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작업과공부

세계는 한국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 '해전의 모든 것' 책에서

영양대왕 2010. 10. 13. 17:37

이에인 닥키 등 5인 공저 한창호 옮김, [해전의 모든 것] , 휴먼북스, 2010년 책을 최근에 읽게 되었다.

번역서가 아닌 원서도 2009년에 출간되었으니, 미국 역사학계의 가장 최근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겟다.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한산도 해전 부분이었다.

책 전체가 주로 서양사 중심으로, 기타 지역의 해전에 대해서는 한산도 해전과, 쓰시마 해전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소략하기는 하다. 그럼에도 해전의 모든 것이란다. 동남아시아, 인도, 이슬람세계, 아프리카 등의 해전에 대해서는

필자도 모르지만, 그 지역에 대한 언급은 아예 생락하고 있다.

적벽대전이나, 정화의 원정 등에 대한 언급도 없는데, 한산도 해전이라고 끼어있으니, 우리로서는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많은 이들이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나면 뭐 그렇지. 이 정도면 세계 해전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에 이의를 달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서양 중심의 역사관에 익숙해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정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한산도 해전 부분에 대한 기술은 아무리 읽어봐도 저자가 일본측 자료에 입각해서 정보를 얻어 쓴 것 같다.

한산도 해전의 가치에 대해서 평가는 우리의 기대에 자못 못 미친다.

얼마전 나는 "지도로 보는 우리 바다의 역사" 책을 탈고했다. 이 책에서 한산도 해전 이야기가 나오는데,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의 이사(서울대 동양사학과 출신)분이 굳이 세계 4대 해전을 언급하자며 친절하게 교정과 함께

주석까지 첨가해서 내게 다시 보내왔기에, 나는 과감하게 4대 해전이란 표현을 언급하지 말자며 짤라 버렸다.

그것은 우리 생각일뿐. 서양에서는 일반적으로 세계 4대 해전 이런 것에 한산도 해전은 언급하지 않는다.

뭐 어느 나라 어느 해군사관학교 교재에 이순신과 한산도 해전이 언급되었다고 말하겠지만, 그것은 아직 일부에 불과하다.

아직 서양인들은 한국에 대한 생각이 무슨 미개한 나라, 중국과 일본의 틈에 있는 작은 나라라는 생각을 지배적으로 갖고 있다.

 

책 내용 가운데 조금 신경 쓸 부분이 있다.

그리스의 불화살, 외돛상선과 장궁, 갈레아스 전함과 대포 운반대, 이 모든 무기들은 서구에서 과학기술적 혁신의 성과물이었다.

한편 이순신과 그의 거북선은 그가 구하고자 했던 나라에서 영원한 전설이 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적어도 몇 군데에서 선상(船上)의 혁신을 통해 진보가 가능하다는 신념이 생겨났다. - 139쪽.

 

그런데 이 책 130쪽에는 뭐라고 하느냐면, 

"이런저런 자료에 따르면, 조선 수군은 독자적인 네 바퀴 달린 대포 운반대를 획득했거나 발명한 바 있었다. 이순신은 이런 대포의 성능을 이해했고, 조국을 방어하는데 이런 대포를 사용하고자 한결같이 제안했다."

 

여기서 문제는 대포 운반대다. 대포운반대는 볼크먼의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에서도 등장하는 군사 과학기술의 대단한 혁신 제품의 하나다. 대포 발사의 충격을 흡수해주는 대포운반대 덕택에 대포가 배에 실릴 수 있게 된 셈이니 중요한 발명품이라고 하겠다. 서양에서 이것을 발견한 것은 15세기에 프랑스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보다 먼저 14세기 말 고려에서 이미 대포운반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최무선이 화약과 대포를 제조한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최무선의 진포 해전을 몰랐다. 최무선은 화로를 활용하기 위해 樓船을 새롭게 건조하기도 했다. 그런 전통 덕택에 조선 수군은 배 위에서 대포를 마음껏 쏠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을 대충을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언급을 하지 않고서, 조선에서도 대포 운반대를 획득했거나 발명한 바가 있었지만, 대포운반대는 서양의 발명이라고 굳이 한산도 해전 부분에서 언급하고 나섰다.

 

왜 굳이 이런 표현들을 이 책의 저자는 한 것일까? 한 마디로 말해, 조선에서 이루어진 한산도해전 그것은 세계사의 큰 흐름과는 동떨어진 그야 말로 세계사의 지엽에서 벌어진 그저 우연한 사건으로 보려는 생각 탓 인 것이다. 냉정히 말해 조선은 한산도해전 이후 함포를 더 개선하거나 배를 개선하는 등 세계사의 변화를 가져오는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목판인쇄, 금속활자 등등 우리가 세계 최초라고 증거까지 제시하는 것들이라고 하더라도, 서양에서는 뭐 그래. 그런가 정도로 끝난다. 한산도해전을 보는 서양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즉 이 책에서 한산도 해전을 언급한 것은 서양에서 인정해주는 일본이 뭐 별볼일 없는 조선에게 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조금 설명한 정도인 셈이다. 명랑 해전에 대한 언급도 없고, 진포 해전에 대한 언급도 없는 이유도 결국 일본인의 시각을 빌려서 세계사를 쓰고 있는 서양(여기서는 아마도 미국, 영국)의 현재 학문 수준 탓이 아닌가 한다.

 

우리 나라에 대한 국가 이미지 개선, 우리 학문을 적극 소개하려는 노력이 없이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 될 것은 자명한 일이겠다. 책을 읽으면서 씁쓸한 마음에서 몇 자 적어 본다.