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글들

일본드라마에서 나타난 고-당전쟁과 한일고대사 역사왜곡

영양대왕 2006. 5. 13. 00:09

일본드라마를 함번 보자. 일본 드라마에 나타난 고대 일본의 복식 이런 것들은 참고할만하다.

그리고 저들이 왜 우리 역사를 좁게만 보려는지도 생각해보자.

 

 

[본문스크랩] 일본 대하드라마의 역사 왜곡!!! ...이라는제목으로 올라온글..^^;; | 나의 관심정보 메모 삭제

2006/05/13 00:06   
 
출처 블로그 > 딸구야 놀자~!!
원본 http://blog.naver.com/leejh1127/30004359207

다이카개신에 나오는 7세기 동아시아의 모습

 

 
↑7세기 왜(倭)의 수도 아스카


 


↑당시 왜(倭)의 궁궐


 

↑645년 당태종(唐太宗)이 고구려를 공격한 병력의 숫자

3만명이라고 말하는 모습


 




↑고구려와 백제에게 군대를 보내는 이유

단순히 교역 관계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모습


 


고구려가 당(唐)에게 승리하는 이유

고구려의 군사력 때문이 아니라

정당성의 부족이라고 설명하는 모습


 


당(唐)의 사신을 맞이하는 모습


 


↑왜왕에게 무릎을 꿇고 조공을 바치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사신들

 

구당서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서 당 태종의 1차 침입에 동원된 당군이 10만 정도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주필산 전투 한번에 동원된 고구려군 15만 보다도 훨씬 적은 병력이다. 그 중 4만은 수군 병력이니 최소한 주필산 전투에서는 고작 6만의 병력으로 15만 대군을 상대했다고 하는 것이다. 병가에서는 공격하는 쪽이 수비하는 쪽 보다 그 숫자가 몇 배는 되어야 할지언정 그 보다 적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물론 예외가 없을 수는 없지만 반란군 토벌도 아닌 한 문명대국을 멸망시키기 위한 병력으로서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수병력이다. 아무리 정예병이라고 해도 무모하기 짝이 없다. 그것도 일개 장수가 원정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임금이 친정을 가는데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일까?

