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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 갔을까' 소개 글 - 인용

영양대왕 2006. 10. 4. 15:28

주간조선 10월 2일에 올라온 글이다. 내 책이 소개되어 있어서 인용한다.

 

 

[출판] 고구려 열풍… 관심 모으는 고구려 의 역사·교양서
김용만의‘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 윤명철의‘고구려는 우리의 미래다’등 수작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東北邊疆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로 ‘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과제’를 뜻한다)’을 둘러싼 논란은 ‘역사 전쟁’으로도 여겨진다.


고구려사, 발해사 등을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고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우리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우연찮게도 한국의 방송 3사는 현재 ‘주몽’(MBC), ‘연개소문’(SBS), ‘대조영’(KBS) 등 고구려와 발해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모두 방영하고 있다. 드라마의 완성도에 대한 시청자의 문제제기도 없지 않고 역사 고증 측면의 전문가 지적도 많지만 대체로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역사 드라마는 그렇다 치고 책은 어떤가? 역사 교양서나 학술서 분야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조선시대다. 더구나 전문적인 연구자들이 펴낸 학술서를 제외하면 고구려를 주제로 한 역사 교양서는 많지 않다.

의욕적으로 출발하는 듯 보였던 동북아역사재단도 최근 들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중국 측의 일사불란한 ‘역사전쟁’ 대오(隊伍)와 비교하면 지리멸렬한 형편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고구려를 주제로 한 책들 가운데 읽어볼 만한 것을 살펴보자.
먼저 김용만의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바다출판사)는 고구려인의 외모, 복식, 장신구, 먹을거리, 가재도구, 부엌살림, 목욕 문화, 축제, 악기, 혼인 제도 등 일상과 생활 문화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소나 말이 끄는 수레가 많이 나온다.

고구려는 수레를 통한 활발한 교역과 산업으로 부강해질 수 있었다. 또한 고구려인은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고 의자를 사용하는 입식 생활을 했다. 목욕 문화가 발달해 아침에 일어나 먼저 목욕하고 문을 나섰다. 여름에는 매일 두 번씩 목욕을 했다.

저자에 따르면 고구려의 번영은 약탈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후기로 가면서 농경과 직조 기술의 발달로 생산력이 급증한 것에 기반을 두었다. 더구나 막강한 해군력을 기반으로 동북아시아 중계무역을 독점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쌓았다.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수레는 고구려의 교통과 도시 발달, 상업과 산업의 성장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통해 고구려 문화사를 복원하는 데 노력해 온 학자 전호태의 ‘벽화여, 고구려를 말하라’(사계절출판사)다. 이 책의 미덕은 제목처럼 고구려 벽화를 충실하게 해석한다는 데에 있다.

이를테면 평남 강서군의 수산리 고분 벽화에 나오는 교예(巧藝) 장면을 저자는 고대 중국의 잡기(雜技)와 비교하면서 고구려의 교예가 서아시아에서 전래됐다는 주장을 한다. 또한 수산리 벽화 속의 인물 의상이 일본 다카마쓰 고분 벽화의 옷차림과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하여 동아시아 물적 교류의 단서로 삼기도 한다.

저자는 고구려 고분의 주인에 대한 기록인 묘지명을 놓고 한·중·일 학자들이 내놓은 다른 해석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고 단순히 소개만 한다. 이를테면 덕흥리 고분 주인인 유주자사(幽州刺史ㆍ유주에 파견된 지방관) 진(鎭)의 고향인 신도현이 어디인지에 따라 진이라는 인물은 중국인일 수도 고구려인일 수도 있다. 저자는 고구려사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 사이의 다른 관점과 해석이 자칫 감정적이거나 정치적인 문제로 흐르는 걸 경계하는 태도를 보인다.

한편 윤명철의 ‘고구려는 우리의 미래다’(고래실)는 고구려 역사를 문명사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문명사론으로 동아지중해론을 주장한다. 동아지중해는 동아시아라는 한정된 육지 개념이 아니라 육지와 해양을 아우르는 거대한 지역 개념이다.

고구려는 중국, 북방 민족, 백제, 가야, 신라, 왜 등 동아지중해 지역을 이루는 국가 사이에서 역동적이고 주체적인 외교를 펼치며 독자적인 문화를 이뤘다. 이는 고구려가 동아지중해에서 중심핵 역할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

저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오늘날 21세기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현실과 미래까지 거론한다. 비교적 가까운 장래에 한ㆍ중ㆍ일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연방체가 탄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고구려는 이런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고구려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다룬 통사(通史)는 없을까? 일반 독자가 읽기에 상대적으로 편한 통사로 이종욱의 ‘고구려의 역사’(김영사)가 있다. 고구려의 역사 전개를 7단계로 나눠 건국 신화에서 시작하는 고구려의 초기국가 형성 및 발전, 정복 왕국으로의 성장, 고국천왕에서 미천왕까지의 시기에 벌어진 왕정 강화와 국제 관계의 활발한 전개, 중국 문명의 수용과 대국으로의 전환, 왕국의 전성기와 왕정의 피로, 수ㆍ당과의 전쟁과 인심이 떠난 왕국의 위기, 왕국의 멸망과 한국사 속 고구려의 의미 등을 이야기한다.

본격적인 학술서 통사로는 신형식의 ‘고구려사’(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가 있다. 이 책은 통사 성격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저자의 논문집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동북공정의 실체와 만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동북공정의 대표적인 결과물 중 하나로 중국사회과학원이 중국 역사학자들의 고구려사 연구 저작을 모은 책을 번역한 ‘동북공정 고구려사’(서길수 옮김, 사계절출판사)를 읽으면 된다.

옮긴이는 50여쪽에 달하는 장문의 해설을 통해 이 책의 내용이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해치는 힘의 논리에 바탕하고 있으며 정치 논리에 따라 한국 고대사를 재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