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벽화

2005년 소년한국일보 연재 17회 - 장천1호분(1회)

영양대왕 2005. 6. 23. 18:10
[민족의 혼, 고구려 여행] 장천 1호분 벽화
놀이ㆍ사냥하는 모습 저마다 개성 넘쳐

장천 1호분 앞방 왼쪽벽의 전체 그림

1970년 발굴된 장천 1호분은 불상 그림이 처음 그려진 벽화 고분으로 뒤늦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최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이 고분의 모형이 전시되기도 했지요.

-그림 속 등장 인물 100 명 넘어

장천 1호분은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에서 동북쪽으로 20 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5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무덤의 안은 널길ㆍ앞방ㆍ이음길ㆍ널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약 100여 명이 그려져 있는 장천 1호분 벽화는 고구려인의 생활 풍습을 이해하는데 아주 소중한 자료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1996년과 2000년 등 2 차례에 걸쳐 도굴꾼들이 벽화의 일부를 떼어가 버렸습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 빈틈없는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장천 1호분 벽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무덤 입구에서 볼 때 앞방 왼쪽에 그려진 다양한 야외 놀이 그림입니다. 천장 아래 벽면 전체에 50 명 남짓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다양한 놀이를 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장면, 다른 시간대의 행동을 한 화면 속에 다 그려 넣는 방식은 옛 그림에서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흰 수건을 든 시녀의 모습.

벽면 아래쪽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사냥을 하는 장면이 보입니다. 사슴과 멧돼지ㆍ호랑이 등 잡는 동물의 숫자도 많습니다. 또 개가 사냥에 따라 나서고, 사냥하는 사람 거의 모두가 말 위에서 활을 쏘아 맞춥니다.

다만 왼쪽 나무 아래에 있는 남자는 화살에 맞은 채 도망치는 멧돼지를 잡기 위해 다시 활을 당기고 있네요. 여기에 곰은 나무 밑 움에 숨어 있고, 뛰쳐나온 호랑이는 사냥꾼의 사냥감이 됩니다. 한쪽 나무 아래에는 사슴들이 쉬고 있으며, 사냥하는 무사들의 모습이 저마다 개성이 넘칩니다. 주변에는 매사냥을 하는데, 매가 사람 팔에 앉아 있기도 하고 날아가기도 합니다.

-다양한 야외 활동은 '백희기악도'

벽면의 오른쪽 윗부분에는 수레 바퀴를 던지는 재주꾼도 보입니다.

열매가 달린 큰 나무에 원숭이가 오르내리고, 이를 지켜 보는 신분이 높은 남자가 야외용 의자에 앉았습니다. 남자 옆에는 물 주전자가 있습니다. 뒤에 서있는 남자들은 의자에 앉은 사람의 시종으로 보입니다.

 

 

 

 

 

 

장천 1호분 사냥도.

벽면의 왼쪽 윗부분에는 가축 도둑 붙잡기, 놀랜 말 달래기, 씨름, 곡예를 하는 사람이 그려졌습니다. 중앙 윗부분에는 아치형 수레와 이를 끌고 온 시종이 있습니다. 그 아래쪽에는 귀부인이 한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귀부인 뒤의 시녀는 거문고를 들었습니다. 귀부인은 위쪽 수레를 타고 왔겠지요.

귀부인과 남자는 서로 의견이 일치되었는지, 여자는 거문고를 연주하고 남자는 춤을 춥니다. 그림은 이처럼 하나의 이어지는 이야기를 세 장면으로 연결해 그린 것입니다. 그림 중앙에는 커다란 흰 말도 있습니다. 이 말은 무덤의 주인공이 탈 말입니다. 그 옆에는 큰 개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습니다.

그 위쪽에는 그림이 약간 지워졌는데, 아마도 무덤 주인공이 그려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워진 사람 옆에 곧은 양산을 든 남자 시종이 있고, 그 뒤에는 여자 시종이 왼팔에 흰 수건을 들고 대기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놀이가 담긴 그림.

야외에서 땀 닦는 수건을 대령해 놓은 사실이 참 재미있습니다.

이처럼 고구려인의 다채로운 야외 생활의 모습이 담긴 ‘백희기악도’라 불리는 이 그림은 안타깝게도 도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는 그 원래의 모습을 찾을 길이 없으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김용만(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