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글들

개 이야기

영양대왕 2012. 6. 25. 15:49

** 우리 나라 동물에 대해 나중에 글을 쓸 때 참고가 될만해서 퍼왔다.

지난 번에 학도 애완동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는데, 그것은 좀 아니다 싶지만, 개는 나중에 글 주제로 쓸 만 하다.

 

애완동물 이야기-'개'는 어떻게 한반도에 왔을까뉴시스|윤시내|입력2012.06.2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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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윤신근 박사(애견종합병원장) = 개는 약 3만년 전부터 인간과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한 가축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간과 개가 본격적으로 가까이 지내기 시작한 것은 약 1만5000년 전으로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이 개들이 생활하기에도 좋아 이에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집개의 계통발생은 중생대에 생존했던 토마크터스에 의한 진화가 계속되어 온 것이라 추측되고 있다. 여기에서 '캐니스패미리아리스 이노스트란제비' '캐니스패미리아리스 매트리스 옵티마에' '캐니스 패미리아리스 인터마티우스' '캐니스 패미리아리스 레이네리' 4종으로 나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노스트란제비'로부터 발생된 계통에는 주로 워킹타입의 대형 견종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주둥이가 큰 마스티프와 작업견 타입이 많다. '옵티마에'로부터 발생된 계통은 셰퍼드나 콜리처럼 반사 능력이 뛰어나고 신뢰성이 높으며 순종성을 가지고 있다.

'인터마티우스' 계통의 스피츠 타입에는 몰티즈, 포메라니안 등의 소형 애완견종이 포함되며 세터, 포인터같은 수렵견도 여기에 속한다. '레이네니'에서 발생된 계통은 호리호리하고 발이 빠른 견종이 많다. 우리가 명견으로 꼽는 테리어계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는 400여종의 개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진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개의 진화는 인간의 생활이 크게 변하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아시아 대륙의 동남단에 위치한 한반도는 자생적인 문화 이외에 여러 가지 면에서 대륙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받아 왔다. 따라서 개의 가축화 과정에서 증거는 미약하지만 추측이 가능한 두 가지의 가설이 존재한다.

가설1. 한반도 내에서 자생적인 개의 순화과정이었다.
가설2. 대륙에서 순화과정을 거친 개가 한반도에 전래된 것이다.

가설1은 한반도 내에서 자생적으로 개가 순화과정을 거쳤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가설의 증거로는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의 무덤인 김해 패총과 전남 해남에서 사람이 사육한 것으로 보이는 개의 뼈 발굴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유럽의 마그네스 문화의 패총에서 '조개 먹는 사람의 개' 유골이 발견 된 것과 서아시아 팔레스티나 지역인 예리코에서 위의 유골과 거의 동시대의 개 뼈가 발견된 사실과 유사하다.

다음으로 가설2는 대륙에서 이미 순화 과정을 거친 개가 한반도로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는 현대 우리나라에서 사육 되고 있는 몇 가지 대표적인 개 종류의 원형이 이미 신라나 고려의 그림 및 문헌에서 발견되고 있고, 그 모양이 북방계의 대형 견종이나 몽골 및 티베트견종과 아주 흡사하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를테면 오수 지방의 오수개는 대형견 마스티프종, 진돗개는 중국 대륙의 개가 남하하여 토착화되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위 두 가지 가설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우리나라의 개는 본래의 토착견과 외래견이 이미 오래 전부터 교배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일반적인 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확인할 수 없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 문헌에 최초로 개가 등장한 것은 부여 시대로, 여기에는 개가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 주고 있다.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 위서 열전 부여조에 보면 부여의 관직 명칭의 하나로 '구가' 라는 말이 나온다. '구'란 곧 개를 말하며, 이것이 마가, 우가, 저가, 등의 가축화된 동물 이름과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시대에는 개의 순화가 완료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뒤 고구려 시대에는 개가 사냥용으로 쓰일 만큼 개발, 훈련되었다.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유적인 무용총 벽화에 사냥을 따라나선 개의 그림이 거의 실물 크기로 그려져 있는 것만 보더라도 위의 내용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한편 한반도에 정착된 개들은 다른 여러 문화들의 전래와 마찬가지로 섬나라인 일본으로 자연스레 유입 되었을 거라는 주장도 있다. 서기 530년 일본의 안무천왕 재위 시에 거래가 잦았던 백제에서 많은 사냥개를 수입해 갔고,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 개들은 그 충성심이 매우 뛰어나 고마이누(고려개), 또는 가라이누(당나라개, 한국개)라고 불릴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사 앞에 석상으로 만들어져 숭앙되었다고 전해진다.

삼국시대를 지나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개에 관한 기록이나 문헌이 더욱 많이 등장한다. 우선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 에 따르면, 서기 680년에는 신라의 아찬 김정나가 당시 일본의 천왕인 천무에게 개를 가져와서 '바쳤다'고 되어있고, 그로부터 6년 뒤인 686년에는 다시 신라의 왕이 일본에 개 3마리를 보내주었다고 되어 있다.

또 같은 일본 사서인 '속 일본기'에는 서기 732년 신라 사신 김장손 등이 성무천왕에게 개 한 마리를 전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때 김장손이 일본 성무천왕에게 선물한 개가 오늘날 일본에서 자랑하는 '재패니스 찡'이다.

그런가 하면 '책응원구'에는 중국 당나라의 현종 11년과 18년 (723년, 730년)에 각각 신라에서 개 한 마리를 보냈다고 나오며, '당서' 에는 동왕 21년(733년)에 신라 성덕왕에게개 세 마리를 보냈다는 기록이 전해 온다.

고려시대로 넘어오면 최자 보한집에 오수개 이야기가 나온다. 최자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선비, 김개인 이라고 밝혔다. 또, 김개인 개의 충절을 기려 노래를 지었는데, 이 노래가 바로 '고려악부' 에 실린 견분곡, 즉 '개 무덤 노래' 라고 밝히고 있다. 역사서인 '고려사' 권29 충렬왕 8년 4월에는 '진고개의 충견이야기'도 실려 있다.

개에 관한 노래가 고려악부에 전한다는 것과 관련하여 보면 일본에도 여기에서 전래된 듯 한 흔적들이 남아 있어 흥미롭다.

이미 백제 시대 이후로 일본에는 '고마이누'나 '가라이누' 등 한반도에 연관된 개 이름이 등장하는데, 여기에 더해 일본의 '고락' 중에는 고려 때 일본으로 전해진 '고려견곡' 이 있었고, 신라 때 일본으로 건너간 잡기 중에는 '견무'(개춤)도 있어 최근까지 전해져 왔다고 한다.

일본이 한반도에서 개를 구했다고 하는 기록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자주 볼 수 있는 흔한 일로 되어 있다.

먼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2년(1420년)에는 대마도 사람이 개를 구하러 왔으나 마침 명나라에 진공할 물건이라 거절당했고, 동왕12년(1438년)에는 대마도에 큰 개 한 마리를 하사했다고 하였으며, 문종 때에 이르러서는 일본 비후의 국지위방이 청에 의해 개 두 마리를 하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세종 11년과 12년에 각각 명나라에 개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고, 세조 14년에는 전국 각 도에 '진헌에 쓸 개를 많이 보내라'는 명령을 내린 사실도 남아있다.

위의 사실들로 미루어 보아 삼국시대 이후로는 이미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조정 간에는 통상의 예물로서 개가 오고 갔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