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글들

부엽공법 자료 2 - 후한 유래설을 뒤집다.

영양대왕 2009. 11. 25. 09:43

동아시아 最古 ‘부엽공법’ 2000년전 한반도서 썼다

전남 보성 洑시설… 풍납토성보다 200년 앞서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전남 보성군 조성면 조성리 저습지에 부엽공법으로 축조된 보시설. 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 제공
지난 8월 전남 보성군 조성면 조성리 저습지 유적에서 확인됐던 기원 전후 만들어진 2000년 전 보(洑)가 동아시아 고대 연약지반 보강공법인 부엽공법(敷葉工法)으로 축조된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부엽공법이 사용된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인 서울 풍납토성(3~4세기 조성)보다 최소 200년 이상 앞설뿐만 아니라 이 공법이 활용된 동아시아 치수(治水)관련 유적 중 가장 오래된 사례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의 이영철 원장은 10일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농경을 위해 옛 물길(하도·河道)에 조성한 보 시설에 대한 발굴을 완료한 뒤 유구(遺構·옛 건축물의 흔적)의 보존처리를 위해 이전하는 과정에서 점토와 나뭇잎·풀 등 초본(草本)류 또는 말목 등 나무를 번갈아 최소 5개층 이상 쌓은 부엽층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조현종 국립광주박물관장은 “기원 1세기 전후한 유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부엽공법을 사용한 치수관련 유적 중 가장 오래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폭 300~900㎝, 깊이 30~84㎝ 정도인 소규모 하천은 크게 3부분에서 곡류하는데 수중보는 바로 물길이 곡류하기 직전 좁아지는 두 곳(1, 2지점)에 물의 흐름과 직교해 설치됐다. 처음에는 쓰러져 있는 말목열을 단순한 수중보 시설로 생각했으나 1지점 유구의 이전 과정에서 ‘흑색점토층(6㎝ 내외·밑바닥에서부터)→부엽포함층(1~2㎝)→흑색점토층(10㎝ 내외)→부엽+목조결구층(2~5㎝)→흑색점토층(10㎝ 이상)’ 등으로 퇴적된 최소 5개층 이상의 단면이 확인됐다. 부엽층의 전체길이는 210㎝.

관장은 “부엽공법은 중국에서 시작돼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왔으나 이번 유적을 보면 우리나라 자체의 토착적인 하천치수 및 관개기술의 출현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부엽공법 = 제방이나 도로, 성(城) 등을 쌓기 위해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깔아서 기초를 만드는 고대의 토목공법. 중국에서는 싼차오(散草)법으로 불리며 수리시설과 관련, 후한시대(1세기 후반 이후) 안후이(安徽)성 서우(壽)현 안펑탕(安豊塘) 유적에서 활용된 게 가장 이르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나뭇잎·가지로 쌓은 2000년전 보(洑) 발견

  •  2009.11.11 03:14

전남 보성… '부엽공법' 동아시아 最古 유적

전남 보성군 조성면 조성리 저습지 유적에서 2000년 전 연약한 지반을 보강하기 위해 부엽공법(敷葉工法)을 사용한 보(洑) 시설이 확인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의 이영철 원장은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농경을 위해 옛 물길에 조성한 보 시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점토와 나뭇잎·풀, 나무 말뚝 등을 5개 층 이상 번갈아 쌓은 부엽층(전체 길이 210㎝)이 확인됐다"고 10일 밝혔다.

부엽공법은 제방이나 도로, 성(城) 등을 쌓기 위해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깔아서 기초를 만드는 고대의 토목공법이다. 조성리 유적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부엽공법이 확인된 서울 풍납토성(3~4세기 조성)보다 최소 200년 이상 앞설 뿐 아니라 이 공법이 활용된 동아시아 치수(治水) 관련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주목된다.

전남 보성군 조성면 조성리 저습지에 부엽공법으로 축조된 보 시설./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 제공
조현종 국립광주박물관장은 "기원 1세기 전후의 유적으로 동아시아에서 부엽공법을 사용한 치수 관련 유적 중 가장 오래된 사례"라며 "부엽공법은 중국에서 시작돼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 유적을 통해 볼 때 우리나라 토착의 하천 치수 및 관개기술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물길은 크게 3부분에서 곡류하고 폭 300~900㎝, 깊이 30~84㎝ 규모이며, 보 시설은 물길이 곡류하기 직전 좁아지는 두 곳에 물길을 가로지른 상태로 설치됐다. 이 원장은 "처음에는 단순한 수중보 시설로 생각했으나 유구의 이전 과정에서 '흑색점토층→부엽포함층→흑색점토층→부엽+목조결구층→흑색점토층' 등으로 퇴적된 최소 5개 층 이상의 단면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기사 게재 일자 2009-11-10

 

** 부엽공법을 후한의 노강대수 왕경 이 서기 83년에 처음 활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던 설들이 이제는 어떻게 변할까? 궁금해지는군.

- 권오영, <물자, 기술, 사상의 흐름을 통해 본 백제와 낙랑의 교섭>, [한성기 백제의 물류시스템과 대외교섭], 학연문화사, 2004년, 236쪽

논문을 다시 쓰던가, 수정문을 내던가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