨가되었다.

그러나 그 광채점들은 고딕건축이후 교회공간의 황금빛 바다속으로 합류하게되었다. 그것도 충분하지 않아서 ,춤추는 빛 폭포를 이룬 황금표면이 넘쳐흐르는 듯이 보였다. 경건한 감성자가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광채들이 변화하고 사라지며 약 또 다른 곳에서 새롭게 불타올랐다. 모자이크 기술자들은 모서리를 약간 틀어서 황금주사위의 경도를 변화시키고 빛 반영의 방향을 꺽어서 빛이 천 갈래로 흩어지고 아주 작은 빛의 잔재까지도 신자의 눈에 도달하게 했다.

 모방품인 교회공간 즉 빛이스스로 발생하는 듯이 보이는 이곳 아닌 다른 어떤 곳에서도 황금의 빛과 상징적 힘이 그렇게 밀도있게 전개될 수는 없으며 ,그 어느곳에서도 구원의 복음이 그렇게 강렬하게 표출 될 수는 없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융이 자아의 상징이라고 보는 황금은 살아있는 태양의 전설, 즉 "빛의세계'인 성령의정신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예수는 무적의 태양신 "솔 빅투스"로서 백마가 이끄는 태양마차를 타고 황금빛 하늘위를 돌진하고 있다. 5세기부터 파랑이었던 하늘표면이 갈수록 황금빛으로 그려졌다. 단순히 무한한 공간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황금빛이 공간의 깊이를 다한다는 것이다. 황금은 빛으로 충만한 매체로서' 무정형의 장소'나 세상 모든 사건들의 무대를 연상시킨다. 플라톤에 따르면 바로 그곳에서 비물질적인 이데아들이 감각적인 형체의 흐름으로 탈바꿈한다. "황금도시 비잔틴과 그것의 광채영역에서 출발해서 이제 교회벽과 지붕전체가 번쩍이는 황금빛으로,숨막히는 피안의 현존으로 변화되었다. 그것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견디기 어려운 초월자의 침입이었다. 교회는 사방팔방으로 진동하였다. '형체들은 어지로운 태양광선의 품안에서 움직이고 오락가락한다. 그리고 전체표면이 마치 바닷물처럼 파도친다." 금박입힌 사원벽은 이미 메소포타밍아와 이스라엘에도 있다. 말굽과 심지어 황제의 요강까지 황금으로 되었던 로마의 황금사치시대에는 개인의집 벽도 도금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쨋든 빛의상징이 아니라 재료의사치성과 연관되었다.

기독교교회의 황금모자이크에서 황금은 최초로 광대한 표면위에서 상징적 의미를 띠게되었다. 이때 황금은 뒷배경이 아니며 당연히 호사스러운 장식도 아니며, 다름아닌 존재의 전재조건이라는 근본 토대를 의미했다. 황금은 구원의 인물과 사건들이 창조의빛에서 생성되는 아주 진정한 의미에서 '유토피아',즉 공간과 세계를 초월한 허무적인 장소가 되었다. 심지어 콘스탄티노플의 아야 소피아 궁전지붕은 처음에는 근원적이며 형이상학적인 황금으로서 모든 역사를 초월한 바깥세계속에 서 있었다. 왜냐면 표면이 어떠한 그림이나 표시도 없이 순수 황금모자이크만으로 된 최면적인 빛하늘이었기 때문이다.

 한증인이 그지붕에 대한 기록한 것에 따르면 그것은 고정된 건축위에 정지해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황금구로서 하늘위에 매달여있는 듯이 보인다. 그것은 신이 주위에 가까이 거주하고있는 최고 천사의 공간인 최고천 즉 빛과 불의 하늘의 반영이다. 이것이 고대 자연철학이론에 의하여'빨강'이라고 번역되었으나, 기독교 본래빛 하늘은 '황금빛'으로 간주되었다.

많은 로마 기독교초기의 성화나 마돈나그림들에서  구원하는 손과 애원하는 입술 등 상호매개하는 천상적인 신체기관이 도금되어있다.

인도에서는 창조의 아침에 우주적바닷물위에 천개의 꽃잎을 가진 순금의 연꽃이 태양처럼 즉 창조의문인 동시에 창조의 품속처럼 빛나며 솟아오른다. 그리고 우주제작자인 브라만이 걸어나올수 있게 꽃이 벌어진다. 세밀화에서 인간적 척도를 파괴하려고 위협하는 것 압도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면에 황금모자이크에서는 황금이 마치 조금이라도 과도하면 교만이라도 되는 듯이 조심스럽게 그리고 경건하게 펜이나 붓으로 양피지위에 칠해졌다. 성스러운 문서를 배껴쓰는 것으로 일생을 보내는 수도승들에게 는 그림이나 회화적, 시각적 즐거움이 처음에는 문제가 되지않았다. 그들의 진정함 목표는 신의말씀이었다.

