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벽화

[스크랩] 2005년 소년한국일보 연재 12회 - 수산리고분벽화

영양대왕 2005. 5. 19. 15:14

[민족의 혼, 고구려 여행] 수산리 고분 벽화
귀족 생활 모습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 구역에서 1971년 발견된 수산리고분은 5세기에 살았던 고구려 귀족의 생활 모습을 잘 보여 주는 벽화로 유명합니다.

이 무덤은 발견 당시 이미 도굴이 되어 있었지요. 그래서 무덤 안에는 사람 뼈 조각 정도만이 남아있을 뿐 온통 흙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또 널방 천장의 벽화와 북벽ㆍ동벽 일부의 벽화도 훼손되었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벽화만으로도 수산리고분의 벽화는 세계 문화 유산으로 평가됐답니다.

- 남자는 서쪽·여자는 동쪽에 그려

수산리고분 널방 서벽에 그려진 서커스 그림. 고구려 사람들은 이처럼 서커스 구경을 즐겼다.

무덤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인 널길 서쪽 벽에서 무덤을 지키는 무사를 볼 수 있습니다. 무사는 오른손에 칼, 왼손에는 긴 창을 들고 부리부리한 눈을 뜬 채 외부 침입자를 쫓아 내려는 듯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널방 북벽에는 주인공 부부가 커다란 집 안에서 좌상 위에 앉은 모습이 보입니다. 남자 주인공은 서쪽에 그려져 있으며, 건물 안에 남자 시종 3 명ㆍ건물 밖에 남자 시종 5 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은 동쪽에 그려져 있는데, 집 안에 여자 시종 2 명과 건물 밖에 여자 시종 5 명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동쪽ㆍ서쪽으로 대비시켜 그린 게 무척 인상적입니다.

널방 동쪽 벽면에는 중간에 띠 무늬를 그려서 화면을 위 아래로 구분했습니다. 아래에는 악대와 주인공이 탄 수레, 여자 시종의 행렬 모습이 그려져 있고, 위에는 팔짱을 끼고 선 2 명의 인물 앞에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사람 사이에 구름 무늬가 그려진 것으로 보아 주인공 부부와 자식이 서로 이별하는 장면이라 여깁니다.

- 중앙 아시아·일본과의 교류 알 수 있어

널방 남벽에는 무덤 입구로 나가는 통로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양산을 쥔 여성이, 서쪽에는 한 남자와 우산을 든 남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주인공 부부와 자식으로 볼 수 있는데, 주변에 구름 무늬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천상 세계에서의 모습을 나타낸 것 같습니다. 널방 서벽은 동벽처럼 띠 무늬로 벽면을 위 아래로 갈라놓았습니다.

널방 서벽에 그려진 여주인공과 시녀 모습. 섬세한 벽화를 통해 고구려 회화의 높은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아래 부분에는 남자 주인공의 행차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위에서는 재주를 부리는 사람과 5 개의 둥근 고리와 3 개의 막대기를 엇바꾸어 던지는 사람, 수레바퀴와 막대기 둥근 고리를 바꾸어 잡는 재주꾼 등이 서커스를 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안악 3호분ㆍ약수리무덤ㆍ팔청리무덤 등에서 주인공의 행차 그림에 그려진 것과 비슷합니다.

이 서커스는 오늘날 중앙 아시아 지역인 서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고구려가 활발한 대외 교류를 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재주를 보기 위해 무덤 주인공과 남자 시종ㆍ여주인공과 여자 시종 등 10 명이 줄지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얼굴에 붉은 점을 찍어 화장하고, 아름답게 만든 저고리와 색동치마를 입었습니다. 두 손을 가슴에 모은 모습이 너무나도 예쁩니다. 또 그녀를 위해 양산을 들고 있는 시녀도 자연스런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이렇듯 섬세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무덤의 벽화는 고구려 회화의 수준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 줍니다.

한편, 일본 나라 현 아스카 촌의 다까마쓰 고분에는 수산리고분의 여성 그림과 같은 옷차림을 한 여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무덤의 모습과 벽화 내용도 많이 닮았습니다. 이는 당시 고구려와 일본의 교류 관계를 보여 주는 것이어서 눈길을 끕니다.

/김용만(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출처 :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글쓴이 : 김용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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