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윗물

대물림을 위한 비리 - 과거시험 비리와 오늘

영양대왕 2018. 10. 19. 19:38

요즘 들어 좋은 직장을 대물림하려는 노력이 광범위한 분야에서 확산되고 있다.

의사, 목사, 변호사, 교수, 대기업 노조 등등...

좋은 직장을 대물림하기 위해서는 자식 교육에 열을 올려야 하고,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자식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교육제도를 뜯어고쳐왔다.

최근에 문제가 된 서울과기대의 교수가 아들 학점을 올 A+을 준 것이나,

숙명여교 교사가 자기 딸들에게 시험문제를 미리 빼돌려 전교1등을 만들어 준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더 부자들은 더 합법적으로 자신들의 계급, 신분을 상속하는 제도를 이미 완비해놓았으니 말이다.

상속세가 외국에 비해 저렴하게 만들고, 로스쿨, 외교아카데미, 특목고 등을 만든 것은 모두 신분 세습과 관련이 있는 제도들이라고 하겠다.

온전한 평등과 진정한 선의의 경쟁은 인간이 소위 문명단계에 접어들면서 사실상 어려워졌다.

문명은 차별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고, 차별 때문에 망하기 마련이라서,

적절한 평등, 적절한 경쟁을 포장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아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도 양반들도 자식에게 자신의 지위를 넘겨주기 위해, 더 나아가 가문의 융성을 잇기 위해 과거 비리를 저질렀다. 과거 비리가 아주 만연되어 나중에는 임금조차도 특정인의 자식은 그냥 합격시켜줄 정도가 된다.

 

1677년은 아직 조선의 귀족이라고 할 경화사족이 완전히 태동되기 전이다.

그해 107일 이조판서 민점의 아들 민주도가 응시한 답안지를 몰래 빼냈다.

교서관 서리 김인걸을 사주하여 시험 답안지를 고치려고 한 것이다.

김인걸은 성균관 서리라고 속이고 과장에 들어가, 민주도의 답안지 첫 번째 폭의 접합 부분을 잘라 내고 다른 종이를 붙여 고치려다가 관원에 발각된 것이다.

형조판서, 홍문관대제학을 거쳐 6판서 가운데 최고인 이조판서가 된 사람의 아들이 과거 합격을 위해 비리를 저지르다니, 당시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이 일의 결과 민주도와 김인걸은 감옥에 갇혔다가 유배되었고 민점도 사직하게 되었다.

민점은 다시 복직해 공조판서, 좌찬성에 이르렀다.

민점의 아버지 민응협은 이조참판,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수현의 딸,

형은 좌의정 민희, 동생은 대제학 우의정을 지낸 민암이다.

이런 명문가였기에 민점은 복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사약을 받고 죽는다.

당사자인 민주도는 그 이후 벼슬을 하지 못했다.

민주도의 과거 부정 사건은 실록과 승정원일기는 물론,

허목의 기언, 윤휴의 백호전서, 이익의 성호사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등에도

언급될 만큼, 당시로서는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한국고전번역원 승정원일기번역팀 엮음. 후설, 한국고전번역원, 2013, 177쪽에는

민점이 아닌 민암으로 나오는데, 이는 잘못이다.)

  

1818년 성균관 사성 이형하는 과거의 부정행위 8가지를 조목조목 임금에게 진언한다.

1. 거리낌 없이 남이 대신 글을 짓고 대신 써주는 것.

2. 수종들이 너도나도 책을 가지고 과장에 들어가는 것

3. 과장에 아무나 함부로 들어가는 것

4. 시권 제출이 순서없이 뒤죽박죽되는 것

5. 바깥에서 써 가지고 들어가는 것

6. 시험 문제를 유출하는 것

7. 이졸들이 얼굴을 바꾸어 드나드는 것.

8. 답안을 마음대로 바꾸고 농간을 부리는 것.

 

이미 19세기 과거는 시험일이 오기 전에 합격 등수가 정해졌거나, 시험 감독관이 정해지지 않았음에도 청탁이 횡횡하는 등 부정이 너무나 일상화되었다.

1800321일 정시 초시에는 문과의 경우 111,838명이 응시하여 제출한 시권만 38,614장이나 되었다.

다음날인 322일 인일제 춘당시험에서는 응시자가 103,579(64,581), 거둔 시권만 32.884장이었다.

1894515일 마지막 과거 시험은 응시자가 237,299, 수권(收券-답안지를 낸 것) 자가 215,739명이었다.

 

그런데 당일 문과 합격자가 신종일 외 59인이 발표되었다.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당일 합격자라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이미 합격자가 정해져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특히 장원 급제자인 신종일은 부정합격자였다. 그는 2차 시험인 복시에서 글을 지어내는 제술을 해야 했는데, 신종익은 제술 답지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예조에서 이 문제를 고하여 고종에서 처벌을 요구했다.

2차 복시도 통과안된 신종일이 합격했으니 부정하게 합격한 것이다.

하지만 고종은 그를 용서해주었고, 신종일은 장원으로 종6품 성균관 전적에 임명되었고. 4년 후에는 중추원 3등 의관에 올랐다.

실제 과거에서 능력이 더 뛰어난 인물은 2등으로 합격한 인물인 이상설(헤이그 밀사)이라고 할 수 있다.

신종일이 어떤 배경에서 장원이 되었는지는 더 찾아보지 않았지만, 조선 후기 과거의 난맥상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최후의 과거마저 부정으로 얼룩진 나라 조선. 그러니 나라가 잘 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부정이 더 판을 치고, 계급이 더 공고해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이런 흐름을 막아야만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부정에 눈 감지 않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그것 조차 없다면 그래서

부정이 일반화된다면 나라의 운명, 사회의 운명은 너무도 자명한 것이다.

특정인들이 나만 아니면 되,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닌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이렇게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 자들이 늘어난다면, 결국 사회와 국가가 썩어 들어가 마침내 그런 사람들조차 망해갈 것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지나치게 잘못되면 고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역사의 힘이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