신의말씀이'빛으로 둘러싸인 천국적인 공간'으로 인도되기위해서는 '화려하게 빛나는 금속'보가 더 적합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황금으로 글씨를 쓰는 기술은 크리소 그라피라고 불리었다. bc2세기 또는 1세기의 헤브라이어 수기문에 처음으로 실해된 것으로 보이며 ,비잔틴을 통해 기독교세계에 도달되었다. 서구세계의수도승들은 그것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고 ,"금가루"로 금빛 잉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금가루는 수백년 뒤 프란세스코와 도메니코의 계약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금가루 제조법을 보면 우선 대게 통용되는 금화를 두들겨 만든 약간의 금박종이를 절구속에 넣는다. 그리고 절구는 가능한 한 '순금절구', '모르타리올루스 아우레웃'이어야 한다. 그것은 이물질과의 마찰이 금가루를 더럽히지않게하기 위해서다. 마찰과 충격만으로 금가루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소금이나 꿀과 함께 빻아서 그 두가지가 고르게 반죽될 때까지 한다. 그런다음 물에녹은 부분만을 닦아낸다. 그때 무거운 찌꺼기로 남아있는 것이 금가루이다. 그 금가루는 휘너클라 또는 벗나무 송진에서 얻은 '최초로 맑은 고무용액'같은 매염제와 함께 섞여서 결국 황금잉크가 된다.

금글씨가 자주색 양피지위에 얹혀진다면 그것은 신의말씀을 담는 그릇과 같은 하나의 성전으로서 최고의 아름다움과 품위와 화려함에 도달하는 것이다. 장식과 그림은 황금으로 밝게 만들어졌다. 그후200년이 지나 금가루에 대한 그런 소극적인 사용은 더 이상 요구되지 않았고 "광택도금'이라는 새로운 기법이 도입되었다. 광택색은 탄력적이고 약간 끈적거리며 그럼으로써 금박지를 고착시킬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준비된 황금은 어떤 매염제도 첨가되지않은 순수한 순금종이였다.'도금용붓'으로 사각형 금박지를 접합시켰다.

이제사람들은 금빛 바탕위에 조각하고 점찍고 부조를 새겨 넣었다. 또는 흐릿한 금빛 넝쿨이 마치 천국의 양탄자같이 번쩍이는 황금표면위로 휘감고 지나갔다. 14세기와 15세기의 회화책들은 황금이 어떤 다른 것보다 더 알맞는 장식으로 장식될수있도록, 그런 장식을 어디다가 하는지 충고를 주었다.  연마된 황금 종이위에 둔탁하게 '장식'되는 '금장식'은 진짜 황금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것은 둔한 빛의 송진액 또는 고무용액 또는 물고기 쓸개로 된 것이다. 이황산 아연 역시 상용되었고 마찬가지로 '금장식' 또는 '장식'으로 불리웠고 금속가루로서 훨신 더 큰 소득을 오려주었다. 이황산 아연은 아연, 황산, 수은 그리고 암모니아염을 함께 끓여서 아교를 섞어 만든다. 황금석, 즉 황금유약은 '마치' 금처럼 보이지만 금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 황금 유약의 제조법은 초기의 논문에 정확히 기술되어있다. 기름과 샤프란과 송진, 애기똥풀 또는 다른 노란 색첨가물로부터의 유약제조와 아연종이의 제작은 많은 비용을 필요로 했고 절대 싼값이 아니었다. 때로는 금박종이위에 황금석을 입히는 기이한 작업이 그것을 암시해준다. 판화는 당시  우월했던 세밀화로부터 무엇보다도 금빛 바탕을 도입했다 .미술의 '빛, 광채, 그리고 수정같은 명료성'으로서의 방향전환은 고대에서 시작되었고 기독교적 빛의 형이상학을 통해 보다 더 강화되었다. 그러나 빛과 황금의광채는 어째서 후세처럼 단순한 색으로 묘사될수밖에 없을까? 성스러운 광채는 유독 황금속에서만 발견되며 자주색의 특징이기도 한 율동성까지도 보존된다.