기록에는 이 10만의 병력에 대해서 육군인 요동도행군 6만과 수군인 평양도행군 4만이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세민이 이끄는 친정군 본대는 빠져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10만의 군대 외에 최소한 5만에서 10만의 병력이 더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살펴 볼 것은 기록에 있는 요동도행군과 평양도행군의 병력 역시 그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요동도행군에는 행군대총관인 이세적을 비롯, 행군부대총관인 이도종이 있으며 그 아래에는 행군총관으로 장사귀, 장검, 집실사력, 계필하력, 강덕본, 아사나미사, 국지성, 오흑달이 있다. 문제는 이 행군총관의 숫자에 있는데 보통 이 행군을 이르는 1군의 병력은 대략 1만에서 1만 2500명을 말한다. 행군대총관이나 부대총관이 따로 병력을 거느리지 않고 그냥 행군총관만 병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을 한다면 그 숫자는 8만에서 10만에 이른다. (물론 이 행군이 순수 전투 부대만 따지면 한때 6천이 되던 때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수나라 초기의 일이다.) 그렇다면 추정치와 기록된 병력은 2만에서 4만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 할 것은 6만의 정규 병력 이외에 당에 투항한 유목민족, 즉 항호(降胡)를 군세에 활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 항호의 병력은 집실사력, 계필하력, 아사나미사의 돌궐과 철륵 출신의 장군들이 당에 항복한 자기 부족을 이끌고 참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요동도행군의 규모는 정규군 6만 이외에 3개 행군으로 구성된 유목 기병 3만 정도를 추가시키면 얼추 10만 정도의 병력이 된다. 그런데 요동도행군의 행군총관 숫자는 앞서 말한 8명이 아니다. 다른 기록에서 추가로 발견되는 강행본, 장군예, 안현화 등 최소한 3명이 더 발견되는데 항호 출신의 장군 3명을 제외하고 한족 출신의 장군만 8명이다. 그렇다면 1군 최소 병력이 6천이라고 해도 11개 행군, 6만 6천이다. 1만이라고 치면 11만, 1만 2500이라고 치면 13만 7500의 병력이 요동도행군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이세민이 이끄는 친정군 본대의 병력은 어느 정도일까? 앞서 말한 이세적이 정 3품의 관등에 요동도행군 행군대총관에 있었는데 기록에는 친정군 본대에 장손무기, 양홍례, 유홍기 같이 이세적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장수가 있었다. 대총관급 장수가 최소한 3명이나 필요했다는 것은 그만큼 본대의 규모가 요동도행군보다도 훨씬 컸다는 증거이다. 물론 본대의 병종 구성이나 거느리고 있는 행군총관의 숫자가 몇 명인가는 반드시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전당문이라는 사서에는 주필산 전투에서 고연수, 고혜진이 이끄는 고구려 15만 대군의 선봉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진을 칠 때 이세민은 이세적에게 14명의 행군총관을, 장손무기에게는 26명의 행군총관을 거느리게 했다. 그리고 그 자신은 구체적인 병력은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북쪽 산에 진을 치며 상황을 주시했다고 전한다. 최소한 40명 이상의 행군 총관인데, 보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원래 진을 친 곳의 수비와 보급로 수비도 필요하니 최소한 5~6명의 행군 총관을 남겨두고 이세민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행군 총관이 최소 10명 이상이라고 하면 주필산 전투 당시에 대략 55명의 행군총관이 있었을 것이다.(이 주필산 전투 당시 양홍례가 24총관을 거느렸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것은 앞서 말한 고연수의 군대를 포위하던 그 시점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 숫자를 추가시키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더 정확히 알 수는 없을까? 당시 1개 도행군의 행군 수를 추정해 보자.

이세민의 본대가 몇 개의 도행군으로 구성되어있다고 본다면 그 안에서도 대총관과 부대총관이 있었을 것이다. 대총관과 부대총관이 각각 1명 정도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면 황제가 친히 이끄는 부대이기 때문에 대략 6~7개 도행군으로 구성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총 12명의 대총관과 부대총관이 있게 된다. 여기서는 최소 숫자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6개 도행군으로 가정한다.

이세적이 이끄는 요동도행군은 처음 출발할 때 11개 행군으로 출발했다. 이 중에서 장검은 따로 출발했으니 사실상 10개 행군으로 출발한 셈이다. 평양도행군은 6~7명 정도로 출발했다. 단 요동도행군은 특공 부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단독부대로써 일반 도행군 보다 그 숫자와 편제가 달라야 한다. 그리고 평양도행군은 수군의 특성상 많은 숫자가 동원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 도행군에 비해 행군 수가 적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친정군 본대에서 도행군 내에 포함된 행군 숫자는 이 두 도행군에 속한 행군 수 사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당문이라는 사료에 보면 안시성에서 주필산 전투를 치를 당시 전군을 3로로 나누어 한 갈래는 이세적에게, 한 갈래는 장손무기에게, 나머지 한 갈래를 이세민이 거느리게 되는데 이때 요동도행군의 전력을 강화시켜주기 위해서 본대에 포함된 병력 중 약화된 어떤 1개 도행군급 병력의 지휘권이 이들에게 넘겨졌을 가능성이 있다. 독립 부대라 할 수 있는 요동도행군의 병력이 불과 8개 행군 정도만 남기 때문이다.

당시 이세적이 거느리던 행군총관 수가 14명으로 불어나는데 이 중에서 장검을 제외하고 부대총관 이도종을 추가시키면 요동도행군에서 9명의 행군총관 수를 제외한 5명의 행군총관이 추가되었다. 이도종을 행군총관 수에 넣지 않는다면 6명의 행군총관이 요동도행군에 추가된 셈이다. 그런데 이 추가된 5~6명의 행군 총관 수에서 기존의 추가되기 전에 편성된 도행군 소속 대총관과 부대총관은 제외되었다고 봐야 한다. 만약 추가되었다면 겨우 3개 행군의 추가를 시키고서 이세적과 동급의 대총관과 부대총관을 그 숫자에 넣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휘 계통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본대에서 이세민과 함께 있다고 보는 편이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본대의 1개 도행군에 속한 행군총관 수가 이 정도 범위에서 그 오차가 1~2명 정도 차이가 있다고 우선 보자.

