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수촌리 4호분 금동관 공개
[조선일보 신형준기자]
1600년 전 백제의 용과 봉황은 지금이라도 날아오를 듯 힘차다.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백제 장인의 혼이 가쁜 숨을 토한다. 8일
백제에서 가장 오래된 용과 봉황 장식이 21세기 후손들에게 첫 모습을 드러냈다. 2003년 말 충남 공주 수촌리 4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5세기
전반)의 투조(透彫) 장식과 수촌리 1호분 출토 둥근고리 큰 칼(4세기 후반)이다. 이날 충남역사문화원 문화재센터(센터장 이훈)는 “금동관과
둥근고리 큰 칼의 보존 처리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용과 봉황 장식은 전북 익산 입점리 백제금동관(5세기 후반), 충남 공주 무령왕릉 둥근고리 큰 칼(6세기 초반), 충남 부여 출토
백제금동대향로(6세기 후반~7세기 전반·국보 287호)는 물론, 일본 후쿠오카 에다후나야마(江田船山)고분 금동관(6세기 전반·백제가 하사) 등
백제 최고 지배층 유물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 “일본에까지 건너간 백제 용봉(龍鳳)문양의 시원(始原)을 찾은 셈”(이한상 동양대
교수)이다.
금동관은 높이 19㎝다. 발굴 당시 흙과
녹으로 엉겨 붙어 전체 모습을 알 수 없었다. 이훈
센터장은 “관(冠)의 꽃봉오리 모양 장식(=수발)과 테두리 일부가 보였을 때 유물 훼손을 막기 위해 관 주변 흙을 통째로 떠 왔다”며
“현미경으로 유물을 보면서 붓과 외과용 칼(메스)을 이용해 흙과 녹을 조금씩 벗겨냈다”고 했다.
금동관은 8개의 판을 붙여 만들었는데, 용과 봉황 무늬는 금동관 앞 육각형판에 장식됐다. 용은 여의주를 물었으며, 봉황은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이한상 교수(고고학)는 “4세기 중국 동진(東晋)에서 왕의 관에는 청렴을 상징하는 매미를, 허리띠에는 용과 봉황을 장식했는데, 백제는
중국의 허리띠 장식 무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둥근고리 큰 칼에는 고리 양측에 불을 뿜는 용 두 마리를 은으로 상감(象嵌·표면에 무늬를 새긴 뒤 금·은 등으로 박아 넣는
기법)했다.
(신형준기자 [ hjsh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