15세기그림에서 다시 속세가 부단히 진입하기 시작해을 때 하늘은 이전처럼 다시 파란색으로 그려졌고 황금은 성스러움을 상실했다. 황금은 다시 장식적인 역할로 돌아갔다. 황금빛 저녁노을이나 번쩍이는 물결처럼 황금은 다시 세상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림계약에서 차츰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가치가 황금의 자리를 미치고 들어왔다. 1500년경 한 위탁자는 그림재료비용을 "신식으로'분배했다. 즉 그는 "목판과 황금의 구입에 38를 로린을 그리고 붓에 35플로린'을 설정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거장적인 '붓'으로 무엇을 그려야할지 정확히 확정되었다. "인물, 건물, 성, 도시 ,산, 언덕, 평지, 암벽, 의복, 동물, 새, 그리고 온갖 종류의 가축"등 그렇게 많은 "세상"이 이제 그림속으로 들어와야하고 가능한 피조물 전체가 그려지는 것이 최상이다. 대가가 "모든 색을 스스로 혼합하기로"합의된 계약서가 보여주듯이 갑자기 색의 정확한 뉘앙스가 중요시되었다. 머지않아 천국의 광채를 위해서는 한푼도 투입되지 않아다.

예술작품을 속된 둘레환경에서 분리시켜 강조하고 성스러운 영역의 마지막 암시로서 예술작품을 구출하기위해 예로부터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현재까지 도금되는 액자는 거기에서 예외였다. 서구의화가들은 계속해서 수백년간"황금의광채를 색으로 모방하라"는 알베르티의 권고를 지켰다. 어떤 색의 금이든 귀중한 것을 장식한다. 보석뿐아니라, 정신적 가치가 있는 보물, 부적이나 애인의 머리카락, 아기의 사진도 금빛액자에 보관한다.

 낭만주의시대의 필립오토룽에는 신적인 빛의 충만과 거대한 공간을 금박종이로 현현시키려는 주목할 만한 반역사적인 계획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때이른 죽음으로 실현하지 못했다. 19세기말 쿠스타프 크림트는 장식적 요소로서 황금을 그림속에 도입했다. 클림트의 작품'키스'의 금색도 같은 의미이다. 사교계부인들은 고상한 황금빛 장식과 함께 초상화가 그려지는데 대하여 아무런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예술에서 황금은 이중적인 모습으로 부활하였다. 그것은 새로운 복음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비웃음과 조롱으로 그리고 아이러니컬한 요소로 등장한다.

앤디워홀은 1962년 성모상의현대적 변주 또는 비틀린 모습을 화폭위에 옮겨놓는다. 금동으로된 초현실적"황금바탕'위에 마릴린 몬로의 초상이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둥둥떠 있다. 황금은 과거시대의 경고표시였고 속세적이고 악마적인 진면목을 드러내는것으로 이런 황금의 측면은 천국적 광채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1500년경 토마스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중범죄자의 사슬을 금으로 만들어놓았다. "금과 은이 그들에게 치욕적이고 모욕적인 것으로 취급되도록 한 것이다"

세상의 겉껍데기에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었던 20세기의 화가들은 황금을 "색중의 진정한 색"이라는 대립적 의미를 가진것으로 다시 발견하지 않을수 없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선전삐라는 촌스러운 것이었다" 당신들의 머리속에 납이 들어있다면 초현실적인 황금이 만들어지도록 그 납을 녹여라" 이브클라인은 20세기중엽에 황금의 매력을 그림속에 도발적으로 도입함으로해서 일상의 무가치한 타성을 깨뜨리려고 시도했다. 1961년 그가 죽기 1년전에 파랑과 분홍다음에 "황금 단색조"가 차례를 맞았다. 그는 "비물질적, 화화적감수성의 영역'을 판매한 뒤 마치 이교도의 의식에서처럼 그가 실제로 얻은 황금의 절반을 제물로 바친다. 즉 그것을 센강에 던졌다.

이브클라인에 의하면 회화는 그에게 '원초적 상태의 자유의 창조'를 의미한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현자의돌이 존재하며 ,그것은 그가 만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만드는 비범한 힘을 그에게 부여한다.

북동아시아에서도 황금빛부처의 빛은 신비적 환상에서 생성된 아주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우리시대에도 죽음에 가까이간 체험에 대한 보고서에도 압도적인 황금빛에 대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이런한 초월의황금은 부처와 보디사트바스의 본질적 특징으로 남아있다. 그들의 몸 전체와 의복까지도 황금으로 되어있다. 신들과 그리고 초지상적인 다른 존재들은 풍부한 황금장신구를 달고 있다. 그러나 순금의 엄격한 초지상주적인 단순성을 깨닫는 자만이 순금을 가지는 것이 정당하다.

