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한국사 공부를 포기하겠다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영양대왕 2018. 6. 23. 17:59

며칠 전 한국사 연구자들과 함께 저녁을 함께 했다.

그런데 한참 열심히 공부하던 2사람이 한국사 공부를 이제 포기할 때가 되었다고 내게 이야기를 했다.

두 사람이 공부를 포기하는 이유는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학계에 대한 절망 때문이었다.


자신의 청춘을 바쳐서 공부를 했건만, 논문을 써서 가져가면 

교수들은 이것 하지 말고 저것 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것이나 하란다.(결국 자신에게 충성을 다해라고 이야기)

역사학계의 파이는 계속해서 줄어드는데, 역사학계의 리더들은 파이를 키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미 자기들은 기득권을 누리고 있으니, 제자들이 죽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는다.

겨우 몇년짜리 프로젝트를 할테니 내밑에서 공부해라고 꼬드여놓고, 그 이후로는 제자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누가 공부를 하겠냐며 한탄한다.

다양성 있는 연구를 하라고 교수들이 말만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이 만든 이론을 반박하는

글을 쓰지 말도록 강요하는 학문 풍토. 오직 로비를 잘하고, 엉터리 연구라도 포장만 잘해서 계속 우려먹기만 잘하는

자들만이 살아남는 학계 풍토에 질렸다고 했다.


한 학회의 학회장은 후학들에게 선배들 논문에 주석이나 달고, 쓸데없는 것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 말이 자신들이 만든 틀 안에서만 놀고, 비판하거나 시비걸면 죽인다는 협박으로 들렸다고 했다.

최근들어 학계에서 제대로 된 논쟁이나 토론이 거의 없다. 

교수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되고 싶은 사람들은 많고, 결국 신규 교수를 임용할 기존 교수들의 권력을

절대적이고 되니, 점점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을 교수로 시킨다.

작년에 새로 교수가 된 ***, *** 는 드러내놓고 선배들에게 충성을 다한 자들이다. 

학자라서 자질이 뛰어나거나, 연구업적이 우수해서 된 것은 아니다. 


공부를 열심히하고, 정말 학자로서 능력이 있느냐가 결코 중요하지 않는 학계에서

아부와 음모, 정치를 잘해야만 이 바닥에 살아남을 수가 있는데, 이제 자신들은 지쳤다며 공부를 그만두겠다고 한다.


그분들에게 내가 그래도 공부해야지요 라고 말해줄 수가 없었다.

인문학도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이 너무나 좁기 때문에, 

공부를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줄 수가 없었다.

인문학의 위기는 20년전, 10년전에도 계속 나왔지만, 지금은 거의 임계치에 달한 것이 아니냐는 

그분들의 말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인문학의 위기는 나 역시도 너무도 절감하고 있다.


올해 아주대학교에서 학기중에 처음으로 예산을 줄였다고 한다. 학생들이 휴학하고 등록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대학에서 배운 것이 취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차라리 휴학하고 학원에 다니며 취업준비를 하는 편이 

더 현명하다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 졸업생의 80%가 제때에 취업도 못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허울뿐인 졸업장보다 실질적인 취업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대학원에 가서 학문을 하려는 학생들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한 분은 우리나라 학계가 점점 제국이 멸망할 때 보이는 온갖 나쁜 징조들이 너무 많아보인다고 지적했다.

사기와 아부, 부패의 만연,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우선시하며, 책임의식조차 보이지 않는 것 등....

학계의 리더들이 우리 학문의 진정한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누리는 조그만 권력에 도취되어 갑질만 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우리 학계가 공멸하는 것은 아니냐며 우려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런 글을 적어두는 것이 맞는지도 걱정스럽다.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공부하지 말라는 이런 말들을 해야 한다니. 

역사학을 넘어 우리나라 학문의 위기 상황을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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