장손무기가 거느린 행군의 숫자도 추정을 하여 요동도행군과 같이 계산할 경우 장손무기가 대총관급인 것을 감안 할 때 장손무기가 거느린 26명의 행군 총관 중 장손무기를 제외한 대총관과 부대총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요동도행군의 그것과는 달리 이들은 이전 전투에서 손실된 병력을 1개 도행군에 걸맞게 병력을 재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손무기가 일괄적으로 26총관을 다 관리했다고 보기는 힘들고 1개 도행군을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대총관과 부대총관이 있되 장손무기는 이들 대총관과 부대총관을 대표해 일률 관리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경우 장손무기를 합한 총 행군총관 수는 27명으로 각 도행군 당 행군 수가 균일하다고 가정할 경우 맞아떨어지는 도행군 수는 3개 정도다. 결국 1개 도행군 당 9명의 행군총관이 있고 최소한의 숫자를 가정해서 그 숫자 중 행군 대총관과 부대총관을 제외하면 1개 도행군 중 실제 병력은 7개 행군 병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세민의 친정군 본대의 6개 도행군 중 군 재편을 통해 약화된 1개 도행군이 이세적에게, 3개 정규 도행군은 장손무기에게 주어졌다면 나머지 2개 도행군을 이세민이 이끌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대총관과 부대총관을 제외한 14명의 행군총관을 이세민이 이끌고 있었다고 한다면, 주필산 전투에 참전한 행군의 최소 숫자는 21+14+13=48으로 48개 행군 이상이 이 전투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출발 당시에는 이보다 더 많은 숫자였을 것이다. 아까 본대로 초기 본대의 행군 수가 1개 도행군 기준으로 7개 행군이었다면 7*6은 42개 행군, 그리고 그 이전 전투에서 사망하거나 기록 누락된 행군총관이 4~5명 정도(주필산 전투 이전에 사망한 장군예, 강행본, 이사마와 행적이 불분명한 안현화 등) 이상 된다고 가정한다면 8*6으로 48개 행군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경우 병력의 재편을 통해서 잔여 병력을 요동도행군으로 돌렸다고 본다면 6개 행군이 추가된 것이 아니라 4개 행군이 추가되고 1개 도행군 평균 병력은 7개 행군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요동도행군 11개 행군과 본대의 42~8군의 행군, 그리고 평양 도행군의 7개 행군으로 최소 58~66개의 행군 숫자가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육군의 정규 병력은 1군의 병력을 6천에서 1만 2500으로 잡을 경우 최소 36만에 최대 병력은 75만 명에 육박한다.


또한 수군 병력인 평양도행군 역시 그 병력 추정을 재검토를 해야 한다. 신당서 고려전에 적힌 또 다른 기록에는 처음 떠날 때 병사가 10만, 말이 1만 필, 수군이 7만이라고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원래 병력인 요동도행군 6만과 평양도행군 4만 이외에 이세민의 친정대 본진에 속해 있는 육군 병력 4만과 수군 병력 3만으로 보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으로 이세민의 친정군 본대는 육로 깊숙이 진군했기 때문에 수군은 본대에 포함 될 수가 없다. 남는 수군 3만이 평양도행군과 다른 행군일 수도 있지만 본진 이외의 행군은 요동도행군과 평양도행군 밖에 없다. 본진 병력도 아니고 그렇다고 2개 행군 이외에 다른 행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추가된 육군 4만과 수군 3만은 친정군 본대일 수가 없고 그렇다면 이 병력은 적어도 수군에 있어서는 살아남은 실제 병력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앞서 살펴 본 요동도행군의 병력 추정치가 대략 10만 이상인 것과 행군총관의 숫자가 11명인 것, 그리고 평양도행군의 행군총관이 7명인 것과 살아 돌아온 수군 병력이 7만 이상인 것을 볼 때 그간 전투를 치룬 것을 감안할 때 1개 행군 병력은 최소 1만 이상은 되어야 한다. 당시 1군 병력의 최대치는 1만 2500명이다. 육군 행군 총관 58~66명, 수군 행군 총관 7명, 총 65명~73명 정도의 행군 총관으로 1만 이상을 거느렸다면 대략의 총 병력이 70만 이상이다. 1만 2500이라면 80만을 넘어선다.