검정색과 홍금색간의 독특한 상호유희가 여기서는 특징적인 것이다. 검정색은 불교적인 관점에서보면 세상의 모든 색을 포함하고있으나 황금은 근본적으로 색의자유를 의미하는 광채로 충만한 것으로, 색들 '뒷편의' 단 하나의 진정한 색이다. 불교의 중심적인 삼원색에 빨강색이 빠지고 황금색으로 교체된다. 검정색-흰색-황금색은 땅과 땅의 열정인 빨강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비대상적인 황금바탕은 북동아시아에서의 회화에서 성스러움과 무관하게 다루어졌다. 특히 일본에서는 황금으로부터 아주 세련된 미적 효과가 유도되었다. 16세기와 17세기의 대형우산과 궁전 문위에는 황금 들판위에 어두운 냇물이 굽이쳐 흐르는 장식이 새겨져있다. 또는  실제같은 호랑이가 비실제적인 반짝이는 황금배경으로부터 튀어나와 살아움직이는 듯 보인다.

겉보기에는 온전히 다르지만 ,황금부터처럼 진실된 빛의복음을 똑같이 전달하는 러시아의 성상회화는 유행과 서구적 이론에 의한 영향으로 지속적으로 탈피해가면서 성스러운 에너지의 흐름으로서 생생하게 보존했다. 이미 최초의 성상회화는 황금의 가장 심오한 비밀에 근접했다. --성상은 예술작품이 아니라, 현현이다. '현현'이란 그 빛에 있어서 당연히 흰색에서의 유령의 출현과 같은 착시적인 '가상'과는 무관하다. 여기에서 현현은 은총의 작용이며 혼탁한 감각에도 보이게됨을 의미한다. 가장 행복한 경우 "현현"이란 만은 전설처럼 성신이 "인간의 손을 거치지않고도"스스로 생성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 제작자의 눈과 손과 붓이 요구될 경우에 기적은 화가를 거쳐서 일어난다. 성상 즉 직관적인 존재론을 그리는 것은 신의창조의 근본적인 단계를 반복하는 것이고 ,따라서 "빛의환희와 함께"시작되는 것이며 다시말하면 창조의 제1작용에 해당하는 금빛바탕을 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황금빛은 창조된 최초의 빛이며 첫째날"빛이 있으라"와 함께 시작된 창조속에서 첫 번째로 태어난 존재다.

그리고 황금빛은 네 번째날에 이르러서 비로소 빛나기 시작한 색을 일깨우는 지상적 태양과 신적 어둠사이에 놓인 빛이기도 하다. 그와 더불어 천사의추락과 원죄이전의 흠없는 피조물로서 가장 순수한 본질의 황금과 정신적 태양의광채이며 보다 위대한 실제에서 탄생한 존재다. 실제로 금빛투구라든가 왕관에 태양이 비치면 작은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나는것 같다. 동그란 금화역시 태양을 상징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집트의 한동화 에나오는 마법사는 파라오 체옵스 왕(기원전 2551-2528까지 지배)에게 태양신 레와 한 성직자의 부인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 예언했다. 출산때 신들이 특별히 하늘에서 내려와 산모를 도왔다. 그런데 아이의 몸은 순금이었다. 모두가 놀라면서 '이 아이는 분명 왕이다'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태양의 일부가 이집트 땅에 내려와 ,인간의 통치자로서 금빛 아이의 모습으로 재생된다. 이집트의 파라오의 관은 순금으로 만들어졌다.

청동기 말경아프리카의 다른지역에서 ,소아시아는 물론 인도에서도 금을 찾기 시작했다. 금을 발견했던 흔적은 게르만, 갈리아, 슬라벤, 헬베티어부족에게서도 볼 수 있다. 잉카와 아즈텍크에서는 금이 지불의 수단이 아니라 그들이 신봉하는 산과 왕을 상징하는 귀물이었다. '태양은 불같은 금빛화살을 가진 절대자, 신의 문장이다.'라고 맥시코 원주민 사이에서 구전되었다.'엘도라도'는 아직 발견되지않았다. 수많은 전설과 신화에서는 금이 상징적으로 따라다닌다. 가장 잘 알려진 그리스신화 중 '금양피'는 헤르메스가 프리소스에게 선물한 나는 숫양이었다. 프리소스는 그것을 가지고 흑해바다의 해안에 있는 계모 이노에게로 달아나다. 도중에 그는 콜히스의 궁궐에 들려 융숭한 대접을 받은 감사의 표시로 왕에게 금빛 숫양을 선물했다. 선물받은 왕은 한 마리 용으로하여금 지키게하여 신성하게 간직했다. 그의 아들 야손은 지하세계의 여사제인 메디아의 도움으로 용을 퇴치하고 금빛숫양을 가지고 도망친다. 얼마 못가서 이 도망자는 흑해를 통과하는 도중 추적자에게 발견되어 혈전을 벌이지만, 끝내 승자도 패지도 없이 이 싸움에 참가한 사람은 모두 죽게된다.

