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고구려 역사문화보존회(http://www.koguryeo.org/home.php)에 들어갔더니 자료실에 고구려 보루 출토 토기사진이 있어서 한번 퍼 와봤습니다. 보니깐 구리시 e-고구려박물관(http://www.ggrmuseum.go.kr/)의 자료들을 올린 것 같은데 용량은 그리 크지 않아서 다른 곳에 사용하기는 안 좋지만 일괄 유물을 정리해서 한눈에 본다는데 의의가 있을 듯 합니다. 일단 2개의 싸이트는 생각만큼 자료가 다양하거나 활용성이 좋지 않아서 딱히 추천해드리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원본 자료를 보시고 싶다면 한번 들리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보니깐 구의동보루에서 출토된 것부터 아차산 4보루에서 출토된 것까지 다양한 토기들이 확인되는군요. 개인적으로는 명문이 새겨진 토기들을 좀 더 자세하게 소개했으면(사진을 크게 좀 확대해서)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다소 듭니다. 그래도 이렇게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종류별로 정리된 자료가 별로 없었던 터라 이렇게 올리는 거니깐 한번씩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합니다. 이 토기들이 일반 고구려 주거지에서 나온 생활용기들이라기 보다는 군부대에서 쓰던 군수물자라는 특이성이 있긴 하지만 그 당시의 물품들이 지금 일반(싸제) 용품과 군용품의 차이만큼 차이가 났다고 보기는 힘들 듯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특이한 형태의 토기(또아리병과 같은)들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당시 고구려인들이 대체로 이와 같은 토기를 사용했다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또 한가지 더 얘기하자면 고구려 토기의 경우, 굉장히 연질이라서(경질이 별로 없습니다) 직접 만지면 손에 묻어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예전에도 그렇진 않았을 겁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게 변했으리라 생각하는데 토기의 사용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던 점을 감안했을때 사용하는데 있어 큰 문제는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워낙 연질이어서 예전에도 그냥 쓰지 않고 그 안에 천이나 면 같은 것을 덧대어 사용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특히 음식을 증기에 쪄야 하는 시루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죠. 그나저나 고구려 토기의 대부분이 연질이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미스테리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충분히 경질토기를 만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안 만들어 쓴 것을 보면 말이죠. 물론 대규모 취락유적이 발견되어 그 안에서 다량의 고구려 토기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잘 모를 일이지만요. 개인적으로는『고려도경』처럼 중국인들이 고구려를 방문하고 남긴 기록 중에 고구려인의 생활상에 대해 잘 묘사한 문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휴우~
그리고 토기를 올리다보니 다음 사진도 있길래 같이 올려봅니다.
고구려에서는 위에서 보이는 것처럼 청동그릇도 만들어서 사용했습니다.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사이호(네귀항아리)인데, 위에 보이는 나팔입항아리와 형태적으로 상당히 유사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청동그릇은 제사용기 혹은 부장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실생활에서 사용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습니다. 금관총에서 나온 걸 보니 고구려에서 선물로 줬거나 피장자가 고구려와 연관된 사람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재밌는 자료가 있죠. 예전에 이걸 보고 정말 신기하다고 느꼈던 자료입니다.
제가 무슨 자료를 보여드리려고 하시는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솥 옆에 놓여있는 투명한 그릇, 즉 유리그릇에 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옆의 시녀는 접시 같은 것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이고, 가운데의 시녀는 불을 떼고 있죠. 암튼 흰 옷을 입은 시녀는 한손에는 액체를 뜨는 국자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막대기 같은 것으로 솥 안의 음식물(이겠죠? ^^;)을 휘젓는 듯한 모습입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고 딱 그게 떠 올랐습니다.
- 찌개나 전골 같은 국물있는 음식을 끓일 때 우리는 위에 뜨는 하얀 거품을 이렇게 떠내지 않습니까? -
암튼 그게 좀 비약인 것 같기도 합니다만...이 장면을 보고 몇몇 학자들은 밥을 하는 모습이라고도 합니다. 그때는 밥을 아궁이에 하지 않고 찐밥을 먹었기 때문에 이렇게 요리했을 수도 있다고 말이죠. 하지만 밥을 할때 일반적으로 긴 막대기와 국자를 사용하지는 않죠. 그래서 저는 이것이 차를 끓이는 장면은 아닐까 생각도 했습니다. 물론 차로 볼만한 정황근거가 있을 뿐이죠. 어쨌든 당시 부엌에서(물론 안악3호분은 왕릉급 무덤으로 비정되기 때문에 이는 상류층 부엌을 염두에 둔 언급입니다) 유리그릇이 쓰였다는 것을 우리는 벽화를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이미 원삼국시대(혹은 삼한시대, 초기 철기시대)때부터 우리 조상들은 유리로 만든 장신구들을(요즘에도 통용될 수 있는 스타일의) 사용했으며, 중국인들은 우리 조상들이 유리제품을 굉장히 귀하게 여기고 좋아했다고 적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른 시기부터 유리그릇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높다고 봅니다.
최근에 인기리에 방영되는 사극 '선덕여왕'을 보면 고현정이 유리그릇을 이용해서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이 몇번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의 로만-글라스로 그처럼 청아한 음이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사극에서 유리그릇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상당히 큰 자극이었습니다. 예전에 사극 '주몽'에서 부여인들이 한참 후대의 신라인들이 쓰던 서수형토기로 술을 마시는 걸 보고 '이그~한심한 사극 제작자들 같으니라고~'라고 욕을 했었는데, 그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발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고구려인들 역시 유리그릇(그것도 아주 투명한 유리, 이는 불투명한 유리보다 훨씬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다들 아시죠?)으로 음식을 담아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걸 보면 조금 쇼킹했었습니다. 전혀 생각치 못 했던 부분이었으니 말이죠.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들 역시 고구려인들이 유리그릇을 사용했었다는 것을 잊지 마십쇼.
이상입니다. 고구려 보루에서 출토된 토기 몇점을 소개하려다가 청동그릇과 유리그릇 얘기까지 나왔네요. 암튼 좋은 정보가 되었으면 합니다. ^^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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