그러나 이 병력 중에는 독립 부대로 있던 기병 부대도 있다. 보통의 1군이 1만 2500이라면 이 기병부대는 병력이 4천 정도라고 한다. 1개 도행군당 몇 군의 기병 군단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위지경덕이 좌1마군총관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비추어 최소한 2개 이상의 마군이 1개 도행군 안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래 당군 편제를 보면 1개 행군 내에 따로 기병이 4천 정도가 있기 때문에 7개 행군으로 구성된 1개 도행군에서 마군의 숫자는 2개 행군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기병 대 보병의 비율이 아무리 높아도 유목민족이 아닌 이상 1:2를 넘어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경우 1개 도행군 당 기병군단과 보통 군단의 비율은 2:5 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전체 행군에 대입해서 본다면 육군의 총 병력이 58만 4천~66만 5천 명이다. 수군 병력 8만 7500명을 더하면 총 병력은 67만 1500~75만 2500명이다. 1개 도행군당 마군이 3개라고 해도 육군 병력 51만 3600~58만 4500, 총 병력은 60만 1100~67만 2천명이다. 당시 당의 상시 가지고 있던 병력이 60만 내외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당나라는 나라를 기울여 고구려를 공격했던 것이다.


(김용만.「고구려와 당은 실제로 어떻게 싸웠을까?」,『새로쓰는 연개소문전』, p.376~381, 바다출판사 2003 참조)

 

 

冊府元龜에 나오는 고구려를 공격한 병력 : 100만

일본시대극에서 나오는 당태종(唐太宗)의 병력 : 3만

실제 당태종(唐太宗)이 고구려를 공격한 병력 : 60~75

 

당(唐)과 우호관계를 맺는 것을 원하는 세력은 침착하고 정당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고,
고구려, 백제와 우호관계를 맺는 것을 원하는 세력은 시끄럽고 이기적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역사 왜곡에서 나타나는 교묘한 술책이라고 할 수 있죠

http://bbs.enjoyjapan.naver.com/tbbs/read.php?board_id=phistory&nid=64609

 

 

출처:일티嵐サイコ-♥

 

 

에..제목 딱 봤을때..설마설마 하며 봤는데..역시 다이카개신..ㅎㅎㅎ;;

저야 제대로 내용을 보기보다는..오카다군의 얼굴만을 골라 보느라..

솔직히 내용따위에는 신경도 안썼는데..

에..이런글을 읽고보니 또 묘한 감정이 북받쳐오르네요...

브이는 좋지만 그래서 일본어도 배우고..문화에도 관심은 지대;;하지만

일본자체는 좋아할수 없는..이 아이러니한 시츄에이숑...

역시 이런내용이나 글을 보노라면 피가 끓네요..울컥!!

다행인지 준짱의 장면은 엄꾼요..<-이건 또 무신 시츄에이숑..ㅠ.ㅠ

 

단지 좋고싫음의 취향을 가지고 애국자니 매국노를 판가름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이런순간에..참으로 갑갑해지는 맘..흑흑..

 

 

근데 정말 다이카개신 거짓말안하고..진심으로

재미없었어요..준짱이 아니었음 절대 볼일없는 드라마..라고 할까요..;;

참으로 지루하더이다..지루하더이다..보면서도 내가 뭘보나 했소..크으....

잼있게 보신분들께는 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