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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 인류문명을 이끌다 - 세상을 바꾼 수레 책 서평. (한겨레)

영양대왕 2010. 12. 19. 22:18

수레, 인류문명을 이끌다
한겨레 허미경 기자 메일보내기
» <세상을 바꾼 수레>
<세상을 바꾼 수레>
김용만 지음/다른·1만3000원

말이 끄는 마차, 소가 끄는 우차. 전차·기차·자동차…. 시대에 따라, 동력을 전달하는 방법에 따라 변모해온 ‘수레’의 이름들이다. 수레는 사람물건, 나아가 인류 문명을 실어 날랐다. 문명의 흥망성쇠 뒤안에는 수레 기술이 있었다.

<세상을 바꾼 수레>는 수레라는 열쇳말로 인류 문명사를 곱씹는 책이다. 수레가 발전했던 고구려와 수메르·로마문명, 수레 기술 없이 꽃피었던 마야·잉카문명 등 여러 문명을 비교탐구한다.

고구려는 근대 이전 한국사를 통틀어 수레를 가장 활발히 사용한 나라다. 무용총 벽화에는 미국 서부시대 역마차와 같은 큰 수레도 나온다. 후대로 올수록 기술 발전으로 대형 수레가 많아졌다. 한꺼번에 1000대가 넘는 수레가 사용됐다는 기록도 있다. 수레 덕택에 동시에 2만명의 상인이 드나드는 큰 시장도 있었다 한다. 기원전 1세기 마한 사람들도 수레를 썼다. 신라와 백제도 수레 애용국이었다. 신라엔 수레 담당 관청도 있었고, 한 번에 수레 2000대를 동원한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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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는 도로를 발달시킨다. 신라 금성, 고구려 장안성, 백제 사비성은 수레가 다니도록 넓게 길을 낸 계획도시였다 한다. 428년 고구려 평양에는 길이 375m, 너비 9m나 되는 다리가 놓였다. 760년 신라 반월성 옆 남천에는 길이 53.8m, 너비 14.5m의 다리가 세워졌다. 수레가 다닐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다리 폭을 넓게 할 필요가 없었으리라. 고구려와 신라는 서양의 로마처럼 수레가 일상적인 교통수단이었기에 다리 건설에 힘을 기울인 것이다. 고구려, 신라의 다리는 수레가 넉 대 이상 동시에 달릴 수 있는 너비였다.

그 뒤 1000년이 지난 조선시대(1392~1910)에는 수레 사용이 확 줄었다. 조선은 강을 외적을 방비하는 천연요새로 여겼다. 한강에 제대로 된 다리가 없었던 이유다.

 

조선의 다리 기술 퇴보는 넓은 강폭, 국방문제 등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다. 조선이 도로 건설에 애쓰지 않은 까닭은 지배층의 주된 교통수단이 가마였기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일갈한다. 가마는 교통을 발전시키기는커녕 낙후된 도로 상태를 지속시키는 원인이었다. 지은이는 1999년 <고구려 수레 연구>란 논문을 집필하다 삼국시대엔 수레 사용이 활발했던 반면 조선시대엔 되레 뒤떨어진 데 주목하게 됐다. 그 뒤 다년간 수레 문명사 연구의 비교 대상을 세계로 확대한 결과물이 이 책이다. 

 

허미경 기자  

 

기사등록 : 2010-12-17 오후 08:3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