이 전설에서는 금의 영원성, 또는 신의 상징으로서 묘사된 것이 아니라, 고대의 금의 획득에 관한 것이라고 중세기의 광산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오르기우스 아그리콜라는 말했다.  또 이 전설은 금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진정으로 불필요한 손실을 가져다 주기도했다.

 

은색

은색은 맨나중에 생각나는 색이다. 은색을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곱은 사람은 남자의1% 뿐이었고, 여자는 단 한명도 없다. 은색을 싫어하는 사람은 남자의2%,여자의1%가 가장 싫어한다고 답했다. 금은 은보다 50배정도 비싸다. 사람은 금을 쥘 수 있을 때 은을 요구하지 않는다. 은혼식은 25번째 결혼기념일이다. 1L의물은 1kg,같은양의 은은 10.5kg이지만, 금은 은보다 두배나 더 무겁다. 그래서 은색은 가벼운색으로 분류된다.

독일의 경주용자동차인 벤츠는 은색으로 '은빛화살'이란 별칭으로 불렀다. 1934년 6월2일 ,뉘어부르크 자동차 경기자에서 ADAC의 자동차 경주가 시작되기전날밤 ,벤츠가 허가된 무게보다 1kg이 더무겁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날밤 하얀 래커를 벗겨낸 벤츠는 알루미늄재질 그대로 은색광채를 발했다.

고대신들의 세계에서 거인 아르고스는 은에서 이름을 얻었다. 은은 라티어로 아르겐툼, 그리스어로 아르기로스이다. 거인아르고스는 눈이 천개나 되어서 언제나 잠들지 않는 눈이 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보는 감시자였다.

은은 가장 많이 생산되는 귀금속으로 생산량이 금의 20배정도 된다. 은광마다 금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금광에서는 늘 은이 나온다. 은의 약 20%는 금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나온다.은은 전기와 열을 가장 잘 전도하는 금속이다. 은의 30%는 사진관련화학산업에서 소비하는데 빛에 예민한 필름막과 인화지는 브롬화 은으로 만든다. 은의20%는 전자산업에 쓰인다. 보온병도 은으로 코팅한다. 은은 빛을 잘 반사하는 물질이므로 거울에 쓰이며 식수를 정수 할 때 살균작용을 한다. 위장병과 성대의 염증을 치료하는 약재에도 은이 들어간다. 은단을 만들때도 사용한다. 은은 아름다운 돈의 색이다. '은'과 '돈'이 하나인 단어가 많다. 은은 금보다 더 강하게 탐욕과 수전노처럼 나쁜것과 결합되어있다. 유다는 은전 30냥을 받고 예수를 고위 성직자들에게 팔아넘겼다.

초승달들은 연금술사들이 은을 가르키는 표시였다. 연금술사들은 은을 달을 뜻하는 루나 라고 불렀다. 잉카인들은 은을 '달의 눈물'이라고 불렀다. 알레고리회화에서 은의 화신은 파란옷을 입은 여성이다. 게자리의 보석은 물에서 나는 진주이며 점성술에서 은은 흰색으로 댗;되는데 흰색도 게자리의 색이다. 은색이 주는 차가운 느낌은 차가운 달빛,차가운불,차가운 이성의색이다. 은색은 내향적인 색으로 언제나 거리감을 내보이기 때문에 분홍-은색-흰색의 색조에서 호감의 가장 차가운 형태인 공손함에 해당한다.

은색은 밝은 정신, 정신적인 작업의 미덕을 연상시킨다. 은색은 현대적인 광택을 나타낸다. 우아한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것은 절제이며 은은 절제의 색이다. 은색은 금색보다 독창적이고 자유 분방하다. 은빛머리카락이라는 말은 회색머리를 치장하는 말이다. 은색이 문장에 쓰이면 ,겸손과 정직, 순수, 순결을 상징하지만 이것들은 전사의 미덕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은 은 물에 속하기 때문에 은색은 대게 파랑과 배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